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청양신문’에 소개된 졸고 수필을 보면서 - 청양신문 기획특집 / 출향인 윤승원 수필 「고향 후배의 장례 성심 공덕 칭송」①,②
윤승원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청양 장평면 중추리 출신
나의 고향 ‘청양신문’ 기획 특집에 나의 졸고 수필이 연속 2주째 나누어 게재됐다. ‘출향인 수필’ 한 편이 기획특집 형식으로 2회에 걸쳐 소개된 것은 드문 일이다. 물론, 원고 분량 관계로 지면에 한꺼번에 반영하기 어려워 나누어 게재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1회분 치 원고 하단에 【다음 호에 계속】이라는 예고와 함께 두 번에 걸쳐 나누어 실으니, 1회분만을 읽었던 독자는 나머지 2회분 치 결말을 궁금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 졸고 수필을 귀한 지면에 반영해준 청양신문 편집진에게 감사의 인사 드린다. ◆ 마침 장모님 1주기(周忌)를 맞는다. 칠갑산 아래 길지(吉地)에 장모님을 ‘꽃가마’로 모시던 날, 그 날의 모든 장례 절차가 다시금 생생하게 떠올라 슬픔의 파도가 가슴에 일렁인다.
◆ 따뜻한 인정이 넘치는 내 고향 어르신들, 그리고 큰 일 당했을 때 내 일처럼 팔 걷어붙이고 성심을 다해 준 고향 초등학교 동문들에게도 거듭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슬픔을 당했을 때 마치 내 일처럼 따뜻하게 위로해 주시고 물심양면 도와주신 분들은 평생 잊지 못하지요. 60년 만에 칠갑산 장지에서 만난 초등학교 동문도 있었습니다. 1주기를 맞아 청양신문 지면을 통해 애써 주신 고향 동문들에게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리게 되는군요. 김 선생님께서도 졸고를 공감해 주시고 따뜻한 격려 댓글 감사합니다.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댓글 ◆ 청계산(지교헌, 철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1.12.08. 20:40 효자가 그 父母를 섬길 때는 居則致其敬 養즉치기樂 病즉치기憂 喪즉치기哀 祭즉치기嚴해야한다는 공자의 말씀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면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마는 자식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나서나마 지난날을 뉘우치고 불효를 깨닫기만 하여도 다행일 지경입니다. 효라는 글자는 본디 "자식이 부모를 계승해나가는 것"(子承老也)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효도는 실천된 것으로 인식하고, 스스로 존경받을만한 사람이 되어 부모님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여러 가지 사회적 변천에 따라 전통적인 효도는 많이 퇴화하였지만 효도가 百行之源이라는 말은 길이길이 타당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하에 자식이 잘되기는 바랄지언정 못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는 것이고 그러한 부모의 뜻을 받드는 것이 효도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계속}
▲ 답글 / 윤승원 2021.12.08. 21:10 오늘 청양신문에 실린 저의 졸고 수필을 처제도 읽었습니다. 60대 후반의 처제는 장모님을 요양원으로 모시기 직전까지 모셨던 효녀였습니다. 생시에 효를 다한 자녀도 돌아가신 후에는 생시에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장모님 하관할 때 가장 섧게 울던 처제였습니다. 처제가 카톡으로 제게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기를 “형부의 수필을 읽으니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먹먹해 온다.”라고 했습니다. 생시에 효를 다하고도 100수를 못 누리고 97세에 돌아가신 것이 마치 자신이 좀 더 잘 모시지 못해 그런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라고 하는 처제를 보면서 저도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존경하는 지교헌 박사님의 효에 관한 공자님 말씀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저의 가족들과도 지 박사님의 귀한 말씀 공유하면서 효의 근본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청계산(지교헌,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1.12.08. 23:17 장천 윤승원 선생의 수필을 읽으며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먹먹함”을 느끼신 처제의 마음이 아름다운 孝心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반만년 역사를 통하여 꾸준히 계승되어 온 기본정신은 무엇보다도 忠孝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忠孝사상은 韓民族의 역사를 통하여 가장 뿌리깊고 값진 기능을 발휘한 價値觀이라고 할 수 있어서 한때는 "국민교육헌장"에서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忠孝思想에 대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것은 정치적인 이유나 편견이 작용한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 때 어떤 유명한 사회학자는 효사상이 靑年文化(youth culture) 의 발전에 장애가 되는 것처럼 주장한 일도 있으나 그것은 효사상의 편견이나 오해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주장에는 "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는 것을 들고 있지만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를 도외시한 주장이었고, 충효의 시발과 종결의 역동성을 도외시한 주장이었던 것입니다. 전통 윤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교헌)
저는 일찍이 노 부모님을 모시고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정규 학교 공부를 하신 분들이 아니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에 관해서는 공자님 가르침을 그대로 이어받아 바르게 실천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그런 부모님으로부터 자식들은 알게 모르게 몸으로 체득한 게 있습니다. 어른들이 생시에 늘 하시던 말씀은 “효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의 실천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효를 실천한다는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가능한 일입니다. 요즘에는 시대가 많이 변하여 가정에서 효를 강조하긴 어렵습니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큰일을 당했을 때 장례문화를 통한 정중한 효심, 그리고 명절이나 제삿날 조상님 산소를 찾아 애틋한 추모의 정을 보여주는 ‘성찰의 성묘’도 효를 무언으로 가르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존경하는 지 박사님께서 상기시켜 주신 전통적인 충효 사상을 다시금 새겨 봅니다. 감사합니다.
