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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는 예쁘다] 11
S#1. 병원 앞길 (낮-저녁/ 10회에서 연결)
병원 부근 팔차선 대로. 구급차 한 대가 요란하게 지나간다.
깜박거리는 건널목 급히 건너고 있는 인순. 신호가 빨간 불로 바뀐다. 어느새 차들이 오가기 시작한다.
들입다 달리기 시작하는 인순, 우왕좌왕 차가 꼬여 엉망이 된다. 경찰의 호루라기 소리가 난다.
마침내 길을 무사히 건넜다. 허둥지둥 목례하고 쏜살같이 달려가는 인순.
저 멀리 병원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S#2. 응급실 앞 복도 (낮-저녁)
종합병원 응급실 앞 복도 혹은 로비.
황급히 들어오는 인순. 응급실 입구로 다가간다.
안에서 나오는 간호사.
인순 : 저어... 실례지만 말씀 좀 여쭐께요. 여기... 유상우 환자...
그 순간, 저만치서 급히 뛰어들어오는 진태와 재은.
재은 : (직원에게) 응급실이 어딘가요?
순간, 그들을 발견한 인순. 놀라서 얼른 몸을 숨긴다.
진태 : 여기야, 재은아...
급히 응급실 안으로 달려들어가는 두사람.
난처한 얼굴로 어정쩡 서 있는 인순.
S#3. 응급실 (낮-저녁)
한쪽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있는 상우.
피멍이 든 팔과 다리에 약을 바르고 거즈붙이는 처치를 받고 있다. 근육 여기저기 조금씩 찢어지고 부어올랐다.
뛰어들어오는 재은과 진태.
재은 : 유선배! 괜찮아요?
상우 : (돌아보고) 어어... 뭐하러 왔어?
진태 : (한숨) 야, 나는 너 의식 잃구 실려갔다 그래서... 죽었는 줄 알았어, 임마!
상우 : 허,
재은 : (눈물 닦는다) 괜찮은 거죠, 정말?
상우 : 어어, 그럼.
진태 : 짜식이 하여간... 겁은 많아가지구... 너, 놀래서 기절한 거지?
재은 : 송선배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다친 거 안 보이세요? (맘 아프게 내려다본다) 아프겠다... 여기 피멍 든 것 좀 봐요.
상우 : (한숨) 역시 재은이 밖에 없구나... (짐짓) 진태야, 나 아퍼 임마... 죽었다 살아났어.
(너스레) 니들한테 인사는 하구 가얄 거 같아서... 기어이 살아난 거야...
재은 : (흘기며 글썽하는) 선배, 농담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린다.
당황하는 상우와 진태.
진태 : ... (기막힌다는 듯 보다가) 얘가, 오면서두 어찌나 우는지...
돌아서서 눈물 닦는 재은. 민망한 듯 밖으로 총총 나간다.
진태 : (피식) 좋겠다, 유상우... 국수는 언제 먹여줄 거냐?
상우 : (난감한데) 허,
S#4. 응급실 앞 복도 (낮-저녁)
입구에 머뭇머뭇 서 있는 인순. 응급실 안쪽으로 상우 모습이 보인다.
몸을 숨긴 채 가만히 바라보는 인순. 생각보다 크게 다친 건 아닌가 보다. 안도한다.
점점 애틋한 맘이 된다. 물끄러미 보고 있다.
그 순간, 뒤쪽으로 나오다가 인순을 발견한 재은.
재은 : 인순씨,
인순 : (헉 놀라 돌아본다)
재은 :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인순 : 예? 어, 저는... (얼른 손가락 내밀며) 손을 좀 다쳤어요. 칼에 깊숙하게 베서요... 되게 깊이 벴거든요.
응급 처치 받구 가는 길이에요.
재은 : (뭔가 좀 궁색하게 들린다) ...예에...
인순 : (태연한 척) 근데 여긴 무슨 일루...
재은 : 유선배가 다쳤어요. 혹시 그거 땜에 오신 건 아니구요?
인순 : 예에? 상우가요? 어디를요?
재은 : (미심쩍지만) 취재 마치구 나오다 사고가 있었나봐요.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니구요, 피부가 조금 찢어진 정도...
인순 : (확 안도) 아, 그렇구나... 에이, 그 정도야 뭐, 별 거 아니네요. 그죠?
재은 : (머뭇하다가) ...들어가서 보구 가시겠어요?
인순 : 어어휴, 아니에요. 전 바빠서요. (시계 본다) 지금 아주 급한 일이 있어서... 안부 전해주세요!
재은 : ...예에.
인순 : 하하, 참... 세상이 좁네요. 여기서 이렇게... 우연히... 그럼 또 뵐께요!!
부랴부랴 인사하고 복도를 나가는 인순.
얼떨떨한 재은. 차츰 표정이 심각해진다. 대충 눈치 읽었다. 우연이 아니라는 것.
S#5. 병원 앞길 (낮-저녁)
황급히 병원을 나오는 인순.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달리듯 걷고 있다.
그러다 점점 걸음을 늦춘다.
인순 : (N) 도대체 뭐하러 여기까지 온 거냐? 바보, 멍청이, 못난이!!
자리에 멈춰서서 잠시 비감한 표정으로 병원 쪽을 돌아본다. 다시 돌아서서 터덜터덜 걷는다.
울적하다. 스르르 힘이 빠진다.
그 순간, 인순을 알아보고 다가오는 여고생 두 사람.
여고생1 : 언니! 싸인 좀 해주세요!
인순 : (당황)
여고생2 : 저 언니 팬이에요, 너무 예쁘세요!!
인순 : (금새 표정 바꾸며 예쁜 척 활짝활짝 웃어준다) ...고마워요!!
인순 : (N) 거기다 기억력까지 나쁘다. (한숨) 내가 스타라는 걸, 자꾸만 잊어버린다.
싸인을 대충 마친 후 부랴부랴 도망치듯 달려가는 인순.
S#6. 응급실 (낮-저녁)
침대에 기대어 눕는 상우. 다친 팔을 돌리다가 아픈 듯 찡그린다.
도와주는 진태.
진태 : 뼈는 안 다쳤냐? 안 부러졌어?
상우 : ...다치길 바라냐?
진태 : 짜식, 삐딱하긴. (웃고) 하늘이 돕긴 도우셨네. 타이어 무게가 장난 아니었을 텐데... (탁 친다) 무쇠 팔 무쇠 다리!
상우 : (아프다) 임마,
진태 : (흐흐 웃고) 아참, 너 재은이랑 일본 놀러 간다며?
상우 : 어? 어어... 너두 가자.
진태 : 에이, 나는 안돼. 와이프가 그런 자리 싫어하잖아. 그리구 내가 눈치 없게 거길 왜 끼냐?
상우 : (좀 복잡해지는) ...
하는데, 들어오는 재은. 음료수를 두 개 들고 있다.
재은 : 이거 드세요.
진태 : ... 밖에서 여태 뭐하다 왔어? 또 펑펑 울었냐?
재은 : (흘기고) 어휴, 선배!... 인순... (하려다 말고) ...어어...저기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서요. 잠깐 얘기 좀 하느라구,
상우 : (무심히) 그만 들어가 봐. 바쁠텐데.
재은 : 안 바빠요. 오늘 일, 다 끝났어요.
S#7. 선영집 식당 (밤)
부엌을 둘러보는 소정.
식탁에 앉아 차를 따르는 선영.
소정 : 인테리어 언제 새로 했니? 부엌 장, 이거 문양이 참 좋다.
선영 : 몇 군데 손만 봤어.. 저번에 방송 나간다 그래서... 어서 와. 차 마시자.
식탁에 마주 앉는 두사람. 차 마신다.
