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해주신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 이후 그들을 인도하던 여호수아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줍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출애굽 2세대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릴 때 부모를 따라서 광야로 나왔거나 광야 생활 중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경이로운 출애굽의 기적을 직간접으로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매일매일 만나로 자신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들보다 더 강한 가나안 원주민과 전투를 벌이면서 믿기지 않을 놀라운 승리를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록된 문서 속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지 않고, 그들의 삶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후손들은 어떠합니까?
어떤 학자는 오늘 본문을 성경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도 여호수아와 함께 했던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모두 죽은 후였습니다. 그들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알다’라는 히브리어 ‘야다’는 체험적으로 안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 그것은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일대일로 하나님과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나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경험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함께하신 특별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들은 이 역사를 유산으로 이어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역사에 담겨 있는 신앙은 이어받지 못했습니다. 그 역사가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입니다. 나의 삶과는 연결하게 하지 못합니다. 역사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사실을 단지 지식으로만 안다면, 그 역사에 담겨 있는 정신과 나에게 주는 교훈이 없다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것 때문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더 이상 하나님이 중심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이방 나라에 하나님을 전하며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린 채, 가나안 민족이 하는 것을 따라 하며 삽니다. 사사기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것이 사사기에 나오는 모든 문제의 원인입니다. 한 세대가 경험했던 하나님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지 못한 것, 이것이 비극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그 후에 일어난 세대를 어떤 세대라고 말합니까? “다른 세대”라고 말합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백성들은 이전 세대와 같지 않습니다. 다릅니다. 사사기는 전과 다른 세대가 겪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큰 도전으로 다가오지 않습니까? 지금은 괜찮을지 모릅니다.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이 문제는 우리에게도 현실이 될 것입니다. 사사기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만큼 빠르게 타락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자녀 손들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교회의 다음 세대에게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리 말씀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우리도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한다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실패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다음 세대를 위한 대책은 신명기 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모압 평지에서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주의를 시킵니다. “가나안 땅에서 너와 자손들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잘 살기 위해서 항상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야!”
예수님은 마태복음 22:38에서 신명기의 이 말씀을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먼저 사랑을 명령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에게 한 말씀인가요?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라는 명령입니까? 아닙니다. 누구에게 한 말씀인가요? “너는” 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들이 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붙드는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힘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멀어져 있다면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괜찮아 보인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다른 외적인 것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순간에 다 무너질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삶에서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섬기려 하지 않고 사랑으로 인내하지 않고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산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다른 세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십니까?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하나님을 자녀와 손자들도 알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분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십시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합당하게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만났던 그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경험하였고 만났기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저절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이 된 것은 아닙니다. 야곱이 자기 삶 속에서, 자신의 상황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만나고 경험했기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으로만 고백하지 말고, 하나님을 과거의 하나님으로만 고백하지 말고 하나님을 오늘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힘써 하나님을 더 알고자 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맺어 풍성한 사랑을 날마다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려고 애쓰시기를 소원합니다. 그 사랑이, 그 노력과 애씀이 분명 우리 후손들, 교회 다음 세대에게 전해질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다른 세대가 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보다 나은 믿음의 사람으로 되어서 주님의 큰 복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나눌 질문]
1.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무엇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까?
2. 나는 하나님을 과거 역사 속에 일하셨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오늘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3.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할 수 있도록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