1) 장천 윤 선생의 글을 읽은 저는 남다른 느낌을 줍니다. ‘출향인의 수필’이란 제목이 고향에 대한 추억이 마치 바다에 던진 그물을 걷어 올리는 것 같습니다. 청양, 장평, 더구나 장모님과 같은 낙지리에 살았고, 여름철 논에 다녀오면서 저의 집 앞에서 들었던 맑고 곧은 음성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또한, 장평면이라면 청양의 동남단에 있는 면이고, 얼마 후 저도 그곳으로 갈 고향이며, 부모님의 묘소가 있는 청정하고 인심이 도타운 곳입니다. 재작년, 작년에 형님과 형수님을 모신 기억이 생생하며, 지금도 매일 아침 ‘올사모’카페에 올린 ‘고향 나들이’에 올린 글과 사진을 통해 고향을 한 바퀴 돌고 저의 일과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계속)
2) ‘공덕’에 대한 내용이 중요한 느낌을 줍니다. 남에게 적선하는 일, 남에게 베푸는 마음이 얼마나 큰 공덕을 이루는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 역사와 문화는 적선과 공덕을 크게 중시해 왔습니다.
공덕은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씨앗이고, 그 공덕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공덕은 가족을 넘어 이웃에게 쌓음은 더욱 값진 것입니다. 염라대왕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심장합니다. 윤 선생은 글은 많은 사람에게 공덕을 펴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더 값지고 좋은 글을 긴 내처럼 써주시기 바랍니다.
장천 윤승원 선생과 동촌 지교헌 선생이 효에 대한 의미를 깊이 다루었기에 다른 각도에서 본 느낌을 남깁니다. 두 분 모두 ‘올사모’ 카페에서 역사 창조자로 모신 것이 의미가 더욱 깊습니다. 두 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정구복]
▲ 답글 / 윤승원 2021.12.09. 08:30 존경하는 낙암 정구복 박사님은 ‘청양군 장평면’ 출신, 동향이라는 점에서 이번 청양신문에 소개된 저의 졸고 수필을 남달리 따뜻한 애정으로 살펴 주셨습니다.
정 박사님이 강조하여 말씀해 주신 대로 이 시대 ‘공덕’의 의미를 새겨보는 일은 중요합니다. 칭송할만한 구체적인 사례를 고향 후배를 통해 발견한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런 귀한 글감을 놓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성심 공덕이 청양신문에 소개된 것은 의미가 각별합니다.
장모님 모시던 날, 애써 주신 초등학교 동문들도 청양신문에 실린 저의 졸고 수필을 읽으시리라 생각합니다. 1주기를 맞아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살아와 보니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처럼 행복한 일도 없는 듯 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이웃해 살면 세상이 온통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지요.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글 잘 읽었습니다.
슬픔을 당했을 때 마치 내 일처럼 따뜻하게 위로해 주시고 물심양면 도와주신 분들은 평생 잊지 못하지요. 60년 만에 칠갑산 장지에서 만난 초등학교 동문도 있었습니다. 1주기를 맞아 청양신문 지면을 통해 애써 주신 고향 동문들에게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리게 되는군요.
김 선생님께서도 졸고를 공감해 주시고 따뜻한 격려 댓글 감사합니다.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댓글
◆ 청계산(지교헌, 철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1.12.08. 20:40
효자가 그 父母를 섬길 때는 居則致其敬 養즉치기樂 病즉치기憂 喪즉치기哀 祭즉치기嚴해야한다는 공자의 말씀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면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마는 자식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나서나마 지난날을 뉘우치고 불효를 깨닫기만 하여도 다행일 지경입니다.
효라는 글자는 본디 "자식이 부모를 계승해나가는 것"(子承老也)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효도는 실천된 것으로 인식하고, 스스로 존경받을만한 사람이 되어 부모님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여러 가지 사회적 변천에 따라 전통적인 효도는 많이 퇴화하였지만
효도가 百行之源이라는 말은 길이길이 타당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하에 자식이 잘되기는 바랄지언정 못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는 것이고
그러한 부모의 뜻을 받드는 것이 효도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계속}
효(filial piety)라는 윤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인간의 윤리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장천 윤승원 선생의 글은 전통적 효도의 윤리에 대하여 관심을 일으키게 합니다. [지교헌]
▲ 답글 / 윤승원 2021.12.08. 21:10
오늘 청양신문에 실린 저의 졸고 수필을 처제도 읽었습니다.
60대 후반의 처제는 장모님을 요양원으로 모시기 직전까지 모셨던 효녀였습니다.
