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 - hwhy, 하나님(myhla: 엘로힘)
여호와(hwhy)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하나님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엘(la)이나 엘로하(Hwla)나 엘로힘(myhla)으로 쓰인다. 형태로 보면 엘(la)이나 엘로하(Hwla)는 단수형태이고 엘로힘(myhla)은 복수형태이다. 복수형태인 엘로힘(myhla)이 구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 엘로힘은 그 형태대로 복수명사로 쓰일 때도 있고 단수명사로 쓰일 때도 있다. 유일신 하나님을 나타낼 때는 단수명사로 쓰이고 이방신들을 나타낼 때는 복수로 쓰인다. 이 단어가 복수로 쓰이느냐 단수로 쓰이느냐 하는 것은 그 문장의 문법구조나 문맥에 따라 판단된다. 예를 들면 처음에(창세기) 1장 1절에서는 엘로힘이 주어로서 나타나는데 바라(ar"B')동사가 단수이므로 이 엘로힘은 단수명사 하나님으로 판정된다.
#r ~yIm;V'h; tae ~yhil{a/ ar"B' tyviarEB. 처음에 1:1
쯔레아하 엩뵈 임마샤하 엩 힘로엘 라바 트쉬레베
(처음에 23:6) “내 주시여, 우리말을 들으십시오. 당신은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택하신 지도자입니다. 우리의 무덤들 중 가장 좋은 곳에 당신의 시신을 묻으십시오. 우리 중에 어떤 사람도 그의 무덤에 당신의 시신을 묻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BGT Genesis 23:6 mh, ku,rie a;kouson de. h`mw/n basileu.j para. qeou/ ei= su. evn h`mi/n evn toi/j evklektoi/j mnhmei,oij h`mw/n qa,yon to.n nekro,n sou ouvdei.j ga.r h`mw/n to. mnhmei/on auvtou/ kwlu,sei avpo. sou/ tou/ qa,yai to.n nekro,n sou evkei/
히브리어성경의 ‘여호와’나 ‘아도나이’나 ‘아돈’은 칠십인역에서 ‘큐리오스’란 단어로 번역되었다.
위의 예들을 통하여 구약성경에 있어서 히브리어성경의 여호와나 아도나이나 아돈은 칠십인역에서 각각 다른 단어로 번역되지 않고 큐리오스란 한 단어로 번역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왜 칠십인역이 이 단어들을 각각 다른 단어로 번역하지 않고 큐리오스란 한 단어로 모두 번역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 히브리어 세 단어의 뜻이 각각 다른데도 불구하고 칠십인역은 큐리오스란 한 단어로 모두 다 번역하였다. 따라서 칠십인역에 있어서 ‘큐리오스’란 단어의 뜻은 ‘여호와’와 ‘아도나이’와 ‘아도니’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그 문맥에 따라서 큐리오스의 뜻이 분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약에서 큐리오스란 단어는 어떻게 번역되었는가? 그러나 어떻게 번역되어야 하는가?
신약에 있어서 큐리오스란 단어는 717번 등장한다. 영어성경과 우리말성경은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주님 또는 주(Lord)’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칠십인역의 ‘큐리오스’란 단어가 여러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처럼 신약에 쓰여진 큐리오스도 여러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신약의 단어인 ‘큐리오스’는 기계적으로 주님이라고 번역되어서는 안되고 그 문맥에 따라서 ‘여호와’ 혹은 ‘주님’ 혹은 ‘주인’ 혹은 ‘어르신’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마태복음 22장 44절은 시편 110편의 구약인용구절인데 개역판 한글 시편 110편에서는 분명히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나 개역판 한글 마태복음에서는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라고 번역하였다. 이런 경우에는 구약의 본문 그대로 ‘여호와께서’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BGT Matthew 1:20 tau/ta de. auvtou/ evnqumhqe,ntoj ivdou. a;ggeloj kuri,ou katV o;nar evfa,nh auvtw/| le,gwn\ VIwsh.f ui`o.j Daui,d( mh. fobhqh/|j paralabei/n Mari,an th.n gunai/ka, sou\ to. ga.r evn auvth/| gennhqe.n evk pneu,mato,j evstin a`gi,ouA
(마태 1:20) 그가 이와 같이 생각하고 있을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꿈에서 그에게 나타나 말하였다. “다뷛의 아들 요셒아, 네 아내 미르얌을 취하는 것을 두려워 마라. 참으로 그 아이는 그녀 안에서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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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Wrme rc;An HB'r>qiB. dl,Ymi-ta, ^yl,ae tx;Q;mi
vd 요셒이 예수님의 탄생을 여호와의 사자로부터 계시 받는 장면이다. 개역한글에서는 ‘주'의 사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주’가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지 성자 예수님을 가리키는지 상당히 모호하다. 사건상황으로 볼 때 ‘주의 사자’보다는 ‘여호와의 사자’가 더 정확하고 분명한 표현이다. 이렇게 여호와로 번역되어야 하는 경우가 마태복음에서만 16군데 정도 발견된다 (마태 1:20, 22, 24; 2:13, 15, 16; 3:3; 4:7, 10; 5:33; 21:9, 42; 22:37; 23:39; 27:10; 28:2).
이 구절은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 중 일부다. 여기서의 큐리오스는 종과 주인 중에서 주인(아돈)을 뜻한다.
물론 이외에 큐리오스가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으로 쓰일 때가 마태복음에서 28번 있다(마태 7:21f; 8:2, 6, 8, 21, 25; 9:28, 14:28; 30; 15:22, 25, 27; 16:22; 17:4, 15; 18:21; 20:30f, 33; 21:3, 9, 43ff; 25:11, 44; 26:22).
신약전체에 큐리오스가 717번 나타나는데 이중에 얼마나 여호와로 번역되어야 할까? 헬라어 신약성경을 헬라어 단어 그 자체만을 놓고 기계적으로 번역할 것인가 아니면 히브리어성경을 통하여 그 단어의 뜻을 충분히 알고 번역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히브리어성경과의 연속성을 생각한다면 신약성경에서 갑자기 ‘여호와’란 단어가 사라진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더욱이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모두 다 유대인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여호와란 단어가 신약시대에 와서 그들의 머리 속에서 완전히 지워졌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