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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결실 룻기 4장 : 13절 말씀에서 17절 말씀 까지 (p.406)
13절 :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절 :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절 :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절 :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절 :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옛날 영화들은 하나같이,영화가 해피엔딩으로,끝이 납니다. 즉, 주인공이 행복하게 되는 것으로 끝이납니다.
고전 소살들도 한결 같이 해피엔딩으로 끝이납니다. 예를 들면, 흥부전이나, 성춘향전이나. 홍길동전 등등이 다 주인공이 천대 받아 고생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은 다 부자되고 출세하고 원수 갚는 것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런 것이 바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며 또는 영화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시작도 중요하고 과정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것으로 결실을 맺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천성까지 달려가는 달리기 선수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들이 달리기 경주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 [행20:24절] 말씀에 사도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아멘
사도 바울은 자신을 달려가는 자로 말하고 있습니다. 달려간다는 말은 목적지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 [딤후4:7절과 8절]말씀도 보겠습니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아멘
사도 바울은 우리들이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주시려고 의의 면류관을 예비해두고 계신다 하였습니다.
달리기 경주자가 출발은 늦을 수도 있습니다. 달리다가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결승점에, 1등으로 들어가면 출발 때에, 또는 중간에 넘어진 것은 오히려 1등이 될 때에 더 큰 감격을 줍니다. 더 큰 기쁨을 줍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때에 여자 계주 경기때에 우리나라 선수가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1등을 했습니다.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1등으로 한국 선수가 들어왔을 때, 미국의 중계하는 아나운서는 [정말 한국 선수들 강하네요. 믿을수 없습니다]라고 놀라워 하면서 칭찬했습니다.
우리들도 마지막이 아름다우면 지금까지 힘들었던 것이 다 아름다워집니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주시려고 예비해 두고 계시는 면류관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면류관은 대제사장, 왕, 왕후가 씁니다. 또한 경기에서 우승한 사람에게도 면류관을 씌워줍니다. 면류관은 영광, 권위, 위엄, 승리를 상징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훗날 언제가, 예수님 앞에 서는 그날에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그 날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수고와 고생들을 기억도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 이러한 소망을 간직 한 가운데 룻기 4장 전체를 먼저 간력하게 보겠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인 [룻]에게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도록 해라, 그 사람이 너를 책임지려고 일을 할 것이다. 그 사람은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말했섰는데, [나오미]의 말이 맞았습니다.
[보아스]는 낮이되자 성문에 올라갔습니다. 그때 마침 한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그 사람은 [보아스]와는 친척이었으며,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면, [룻]과 계대결혼을 할 수 있는 첫 번째 권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보아스]는 그를 올라오게 하여 자리에 앉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두사람만 앉아서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룻]과 계대결혼을 ‘하려느냐’ ‘포기하려느냐’ 하여 결정 할 수 없었습니다.
증인이 필요했습니다. 즉 법적인 효력이 있는 증인들이 바로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이미 장로들을 그 자리에 오게하였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그 사람에게 [룻]에 대하여 설명을 했습니다. 《당신이 [룻]을 책임져야 할 권리순으로 볼 때 첫 번째인데 어떻게 하려느냐》하고 물었습니다.
계대결혼이라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은 형제의 아내와 결혼을 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은 형제의 가문에 들어가야 합니다.
계대결혼을 해야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이것을 포기하게 되면 과부가 된 여자는 갈곳이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계대결혼은 한 가정을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가는 가정으로 살리는 길이며, 또한 한 여자를 구원하는 중요한 법이었습니다.
자식 없이 홀로된 한 여자를 살리려고 하면, 그 여자의 죽은 남편의 형제된 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됩니다.
하나님께서 계대결혼을 울법으로 정하신 것은 단순히 과부된 한 여자를 살리고 한 가문을 이어가기 위하여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 여기에는 죄로 인하여 버림 받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 오신 예수님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빌2:6,7,8절] 절 말씀을 봅니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아멘
💊. [고후8:9절] 말씀도 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 다시 보아스로 가보겠습니다.