생시에 효를 다한 자녀도 돌아가신 후에는 생시에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장모님 하관할 때 가장 섧게 울던 처제였습니다.
처제가 카톡으로 제게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기를 “형부의 수필을 읽으니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먹먹해 온다.”라고 했습니다.
생시에 효를 다하고도 100수를 못 누리고 97세에 돌아가신 것이 마치 자신이
좀 더 잘 모시지 못해 그런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라고 하는 처제를 보면서
저도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존경하는 지교헌 박사님의 효에 관한 공자님 말씀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저의 가족들과도 지 박사님의 귀한 말씀 공유하면서
효의 근본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청계산(지교헌,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1.12.08. 23:17
장천 윤승원 선생의 수필을 읽으며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먹먹함”을 느끼신 처제의 마음이 아름다운 孝心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반만년 역사를 통하여 꾸준히 계승되어 온 기본정신은 무엇보다도
忠孝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忠孝사상은 韓民族의 역사를 통하여 가장 뿌리깊고
값진 기능을 발휘한 價値觀이라고 할 수 있어서 한때는 "국민교육헌장"에서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忠孝思想에 대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것은 정치적인 이유나 편견이 작용한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 때 어떤 유명한 사회학자는 효사상이 靑年文化(youth culture) 의 발전에 장애가 되는 것처럼 주장한 일도 있으나 그것은 효사상의 편견이나 오해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주장에는 "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는 것을 들고 있지만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를 도외시한 주장이었고,
충효의 시발과 종결의 역동성을 도외시한 주장이었던 것입니다.
전통 윤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교헌)
저는 일찍이 노 부모님을 모시고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정규 학교 공부를 하신 분들이 아니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에 관해서는
공자님 가르침을 그대로 이어받아 바르게 실천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그런 부모님으로부터 자식들은 알게 모르게 몸으로 체득한 게 있습니다.
어른들이 생시에 늘 하시던 말씀은 “효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의 실천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효를 실천한다는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가능한 일입니다.
요즘에는 시대가 많이 변하여 가정에서 효를 강조하긴 어렵습니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큰일을 당했을 때 장례문화를 통한 정중한 효심,
그리고 명절이나 제삿날 조상님 산소를 찾아 애틋한 추모의 정을 보여주는 ‘성찰의 성묘’도
효를 무언으로 가르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존경하는 지 박사님께서 상기시켜 주신 전통적인 충효 사상을 다시금 새겨 봅니다.
감사합니다.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문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1.12.09. 08:04
1) 장천 윤 선생의 글을 읽은 저는 남다른 느낌을 줍니다. ‘출향인의 수필’이란 제목이 고향에 대한 추억이 마치 바다에 던진 그물을 걷어 올리는 것 같습니다. 청양, 장평, 더구나 장모님과 같은 낙지리에 살았고, 여름철 논에 다녀오면서 저의 집 앞에서 들었던 맑고 곧은 음성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또한, 장평면이라면 청양의 동남단에 있는 면이고, 얼마 후 저도 그곳으로 갈 고향이며, 부모님의 묘소가 있는 청정하고 인심이 도타운 곳입니다. 재작년, 작년에 형님과 형수님을 모신 기억이 생생하며, 지금도 매일 아침 ‘올사모’카페에 올린 ‘고향 나들이’에 올린 글과 사진을 통해 고향을 한 바퀴 돌고 저의 일과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계속)
2) ‘공덕’에 대한 내용이 중요한 느낌을 줍니다. 남에게 적선하는 일, 남에게 베푸는 마음이 얼마나 큰 공덕을 이루는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 역사와 문화는 적선과 공덕을 크게 중시해 왔습니다.
공덕은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씨앗이고, 그 공덕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공덕은 가족을 넘어 이웃에게 쌓음은 더욱 값진 것입니다. 염라대왕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심장합니다.
윤 선생은 글은 많은 사람에게 공덕을 펴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더 값지고 좋은 글을 긴 내처럼 써주시기 바랍니다.
장천 윤승원 선생과 동촌 지교헌 선생이 효에 대한 의미를 깊이 다루었기에 다른 각도에서 본 느낌을 남깁니다. 두 분 모두 ‘올사모’ 카페에서 역사 창조자로 모신 것이 의미가 더욱 깊습니다. 두 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정구복]
▲ 답글 / 윤승원 2021.12.09. 08:30
존경하는 낙암 정구복 박사님은 ‘청양군 장평면’ 출신, 동향이라는 점에서 이번 청양신문에 소개된 저의 졸고 수필을 남달리 따뜻한 애정으로 살펴 주셨습니다.
정 박사님이 강조하여 말씀해 주신 대로 이 시대 ‘공덕’의 의미를 새겨보는 일은 중요합니다. 칭송할만한 구체적인 사례를 고향 후배를 통해 발견한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런 귀한 글감을 놓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성심 공덕이 청양신문에 소개된 것은 의미가 각별합니다.
장모님 모시던 날, 애써 주신 초등학교 동문들도 청양신문에 실린 저의 졸고 수필을 읽으시리라 생각합니다. 1주기를 맞아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