소정 : 무슨... 고민 있니. 요즘 얼굴이 왜그렇게 어두워?
선영 : 고민은 무슨...
소정 : 딸래미 잘 나가서 신나보인다 했드니, 무슨 걱정이 또 금새 생겼어?
선영 : 소정아... 돈 좀 있니?
소정 : 돈?
선영 : 응. 금방 갚을께. 갑자기 쓸 일이 있는데...
소정 : 얼마나?
선영 : 조금 많이...
소정 : 에이, 나 돈 없어. 요번에 이사하면서 다 털어넣었잖아.
선영 : (얼굴 빨개지며) ...어, 그래. 그렇지.
소정 : 무슨 일인데? 급한 일이야?
선영 : 아,아냐... 괜찮아. 못 들은 걸루 해. (표정 추스르고) 저녁 먹고 갈 거지?
소정 : 아냐. 나 금방 가야 돼. 남편하구 약속 있어. (시계 본다)
선영 : (허전하게) 저녁 먹고 가지. 나랑 얘기두 좀 더 하구...
소정 : 아유, 니 얘기, 맨날 똑같은 얘기... 푸념 들어주는 것두 피곤하다, 솔직히...
선영 : (얼굴 빨개진다)
소정 : (웃는다) 농담이야! 담에 또 들를게. (휴대폰 번호 누르며)
이 영감이 요새 나이 드니까 완전 애야, 애... 한시두 혼자 안 있을려 그래... (통화) 당신, 어디에요?
선영 : (착잡하게 바라보는데)
S#8. 선영집 중정 (밤)
부분 조명만 켜진 어두운 실내. 재즈풍의 음악을 틀어놓고 홀로 와인을 마시는 선영.
휴대폰이 울린다. 움찔 놀라는 선영. 번호 확인하곤 안 받는다.
벨이 멎으면 다시 멍해지는 선영. 밧데리를 빼버린다.
이윽고 두려움에 빠져 훌쩍이기 시작한다.
멀찌기 이층 계단에서 그런 선영을 가만히 바라보는 정아. 마음이 안 좋다.
S#9. 병국 사무실 (밤)
퇴근 준비하는 병국. 막 방을 나서려는데 울리는 전화벨.
병국 : 네, 지인 인테리업니다.
선영(E) : ...안녕하세요, 저 이선영인데요.
병국 : (표정에 와락 화색이 도는데) 선영씨,
S#10. 선영집 중정 (밤)
수화기 들고 통화하는 선영. 와인병이 놓여있다. 이미 여러 잔 마신 듯 병이 거의 비어있다.
훌쩍이며 통화 한다.
선영 : 저랑 잠깐만 통화 해주실 수 있어요? 제가 지금... 잠깐만요... 친구가 필요해서요... 제 얘기를 좀 들어주세요.
S#11. 병국 사무실
수화기를 공손히 들고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병국.
병국 : 말씀하세요. 얼마든지요.
S#12. 선영집 중정
취해서 훌쩍거리는 선영.
선영 : 저는요... 정말 살아가는 일이 두려워요. 두렵고... 하루하루 피가 말라요. 다 허무하고, 모두 다 원망스러워요.
이러는 게 실례인 줄 알지만... 그렇지만...지금 저한텐... 누구라두 말벗이 필요해요...
(훌쩍거리며) 죄송해요. 제가 한 잔 했거든요...
S#13. 병국 사무실
맘 아프게 듣고 있는 병국.
병국 : 괜찮습니다... 울고 싶으면 우시고, 취하고 싶으면 취하십시요... 밤새도록 들어드릴테니, 편하게, 무슨 말이든 하십시요.
선영 : 고마워요... (다시 훌쩍거린다)
병국 : 천만에요... 저에겐 영광이죠.
어느 순간, 전화가 끊어진다.
병국 : 여보세요? ... 여보세요...? 선영씨??
막막해지는 병국. 휴대폰 꺼내 전화 걸어보지만 전원이 꺼져있다.
몹시 걱정 된다. 걱정되다 못해 눈시울까지 시큰해진다.
쩔쩔매며 어쩔 줄 모르겠다.
S#14. 상우집 상우방 (밤)
침대에 기댄 상우.
다친 상우의 팔에 찜질을 해주는 명숙.
명숙 : 머리는... 안 다쳤지? 정밀 검사는 해 본 거냐?
상우 : (표정 어두워진다) 이상해요. 갑자기 앞이 안 보여요.
명숙 : (사색 되며) 상우야,
상우 : (씩 웃는다)
명숙 : (치며) 이 녀석아, 안 그래두 복잡해 죽겠는데 너까지 이러지 마라.
상우 : 왜요.
명숙 : 니 아부지 말이다... (한숨) 아무래두 바람을 피는 거 같어.
상우 : 예?
명숙 : 그냥 내 직감인데... 그게, 아무리 생각해두 말두 안되는 일인데..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랑 니 아부지가...
(멍하다) 그래, 내가 이상한 거겠지?
상우 : 무슨 말이에요.
명숙 : 아니다, 아니야, 헛소리다... 근데 너는 도대체 요새 어디다 정신을 두구 사는 거냐?
어떡하다 그런 게 머리루 떨어지도록 몰라? 넋을 어따 빼놓구...
상우 : (씁쓸히)
명숙 : (슬몃) 그... 아나운서 아가씨랑은 어떻게... 잘 돼 가구 있는 거지?
상우 : 저 좀 쉴께요. (침대로 가며) 아프네요, 여기저기...
이불 끌어당기고 아픈 척 눕는 상우.
한숨 쉬는 명숙.
명숙 : 하기사, 내가 주책이다... 이 와중에 무슨... 그래, 좀 자거라. 푹 자라.
나간다.
팔 괴고 묵묵히 천장을 바라보는 상우. 착잡해진다.
S#15. 선영집 중정 (밤)
취한 채 잠들어있는 선영. 손에 술잔을 들고 잠들었다.
들어오는 인순.
인순 : ... 다녀왔...
곤히 잠든 선영.
다가와 잔을 빼서 근처에 내려놓는 인순. 어쩔까 난감하게 내려다본다.
눈물이 어려있는 선영의 얼굴.
S#16. 정아방 (밤)
하프 앞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정아.
노크하고 들어오는 인순.
인순 : 안 자니?
정아 : (돌아본다)
인순 : 엄마... 어디 편찮으시니.
정아 : ...
인순 : 혹시 무슨 일이라두 있는 거야?
정아 : (괴롭다)
인순 : 무슨 일 있구나? 뭔데?
정아 : 아니에요.
인순 : 얘기 해 봐.
정아 : (불끈 화를 참는다) ...언니,
인순 : (보면)
정아 : 난 언니가 좀 미워질려구 해요.
인순 : (멈칫) ...왜.
정아 : ...그냥요.
인순 : (울컥해지는) 왜? 왜 내가 미워? 내가 요새 너무 잘 나가서?
정아 : (기막혀) 언니 식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그런 말이 어딨어요?
인순 : 그럼 뭔데.
정아 : 엄마... 협박 받고 있어요. 근수 오빠한테요.
인순 : 뭐? 협박? 무슨 협박?
정아 : (글썽 하며 외면한다)
인순 : (당황스러운데)
S#17. 인순방 (밤)
초조하게 왔다갔다하며 연신 휴대폰을 걸고 있는 인순. 전화 안 받는다. 메시지 남긴다.
인순 : 근수야... 전화 받아. 당장 전화 받아!! (맘 추스르고) 누나랑 좀 만나자. 연락 해!
휴대폰 닫는다. 막막하고 슬프다.
S#18. 선영집 거실 (밤)
계단 내려오는 인순.
중정에서 나오는 선영 모습이 보인다. 잠에서 깬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올리며 방으로 간다.