장로들 앞에서 우선 순위가 있는 그 친척에게 [룻]을 책임지라 하고 보아스가 말했더니,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여자를 떠맡았다가는 내 재산만 손해를 보게 되겠으니, 나는 그럴 수는 없소.》하면서 [룻]과의 결혼을 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그랬어 [보아스]는 장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러면 《내가 [룻]을 책임지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어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룻]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14절)
이렇게 [룻]이 아들을 낳자, 베들레헴 여자들이 나오미를 축하했습니다.《오늘 이처럼 당신 가문이 대를 이어 내려가게 해주셨으니 여호와께 찬양을 드립니다. 이제 이 아기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유명하게 되기를 원합니다.당신이 일곱 아들보다 귀하게 여기고 있는 당신 며느리가 낳아준 아들이니, 이제 이 아들이 당신에게 살 맛을 되돌려주었으며, 그리고 당신의 노후를 잘 보살펴 줄것 것입니다.》하고 축하해 주었습니다.
베들레헴에 들어올때만 해도 [나오미]는 모압에서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고 자신도 과부되었지만 또 과부된 며느리 [룻]과 함께 돌아왔섰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나오미]가 돌아왔네‘하고 말했을 때, [나오미]는 그들에게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하고 말했습니다. (룻1:20)
[나오미]라는 이름은 [기쁨]이라는 말입니다. 나를 [기쁨]이라 부르지 말라 하였습니다.
[마라]라 부르라 했습니다. [마라]는 [괴로움]이라는 뜻입니다.
[나오미]는 왜 자기를 [마라]라 부르게 하는 가를 말하였습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지만, 여호와께서 나를 이렇게 다 잃어버리게 하여 빈털터리로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라고 말했습니다.(룻1:21)
참으로 처절한 모습이었습니다. 형편없이 망하여 돌아왔던 나오미가 지금은 베들레헴 여자들이 하나님께 찬송하고 나오미를 축하하게 되었습니다.
(룻4:16)
[나오미]는 그 아기를 받아 품에 안고 자기 자식으로 길렀습니다. 두 아들을 모압에서 잃었던 나오미는 자식이 없었으나, [룻]이 낳은 아들이 자신의 아들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아들의 이름을 [오벳]이라 이름을 지어 불렀습니다.
💊. 그런데 [오벳]이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습니까?
베들레헴의 이웃 여인들이 이름을 지었습니다. 참 독특한 경우입니다.
[오벳]이라는 이름의 뜻에는, '섬기다' '봉사하다' 는 뜻과 함께 '종' '예배자'라는 뜻이있습니다.
[나오미]가 10년전에 베들레헴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모압]으로 간 것은 잘살아 보려고 갔습니다.
잘살아 보려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떠나 [모압]으로 갔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로 말하면, 돈을 많이 벌어서 세상에서 한번 멋지게 신나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해보고, 다른 사람들을 내 아래두고 시켜먹고 부려먹으먹으면서, 그리고 쾌락을 누리먀 살고 싶어서 예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떠나 잘살아보랴고 [모압]으로 내려간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보다는, 직장이 우상이되고, 돈이 하나님이 되고, 학생들은 공부가 자신의 주님으로 믿고 따라갑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 땅에 살다가는 못살 것 같아서 모압땅을 찾아갔지만, 다 잃어 버렸습니다. 남편도 아들들도 그리고 그 많은 재산들도 다 잃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이 고집을 부리며 떠날 때 다리몽뎅이를 뿌려뜨려 못가도록 막지 않으십니다.
그냥 두십니다. 그러나 영영 내버려 두지는 않습니다.
더 늦기 전에 때가 되면 잘살아보려고 자신의 안식처로 믿고 가있는 거기서 기근을 만나게 합니다.
