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만 섬기라 수24:14~28절 2024.10.6. 말씀
* 말씀은 섬길자를 택하라
14절에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애굽의 신들을 섬겼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상들이 애굽에서 우상을 섬기던 그 모습이 모세가 산에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을 때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서 하나님이라고 섬기던 것으로 드러납니다. 모세가 사라진 불안한 상황에서 힘이 되는 것을 만들고 그것을 의지하고 살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산 것이 아니라 모세를 의지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게 된 것이나, 애굽에서 나오게 된 모든 것의 배경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모아 놓고 하나님에 의해서 오늘날 너희가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임을 증언합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가나안을 차지하기까지 그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셨고, 약속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더러 '이제부터 우상을 섬기지 말고 성실과 진정으로 여호와만 섬기라'고 합니다.
15절에 너희가 섬길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에게 '여호와를 섬기든 우상을 섬기든 섬길 자를 택하라'는 말을 합니다. '지금까지 너희들을 도우시고 힘이 되시고 인도하신 분은 여호와다. 따라서 너희는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싫다면 우상을 섬기든 말든 너희들이 알아서 섬길 자를 선택을 하라'고 합니다. 지금껏 우리가 들어왔던 믿음이란 우리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들 스스로 선택을 해서 믿고 천당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셔서 믿게 하시고 그로 인해서 천국가게 되어지는 것으로 들어왔고 또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여호수아의 말은 마치 하나님에 대한 선택권이 우리들에게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지금껏 우리가 들어왔던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믿게 되었다는 말'과 어떻게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먼저 우리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 경위를 말하고 나서 '섬길 자를 택하라'고 요구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어야 합니다.
무턱대고 '너는 하나님을 섬길래 우상을 섬길래'라고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지금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건축치 아니한 성읍에 거하고 심지 아니한 것을 먹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는 것을 설명하고 '누구를 섬기겠는가?'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나는 여호와만 섬기겠다'라고 나설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은 모두가 우리들의 힘이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는 것이 믿어지고 인정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이스라엘 스스로 하나님을 섬길 자로 정하고 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 그 믿음이 하나님을 섬길 자로 택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자만이 여호와만이 섬길 자라는 판단을 하게 되고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 은혜를 맛본자
여호수아의 말은 전혀 이상한 말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아는 앎은 우리들로 하여금 날마다 여호와를 섬길 자로 선택하게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지금도 말씀은 우리에게 '네가 오늘 섬길 자를 택하라'는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성도는 날마다 여호와만 섬길 자로 부름 받았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여호와를 섬길 자로 택하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성도된 우리에게 있어야 할 삶인 것입니다. 날마다 여호와를 섬길 자로 택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날마다의 삶에서 지금까지 인도하신 분이 여호와이심을 잊지 않고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이 있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고, 직장이 있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라 돈도 직장도 모두 하나님이 있게 하신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택한 삶을 살겠다는 것, 이것이 바로 성도된 우리의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합니다.
16~18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면서 17~18절에 여호와만 섬길 그 이유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면 이스라엘은 앞으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19절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다짐에 찬물을 끼얹는 말을 합니다. '너희가 능히 여호와를 섬기지 못할 것이다'는 말을 합니다. 여호수아는 왜 이러한 말을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어떻게 하였는지를 모두 목격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 살면서 환경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한 예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건너고 나서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광야에 들어와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 부딪히자 '왜 우리를 애굽에서 끌어내었는가?'라고 하나님을 원망 합니다. 이러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원망을 하면 하나님이 먹을 것을 주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감사합니다. 그러다가 또 다른 부족한 것이 있으면 원망을 합니다. 이러한 삶이 반복되었던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이것을 모두 알고 있는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다짐을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다짐과 결심을 가지고 믿음을 유지할 수 없는 자임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여호와를 섬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19절에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질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너희의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할 것이다'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거룩을 요구하시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오직 여호와만 사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요구에서 벗어나는 것을 죄로 보시고, 그러한 죄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실 분이 여호와이십니다. 이런 여호와를 과연 섬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말에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라고 다짐을 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에 대한 그들의 생각입니다. 우리 역시 믿음에 대해서 생각하면 자신감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자신감이 우리의 마음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감도 세상 현실이라는 문제에 부딪히면 무력해지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 사랑의 능력에 의해서 사랑하는 자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섬길 자를 택하라고 해 놓고 섬길 수 없다고 하고 자신감이 있다고 해도 안된다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 해답이 바로 '증인'이라는 말에 있습니다. 22절에 너희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했으니까 이제 너희가 너희에게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에 대한 증인입니까? 20절에 여호와를 섬기겠다는 것은, 여호와를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길 때에는 복을 받은 후라도 돌이켜서 화를 내리시는 하나님을 증거 하는 증인이 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26절에 여호수아가 큰돌을 세워서 증거로 삼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돌이 증거가 되어서 앞으로 이스라엘이 거룩하지 못하고 여호와를 사랑하지 않는 다면 그들을 멸하심으로서 죄와 허물을 사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증인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얻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어버린다면 그들은 우상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멸망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십니까? 은혜를 아신다면 그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도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귀한 은혜가 나로 인해서 짓밟히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린양의 희생의 피로 긍휼을 베풀어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임이 넘어가게 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살았음을 알고 깨달은 자라면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만약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허물과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나에게 임하여도 좋습니다'라는 다짐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마치면서 말씀드릴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소홀히 여기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되고 십자가를 바라보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믿음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연히 은혜가 귀한 줄 알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가 귀함을 아신다면 나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는 삶을 살게 된다면 차라리 하나님이 나를 징계해서라도 은혜를 가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마음으로 살아가는 성도이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