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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BHC핫후라이드치킨
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BHC핫후라이드치킨
1. 베트남 파병의 진실
강대국 미국의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파병했다고 아는 여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알려줄게
한국의 베트남전쟁 참전은 한미동맹에 의해 미군이 참전요청에 의해 참전했다.
라고 알려져 있으며 네이버에 베트남전쟁 치면 뉴스나 사설 등에서 저렇게 정의하고 있음.
그러나
한국 측(박정희)의 수차례 강력한 요청에 의한 참전이었음.
<위키백과 출처 베트남 전쟁 내용 中>
박정희 정부는 차관 마련 등의 군사, 경제적인 이유로 집요한 파병제안을 했으나, 당시 미국 정부는 베트남전에 한국군을 파병할 경우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과 중국, 소련 등의 공산권 국가를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제안을 거절하였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한국군 파병 배경 항목 中>
군사정부는 한·일국교정상화와 베트남파병을 국가전략으로 채택해 안보와 경제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했다. 이 같은 전략에 따라 1963년 11월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케네디 대통령과 첫 번째 만남에서 한국군의 파병을 공식 제안했다. 그 후에도 박정희 정부의 제안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그때 마다 그럴 듯한 이유를 들어 한국의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한국군 파병에 부정적이었던 미국의 입장이 바뀌게 된 것은 날로 증대 되고 있는 베트콩 세력을 방치할 경우 남베트남 정부의 존립이 위태롭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존슨 대통령은 1964년 5월 9일, 한국을 포함한 25개 우방국가에게 서한을 보내 남베트남을 도와 줄 것을 요청했다. 박정희 정부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던 해외파병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http://www.imhc.mil.kr/user/indexSub.action?codyMenuSeq=70427&siteId=imhc&menuUIType=sub)
한국전쟁 이후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던 한국은 전쟁을 빌미로 경제적 효과를 보고자 참전을 희망한 것임.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은 주한미군의 병력 상당수를 빼내서 베트남으로 보냈는데 전세가 불리해지자 또 주한미군을 빼냄.
한국에서 주한미군이 빠져나가면 가장 쫄리는 사람은 박정희였음
한국을 지켜주던 미군이 없으면 언제 북한에서 쳐들어 올지 모르니께
근데 점점 전세가 미국에게 불리해졌겠다 병력은 더 필요하겠다 싶어,
포기를 모르는 남자 박정희는 또 "야 우리가 병력 좀 보태줄게" 라고 다시 또 제안을 함
전세악화로 더 거절할 이유가 없던 미국은 ㅇㅇ승낙 후 정식 파병 요청을 함
야당 인사 윤보선과 장준하 선생이 강력 반대했지만 남의 말 들어주면 불통의 아이콘아니자나여?
이렇게 65년~73년 총 8년 간 346,392명의 대한민국 청년들을 베트남에 보내 5099명이 목숨을 잃었음
2. 파병의 댓가와 박정희 경제 발전
1.미국정부로부터 한국군의 현대화 장비를 지원받음
2.해외전투수당과 원조수당 등의 자금 지원받음
3. 경제 개발 차관 제공받음
특히 전투수당과 지원금이 외환보유액이라곤 쥐꼬리 수준의 극빈국 한국에게 가뭄에 폭우수준이었음
청년들을 사지로 내몰아 미국으로부터 받은 자금으로 여기저기 투자를 함. 파병수당의 일부로는 국토개발사업에 투자했는데
바로 박정희 경제발전의 상징인 경부고속도로임
1965년 베트남 파병 당시 같은 해 박정희는 외교 협정을 하나했음.
한국 근대사 역대급 굴욕외교인 한일협정임
저거 때문에 아직까지 지금까지 일본이랑 독도 분쟁이나 위안부 배상 문제로 말이 많은거임ㅅㅂ
이건 설명하자면 너무 길고 암튼 박정희의 일본 사랑이 잘 드러나는 조약이었음^^
일본에게 배상청구권을 포기하는 것을 합의 후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엄청난 자금을 지원받음
타결액은 무상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민간상업차관 3억 달러,
당시 일본의 외환보유액이 14억 달러 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자금이었음.
이때 일본에서 받은 자금으로 경부고속도로도 짓고 여기저기 투자를 함.
그리고
박정희 경제발전의 가장 대표적 상징 포항제철도 이 때 지음.
노답 수구꼴통들이 지금 우리가 잘사는건 전부 다 박정희 덕분이라고 핏대 세우며 소리치는데 우린 그 성장 이면엔 수많은 청년들을 사지으로 내몬 베트남 참전으로 인한 미국의 피묻은 자본과 일본에게 억울하게 희생 당한 힘없는 피해자들의 입을 국가가 앞장서 틀어막은 댓가로 받은 더러운 자금이 있음을 잊이 말아야함.