아이가 나무 위에 올라가려할 때.아빠는 위험하니 않된다하는데도 아이는 괜찮아요. 아빠는 겁도 많아 하면서 잽싸게 올라갑립니다. 그때 아빠는 더 높이 올라가다가는 떨어지게되면 다시 어떻게 할 수가 없음을 알기에, 아빠는 나무를 흔듭니다. 그러면 아이는 그제서야 무서워 울면서 내려옵니다.
하나님도 우리 삶의 터전을 흔들어 버릴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터전을 흔들면서 우리에게 복음을 들려 주십니다.
그것을 [굳뉴스]라 합니다. 헬라말로는 [유앙겔리온]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에 관한 소식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국과 관련된 모든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의 중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해 주심과, 우리를 다시 살려주시는 부활과, 장차 주님이 우리를 데리려 오실 것이라는 이 소식이 복음이며 소식 중에도 좋은 소식입니다.
💊. [나오미]는 좋은 소식..., 즉 복음을 언제 어디에서 들었습니까?
모든 것을 잃어 버렸을때입니다. 사람은 배가 부르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나오미]는 모든 것을 잃어 버렸을 때, 복음이 들려왔습니다.
[룻1:6절]말씀에 보면 [나오미]는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일어났음을 말씀합니다.
지금 우리들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복음을 듣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은 언제가는 멸망할 장망성에 불과 합니다.
베들레헴은 우리말로 하면 [밥집]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밥을 주신다는 소식을 우리는 듣기 바랍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을 믿기 위하여 자기를 따라오겠다는 [룻]의 확고한 믿음을 알게되었을 때 [룻]과 함께, 베들레헴..., 즉 떡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적용하여 말씀 드리면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성경말씀이 밥먹여주나 하면서 떠났다가, 성경말씀만이 살 수 있는 것으로 깨닫게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회복하게헤 주실 은혜를 사모하면서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노력과 열심만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오는 자기 백성들에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이 하셨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이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나아가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일하십니다.
바람이 보이지 않으나, 나무가 흔들리고, 파도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보이지 않으시지만 나타는 일들을 보면, 하나님의 손이 보여집니다.
💊 [열왕기하 4장과 8장에]에 보면, [수넴]에 살던 한 여자의 일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넴]은 요단강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수넴]을 지나갈때가 많았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사환이었던 [게하시]와 함께 [수넴]에 이르렀을 때, 꽤 지체가 높은 집의 여인이 엘리사를 자기 집에 모실 것이나 들어 오시라고 간권하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들어가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후부터 엘리사는 [수넴]을 지날 때마다 이 집에서 대접을 받았습니다.
[수넴] 여인은 남편에게, "여보 선지자께서 우리 사는 이곳을 자주 지나다니 시는데, 내가 이 분을 보니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당신에게 청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엘리사 선지자를 위하여, 아담한 방을 만들어, 그 방안에는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까지 마련한 후에 엘리사 선지자께서 [수넴]을 지날때면 거기에 편안하게 머물도록 해 드립시다" 하였을 때 남편이 허락하여 그렇게 했습니다. 엘리사는 그후 부터는 이집에 머물면서 말씀도 연구하며 쉬어 갈수가 있었습니다.
앨리사는 받은 은혜를 갚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게하시]에게 너는 여인에게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하고 물어보라 하였습니다. 그러자, 여인이 《평안히 살고 있으므로 더 구할 것이 없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게하시]는 엘리사 선지자에게 《수넴 여인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랬어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하고 말했습니다. 엘리사의 말대로 한해가 지났을 때,그 여인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좀 컸을 때 하루는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내 머리야! 내 머리야!“하더니 집에 돌아와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수넴 여인은 죽은 아이를 방에 눞혀놓고 선지자를 찾아가서 알려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찾아와 죽은 아이를 살렸습니다.
