돌 또는 바위
김 난 석
잠실의 어느 매장에 들어서노라니 매장 한가운데에 돌이 하나 놓여있다. 돌이라 할지 바위라 할지, 그것도 매장의 크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그것도 의류취급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커다란 돌이 깔판 위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건 어디서 본 것도 같은데...
한남동의 리움 미술관에 가면 이우환의 특이한 작품이 있다. 철판 위에 커다란 돌을 올려놓은 건데, 이와 유사한 그의 작품은 여기저기에서 많이도 전시되고 있다. 그는 점, 선, 면을 주제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있는 화가로서 설치미술가요 또 시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깔판 위에 놓여있는 돌 또는 바위는 무얼 뜻하는 걸까...?
예술은 창작이다. 남이 하지 않는 걸 지어내는 거다. 그것은 해석이 아니라 느낌이다. 어느 곳에 돌이나 바위가 놓여있는 걸 보면 그 장구한 시간성을 보게 된다. 주위의 것들과 어떤 교감하는 듯한 모습도 본다. 리움 미술관의 그 이우환의 작품은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잠실의 그 의류매점에 놓여있는 건 어떤가...? 잠시 생각이 여기에서 멈춘다.
목석(木石)은 나무와 돌을 말한다. 나무나 돌과 같이 감정 없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무런 감정 없는 마음씨를 목석간장이라 한다. 목석 중의 나무는 실가지 늘어뜨리고 한들거리는 일도 없고 땅 밑으로 뿌리내리는 힘찬 역사(役事)도 없다. 하늘을 받치는 우람한 자태도 아니니 잎새도 뿌리도, 또 생명력도 없는 통나무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것도 자연의 일부요 문명의 한 소재이기에 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게 인간의 몫이기도 하다.
나무보다 더 생명력이 없는 것이 돌이지만 돌은 나무보다 더 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꽃은 피면서 쉽게 지고 풀은 푸르는 듯 누르지만 변치 않는 건 바위뿐이라 노래하며 의지하려 든다.(윤선도의.( 오우가)
누구든 무엇인가에 의지해 살아가고자 하나 의지의 대상은 유한하기에 불안하기 마련이다. 혈육이나 스승, 배우자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특별히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을 찾기도 하지만 생명과 신뢰의 유한성 외에 한없이 가벼운 게 인간사(人間事)이기에 때로는 자연에 깃든 절대자에 몸을 의탁하기도 했다.
예로부터 마을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마을 어귀에 장승이나 벅수(法首)를 세워뒀다. 나무나 돌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세워놓고 마을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도록 하는가 하면 온갖 잡스러운 것들을 못 들어오게 했다. 그것은 인간보다 생명이 길고 그것은 또 변절할 염려도 없으려니.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쓰던 물품들을 함께 묻기도 하고 종자(從者)를 함께 부장 하기도 했다. 육신과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 묘지기를 두기도 했지만 그것은 유한한 것이기에 역시 돌로 사람이나 짐승의 형상을 만들어 묘 앞에 세워뒀다. 그것은 변절할 염려도 없으며 그것은 또 자리를 떠나는 일도 없으려니.
신라인들이 불국토의 염원을 담아 석굴암을 조아내듯 인도 아리안들이 영원한 사랑과 제국의 꿈을 담아 타지마할 궁전을 조아내듯 유한에서 무한을 꿈꾸는 인간의 염원이 이렇듯 나무나 돌에 의지하게 되었던 것이리라.
인류의 문명은 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돌을 깨뜨려 도구로 사용한 것이 그 시초요 깨뜨린 돌을 갈고닦아 도구로 사용한 것이 그다음이다. 생활도구가 다 갖춰지면 아름다운 형상도 만들어냈으니 그것이 목조물이나 석조물로써의 예술이다. 문명의 극과 극은 서로 닿아있다. 돌 자체를 생활도구로 이용하다가 지금은 돌가루로 웨이퍼(Wafer)를 만들어 정보통신시대를 열었기에 말이다.