인순 : 엄마,
선영 : (초췌하게 돌아본다) ...들어왔니.
인순 : (각오 어린 표정으로) 얘기 좀 해요.
선영 : 내일 하자. 나 피곤하다. 머리두 아프구.
인순 : 그런 일.. 왜 저한테 얘기 안 하셨어요.
선영 : 무슨 일.
인순 : 저... 다 털어놓을래요.
선영 : (멈칫) 뭘 다 털어놔?
인순 : 다 털어놓구 편하게 살 거에요. 어차피 근수 아니라두 알려지게 돼 있어요!
선영 : (흠칫) 어떻게 알았어?
인순 : 저 떳떳해요. 물론 죄는 지었지만! 형기 다 마쳤구, 죄값 치렀어요. 그게 문제가 된다면 관두면 돼요.
선영 : 뭐,뭘 관둬?
인순 : 지금 제가 하는 일요. 사람들이 돌 던지면 관두면 돼요. 안해도 고만이에요!
선영 : (발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인순 : 사람들 앞에 떳떳하게 다 털어놓구 맘 편하게 살래요. 언제까지 숨길 순 없어요.
선영 : (버럭) 왜 못 숨겨! 숨겨야 돼! 죽을 때까지 비밀루 해야 돼!!
인순 : (기막혀) 엄마,
선영 : 니가 뭘루 떴니? 사람 구한 천사루 뜬 거야! 그런데 니가 사람을 죽였다구 그래 봐! 넌 끝장이야!
매장두 그런 매장이 없을 거야! 넌 길거리에 나다니지두 못할 거야!
인순 : (어이없다)
선영 : 어떻게 찾아온 성공인데, 어떻게 찾아온 기횐데! 그걸 왜 눈 앞에서 놓쳐? 너 바보야?
인순 : ...엄마,
선영 : 넌 몰라! 사람들한테 잊혀진다는 게 어떤 건지, 얼마나 뼈아픈 건지, 너는 아직 몰라!
다 잃구 싶어? 나한텐 지금 아무 것두 없어! 돈두 없구 아무 것두 없어! 다 잃구나서 뭘루 먹고 살며 뭘루 버틸래?
비참하게 하루하루 살다가 굶어죽고 싶어?
인순 : (맘이 아프다) 그런 일은 없어요! 내가 먹여살릴께요.
선영 : (비웃는다) 니가? 니가 뭘로? 빵 팔아서?
인순 : 그래요, 빵을 팔든 뭘 하든, 먹여살려요!
뭐가 그렇게 두려우세요? 엄마한텐 내가 있어요! 내가 있고 정아가 있어요! 뭐가 그렇게 두렵냐구요!!
선영 : 철모르는 소리 하지마!
이층에서 가만히 두사람을 바라보는 정아. 긴장하며 훔쳐보고 있다.
선영 : 아뭇 소리 하지 말구 엄마 말 들어. 일단 니 이름부터 바꾸자. 예명 짓고 과거 니 경력두 새로 다 만들자.
인순 : (기막혀)
선영 : (울컥하며) 도대체 왜! 왜 그런 짓을 저질렀어?
인순 : ...뭐라구요?
선영 : 죄만 안 지었음 이런 일두 없잖아!
인순 : (떨린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선영 : (머뭇하다) ...미안하다. 내가 조금 흥분했어.
인순 : (글썽하는데)
선영 : 내일 마저 얘기 하자. (머리 감싸쥐며) 너두 그만 올라가 쉬어.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선영.
얼굴 벌개져서 그 자리에 서 있는 인순.
아프게 내려다보는 정아.
S#19. 방송국 편집실 (다른날 낮)
편집 중인 상우. 맘이 잘 안 잡힌다.
S#20. 회상 (10회 중에서 #36 까페)
인순 : 난 극복할 자신 없어. 니가 날 너무 많이 아는 것두 싫고, 니가 날 너무 모르는 것두 싫어.
널 만나면 왜 그런지 늘 기분이 나빠! 그러니까 나는...
굳은 채 듣고 있는 상우.
인순 : 싫어.
S#21. 편집실 (낮)
멍하니 앉아있는 상우. 표정에 점점 슬픔과 절망이 어린다.
들어오는 진태
진태 : 어이,
상우 : ...
진태 : (툭 치며) 어이, 유상우... 점심 먹으러 가자.
상우 : 됐다.
진태 : 요새 왜 그러냐? 넋을 완전히 빼구 사네, 얘가...
상우 : ...(씁쓸히 웃으며 편집하던 테잎을 빼는데)
S#22. 방송국 복도 (낮)
스튜디오에서 나오는 인순. 마음이 아직 울적하다.
반대편에서 동료들과 대화하며 걸어오던 재은. 인순을 발견했다. 인사하고 다가온다.
재은 : 인순씨,
인순 : (멈칫) 아,안녕하세요.
재은 : 녹화 하러 왔어요?
인순 : 네. 마치구 가는 길이에요.
재은 : 반응 좋더라. 우리 방에서두 다들 인순씨 땜에 밥줄 끊어지겠다구 난리에요, (웃는다)
인순 : 어후, 농담하지 마세요.
재은 : 어설프구 아마추어 같은 점이 매력이래요. 그게 요새 사람들 코든가봐요.
인순 : (이게 덕담인가 뭔가)
재은 : 암튼 뭐, 열심히 하세요. 아참, 점심은 드셨어요?
인순 : 아직요.
재은 : 같이 구내 식당 가서 식사나 할까요.
인순 : (머뭇하다가) 전 가봐야 돼요.
재은 : 에이, 그러지 마시구 먹고 가세요. 저, 인순씨랑 친해지고 싶어 그래요.
팔짱을 낀다.
난감한 인순.
S#23. 방송국 구내 식당 (낮)
식판 놓고 마주 앉아 식사하는 인순과 재은.
재은 : 나이는 제가 조금 어리지만... 방송 경력은 조금 위잖아요?
혹시 이런저런 궁금한 거나, 의논할 게 있으면 친구처럼 의논해주셔요. 언제라두요.
인순 : 그럴까요? 고마워요.
재은 : 사실 스폿라이트 비춰지는 직업이라는 거... 참 피곤해요.
일반인들은 모를 거에요. 우리가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지...그죠?
인순 : 예에.
재은 : 공인 공인 그러는데, 따지구 보면 저두 한 사람의 개인이니까 어떻게 타의 모범으루만 살겠어요.
(한숨) 일거수일투족 매스컴과 대중의 심판을 받는 기분이에요. 이런 직업인 줄 모르구 뛰어든 거 있죠.
물론 인순씬 더하겠죠? 우리야 방송사 직원이지만, 인순씬 프리랜서잖아요. 인기 유지할려면 피곤할 거에요.
인순 : (어정쩡한 미소) 그러게요.
재은 : 어머, 저기 상우 선배다.
인순 : (당황)
저만치 한 쪽 구석에서 진태와 함께 식사하는 상우.
재은 : 같이 먹자 그럴까요?
인순 : 에이,다 먹었는데요, 뭐... 그,그냥 두세요.
재은 : (뭔가 좀 미심쩍지만) 그럴까요.
인순 : (후다닥 밥을 마구 삼킨다)
재은 : 며칠 전에 상우 선배 집에 놀러갔었어요. 선배 어머니가 정말 좋으시드라구요. 음식솜씨두 대단하시구...
인순, 자기도 모르게 목이 턱 막힌다. 얼른 물을 마신다.
재은 : (기왕 시작한 거 끝을 내자는 듯) 아, 요번 연말에 선배랑 둘이 일본에 놀러 가기로 했어요.
인순 : (물을 꿀꺽 삼키고) ...예에,
재은 : 삿뽀로에 삼촌이 계시거든요. 스키나 실컷 타다 올려구요.
