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병호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는 5·16에 대해 “법률적·학술적으로 쿠데타라는 정의에 동의한다”고 했다. 오후 보충질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 답변을 통해 “군사정변 및 군사 쿠데타로 볼 수 있다”고 했고, 박지원 의원이
5·16에 대한 견해를 계속 묻자 이같이 답했다. 이 후보자는 “역사적 사건을 국가 안보에 기여했느냐 안 했느냐는 관점에서 보면
5·16은 국가 안보를 강화한 역사적 계기가 됐다”고도 했다.
이 후보자는 이날 오전까지 5·16이 쿠데타라고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5·16은 쿠데타라고 생각하시는 거죠?”라는 새정치연합 김광진 의원의 질문에 “용어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을 안 해봤다"고 했다. 김 의원이 “교과서에 쿠데타라고 돼 있는데 (서면 답변에는) 5·16이라고만 써 있다. 쿠데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끝내 껄끄러운가”라고 하자 “(김 의원의) 생각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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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청문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이병호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전기병 기자
이 후보자의 이런 답변은 전임 국정원장들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5·16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질문은 박근혜 정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는데, 현 정부에서 임명된 이병기·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분명하게 “5·16은
쿠데타”라는 입장을 밝혔다. 두 전임 국정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공직 후보자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5·16이 쿠데타라고 단언했다.
남
재준 전 국정원장은 2013년 3월 열린 청문회에서 “국정원장 후보자로서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개인의 의견”이라고 전제한 뒤
“5·16 군사혁명은 쿠데타”라며 “그러나 잘살고자 하는 국민의 여망을 결집시킴으로써 산업화와 근대화를 달성하고 오늘의 풍요를
이룩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김현 의원이 “그러면 쿠데타인 거지요?”라고 하자 “예 그렇지요”라고 했다.
이
병기 전 국정원장도 2014년 7월 청문회에서 “5·16은 학술적으로나 뭐로나 쿠데타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답변했다. 이 전
원장은 서면답변서를 통해서는 “5·16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적화통일 전략에 대응하여 자유민주 체제를 수호하고 국가 발전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공직 후보자들은 교과서 서술에 동의한다는 식으로 답변하고 직접
‘쿠데타’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서남수 전 교육부장관은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을 존중한다”고 답변했다. 새정치연합
박혜자 의원이 “5·16이 군사정변인가, 혁명인가 물었는데 ‘교과서 내용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건 동문서답”이라고 하자 “직답을
드리지 못하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정홍원 전 국무총리도 “군사정변으로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고 저도 찬성한다”고 했다.
“역
사의 평가에 맡겨야 된다고 생각한다”(류길재 전 통일부장관), “역사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결정을 내릴 정도의 깊은 공부가 돼 있지
않다”(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전 여성가족부장관), “역사적·정치적으로 다양한 평가가 진행중이므로 장관후보자 신분에서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황교안 법무부장관)처럼 즉답을 피한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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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6 쿠데타 직후의 박정희 소장(왼쪽)과 차지철 대위./조선일보 DB
박근혜 대통령은 5·16에 대해 “구국의 결단”(2007년),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2012년 7월)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대선후보 시절인 2012년 9월 기자회견에서는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상 이 부분에 대해 좀더 냉정하고 국민과 공감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런 질문이 공직자 인사청문회의 본질을 흐린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인사청문회장에서 자주 벌어지는 문제적 행태로 ‘후보자의 말을 자르고 궁지로 몰기’ ‘인신공격성 발언’ ‘사생활 들추기’ 등과 함께
‘업무수행능력과 무관한 정치이념성 질의’를 꼽았다. 여기 해당하는 대표적 질문으로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보고 들으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는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무엇인가” “5·16 쿠데타는 어떻게 정의하는가” 등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