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동' 밤 골목을 걷다
살금살금, 사뿐사뿐, 어둠 내린 하늘골목…달맞이 고양이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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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으로 들어서자 파란 지붕 위에 앉은 고양이가 이방인을 무심한 듯 쳐다본다. |
부산 남구 우암동은 옛날 마을 언덕에 소의 형상을 한 바위가 있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의 소를 일본으로 수탈해가는 전진기지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각지에서 데리고 온 소를 먹이기 위해 수십 동의 우막사를 이곳에 지었다.
한국전쟁이 나면서 피란민이 그 우막사를 살림집으로 개조해 살았고, 일부는 가파른 언덕에
판잣집을 지어 살면서 지금의 우암동이 형성되었다.
우암동은 부산 근현대사의 어렵고 아픈 기억을 많이 간직한 곳인데, 부산의 대표적
'하늘마을'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망이 좋다.
특히 북항의 야경을 구경하기엔 더할 나위 없다.
먼저 문현동과 경계를 이루는 장고개 왼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장고개에서 왼쪽 오르막길을 3~4분 걸었다.
정상에 오르자 자성대 부두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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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남구 우암동에 밤이 온다. 황혼의 하늘을 분할하는 전깃줄이 이 마을 사람들의 바지런한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
언덕 아래로는 마을 사람들이 가꾸는 채소밭이 계단식으로 있는데,
여기도 조만간 아파트가 들어올 모양인지 분양 광고판이 군데군데 보인다. 북항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면 좁은 골목이 있고 오른쪽으로 가파른 언덕에 오래된 기와집들이 계단식으로 붙어 있다.
장마나 태풍 땐 안전하려나 은근히 걱정이 된다.
다시 위로 올라와 영도 방향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서자 사람이 살고
있음직한데도 가로등만 외로이 서 있을 뿐 적막감만 감돈다.
골목을 벗어나자 가파른 언덕. 언덕에 서 보니 북항 야경이 훤하다.
카메라 셔터에 저절로 손가락이 간다.
언덕을 끼고 아래로 난 길을 따라 가자 바로 장고개로 연결되는 큰길이다.
큰길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우막사가 있는 곳이다.
현재는 일부만 남았는데, 지자체에서 복원해 기념관 건립 사업을 준비 중이란다.
우암동 야경을 찾아 동항성당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달동네가 그렇듯 경사가 꽤 가파르다.
맨 위로 올라섰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 지 20여 분 지났다.
달동네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고 좁은 골목엔 노란 가로등이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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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어스름 속 동항성당 근처. 사진 오른쪽에 팔을 벌린 예수상이 보인다. |
나는 초저녁 밤 골목 걷기를 좋아한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초저녁 푸르름과 조화되는 풍경이 좋고, 옹기종기 붙은 조그만 집 창으로 흘러나오는 사람 소리가 좋아서이다.
골목 안에는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느림이 있고 아늑함이 깃들어 있음을
사람들은 알려나?
골목을 벗어나자 부산항대교가 바로 앞에 보인다.
순간순간 바뀌는 컬러풀한 조명이 북항의 야경을 더 아름답게 연출한다.
바로 눈 아래는 동항성당이다.
피란시절부터 판잣집을 전전하면서 오늘날 동항성당으로 자리 잡았다.
성당이 그리 높은 곳에 있지는 않다.
그러나 북항을 내려다보는 예수상은 브라질 리우의 예수상을 살짝 연상시킨다.
발길을 돌려 대연동으로 넘어가는 골목에 들어서자 파란 지붕 꼭대기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이방인을 빼꼼이 쳐다본다.
내가 지붕에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플래시를 터뜨려 몇 컷 찍었건만 그 자세 그대로다.
가로등의 안내를 받으며 다시 위로 오르자 조그만 구멍가게 '달상회'가 있다.
이름이 참 정감 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노부부가 따뜻한 난로 옆에서 아이들 소꿉장난 하듯
화투놀이를 하고 계신다.
할아버지 기억력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라고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금슬 좋은 노부부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가 떠오른다.
밖으로 나왔다.
서쪽 하늘엔 노을의 끝자락이 남아 있다.
하루를 마감하는 조용한 시간이다.
발길을 아래로 돌렸다.
내려오는 내내 노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른거렸다.
포토스페이스 중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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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암동 '달상회'는 부산항이 잘 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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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지자 골목에 가로등이 들어오고, 사람 사는 소리가 창문 밖으로 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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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마을'인 우암동에서 본 부산항대교와 북항 야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