(상우 쪽을 가만히 흐뭇하게 바라본다) 운동 되게 잘해요, 상우 선배... 아시죠? 거의 스포츠 선수급이에요.
인순 : 어어...그,그런가? (웃는다)
재은 : 혹시... (넌지시) 같이 가실래요?
인순 : (놀라) 예? 어휴... 무슨 그런 말을... 제가 뭐하러요.
재은 : 어머, 벌써 식살 다 마치셨어요?
인순 : 예... 배가 고파서요, 하하.
그때 저만치서 식판 들고 일어나다가 두사람을 발견해버린 진태. 반갑게 다가온다.
진태 : 인순씨!!
같이 일어나다가 멈칫 돌아보는 상우.
난감해지는 인순.
덤덤히 바라보며 예의어린 미소를 지어주는 상우.
기분이 묘해지는 인순.
반갑게 달려오는 진태.
진태 : 이야, 여기서 만나네... 식사 다했어요? 나가서 차나 한 잔 합시다.
인순 : 아, 저는...
재은 : (반갑게) 그래요, 우리... (작정한 듯 일어나는) ... 나가죠, 제가 커피 살께요.
다가와 인순의 손을 잡아끈다.
S#24. 방송국 로비 까페 (낮)
커피 놓고 둘러 앉은 네사람. 인순, 상우, 재은, 진태.
짐짓 담담한 상우. 시선은 커피에만 두고 있다.
영 불편한 인순.
상우의 표정에 슬몃 신경 쓰는 재은.
진태 : 인순씨, 요즘 날로 날로 이뻐지십니다. 역시 방송물이 무섭습니다.
인순 : 어어휴, 뭘요.
재은 : (샐쭉해지는)
상우 : (심드렁하다)
진태 : 어이, 유상우.
상우 : 어?
진태 : 먼 생각을 그렇게 해? 인순씨, 얘들 둘이 요새 수상해요. 상당히 진행이 빠른 분위기에요. 둘이 여행두 간다 그러구...
상우 : (난감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인순 : 예에...(씩 웃고)
재은 : 어휴, 선배. 고만 좀 놀려요. (인순 보고 짐짓) 괜히 이러는 거에요.
인순 : 두 사람... 잘 어울려요.
재은 : 어우, 이번엔 인순씨까지 왜그러세요?
상우 : (무표정하게)
재은 : 아참, 인순씨! 누가 저한테 인순씨 얘기 하든데... 자기 동창이랑 닮았다구요... 고등학교 어디 나오셨어요?
인순 : (멈칫)
상우 : (멈칫)
재은 : 이윤미라구 모르세요? 저희 사촌언니 친군데요. 인순씨를 어디서 꼭 본 거 같다는 거에요. 서울에서 나오셨어요?
인순 : 아,아뇨. 저는 지방에서...
재은 : 그럼 아닌가보다. 그 언니는 서울이거든요.
상우 : (착잡하다)
진태 : 인순씨야, 그 분두? 이름이?
재은 : 그러게요. 흔한 이름은 아닌데... (웃는다) 그럼 지방 어디서, 나오셨어요? 상우 선배랑은 중학교 동창이랬나?
인순 : (창백해지고 있다) ... 네...중학교 맞아요. (얼버무리며 씩 웃는)
상우 : (빠르게 표정을 읽는다)
인순 : (얼른 시계 본다) 저기요, 제가 급한 약속이 있어서요... 먼저 일어날께요.
재은 : 그러세요?
진태 : 이거 아쉽네요. 그럼 담에 또...
인순 : (웃고) 예! 그럼 또... (상우 보고) 상우야, 갈께.
상우 : 어 그래... 가라, 그럼.
목례하고 일어나는 인순. 멀어진다.
그대로 담담하게 앉아있는 상우.
S#25. 방송국 앞길 (낮)
안에서 부랴부랴 나오는 인순. 심란하다. 점점 걸음이 늦춰진다.
S#26. 로비 까페 (낮)
남아있는 세사람.
덤덤한 척 커피 마시는 상우. 기분이 무겁다.
진태 : 재은이 너 새로 진행하는 그 프로 뭐냐, 그거 가요 소개하는...
재은 : 한밤의 편지요?
진태 : 그래, 그거 우리 와이프가 좋다드라. 재밌다드라.
재은 : 어머, 정말요? 고마워요, 선배.
묵묵히 듣고 있는 상우.
재은 : (상우에게) 선배는 아직두 안 들었죠? 섭섭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상우.
상우 : 나 먼저 일어날께. 일이 있었는데 잊어버렸다.
진태 : 갑자기 무슨 일...
손 들어보이고 급히 나가는 상우.
얼굴빛 변하는 재은.
S#27. 방송국 앞길 (낮)
안에서 뛰어나오는 상우. 그러나 이미 인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찾아 헤멘다.
S#28. 방송국 근처 거리 (낮)
달려오는 상우. 인파 사이로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 인순의 모습을 발견했다.
달려가는 상우. 마침내 인순 앞을 가로막는다.
인순 : (놀라서) 상우야,
말없이 인순의 손목을 붙잡고 끌고 가는 상우.
인순 : 뭐하는 거야, 지금.
상우 : 조용한 데 가서 얘기 좀 하자.
인순 : 이,이거 놔... 나... 공인이야!
상우 : (어이없다) ...공인 좋아한다.
그대로 꽉 잡고 걸어가는 상우. 당혹스레 마지 못해 끌려가는 인순.
힐끔힐끔 보는 사람들.
S#29. 공원 혹은 강변 가로수길 (낮)
나란히 걸어오는 상우와 인순.
사람들이 뜸한 길이다. 이윽고 손을 놔주는 상우. 표정이 착잡하다.
둘 사이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그대로 잠시 걸어가는 두사람.
인순 : ... 할 말 있다며.
상우 : (그대로 묵묵히 걷기만 한다)
인순 : 유상우, 할 말 있다며.
상우 : ...(쓸쓸하다)
인순 : 야,
걸음 멈추는 인순.
스르르 따라 멈추는 상우. 잠깐 복잡하게 바라본다.
인순 : (그 시선이 불편하다) ...할 말이 뭔데.
상우 : ...
인순 : 말해. 왜 갑자기 벙어리가 됐어.
상우 : ...(착잡한 마음 추스른다)
인순 : 와, 싱겁긴...! 야, 너 이러믄... 나 인터넷에 사진 쫙 퍼져.
상우 : 그게 그렇게 무섭냐?
인순 : 그럼.
상우 : (피식) 되게 스타된 척 한다.
인순 : 스타야, 나! 몰랐어? 그리구 너, 장가두 가얄 거 아냐. 혼사길 막히구 싶냐?
상우 : ...
인순 : 둘이... 진짜 잘 어울리드라. 결혼 할 거야?
상우 : (덤덤히) 니가 상관 할 바 아니잖아?
인순 : (멈칫) 하,하긴... 아무튼 너 걔한테는 무지 멋진 척 했나 봐. 걔가 너의 실체를 전혀 모르든데?
상우 : 그것두 니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인순 : ...(할 말 없다) 암튼 넌 나쁜 자식이야. 양다리나 걸치구.
상우 : (예민해지며 본다)
인순 : 아, 물론 뭐... 상관할 바 아니니까 상관 안 하겠어.
상우 : (맘 추스르고 진지하게) 박인순.
인순 : 뭐.
상우 : 차라리 다 털어놓구 편하게 살아라.
인순 : (멈칫)
상우 : 전과 있는 거 다 털어놓구 맘 편하게, 하루를 살아두 맘 편하게 살아.
막는다구 될 일두 아니야. 어차피 금새 알려지게 돼 있어.
