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사다 지로(浅田 次郎)의 소설, "천국까지 100마일"에 등장하는 주인공 야스오는 한때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회사가 부도나고 이혼마저 당한 후에 친구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월급 300만 원 전부를 아이들의 양육비로 이혼한 아내에게 보내야 했기에 커피값조차 달랑거릴 지경에 놓일 만큼 빠듯한 나날을 보내던 그였다.
무역회사에 다녔던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큰형은 국립대학을 고학으로 졸업하여 대기업 간부가 되었다. 작은형은 장학금을 받으며 의대를 졸업했고 자신의 병원을 운영한다.
누나는 엘리트 은행원에게 시집을 갔기에 여유롭게 살았다.
야스오의 나이는 마흔. 그의 어머니는 가을에 칠순을 맞는다.
심장병을 안고 살아가는 어머니는 약을 끊으면 언제고 심장이 멈출지 모르는 중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도쿄에서 100마일이 떨어진 카 모우라의 가톨릭 병원에서 ‘신의 손’을 가진 의사에게 수술을 받는 길뿐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행복에만 관심이 있는 형들과 누나는 과부가 되어 40년이나 홀로 뼈빠지게 일해서 사 남매를 키워낸 어머니에겐 냉담했다.
“형들 마음은 알고 있어. 나도 경기가 좋을 때는 어머니를 요만큼도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 작은 단칸방에서 자라나 의사가 되고, 대기업 간부가 되고, 은행 지점장의 아내가 되었으니까."
"그러나 말이야, 누가 그렇게 해주었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물론 형제들 가운데 제일 어머니 속을 썩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우습지만,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 주지 않겠어? 부탁해.”
이런 동생의 말에 형과 누나의 대답은 냉정했다.
"너도 잘 나갈 때는 잊고 있었잖아, 아니냐?”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그랬다. 경기가 좋아 신나게 들떠서 지내던 시절에는 사쿠지의 낡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어머니를 깡그리 잊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상처처럼 잊으려고 했었다.
2.
구급차를 부를 돈도 없었던 야스오는 친구인 회사의 사장에게 고물 승합 차를 빌려서 조수석에 어머니를 태우고 '신의 손'이라 불리는 의사를 찾아 100마일을 달려간다.
이런 두 사람의 여행을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 도와준다. 심지어 받을 돈이 많았던 사채업자까지도.
어머니는 왜 이 여행을 받아들였을까. 그건 오직 막내에게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주기 위해서였다.
"너도 이제 알았을 거야. 불행하게 자란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란걸. 정말, 정말, 벌레가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것만큼이나."
"그 아이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허름한 단칸방에서 훌륭하게 날개를 만들어 날아갔어. 기적이야. 병원에서 자식들에 대해서 물으면 엄마는 늘 콧대가 높아졌단다."
"예, 네 명이나 있어요. 큰애는 대기업 간부이죠. 장학금을 받으며 국립대를 다녔답니다. 둘째는 의사죠. 얘도 국립대를 나왔는데 얼마 전 독립해서 개업을 했어요. 큰딸은 은행 지점장 부인이죠. 사위가 동경대 출신이에요. 그에 비해서 막내는 좀 출세가 늦은 편이지만 언젠가는 만회할 겁니다.”
“막내가 부동산 회사의 사장입니다, 이거예요?”
“네, 이 아이가 제일 수완가여서요. 서른 명이나 되는 직원을 데리고 있지요. 벤츠를 타고 다니며 세다가야에 호화주택도 지었어요.”
"천국까지 100마일"이란 책에서 가난한 자식에게 도움을 받는 것보다 차라리 부자가 된 자식에게서 버림받고 싶다는 어머니의 마음을 너무 잘 표현하고 있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바람 말이다.
천 년 전에도 자식에 대한 간절한 마음은 한결같았다. 최치원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신라 최고 교육기관인 국학은 15세에 입학할 수 있었는데 3년이나 앞서서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유학길에 오르는 아들을 두고 최치원의 아버지는 10년 안에 급제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라며 가서 부지런히 힘쓰라고 당부했다.
천 년 전에도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았나 보다.
3.
사실 인간은 절치부심(切齒腐心) 노력하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노력하고 도전해서 타고난 자신만의 자질과 능력도 찾고 부모님의 바람에도 부응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제대로 된 삶이 분명할 것이다.
요즘은 한여름의 햇살이 강하고 날씨도 무덥지만 오후에 산책을 나선다. 어제는 가까운 수목원으로 향했는데 장마가 끝난 숲길은 햇살이 뜨거운 한낮에도 걷기에 좋았다.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와 매미소리가 어우러져 여름의 정취를 더 느끼게 했다. 돌아보면 벌써 7월도 끝나고 8월이 시작된다.
우리 인간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인 삶이란 것이 존재한다. 이런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면 행복도가 낮아지고 불행함에 분명하다.
아사다 지로(浅田 次郎)의 소설에서 보듯이 자식이 없었다면 칠순을 맞은 어머니의 삶에서 무엇이 남아있었을까. 또 천년 전에 최치원의 부모도 자식을 빼면 어떤 삶이 남게 될까.
쾌락이나 자신을 향한 개인적인 욕망만 존재하는 인간의 삶이라면 너무도 초라하지 않을까.
끝으로 좋은 시 한 구절을 옮겨왔다.
꽃이 피고 지기 또 한 해
평생에 몇 번이나 둥근 달 볼까
(花落花開又一年)
(人生幾見月常圓)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순간순간 맑게 깨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이 처한 환경 앞에 불평하거나 탓하지 말고 어떤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길 말이다.
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