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권 구원론
제5장 회심-3
제6절 회심의 필요성
[겔에스겔 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악한 길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요구하셨습니다. ‘돌이키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회복하다, 개종하다, 되돌리다’라는 뜻입니다.
[마마태복음 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에서 어른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려면 먼저 돌이키라고 하셨습니다. 돌이키는 것을 헬라어 성경에서는 ‘반대로 돌리다’라는 단어를 썼는데, 영어 성경에서는 이 말을 ‘개조하다, 전환시키다, 개종한다’라는 뜻으로 번역했습니다.
이 말씀들에서 보면 회심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심이 필요한 이유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상과 악을 향했던 마음을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는 살아계신 아버지께 유산을 미리 달라고 했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를 죽은 사람 취급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그 아들이 마음을 돌이켜서 아버지께 돌아오니까 아버지는 아들이 저지른 짓은 생각하지도 않고 아들이 돌아온 것만 기뻐서 잔치를 베풉니다. 반지를 끼워주었다는 것은 아들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배반했던 죄인들이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회심은 그렇게 기다리시는 하나님 앞으로 마음을 돌이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회심과 연관해서 반드시 회심해야 할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전에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 축제를 계기로 차별금지법에 관해서 생각해보려는 겁니다.
퀴어라는 말은 ‘이상한, 기묘한’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입니다. 처음에는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말로 썼는데,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을 퀴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은 이성애자입니다. 두 二자를 써서 남성과 여성 두 성에 대해 연애감정을 느낀다는 뜻이 아니라, 다를 異자를 써서 서로 다른 性, 남성은 여성, 여성은 남성에 대해서 연애감정을 느끼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성애자입니다.
性소수자에는 동성애자만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 모두와 연애를 할 수 있는 양성애자도 있고, 특이하게는 無성애자가 있습니다. 無성애자는 이성이든 동성이든 누구에게도 연애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선한 문화 창조본부’라고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의 자문위원인 박서영 씨라는 분이 <동성애, 소수자 인권 보호, 차별금지법에 대한 고찰>이라는 글을 썼는데, 그 머리글을 봅니다.
“정부나 법이 종교적 도덕적 가치에 대해 중립을 지키고 아무런 도덕적 종교적 가치를 내세우지 않는다면 동성애뿐 아니라, 어린아이들을 성의 대상으로 하는 소아성애자나,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수간자들, 그리고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도 얼마든지 개인의 ‘사생활 보호권’이나 ‘선택의 권리’로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동성애 논쟁에서 가장 먼저 중요하게 논의해야 하는 것은 바로, 동성애 자체가 보호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가치판단’인 것이다.”
서울광장에서 벌인 퀴어 축제에 신임 주한미국대사가 나와서 격려 발언을 했다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남자인 그 미국대사는 동성애자로서 남자와 결혼한 사람입니다.
한국의 문화를 생각하지 않고 그런 사람을 대사로 보낸 미국도 문제지만, 대사라는 사람이 남의 나라에 와서 그 나라 문화가 인정하지 않는 행사에 나와서 격려 발언을 한다는 것은 대사로서의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더 근본적인 현실을 직시하자면 과연 우리나라에서 소수자들, 동성애자들이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동성애자가 자신은 동성애자라고 버젓이 밝히고도 방송에 계속 출연합니다.
동성애자라고 공공연하게 밝힌 사람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은 보지 말라고 한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동성애자를 차별하라고 부추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이 있다는 면에서 본다면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 사람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우리의 신앙과 맞지 않기 때문에 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차별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을 봐야 하는 불쾌감에서 벗어나려는 기독교인으로서의 행복추구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동성애자에게만 인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인 우리에게도 인간으로서, 기독교인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인권과 행복추구권이 있습니다.
백화점, 마트 등에서 동성애자라고 해서 출입을 막는 일이 없습니다.
동성애자에게는 밥을 안 판다고 하는 식당도 없고, 버스나 지하철, 택시를 이용하는 데에 차별을 당하지도 않습니다.
소수자에 속한다고 해서 코로나 백신을 못 맞게 하지도 않고, 은행 금리를 더 높게 받지도 않고, 물건을 더 비싸게 팔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퀴어 축제 같은 그런 행사를 하는 데에도 차별을 당하지 않습니다.
차별금지법이라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인데, 대체 동성애자 혹은 소수자라고 해서 무슨 차별을 받고 무슨 인권을 침해당한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기독교적인 면을 떠나서도 소수자 차별금지라는 것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것입니다.
퀴어 축제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71.4%가 반대했다는 것은 종교문제를 떠나서 아직은 우리 사회가 그런 반인륜적인 행위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무조건 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법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웃음거리입니다.
그 퀴어 축제를 하는 날 기독교, 천주교, 불교에서 축제 장소 맞은편에서 반대 집회를 했는데, 그것은 성소수자의 문제가 기독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문제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심각한 것은 언론들의 태도입니다.
이번에도 퀴어축제 반대 집회에 대해서는 크게 보도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난번에 국회 앞에서 3만 명이 모여 차별금지법 반대 집회를 한 것을 보도한 언론매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동성애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리는 사탄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둘이 합하여 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창창세기 2:23,24]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자와 여자가 한 몸으로 가정을 이루는 것 - 그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또한, 성경은 남색하는 자들을 결코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롬 1: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를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여기서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라는 말씀은 현대의 후천성면역결핍증, 다른 말로 에이즈라고 하는 질병이 동성애자를 통해서 전파된다고 예언하신 것이라고 해석하는 신학자가 많습니다.
구약성경에도 남색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신약성경에서는 로마서 외에도 [고린도전서 6:9; 디모데전서 1:10] 등에서 남색하는 자를 불의한 자,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질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