인순 : ...(어두워진다)
상우 : 숨길수록 더 이상해져. 니 어머니 여기저기 막으러 다니시는 거 같은데, 잘못하면 일 더 커지게 만드는 거야.
인순 : ...
상우 : 그리구...지금 니 모습, 그렇게 이뻐보이지 않아. 지금 니 옷두, 니 구두두, 니 표정두, 다 불편해보여.
인순 : (OL) 잘난 척 하지마. (울컥한다) 내가 맨날 거지같은 박인순이길 바래?
와, 너 진짜 오만하다. 내가 왜 니 맘에 들어야 돼? 난 좋아! 난 지금 너무 좋아!
니가 내 기분 눈꼽만큼이라두 알아? 나는 요즘 행복해!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해! 이런 내 기분, 니가 알아?
상우 : (굳어있다)
인순 : (글썽 한다) 나는 무덤까지 비밀로 할 거야. 터질 때 터지더라두, 내가 먼저 왜 털어놔? 내가 미쳤냐?
상우 : 인순아,
인순 : 이름도 바꿀 거야. 인순이! 지긋지긋해, 내 이름!
상우 : ...(굳어있다)
인순 : 너...정말... 정말... (목이 멘다) 재수 없어 죽겠어! 다신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마...
돌아서는 인순. 무안하게 바라보는 상우.
잰 걸음으로 멀어지는 인순.
S#30. 근처 거리 (낮)
울며 걸어오는 인순. 소매로 눈물을 슥 닦는다.
인순 : 재수 없는 자식...
인순 : (N) 하지만 그 자식보다 더 재수 없는 게 있다... 그게 바로 나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도대체 왜! 왜 옛날보다 더 춥고 외로운 거냐? ...거지 같애, 박인순!!
비척비척 울며 걸어가다가 길가운데 놓인 돌부리를 피하지 못하고 어어어, 꼬꾸라진다. 아프다. 창피해서 얼른 일어난다.
그 순간, 마주 오던 남자 대학생, 인순을 알아보고 다가온다.
대학생 : (반갑게)... 인순이 누나죠? 싸인 좀 해주세요!
인순 : (울컥) 아, 나 인순이 아니에요!
그대로 뿌리치고 달려가는 인순. 어이없어 보는 대학생1.
S#31. 아까 그 강변 혹은 공원길 (낮)
그 자리에 그대로, 한동안 시선 떨군 채 서 있는 상우. 허탈하다.
어깨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되돌아 간다.
S#32. 한식당 (낮)
허름한 식당. 한쪽 구석에 홀로 앉아 있는 인순.
소주 한 병과 잔이 놓여있다. 한 잔 따라서 쭉 마시는 인순.
들어오는 근수. 인순을 발견하고 다가온다.
복잡하게 보는 인순. 맞은 편 자리에 털썩 앉는 근수.
근수 : (피식 웃으며 주위 둘러보는) 이런 데서 술 마셔두 되나? 박인순씨,
인순 : 뭐가 어때. (잔 내민다) 한 잔 받아.
근수 : (한 손으로 잔 받는다)
인순 : (따라주고) ... 안 나오면 쳐들어갈려 그랬어.
근수 : (단숨에 들이킨다. 외면한 채) ...용건이 뭔데.
인순 : 니가 알잖아.
근수 : (보면)
인순 : 왜 말 안 했어.
근수 : 뭘.
인순 : 그렇게 급한 돈이면 말을 했어야지. 급하다구 말했어야지!
근수 : (외면하고 있다)
봉투 꺼내 테이블에 툭 던지는 인순.
인순 : 받아. 내가 가진 전부야. 광고 찍은 계약금두 넜어. 이걸루 안되면 할 수 없어. 그 이후엔 니가 알아서 막든가 해.
근수 : (시선이 조금 떨리는)
인순 : 우리 엄마한텐 더 이상 연락하지 마. 나하고 얘기하고 끝내.
근수 : ...(피식) 효녀가 따로 없군! 내가 왜 니네 엄마한테 그랬는지나 알어?
그 여자 혼 좀 내줄려 그랬다. 정신 바짝 들라구 겁 좀 준 거 뿐이야. 되게 겁 먹은 모양이군.
인순 : (굳는다) ...고맙다. 고마운데, 니가 안 그래두 돼. 니가 안 그래두 맨날 덜덜 떨면서 사는 사람이야.
근수 : (본다)
인순 : (눈물 글썽 어린다) 장근수... 이 바보 같은 자식아, 내가 오늘 너 만나면 한 대 쳐줄려 그랬는데...
야, 내가 주먹이... 얼마나...얼마나 쎈지 알지? 내 이 주먹으루 사람두 죽였어. (흐흥 웃는다)
근수 : (떨린다)
인순 : 근데... (목이 멘다) 근데, 너를 보니까 왜 하나두 안 밉냐. 안 밉구 막, 막, 마음만 아프네...
너는 정말 (가만히 본다) 와아, 넌 너무 착하게 생겼어. 어릴 때 할머니랑 나랑 너 처음 봤을 때...
니 눈에 반했다, 나? 너 얼마나 눈이 멋지게 생겼는지 알어? 그거 땜에 내가 번번이 맘이 약해지네, 하하...
주먹 불끈 쥐며 감정 참는 근수.
인순 : 근수야,
근수 : (OL분노에 차서) 나쁜 기집애.
인순 : (억울한 듯 목메어) ...왜?
근수 : ...
인순 : (울부짖는) 왜! 왜 내가 나빠! 왜!!
근수 : (떤다) 너는... 날 항상 나쁜 놈으루 만들어!! 너 따위가 뭔데! 니가 뭔데!!
박차고 일어나는 근수, 봉투를 휙 나꿔채고 밖으로 달려나가버린다.
망연자실 홀로 남아있는 인순.
주위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바라본다.
소매로 눈물을 슥 닦는 인순. 억울하고 슬프고 막막하다.
S#33. 정아방 (낮)
하프를 켜고 있는 정아. 뭔가 단단히 결심한 듯 결연한 표정이다.
음악이 끝나면 하프를 가만히 쓰다듬어본다. 잘가라는 듯이.
S#34. 중고 악기사 (낮)
인부 두사람이 가게 안으로 하프를 옮기고 있다.
다가와 하프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주인.
한쪽에 선 채 머뭇머뭇 바라보던 정아.
정아 : (망설이는) 저어... 얼마나 주실 수 있어요?
주인 : 글쎄요... 좋은 악기네.
정아 : 네, 처음 가격은...
주인 : (OL) 첨 가격이야 말하면 뭐해요.
정아 : (무안) ...네. (꾸벅 인사) 그럼 잘 부탁 드립니다.
주인 :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S#35. 근수방 (낮)
짐을 싸고 있는 근수. 가방에 옷가지 등을 구겨넣고 있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삐딱한 표정, 짜증스럽다는 듯 눈물을 훔친다.
곰인형이 보인다. 휙 던져버리고 밖으로 급히 나간다.
S#36. 근수집 근처 대로변 (낮)
차를 몰고 오는 정아. 차에서 내린다. 언덕을 바삐 올라간다.
S#37. 근수집 앞 골목 어귀 (낮)
가방을 짊어메고 언덕을 총총 내려오는 근수.
머뭇머뭇 집을 찾아올라가는 정아.
마주치는 두사람. 멈칫 보는 근수.
정아 : 어디.. 가요?
대꾸 없이 그대로 지나쳐 가는 근수.
당황하는 정아. 쫓아간다.
빠른 걸음으로 가버리는 근수. 달리는 정아.
S#38. 거리 (낮)
거의 달리다시피 걷는 근수. 달려오는 정아.