(왕하8장)
그리고 세월이 많이 지났을때였습니다.엘리사는 [수넴] 여인에게 "여호와께서 앞으로 7년 동안 이 땅에 기근을 주실 것이니, 너는 일어나서 네 가족과 함께 다른 곳으로 찾아가서 거주 하도록 하라" 하고 말했습니디.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믿고 말씀한대로 순종하여, 가족과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칠 년을 살다가, 칠년이 다되었을때에, [수넴] 여인은 다시 [수넴]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자기 집과 전토들을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수넴]여인이 비껴달라 하였으나 비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랬어 수넴 여인은 왕에게 호소하려고 왕궁을 찾아갔습니다. 하도 답답하여 [수넴] 여인이 왕을 찾아가지만, 왕이 [스넴] 여인의 호소를 들어줄까요? 들어줄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수넴] 여인이 왕을 찾아가 호소하려할 때에, 왕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하면,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왕궁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왕은 엘리사 선지자의 근황을 물어보려고 [게하시]를 가까이 부르고는 ” 너는 엘리사가 어떤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내게 소상하게 말해보아라“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사환 게하시는 엘리사 선지자가 행한 하나님의 큰 일들을 설명하였습니다.
[게하시]는 엘리사 선지자가 행하였던 많은 일들을 하나 하나 말씀드려갔습니다.
이제 [게하시]의 이야기는, 아이가 없던 [수넴] 여인이 아들을 낳게된 것과 그 아이가 많이 커을 때, 갑자기 죽고 말았는데, 엘리사 선지가의 이 아이를 다시 살려내었던 일을 [게하시]는 신명이 났어 침을 튀기면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 바로 그때 였습니다. [왕하8:5절] 말씀을 봅시다.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의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어쩜 이렇게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모든 것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나오미는 실패와 절망에 처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즉 우리로 말하면 밥집이었습니다.
🧲. 베들레헴이 어떤 땅입니까?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생명의 떡으로 탄생하신 땅입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베들레헴은 사람을 살리는 떡집입니다.
지금도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님 하늘로부터 오신 신령한 떡이신 예수님께로 돌아가면 살게됩니다.
세상을 사랑하던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려고 주님께 가면 살게됩니다.
시편 1편의 말씀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가뭄을 모르기 때문에,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이 사람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됩니다.(시1:1-3)
우리 모두 이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끝마침은 하나님 앞에 열매가 있는..., 즉 결실을 맺는 신앙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 마지막 두 번째로 우리가 기억할 말씀은, [나오미]와 [룻]은 인생 최고 최대의 복을 받았습니다.
룻기4:21절과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족보는 마태복음 1장에 나타나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다시 기록이 됩니다.
💊. [마태복음 1:1절] 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멘
💊. 그리고 [5절과 6절] 말씀입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하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 그리고 [16절]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아멘
그러므로 [나오미]와 [룻]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았을 때, 이들은 큰 복을 받았는데,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부활의 영광을 주시므로 영생을 얻게해 주신 예수님이 오시는 통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한 가족으로 이들의 이름이 올라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멘(요14:6)
서울에 가려면 서울행 기차를 타야 합니다. 광주에 가려면 광주행 기차를 타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로 가려면 무슨 기차를 타야 하는지는 모르고 살아갑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로 가려면 예수를 믿어야만 갈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시며 생명이십니다.
나오미와 룻은 예수님께 가는 길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슬픔의 여자였으며, 세상에서 형편없이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더욱이나 [룻]은 이방 여자였습니다. 거기다가 자식도 하나 남겨두지 않고 남편마저 죽었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해 하나님을 믿게되었습니다. [룻]은 부자를 만나 팔자를 고치려고 시어머니를 따라 간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자기 친정 어머니에게 돌아갔다가는 하나님을 경외 할 수가 없었기에 지난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시어머니를 따라 갔습니다. 따라가도 그냥 따라간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 시어머니 말씀에는 전적 순종하였습니다.
📢. 그리고 시어머니의 명령에는 전적 복종했습니다.
하나님은 [룻]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오벳]이라는 아들을 얻게되었으며, 그리고 이스라엘의 2대왕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로가 되므로 [룻]은 예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나오미]도 [룻]도 실패한 신자였지만 마지막은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선한 열매를 먹도록 하여 사람을 살리는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의 훗날 모습도 이처럼 복된 결실을 맺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과 예수님의 말씀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