3. 한국군의 악행
60~70년대 한국은 강력한 반공사상으로 똘똘 뭉친 시기였음
어린이들은 반공 표어나 포스터를 만들며 반공교육을 받고 반공 색출, 반공서적, 반공드라마 등 온통 반공반공반공시절이었음.
철저히 반공으로 무장한 한국군에게 베트콩은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빨갱이로 적개심이 엄청났음
베트남전쟁 당시 첫 해외파병인데다 빨갱이와의 전쟁이라는 한국군의 지나친 몰입으로 수많은 학살을 낳았다는 견해도 있음
한국군은 전쟁 당시 민간인 마을로 들이닥쳐 무차별인 학살로 유명했는데 그 수법이 상당히 잔인했다.
남녀노소 할 것없이 무조건 죽였는데 베트남전 참전국 중 가장 잔인한 학살을 한 나라라고 평가받는다.
빈호아마을에선 민간인 430명을 학살했고 이곳에선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졌으며 마을에 한국인 출입을 금지한다고함
퐁니마을, 퐁넛마을에선 비무장상태였던 민간인 70여명이 무차별 학살을 당했으며
하미마을에선 민간인 135명을 학살, 타이빈마을에선 마을 주민 68명을 세워두고 차례로 총을 쏴 죽이고 수류탄을 던졌다.
이것뿐 아니라 수많은 잔인한 학살을 자행했는데 학살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한국군에 대한 분노심으로 오히려 베트콩에 가입해 싸우는 경우도 많았다고함
맹호부대가 지나간 15개의 마을에서만 1004명의 민간인이 죽었다고 해
후이엔성 지역 한 곳의 희생자 수만 5000명이 넘고 베트남 전국엔 지금도 최대 3만명 이상의 한국군 피해자들이 남아있다고한다.
양민 학살 사진들↓(잔인함주의)
총에 맞아 사망한 2명의 베트남 임산부들
살해당한 어린이
양 쪽 가슴이 도려내진 후 총격이 가해진 21세 여성
이 후 미군과 남베트남군에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손목을 대검으로 칼질당한 소녀
한국군에 의해 불태워져 죽은 마을 주민
발가벗겨진채로 살해당한 젊은 여성 시신 앞에서 웃으며 기념촬영 중인 한국군
(텍스트 잔인함주의)
한국군은 잔인한 무차별 학살 뿐 아니라 잔인한 방법으로 괴롭혔으며 마을마다 처녀들을 집단 강간하고 강간한 뒤 처녀들을 불질러 죽였으며 부모 앞에서 딸자식을 강간하는 등 잔인한 짓을 서슴치 않았다.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칼로 난도질을 했으며 사지를 찢어 죽이고 신체의 일부를 절단해 기념사진을 찍기, 운동장에 모두 눕히고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죽이기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특히 한국군은 어린이와 여자, 임산부에게 유난히 잔인한 특징이 있었다.
산 채로 임산부를 배를 갈라 죽이고 어린아이들은 손과 발을 자르고 목을 자른 뒤 불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4. 한국의 입장
베트남전쟁이 끝난지 수십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몰랐다가 1999년 미국기자의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양민 학살에 대한 폭로로 불씨가 지펴지게 되고 한국에서도 혹시 우리 국군도 그런게 아니냐는 의혹이 처.음.으.로! 제기돼.
한겨례에서 베트남 현지에서 유학중이던 학생이 희생자 유족들을 인터뷰한 것이 보도되는데,
이에 따른 국방부의 의견은
사실 확인이 안된 상태라 공식 의견은 밝히기 곤란
우리 병사들도 민간인으로 위장한 베트콩으로부터 많은 피해 입어
베트남 정부도 이 사건이 갑자기 공론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 기사가 보도된 후 고엽제전우회에선 한겨례 신문사에 난입해서 난동으로 부린 일도 유명하지^^....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50225000046&md=20150225072706_BL) 출처↓
지난 2000년 10월, 베트남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는 미국 사료관 문서관리소로부터 받은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조사보고서를 공개합니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 없었다고 주장하던 국방부의 공식입장을 반박한 것이죠. 보고서에는 퐁니ㆍ퐁넛 마을 사건 등 자세한 묘사와 충격적인 사진들이 포함돼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불러일으켰습니다.
뉴스 자료는 못찾았는데 공식 의견 밝히기 곤란하다고 한 뒤 그런 적 없다고 국방부에서 공식 입장 발표한듯.
어디에 있는 어느 국가가 생각이 난다............^^..