정아 : 잠깐만요! 거기 서 봐요, (막아선다)
근수 : (난감한) 뭐야,
정아 : 돈... 가져왔어요.
근수 : 허,
정아 : 가져왔다구요.
근수 : 됐어, 필요없어! 꺼져!
그대로 지나쳐 가버린다.
무안한 정아. 마구 쫓아간다.
달리는 근수. 죽을 힘을 다해 쫓아가는 정아.
이게 대체 뭔가 싶어지는 근수. 멈춰선다.
근수 : 됐다 그랬잖아.
정아 : 왜 됐어요, 갑자기?
근수 : 이제 다신 나 볼 일 없어. 멀리 떠나줄테니까 맘놓구 발 뻗구 자라.
정아 : 어디 가는데요.
근수 : 그건 니가 알아서 뭐하게!!
가버린다.
머뭇하다가 다시 쫓아가는 정아. 거의 울 듯한 표정이다.
버스가 온다. 뛰어가서 타버리는 근수.
당황하는 정아. 죽을 힘을 다해 뛰어가서 떠나는 버스에 올라탄다.
S#39. 버스 안 (낮)
맨 뒷좌석에 가서 앉는 근수.
뒤이어 차에 탄 정아.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버스 요금을 어떡하나, 난감하게 서 있다.
기사가 짜증을 낸다.
기사 : 요금 안내요?
정아 : 어,얼만데요?
대꾸 없는 기사.
난처하게 보다가 지갑에서 만원 짜리를 한 장 꺼낸다. 넣을까 말까 망설이며 초조하게 눈치보는데...
멀리서 지긋이 보고 있는 근수. 미치겠다. 앞으로 나와서 교통 카드를 찍어준다. 다시 뒷좌석으로 가서 앉는다.
안도하며 쫓아와 곁에 앉는 정아.
근수 : 뭐하자는 거야.
정아 : ...
근수 : 왜 강아지처럼 나를 자꾸 쫓아와?
정아 : (결심한 듯) ... 저도 가요.
근수 : 뭐?
정아 : 어디 가든지... 나두 데려가요. 나 오빠따라 갈래요.
근수 : 허,
정아 : 끝까지 쫓아갈 거에요. 어딜 가두 계속,계속,계속, 따라다닐 거에요.
근수 : ...돌았구나, 너.
정아 : 멀리 가요, 가능하면 아주 멀리요. 아무도 못 찾는데루요. 오빠 가고 싶은데 어디든지 가봐요.
시선 내리고 결연히 앉아있는 정아.
어이가 없는 근수.
S#40. 병국집 안방 (밤)
휴대폰을 들고 통화 중인 병국. 입 가리고 작게 통화한다. 화색이 만면에 어렸다.
병국 : 알겠습니다, 금방 달려가지요.
방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명숙.
헉 놀라서 얼른 휴대폰을 닫는 병국.
병국 : 당신, 귀신이야? 왜 소리두 없이 들어와!
명숙 : (어이없어) 먼 소리를 내구 들어와야 된대요?
겉옷 찾아서 입는 병국.
명숙 : 이 시간에 어딜 가요.
병국 : 지,직원이 모친상을 당했어.
명숙 : 직원 누구요.
병국 : 별 걸 다 알구 싶어 해.
명숙 : 저녁 차려놨어요, 밥이나 먹구...
병국 : 가서 먹을 거야.
급히 나가는 병국.
의심쩍은 명숙. 아무래도 안되겠다. 결심 어리며 급히 서둘러 따라나간다.
S#41. 상우집 앞길 (밤)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병국의 승용차.
뒤이어 나오는 명숙. 불안한 표정으로 보다가 뒤쪽에서 내려오는 택시를 황급히 손 흔들어 잡는다.
S#42. 택시 안 (밤)
뒷좌석에 탄 명숙.
명숙 : 저기 저 앞에 가는 차 좀 쫓아가주세요!
S#43. 까페 혹은 바 (밤)
선영과 마주 앉아있는 병국. 활짝 밝아진 얼굴.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선영 : 어제는... 실례가 많았어요. 제가 좀 우울한 일이 있어서...
병국 : 괜찮습니다. 실례는요. 저에겐 영광입니다. 그럴 때 친구가 될 수 있다니 얼마나 커다란 기쁨인지 모르겠습니다.
제 인생 최고의 기쁨입니다.
선영 : (웃는다) ... 참... 재밌으세요.
병국 : (얼굴 벌개진다) 제가요? 태어나서 그런 말은 처음 듣습니다.
선영 : 아니에요. 재밌으세요.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들 중에 제일 재밌는 분이세요.
병국 : (더 벌개진다) 고,고맙습니다.
선영 : 어제 일.. 사과하는 뜻으로 술 한 잔 사고 싶어서요.
병국 : 사과라뇨. 그런 말씀 자꾸 하시면 섭섭합니다.
선영 : (쓸쓸히 웃고) ... 누구한테 기쁜 존재가 될 수 있다니... 이상해요. 전 늘 남들에게 상처만 주는 사람이에요.
병국 :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게.
선영 : 제가 정말... 정말루 유사장님을 기쁘게 하는 존재인가요?
병국 : (미소) 절 살려주신 분이라니까요... 저어...부탁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사장님 그런 딱딱한 말로 부르지 말아주십시요.
제 이름은 유병국입니다. 병국씨라든가, 오라버니라든가, 뭐 좀 더 편하게 불러주면 좋겠습니다.
선영 : (웃고) ...그,그래볼까요?
병국 : 오늘 술은 제가 사겠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 어제 못다한 얘기 맘껏 해보십시요! 밤새도록 들어드리겠습니다.
애틋하고 고맙게 병국을 바라보는 선영.
선영의 그 미소에 몸둘 바를 모르고 쩔쩔 매는 병국. 실수로 물컵을 쳐서 엎어버리고 만다.
놀라서 허둥지둥 닦는 두사람. 아이들처럼 낄낄거리는데...
저 멀리, 입구에서 몸을 숨긴 채 두사람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있다. 명숙이다.
S#44. 상우집 거실 (밤)
들어오는 상우.
불 꺼진 거실 한 켠에 죽은 듯 웅크리고 있는 명숙.
무심히 계단으로 올라가려다가 멈칫 돌아보는 상우.
상우 : 엄마?
그대로 대꾸 없이 앉아있는 명숙.
다가가는 상우.
상우 : 거기서 뭐하세요.
불을 켠다.
넋나간 듯 멍한 명숙 표정.
상우 : 왜그래요,
명숙 : 아니다... 쉬어라.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는 명숙.
어안이 벙벙한 상우.
S#45. 상우집 안방 (밤)
어두운 방안.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는 명숙. 멍한 표정.
그러다 어느 순간, 꺼이꺼이 울기 시작하는데...
S#46. 상우방 (새벽)
잠이 안와 뒤척이는 상우. 인순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인순 (E) : 너...정말... 정말... (목이 멘다) 재수 없어 죽겠어! 다신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마...
괴롭다.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난다. 힘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데....
S#47. 서재 앞 복도 (새벽)
물 한 컵 따라들고 계단을 올라오는 상우. 서재방에서 불빛이 희미하게 흘러나온다.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다 문득 시선을 돌린다.
S#48. 서재 (새벽)
스탠드 앞에 앉아 있는 병국. (외출했던 그 차림으로) 휴대폰 들여다보고 있다.
<병국씨, 잘 들어가셨죠? 덕분에 오늘 즐겁고 행복했어요. 이선영> 문자가 와 있다.
표정에 함박 웃음이 어리는 병국. 문자를 꾹꾹 누른다. <편안하게 잘 자요. 좋은 꿈 꾸십시요...>까지 치는 병국.
기호를 이리저리 찾다가 하트 부호를 꾹 누른다. 하트가 찍힌다.
