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가 두부로 보이기 시작할 때
치즈, 햄, 버터, 소시지, 빵 같은 유럽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음식을 먹은 지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1980년대 말, 벨기에에서 일과 공부를 시작하면서 아침엔 콘푸레이크와 크로아상이나 삶은 계란, 약간의 과일과 커피 한 잔을 먹곤 했고 점심이나 저녁도 그들의 식사와 별반 다를 바 없이 함께 먹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 영국에서 학교기숙사에 머물 때도 영국인들이 주로 먹는 것을 먹었는데 벨기에와 별로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렇게 먹던 것이 오늘 이곳 독일까지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도록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언 코 말씀드리거니와 온 세상에서 우리 한국의 음식을 따라올 만한 훌륭한 음식이 전혀 없습니다.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이어도 우리나라의 심오하며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결코 흉내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곳 음식들이 제 입맛에 맞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영국의 ‘피쉬 앤 칩스’(Fish & Chips)나 독일의 ‘슈바인스 학세’(Schweinshaxe), 스위스의 ‘치즈’와 ‘초콜릿’, 불가리아의 ‘요구르트’들은 아주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낫또’나 터키의 ‘아다나 케밥’, 이스탄불의 ‘고등어 케밥’과 ‘초르바’, ‘자즉’, ‘아이란’ 등은 사람에게 대단히 좋은 음식들입니다.
이 외에도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더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 프라이부르크 구시가 광장에서 먹는 ‘소시지 빵’이나 보봉의 멋있는 카페 ‘Limette’에서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아이스크림, 프랑스의 바게트빵이나 크로아상, 독일의 소금빵을 비롯한 여러 빵들은, 특히 갓 구워내었을 때의 그 맛은 대단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오늘 아침엔 호텔에서 조식을 먹는데 접시 한가득 맛있게 보이는 두부가 담겨 있어서 깜짝 놀라 달려갔더니 두부처럼 생긴 치즈였습니다.
이제 드디어 치즈가 두부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머지않아 소시지가 구수한 어묵으로 보일 날도 올 것 같습니다.
유럽의 모든 마켓에서 여러 종류의 한국 라면과 식품들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요즈음입니다. 값이 좀 비싸서 그렇지 옛날처럼 한국에서 가져와 아끼고 아껴먹던 시절은 추억이 된 지 오래입니다. 김밥도 팔고, 삼각김밥까지 사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뜨끈뜨끈한 소고기국밥, 돼지국밥은, 순대국밥과 감자탕은 여전한 그리움입니다. 왜 이렇게 뜨거운 국물이 그립습니까….
날씨가 겨울로 접어드니 더 그렇습니다.
된장찌개나 순두부찌개를 맛있게 먹던 우리 입에 그 무엇을 가져다 먹은들 만족하겠습니까….
오늘은 그냥 잔치국수 한 그릇 후딱 말아먹고 일회용 커피를 한잔 먹으며 옛 동무들과 잡담을 실컷 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조금 전 전차를 타고 노엘이가 피아노 공부하는 프라이부르크 음대에 왔습니다. 열세 살 노엘이는 이곳 음대 피아노과의 영재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예비 대학생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피아니스트인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준비 되어지고, 지금도 있는 모습, 있는 실력 그대로 하나님께서 쓰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치즈가 두부로 보여도 참고 견디며 타향살이를 힘겹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따금 씩 한국서 가져온 된장을 풀어 미역국도 끓여 먹고 라면도 한 주에 한 번 정도 먹습니다.
하지만 깜빡하고 두고 온 부추김치와 깻잎 김치는 정말 눈앞을 어른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