국방부에선 아직 학살 사실을 공식 인정한 적이 없음.
침묵하는 국방부와는 반대로 수십년만에 최초로 김대중 대통령이 이 일을 언급했는데,
(사진 출처 http://impeter.tistory.com/2282)
라며 사실상 사과 입장을 밝혔어.
공식적 사과했다고 아는 사람많은데 공식 사과 아님
짚고 넘어가야할 건 김대중 대통령이 사실상 사과를 하기 이전
1992년 베트남과의 수교협정 당시에
냉전 시대에 불가피한 파병이었으므로 더이상 베트남 참전으로 인한 과거사를 문제 삼지 않기로 했어
어디의 누구의 역대급 굴욕협정이 생각난다^^.........................
베트남 정부는 예나 지금이나 말이 필요없는 노답 정부로 유명하지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에 매우 화가 난 사람이 있었지.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에 못말리는 근혜님은 매우 화가 났어
참전용사와 대한민국의 명예에 못을 박았다며 분노한 것이지.
한국군의 참전이 베트남인에게 고통을 줬다는 역사인식은 대체 뭐냐며 강력히 비판했어
명불허전 공주님 역사인식^^...
그녀와 함께 분노한 이들이 있었으니,
속칭 가스통 할배로 익숙한 고엽제 전우회지.
사진은 이번 베트남 학살 피해자의 첫 방한 때 시위하던 사진으로 올릴게
위안부할머니들을 매춘부라 부르는 어디 나라 누구들이 생각이 난다^^.....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에 분노한 고엽제 회원들이 망언을 철회하라 격한 시위를 벌였으나
김대중 대통령은 입장을 번복하지 않았어
이후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호치민 묘소에 헌화와 참배를 하며,
"우리 국민들은 베트남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그만큼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라며 우회적인 입장을 표한 바 있지.
그리고 2013년 9월,
(사진)헌화하는 박근혜 대통령.
베트남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적군의 수장이었던 호찌민 전 주석의 묘소에 직접 참배하고
또 그의 생가까지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5. 현재와 한국의 교과서
베트남 곳곳엔 한국군 증오비와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위와 같은 사실을 교과서에서 본 여시있어?
아무도 없을걸 왜냐면 우리나라 교과서엔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과 강간, 라이따이한 등의 문제는 전혀 다루지 않고
오로지 경제 효과에 대한 설명과 고엽제 피해자만 간략히 서술하고 있거든
교과서엔 없지만 선생님이 간략하게 덧붙여 말해주는 정도였지 난 저 정도로 잔인한 줄 몰랐어
인간의 탈을 쓴 악마의 기록 같아
더 잔인하고 끔찍한 사진과 내용도 있었는데 그건 내가 못 넣겠더라
딱 한 번
천재교육 교과서에서
<그러나 전쟁과정에서 5천여 명의 한국군이 희생되었으며, 지금도 부상과 고엽제 후유증 등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다. 이 밖에도 베트남 민간인 학살, *라이따이한 등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남아 있다.>
라고 기술해 엄청난 논란이 됐어
당연히 저런 기술을 담은 교과서는 정식 출간될 순 없었어
이 사건을 두고 조갑제는 이런 말을 했지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란 기술은 문제가 있다. 한 건도 입증된 적이 없다. 한국도, 베트남 정부도, 그 어떤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도 그런 조사를 한 적이 없다.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교과서엔 확정되지 않는 사실을 올려선 안 된다. 더구나 조국과 국군에 불리한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기술하면 안 된다.
조국에 불리한 주장을 기술하면 안된다.
왠지 어느 나라가 떠오르는 논리지 않아?
일본의 어린 학생들은 조국의 전범사실을 모른 채 객관적이지 못한 조국에 우호적이고 왜곡된 교과서로 배우고 있지
자료를 찾다보니 열받아서 속이 뒤질힐 것 같아
희생자와 유가족 인터뷰도 가져오고 싶었는데 넘 많아서 관심있는 여시들은 따로 찾아보는걸 추천해
우리도 독일처럼 확실한 입장표명과 정부의 공식사과로 지난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해야해
단지 사과만 했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 독일인들처럼 스스로 반성하고 과거의 잘못을 정확히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한 거겠지
그럼 문제 시 상냥히 알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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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BHC핫후라이드치킨
첫댓글 약팔지마라 샹
미친 잘못은 인정해야지 뻔뻔한 낯짝 진짜 아
시발 창피해...ㅠㅠㅠㅠㅠㅠㅠㅠ
진정한 사과를 받고싶으면 진정한 사과를 하자
읽는 내내 일본이랑 너무 똑같아서 소름돋았어
이거 안 후로 일본욕하다가도 멈칫하게 돼... 내가 한국인으로서 일본을 욕할 자격이 있나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음
물론 잘잘못을 똑바로 가려야하는거라는거 알지만 스스로 부끄러워져
이런문제가 더알려져야한다고 생각해.... 저분들의 고통은 누가알아주냐고 사과해라진짜
나 한국사 배울 때도 박정희가 요청한 걸로 알고 있었음
아 진심 이 나라 살기싫다
아 존나 창피해 진짜 ㅅㅂ 저분들한테 너무 죄송해...