망설이다가 그대로 보낸다. 행복하다.
순간, 문이 벌컥 열리고 들어오는 상우.
화들짝 놀라 의자에서 굴러떨어지는 병국.
더 놀라는 상우.
상우 : ...아버지, 뭐하세요.
병국 : (얼른 휴대폰 감추며) 아, 아직 안 잤냐?
상우 : (병국 옷을 살피고) 이제 들어오셨어요?
병국 : (헛기침) 음... 문상 갔다가,
상우 : (뭔가 미심쩍다) 왜 여기 계세요.
병국 : 일 좀 하다가 잘라고.
상우 : (가만히 보다가) 아버지...
병국 : 가서 자거라. (일하는 척)
상우 : 요새 연애 하세요?
병국 : (흠칫) 뭐?
상우 : ...아니죠?
병국 : (기막힌척 웃는다) 무슨 그런... 허튼 소릴... 니가 연애 하니까 세상이 다 연애하는 걸루 보이냐.
상우 : (굳는) 저, 연애 안 하는데요.
병국 : 그 아나운서랑... 뭐가 잘 안돼 가냐?
상우 : (씁쓸히 웃고) ...걔... 아버지 맘에 드세요?
병국 : 가문의 영광이지! 내 벌써 여기저기 자랑두 했다.
상우 : (어두워지다가) 실은...
병국 : ?
상우 : 사실은 저... 좋아하던 여자가 있었는데...
병국 : (멈칫 본다)
상우 : ...차였어요.
병국 : 누가 너를 차?
상우 : 아버진 아들이 그렇게 대단해 보입니까?
병국 : 니가 안 대단하믄 누가 대단하냐.
상우 : 저는 못났어요. 차여두 싸요.
병국 : 무슨 소리냐,
상우 : (씁쓸히) 아닙니다. 아버진 요즘... 좋아보이시네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병국 : 그래 보이냐? (화색이 돈다) 제대루 봤다. 나 요새...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태어나서 첨으루 살아있구나, 내가 살아있구나 그런 기분이 든다. 내 인생이 그저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아니구나 싶고...
내가 평생을 그저 일벌레처럼 살았는데... 하하, 이제야 벌레가 아니구 사람이 됐다..
상우 : (어이없어) ... 무슨... 좋은 일 있어요?
병국 : 아니다. 없어. 가서 자거라. (쑥스러운 듯 얼른 서류철을 펼치는데)
얼떨떨한 상우.
S#49. 선영집 외경 (아침)
S#50. 정아방 (아침)
들어오는 선영.
선영 : 정아야, 너 또 늦잠...
그런데 침대가 비어있다.
당황하는 선영. 이리저리 찾아보는데 없다.
전화를 걸어본다. 전원이 꺼져있다. 이게 무슨 일이지?
S#51. 인순방 (아침)
방문을 여는 선영. 이 방도 비어있다.
당황하는 선영.
선영 : 어디 갔지?
S#52. 선영집 거실 (아침)
이층에서 급히 내려오는 선영.
파출부가 일하고 있다.
선영 : 아줌마, 얘들 아침에 나가는 거 못 봤어요?
파출부 : ... 모르겠는데요.
선영 : (당황스러운) 그럼... 혹시 그럼 어제 둘 다 안 들어온 거에요?
파출부 : 예?
선영 : (확 어두워진다)
S#53. 미화방 (아침)
한쪽 구석에서 잠들어있는 인순. 어제와 달리 소박한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곁에 앉아 머리를 짚어주는 미화. 일하고 돌아온 차림.
미화 : 얘가... 열이 장난이 아니네. 인순아, 인순아, 일어나 봐봐.
인순 : (눈을 간신히 뜬다)
미화 : 정신 들어? 야, 너 약 먹자. 안되겠다. 열이 펄펄 나.
인순 : (부스스 일어나며) 지금 몇 시야.
미화 : 아침이야, 아침. 언제 왔어? 언제 와서 자구 있는 거야?
인순 : (정신 차리며) 가야겠다.
미화 : 가긴 뭘 벌써 가. 아침 먹구 쉬었다 가라. 너 감기 들었나보다.
그 순간, 울리는 인순의 휴대폰. 엄마라고 이름이 뜬다.
멈칫하다 안 받는 인순.
미화 : 왜 안 받아?
인순 : (망설이다) 나중에 받아두 돼.
부랴부랴 일어나는 인순. 가방을 챙겨든다.
미화 : 그 몸으루 어딜 가?
인순 : 집에 가야지.
미화 : (어이없다) 어이,어이, 세수는 하구 가지, 눈꼽이라두 띠구!
인순 : (허 웃는다)
미화 : (잡아당겨 앉힌다) 먼 일 있지? 무슨 일이야?
인순 : 일은 무슨... (씩 웃고) 그냥 뭐, 니가 보고 싶어서 왔지! 예쁜 우리 미화.
미화 : 기집애, (흘기고) 안목은 있어가지구!!
S#54. 선영집 앞길 (낮)
막막하게 대문을 올려다보고 있는 인순. 한숨이 나온다. 들어가기 싫다.
그대로 다시 돌아서서 오던 길로 간다.
S#55. 선영집 거실 (낮)
희주와 마주 앉아있는 선영.
희주 : 저어... (망설이다) 그냥 확인 차 여쭤보는 거니까 불쾌해하지는 마시구요.
선영 : 뭔데요.
희주 : 인순씨 혹시... 전에... 수감 생활 같은 거... 한 적 있나요?
선영 : (사색이 된다)
희주 : 누가 인터넷에 글을 올렸대요. 워낙 요샌 없는 말두 지어내는 세상이니까요. 너무 불쾌해하지 마세요.
전에 같이 일했던 제과점 동료라면서... 잠깐 댓글루 올랐다가 금새 지워지긴 했다 그러는데요...
선영 : 말두 안돼! 그게 무슨 소리에요?
희주 : 죄송해요.
선영 : 제과점은 뭐구 수감생활은 뭐에요. 그런 말 할려구 여기까지 찾아왔어요?
희주 : ...(창백) 죄송해요.
선영 : 소속사라는 게 뭐에요. 그런 엉터리 같은 소리에 신경 쓰는 게 그 회사 일이에요? 나참, 거기 이렇게 안 봤는데...
희주 : ...(쩔쩔 맨다) 저어...
선영 : 오늘 스케쥴 어떻게 되죠?
희주 : 예? 아아, 저어... (얼른 다이어리 펼치고) 오늘은 씨에프 더빙하러 가기로 했어요.
선영 : 미뤄주세요.
희주 : 예?
선영 : 인순이 지금 몸이 아파서 병원엘 좀 갔어요. 다른날루 미뤄주세요.
희주 : ...예에... 그러죠.
두려워지는 선영.
S#56. 고모집 안방 (낮)
전화벨 울린다. 낮잠 자다가 놀라서 깨는 옥선. 후다닥 전화기 찾아 받는다.
옥선 : 여,여보세요...
선영(E) : 혹시 인순이 거기 안 갔어요?
옥선 : 인순이요? 걔가 여길 왜요,
선영(E) : ...알겠어요.
전화 끊어진다. 어이없는 옥선.
S#57. 선영방 (낮)
초조한 선영. 전화기를 들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한다.
S#58. 취재 차량 안 (낮)
조수석에 앉아 취재 가는 상우. 휴대폰이 울린다.
상우 : 네에,
선영(E) : 유기자, 나 이선영인데요.
상우 : (멈칫) 네,
선영(E) : 혹시... 인순이, 지금 어딨는지 알아요?
상우 : 인순이요?
선영(E) : (한숨) ... 미안해요. 어디다 연락 해야될지 모르겠어서... 전화두 안되고, 어제 안 들어왔어요...
