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안성 복음생명 캠프 위에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참여하는 모든 자들로 복음과 생명의 은혜를 받게 하시어
단순히 사역에 열심인 자들이 아니라, 먼저 주님과 교제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본문 주해)
1~3절 :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와 교사로 있었던 인물을 소개한다.
바나바와 시므온(흑인)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누가 혹은 바울의 친척)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왕족)과 및 사울(전에 핍박자)이다.
이는 인종과 국가와 신분을 뛰어넘는 공동체임을 보여준다.
이들이 예배드리며 금식할 때에 성령께서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워 선교사로 보내라고 말씀하신다. 이들 스스로가 선교사로 지원하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불러서 시키시는 것이었다. 이들이 두 사람을 안수하여 보낸다.
바야흐로 이방인 전도를 위한 전초기지가 안디옥에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4~5절 :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구브로로 갑니다. 구브로는 지중해에 있는 섬으로서 지금의 키프로스 섬이다. 이 섬의 동해안이 살라미이고 서해안이 바보이다.
이 구브로 섬에도 유대인들의 회당이 있었는데 복음을 전할 때 항상 먼저 전하는 곳은 유대인들의 회당이었다.
그런데 성령의 인도하심에도 불구하고 구브로의 살라미에서는 별 결실이 없었다. 그래서 섬을 가로질러 바보에 이르게 된다.
6~12절 : 바보에서 바예수(예수의 아들)라는 유대인 거짓 예언자를 만나는데(사마리아의 시므온과 비슷한 사람) 그는 총독 서기오 바울의 시종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바나바와 사울을 초대한 총독이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였다.
그러자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이 바예수란 자를 노려보며 그 실체를 드러내어 저주한다.
“"너, 속임수와 악행으로 가득 찬 악마의 자식아, 모든 정의의 원수야, 너는 주님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짓을 그치지 못하겠느냐? 보아라, 이제 주님의 손이 너를 내리칠 것이니, 눈이 멀어서 얼마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곧 안개와 어둠이 그를 내리덮어서, 그는 앞을 더듬으면서, 손을 잡아 자기를 이끌어 줄 사람을 찾았다.”(10~11절, 새번역)
예나 지금이나 마귀가 하는 일은 복음이 증거 되지 못하도록 대적하는 것이다.
총독은 그 일어난 일을 보고 주님을 믿게 되었고, 주님의 교훈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한편, 9절부터 사울이 바울로 말하여진다. 사울은 히브리식 이름이고 바울은 로마식 이름이다. 사울이 바울로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 로마가 지배하고 있는 이방 지역들에 복음을 전하면서 그 이름이 바울로 불려지는 것이다.
(나의 묵상)
예루살렘 교회가 아닌, 안디옥 교회가 이방인 전도를 위한 거점이 된다.
예루살렘 교회에 비하면 여러 가지로 연약하다고 할 수 있는 이방인의 안디옥 교회를 주님께서 쓰신다.
그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바나바와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 파송하는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스스로 선교하러 가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이 성령의 지시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들이 구브로 살라미에서 별 전도의 열매가 없었기에 바보로 옮겨간다.
바보에서 총독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기는데 그의 시종인 마술사가 총독으로 하여금 복음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는 것이다.
이에 바울이 그를 노려보며 저주하자 그가 바울의 저주대로 곧 보지 못하게 되고, 총독은 복음을 듣고 믿게 된다.
“이 광경을 처음부터 보고 있던 총독은 주님께 관한 가르침에 깊이 감동되어 신도가 되었다.”(12절, 공동번역)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면 하는 일마다 척척 잘 되어가야 한다고 우리들은 생각하지만, 살라미에서처럼 별 열매가 없을 수도 있고, 바보에서처럼 대적이 나타나 방해하기도 한다.
성령께서 일이 술술 풀리도록 인도해 주시면 좋을 것을 왜 굳이 대적자를 거치게 하실까?
복음이 전하여지는 곳에는 어디를 가나 대적자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왜냐 하면 마귀는 어찌하든지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듣지 못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즈음에 복음에 귀 기울이지 못하도록 하는 사단의 궤계가 참으로 다양하다는 생각을 한다.
과학을 강조함으로 ‘사람의 능력’을 부추겨 하나님처럼 높아지고자 인간의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한다.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에 대해 항복하는 마음이 없다.
또 귀신이 나오는 드라마를 이상하게 각색하여 악한 영을 미화시키기도 하고, 엄청난 두려움의 존재로 표현하여 공포에 시달리게 함도 대세이다.
그렇게 함으로 참으로 집중해야 할 복음의 말씀을 너무도 시시하고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더구나 ‘손에 손잡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자’ 하며 인간의 가능성에 박수치는 판에, 불타 없어질 이 세상과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말하면 미쳤다고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온 세상 문화가 다같이 힘을 합쳐서 복음을 대적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 모든 것이 복음의 대적자 공중권세 잡은 사단의 궤계인 것이다.
성령충만한 바울은 곧 이 바예수의 정체를 꿰뚫어 안다.
복음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이기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의 능력을 내가 받아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전도자에게 성령충만함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이는 능력 받기 위해 욕심으로 성령충만을 구해서 될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부인하고 정결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죄의 세력이 활동하여 죄악 된 본성을 부추길 때마다 십자가로 나아가 그것을 못 박아야 한다. 또 자기자랑과 인정에의 욕구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이것이 자기부인이다.
그리고 그렇게 정결케 된 그릇을 말씀으로 채운다.
그러면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을 알게 되고 그 이끄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이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항상 대적자가 있다는 것은 이제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정답을 아는 시험지를 받아 드니 마음이 무거울 리 없다.
(묵상 기도)
주님,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항상 대적자가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죄의 세력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성령충만하여
죄의 세력에 대해 저주를 선포하게 하시고
총독에게 주님의 교훈을 가르치듯이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정답을 알기에 시험 치는 일이 가볍습니다.
성령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