寸鐵殺人의 諷刺로 세상돌아가는 모습을 재미있게 꼬집는 검비봉 논객이 6.14일 올린 글입니다. 一讀할 가치가 충분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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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가면 가끔 시식을 한다. 속이 출출한 시간의 시식 한 점은 꿀맛이지만, 속에서 양반본능이 거지근성을 나무라며 못 먹게 말린다.
뚱뚱한 헤비급들이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시식을 탐닉하는 걸 보면서, "색시들은 그만 먹어도 되겠는데..." 말하고파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참는다. 이런 몸집의 사람들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생리적인 구조가 마냥 음식이 당기게 되어 있다고 들었다.
부자들 중에 자기 먹을 것을 안 먹고 남에게 베푸는 사람을 보기는 모래밭에서 진주 찾기보다 어렵다. 그중에 악덕한 자들은 끊임없는 소유욕의 연속선상에서 인정사정 안 보고 긁어모아 떼부자가 된 사람도 많다. “있는 넘이 더 지독해”라는 말은 그래서 생긴 것이다.
이 악덕자들, 비양심가들 중에는 교회나 절에 다니면서 사후세계까지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학교로 치면 방학 숙제 미리미리 다 해놓고, 다음 학기 책을 구해다가 예습으로 통독을 하는 것과 같다(선행학습?). 얼마나 치밀하고 지독한가. 남들은 하루하루 지내기가 벅찬데, 이승의 물적 목표(자신들은 영적으로도 꿀리지 않는다라고 주장)를 남의 눈물 빼가면서 진즉에 달성해 놓고, 종교를 쫓아다니면서 내세까지 열심히 준비한다. 가진 것이 그렇게 많으면서도 끊임없이 신에게 “뭘 해달라”라고 요구한다. 평생 자린고비로 숱한 사람 울리고 재산만 태산처럼 불린 장로가, 죽으면서 화려하게 장례를 치를 때 “천국으로 소천하셨습니다” 소리를 하는 세상이다.
중국의 불교 유적지에 가보면 물고기를 방생하는 장소가 있다. 돈을 몇 천 원 내면 물고기를 한 봉지 주는데, 이를 바로 옆의 수로에 갖고 가서 방생한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수로를 따라 30~40m 가보면, 물고기들이 그물에 막혀서 잔뜩 모여있다. 방생 장사꾼은 이 물고기들을 다시 거두어 봉지에 담아 팔면서 사람들에게 계속 선행을 시킨다. 하루에 수백만 원은 족히 벌어주는 유능한 물고기들이다. 이 광경의 내막을 모두 알면서도 돈 주고 물고기를 사서 방생의 의식을 치른다.
강원도 동해안의 휴휴암 등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스템의 방생 장소가 생겨났다. 이런 억지 선행, 자기기만 선행을 통해서라도 사후를 예비하는 것이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우리 중생(衆生)이다.
출처 : 최보식 의 언론(https://www.bos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