나라에 환멸감쩐다 후..
똑바로 사과했음 좋겠어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고......... 이번에 베트남 해외봉사가서 베트남 사람들 많이 만났는데 다들 너무 친절하고 좋았어ㅠㅠㅠㅠㅠ 말도 잘안통하는데 잘해주고... 거기 대학생인 애랑 대화하다가 역사 얘기 나와서 내가 베트남 전쟁 참전 역사는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역사라고 하니깐 영어가 딸려서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그 애가 그래도 이제 한국과 베트남은 친구다 라는 식으로 말해줬어ㅠㅠㅠㅠㅠㅠ 암튼 베트남 사람들 다들 착하고 한국 좋아해주고 그래ㅠㅠ 일본처럼 부끄러운 짓 하지말고 제대로 사과했으면.....
제대로 역사 그대로를 배우고 반성할껀 반성하고 사과할껀 제대로 하고 사과 받을건 제대로 받고 해야지 제대로 하는게 하나도 없음
이거 노무현통령 때 사과했는데 베트남이 우리가 이겼는데 진 니들이 왜 사과?ㅅ? 이런 답변 했다는 기사를 봤던 걸로 기억한다.
왜 인간은 이렇게도 잔인할까? 죄없이 희생된 모든 분들과 그 고통을 함께 지신 다른분들께도 정식적으로 꼭 사과를 해야한다고 생각해
전쟁이 진짜 사람 미치게만드나봐.. 어떻게 인간이 저런짓을 할수가있는거야? 저런 비도덕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가 전쟁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처벌조차 불가하고 사과조차 못받는다면 피해자들의 억울함과 그 한을 어떻게 위로해주냐
나...우리아빠가 베트남전 참전용사야 진짜 어릴때 자살하려고 자원해서 참전했고 통신병으로 4개월 있었대. 후유증이 크게 남아서 장애등급받고 유공자가 되었어.
아빠가 자식들 사랑하고 엄마한테도 잘하고 그 동안 참 나에게 좋은 아버지였어..그 흔한 폭력도 폭언도없고 요즘 한남충들처럼 "여자가..."하는 사족없이 항상 당당하라고 가르쳤고..도저히 그 전쟁터에서 어떤일이 있었는지 물어볼수가 없어 너무 두려워...만약 우리아빠가 저 끔찍한 학살에 가담했었다면 나 진짜 무너질것같아
참전용사의 딸로써 너무나 죄송하다...정말 너무 죄송해..
아가야, 너는 이 말을 기억하거라, 너는 자라서 이 말을 기억하거라. 한국군들이 우리들을 폭탄 구덩이에 넣고 다 쏘아죽였단다. 아가야 너는 이 말을 기억하거라.
베트남 자장가 가사야..
아......
ㅠㅠ덕분에 알게되고간다...진짜 마음아프다...ㅠㅠ너무 잔인했고 어쩜 인간이 그럴까 싶다...
아니 이렇게 되면 우리가 일본이랑 다를게 뭐야??진짜 어이없다 저런짓하고 참전용사라고 떳떳하게 얼굴들고다닐거아니야 역겨워
이래놓고 우리가무슨 일본한테 지랄할입장이 되겠어 난 못해...가해자들은 항상 저런식으로 인정을안하고 발뺌해야하는것인가
진짜 제대로 살자
난 호치민 정말 존경하고 강대국에 굴하지않고 열심히 싸운 베트남인들 멋있음 다카키마사오와 평화를 수호한다는 명목하에 쓰레기짓 저지르고 자국에서 용사취급받는 한남들 용서못함
이런 역사도 우리 역사인데 당연히 배워하지ㅠ
이렇게보면 피해자가 반드시 선한건 아니라는게 맞는거같아..20세기때 우리나라가 피해국이긴했지만 한국이 선해서가 아니라 그냥 약해서 당했던...우리나라에게도 힘이있고 기회가있었으면 우리나라도 일본못지않게 흉악하고 비인간적으로 다른나라 식민지배했을거같아. 한국군인들이 베트남가서 한 무법행위들 보면..
외계통신 보다가 열받아서 끌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