지구의 해저에는 ‘불타는 얼음’으로 불리는 하이드레이트가 10조톤 가량 묻혀있다 한다. 이 얼음 같은 돌덩이가 공기와 결합하면 170배의 가스가 생성된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지구의 위성인 달에는 헬륨-3의 형태인 돌로 지구가 저장하고 있는 화석연료의 10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고도 한다.(앨빈 토풀러의 ‘지식의 미래’) 이것만해도 미래의 에너지 고갈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으려니 돌이 옥이 되는 것이 아니던가.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가는 이 돌이라 한다지만 이젠 시어(詩語)도 돌을 옥인 듯 있으라고 고쳐야 할까 보다..
잠실의 어떤 의류점에 들어가 보면 매장 한가운데에 커다란 돌이 놓여있다. 참 의아하다. 돌이라기보다 커다란 바위인데, 생명성 없는 돌 앞에 만감이 교차한다.
첫댓글
생명은 유한하고
무생물은 무한합니다.
생명체 중의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지능과 손으로 연장을 다룰 수 있습니다.
인간 세계는
삶의 연장을 추구합니다.
진시황의 불노초를 구하듯이...
지능이 있고 연장을 다루는 인간은
불노초를 구하는 진시황의 허황됨을 알았습니다.
대신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영원성을 나타내어 예술로 승화시키는 묘약이지요.
예를 들어 토함산의 석굴암 부처라든가
결혼식 때, 부부 금실이 좋은 기러기를 식단에 올린다든지
마을의 안녕을 빌기 위해 솟대를 세운다든지...
무한생명의 돌과 목재로 유한 생명을 불어 넣는
그런 것이 예술이 아닐까요.
옷가게 넓지 않은 곳에 돌을 설치한 것은
남의 이목을 끌고 설치 미술 비스무리하는
주인의 따라쟁이 안목일 것 같습니다.^^ 죄송~
글 잘 읽었습니다.
따라쟁이가 맞지요.
그런데
예술의 창작과
에술의 생활화는
그 구분이 모호하기도 하지요.
@석촌
그것도 예술의 생활화가 되는 군요.
창작성이 모자라는 작품보다
남에게 보여주려는 따라쟁이는
약간의 허영... 이 말도 죄송...^^
@콩꽃 예술을 한다면서 따라쟁이 하는건
허영이요 위선이겠지만
세상물정 모르면서 따라쟁이 하는건
사이비거나 애교라고나 할까요?
매사 경계가 모호하기도 해요.
돌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게되어 감사드립니다 ㅡ
고맙습니다.
선배님!
반갑습니다
추운날들이 계속 이네요
건강 유의 하세요
존경 드립니다
네에,고마워요.
이 바위는 모양 예쁜 바위 인거는 틀림 없지만 옷 매장에 전시한다니?
웃깁니다
아마 이 바위가 옷 매장에 복을 가져올 거라고 믿는거 같습니다
이 바위는 전원 주택 표지석에 어울리는 바위 일거 같습니다
충성 우하하하하하
아닙니다.창조는 처음엔 다 웃기는 거부터 출발합니다. 뭐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 정도도 좋구요.아무튼 크게 웃길수록 큰 창조가 될지도 몰라요..저도 꽤 웃기는데 불행히도 창조적이진 못했어요..ㅋㅋ
일단 의류점을 손님들에게
각인시키기에는 성공한 돌 작품입니다.
미국 사는 저까지 그.의류점을 기억하게
되었으니까요. ㅎ
우리 선조들께서 특히 돌을 잘 다루어서
고구려의 축성 기술은 다른 고대국가에선
보기 드문 기술이라 하더군요.
이야깃거리가 되니까요.
무심코 지나친 큰 돌이 어떤날은 말을 할때도
있었습니다 .
그곳의 돌도 아마 그럴듯 해요 .
분명 거기에 있는 이유가 있을테니깐요 .
거기에 있는 이유
맞아요. 그것도 존재의
상징성이겠지요.
LA의 LACMA 미술관에는
공중에 떠 있는 커다란 바위가 있더군요.
미켈란젤로가 저 바위를 보았다면 위대한 작품을 조각할텐데....
그렇겠지요.
다윗도 나오고요.
잠실이라서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기도 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