답답해서 그냥 한 번 연락해본 거에요.
상우 : ...
선영(E) : 인순이 주변 사람들... 혹시 아는 사람 있어요? 난 통 모르겠어서...
상우 : (착잡해지는데) ...
S#59. 경준 학교 교정 (낮)
안에서 나오는 미진, 저만치 취재 차량에서 내리는 상우를 발견하고 멈칫 놀란다. 반갑게 다가간다.
취재차량과 인사하고 교정 쪽으로 걸어오는 상우.
미진 : 이게 누구세요,
상우 : 아, 안녕하셨어요?
미진 : 너무 반가워요, 유상우 기자님.
상우 : (좀 부담스럽지만) 저도 반갑습니다, 하하.
미진 : 서선생님 찾아오셨어요?
상우 : ...예.
미진 : 선생님 지금 수업 중이실텐데... (시계 본다) 아, 금방 끝나겠네요.
그럼... 저랑 잠시 담소나 나누시면서 서선생님을 기다리시면 어떨까요.
상우 : ...아,예.
미진 : 저 쪽으로 가실까요? 커피 한 잔 하시죠.
상우 : 아닙니다, 됐습니다. 그냥 여기서...
미진 : (흥분) 오늘 봐두 역시 목소리가 좋으시네요. 그리구 키는 왜이렇게 크신 거에요? 백..구십 넘죠?
상우 : 아,아닙니다. 안됩니다.
미진 : 거짓말! 전 보면 딱 알아요. 제 키가 몇으루 보이세요? 제 키가 백육십...
그 순간, 안에서 나오는 경준.
반갑게 달려가는 상우.
상우 : 안녕하세요,
경준 : (멈칫 바라보는데)
S#60. 근처 커피숍 (낮)
찻잔 놓고 마주 앉아있는 상우와 경준.
망설이다가 힘겹게 말을 꺼내는 상우.
상우 : 혹시... 인순이 지금 어딨는지 모르십니까.
경준 : 인순이가... 없어졌나요?
상우 : 그런 거 같습니다. 연락이 안됩니다.
경준 : (허 웃고) 어린애두 아닌데 뭘... 그 일루 날 찾아왔어요?
상우 : (좀 민망해지는)
경준 : 난 모르겠어요. 요샌 통 나를 안 찾아와. 좀 섭섭하기두 한데 말이죠,
상우 : (멈칫)
경준 : 유기자, 거 인순이한테 꽤 신경 쓰는군.
상우 : (왠지 거슬린다) 친구니까요.
경준 : 친구만은 아닌 거 같은데?
상우 :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경준 : 뭔데요.
상우 : 인순이 왜 안 받아들이십니까.
경준 : (멈칫하다) ... 받아들이라는 뜻인가?
상우 : 설마... 인순이 과거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게 아니라면 왜...
경준 : (씁쓸히 웃고) 자네, 여전히 비겁하군.
상우 : ...(굳는다)
경준 : 누굴 좋아하구 사랑하면, 그 사람 마음은 저절로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상우 : (본다)
경준 : 나는 그런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네. 사랑이라는 거 별 거 있겠어.
그 사람 아프면 나두 아프구 그 사람 기쁘면 나두 기쁘구, 그 사람 마음이 저절로 느껴지는 게 사랑 아닌가.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아는 거 아닌가?
상우 : (당혹) 전... 사랑한다고 말씀 드린 적 없습니다.
경준 : 나두 그런 말 안 했는데? 그저 비겁하다구만 말했어요.
상우 : (허 웃고) 선생님,
경준 : 내가 비겁해서 자네 비겁한 게 보이는 거 뿐이야. 난 인순이 사랑해요. 하지만... 비겁해서 용기를 못내고 있을 뿐이죠.
상우 : (굳는다)
경준 : 내가 용기를 내는 게, 두렵진 않나, 유기자? 그땐 도대체 어쩔려구 그러나?
상우 : (식은땀)
경준 : (착잡하게 차를 마시는데)
S#61. 방송국 복도 (낮)
망연자실 걸어들어오는 상우. 뭐가 뭔지 모르겠다.
저만치서 마주 오던 이형석 기자. 지나가다가 상우를 툭 친다.
형석 : 어이,
상우 : (흠칫) 어?
형석 :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또 사고 나겠다.
상우 : 어어...
그대로 지나쳐 가는데,
형석 : 그날 병원에서 잘 만났어?
상우 : (돌아본다) ...?
형석 : 인순씨 말이야.
상우 : 인순이?
형석 : 허, 못 만났어? 너 다쳤다니까 미친듯이 병원으루 달려가든데?
상우 : (굳는)
형석 : (주위 살피며 작게) 야, 뭐 있지? 둘이 뭐 있는 거지?
창백해지는 상우. 스르르 돌아서서 오던 길로 되돌아 달린다.
형석 : 야, 유상우!!
S#62. 상우 차 안 (낮)
차 몰고 가는 상우. 맘이 먹먹해진다. 어디로 갔을까.
전화 걸어본다. 전원이 꺼져있다. 답답하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야하나...
S#63. 고향 마을 어귀 (낮-해질녘)
노을이 지고 있다.
들어오는 상우의 차. 한쪽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리는 상우. 주위를 둘러본다. 몇 년만인가... 맘이 아려온다.
이리저리 풍경들을 살펴보며 마을길로 걸어온다.
저만치 학교 앞길. 걸어오는 중학생 남녀 꼬마. 잠시 어린 상우와 인순으로 보인다.
쓸쓸히 웃으며 그들을 지나친다.
저만치 폐허가 된 분식집 건물을 바라본다.
S#64. 강둑길 (해질녁)
걸어오는 상우. 감회에 젖어 착잡하게 둘러보며 걷는다.
S#65. 강둑길 (회상, 밤)
새벽 동이 터오기 전. 야반도주하는 어린 상우의 가족.
캄캄한 강둑길을 달리는 상우 부모와 어린 상우. 가방과 보따리를 주렁주렁 지고 있다.
자꾸 걸음이 뒤쳐지는 상우. 가기 싫어 엉엉 울며 따라간다.
앞서가다가 돌아오는 젊은 병국. 상우의 등짝을 철썩 친다.
상우 : 아버지, 나는 안 갈래! 나는 여기 있을래요!
병국 : (억지로 끌고 간다) 얼른 와! 이 자식아!!
곁에서 눈물 닦고 있는 명숙.
명숙 : 가자, 상우야... 나중에 성공해서 오믄 돼. 나중에 이담에 돈 많이 벌어서 그때 꼭 다시 오믄 돼!
상우 등을 떠민다.
우왁스레 상우를 끌고 가는 병국. 울며 질질 끌려가는 상우.
S#66. 강둑길 (현재, 해질녘)
맘이 아파오는 상우. 착잡하게 주위를 바라본다.
S#67. 강가 (해질녘)
강가 느티나무 사이로 천천히 걸어오는 상우.
노을을 받아 잔잔하게 빛나는 강물을 바라보다가 돌멩이를 하나 집어든다. 휙 던져보려는데...
그 순간, 저만치 누군가 앉아있는 뒷모습이 보인다.
유심히 바라보는 상우. 인순이다.
흠칫 놀라는 상우. 반갑고 뭉클해진다.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상우 : ...(떨리는) 인순아,
못 듣고 그대로 앉아있는 인순.
다가서는 상우.
상우 : 박인순,
그 순간, 돌아보는 인순. 어린 인순으로 모습이 바뀐다.
환하게 웃으며 돌아보는 그녀.
인순 : (반갑게) 상우야!
반갑게 씩 웃는 상우. 어느새 어린 상우로 바뀌었다.
첫댓글 선생님, 용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