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울/괴(愧), 수(羞)의 어원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세기 3장1절부터 7절은 흔히 '사탄의 유혹과 타락'의 구절로 부른다. 뱀이 사탄이고, 사탄의 유혹은 금단의 열매 곧 선악과를 따먹자는 것이며, 인간의 타락은 선악을 알게 되어 눈이 밝아 부끄러움을 알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사탄(뱀)은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유혹했는지 그 이유가 나타나 있지 않은 논리적 결함이 나타난다. 유혹의 이유를 알아야 사탄의 실체가 들어 날 수 있다. 뱀의 정체성에 따라 유혹의 이유가 규정될 수 있고, 사탄의 실체 또한 정의될 수도 있다. 또 하나, 선악을 알게 되면 눈이 밝아지는데 타락이 되는 모순도 나타난다. 모순의 이유가 밝혀져야 모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수수께끼가 그러하듯 문제의 정답은 대부분 지극히 단순한 곳에 있다. 시각의 전환, 사고의 전환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의문을 최대로 단순화 시키는 것이다. 단순화 될수록 모든 것이 한 눈에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인간 타락의 이유는 무엇인가? 부끄러움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부끄러움은 무엇인가? 부끄러움을 알게 된 까닭이다. 부끄러움은 어찌 알았는가? 발가벗은 몸을 보고 알았다. 고로 발가벗은 몸이 부끄러움이다.
우리말 '부끄럽다'의 먼저말은 '붓그리다'이다. '붓'은 '북(식물의 뿌리를 싸고 있는 흙)'의 옛말이다. 그리고 '붓ㄱ'은 '씨'의 옛말이다. 또한 '붓다'가 '씨앗을 배게 뿌리다'의 뜻도 있다. 그러면 '붓'은 '씨를 뿌리다/붓다/북도두다'는 의미로 식물에 빗댄 동물의 '짝짓기'를 상징하는 말이다. 고로 '붓그리다'는 '짝짓기를 그리다(나타내다/간절히 생각하다)'의 뜻이다. 발가벗은 몸이 부끄러운 이유이다. 한말글은 부끄러울/괴(愧), 수(羞) 등이 있다. 괴(愧)는 '귀(鬼)' 글말의 형성자이다. 글말 '귀'는 '괴'이고, '괴'는 '괴다(사랑하다/얼우다/흘레하다)'의 준말로 '짝짓기하다[괴] + 마음[心]'이다. 부끄러움과 같은 얼개임을 알 수 있다.
수(羞)의 갑골문은 양(羊)과 우(又)의 회의자이다. '또'를 뜻하는 손[우(又)]과 '양(羊)'으로 어찌 '부끄러울' 뜻이 유추될 수 있는가? 수(羞)는 또한 '음식'과 '바칠, 드릴/수'의 뜻도 있다. '손[우(又)]으로 양(羊)을 바치다'는 뜻으로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양을 식량으로 하는 유목 사회에서 손에 잡힌 양은 당연히 '음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손에 잡힌 양에서, 그리고 음식과 바칠 뜻에서 '부끄러울' 뜻이 유추되기는 어렵다. 또한 본래 한자는 일자일의(一字一意)가 원칙이다. 일자(一字)가 다의(多義)가 되는 까닭은 자형에 따라 점차 뜻이 덧붙여지며 확장될 뿐이다.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이 결코 확대되지는 않는다. '손이 부끄럽다'는 뜻이 있듯, 굳이 의미를 찾자면 못 찾을 것도 없지만, 그럴 경우 보편적이지 못하면 개별적 억지일 뿐이다.
우리말 '부끄럽다'의 얼개와 견주면, 수(羞)의 양(羊)은 그 뿔이 그러하듯, 이어 오르는[양] 현상을 나타내고, 우(又)는 뜻이 그러하듯, 거듭[또]되는 손의 뜻이며, 글말 '수'는 '수단/ 방법'의 뜻이라면, '손으로 거듭[우(又)] 이어(잇달아) 올리는[양(羊)] 수단(방법)[수]'로 '용두질'의 다름 아니다. 용두질이 부끄럽다는 뜻이다. 그러면 수(羞)는 차라리 우리말 '수줍다'의 얼개가 아닐까? 즉, '수줍다'는 '수(숫기)를 줍다(잡다)'의 의미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글자의 자형과 의미가 변하는 이유는 본래의 어원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임의의 개별적 논리가 개입되며 왜곡되고 변하기 때문이다. 한자의 원리가 망각되면서 부끄러운/수줍은 용두질의 의미가 희석되고, 자형에 개별적 해석이 덧붙여지며 '음식'과 '바칠/드릴'의 뜻이 추가되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