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傾向(경향) 및 評價(평과)
민족적 저항시인, 강인한 의지와 부드러운 서정을 지닌 시인으로 평가되며, 1986년에는 20대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선정되었다. 북한에서는 ‘일제말기 독립의식을 고취한 애국적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시는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내용을 서정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은 사색,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진실한 자기성찰의 의식이 담겨 있다고 평가된다.
學歷(학력)
賞勳經歷(상훈경력)
記念館(기념관)과 記念物(시념물)
핀슨홀과 尹東柱(동주)
記念館(기념관)~延世大學校(연세대학교)
鍾路區(종로구)
연변(延邊) =中國(중국) 지린성 東部(동부)에 있는 地域(지역)
記念物(기념물)
家族關係(가족관계)
조부: 윤하현(尹夏鉉, 1875년 3월 8일(음력 2월 1일) ~ 1948년 9월 4일)
조모: 강씨부인
아버지: 윤영석(尹永錫, 1895년 8월 1일 ~ 1965년 4월 20일)
어머니: 김용(金龍, 1891년 10월 1일 ~ 1948년 9월 26일, 본관은 전주(全州)) 누이: 윤혜원(尹惠媛, 1924년 ~ 2011년 12월 11일)
매제: 오형범(1924년 ~ 2015년 3월 11일) 조카: 오철주
남동생: 윤일주(尹一柱, 아명 윤달환, 1927년 11월 23일 ~ 1985년 11월 28일, 前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교수)
제수: 정덕희(정병욱의 여동생) 조카: 윤인석(尹仁石, 1956년 ~ 現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남동생: 윤범환 (다른 이름은 별환, 요절)
남동생: 윤광주(尹光柱, 아명 윤성주, 1933년 5월 15일 ~ 1962년 11월 30일, 시인)
외삼촌: 김약연(金躍淵, 1868년 9월 12일 ~ 1942년 10월 29일), 한학자, 독립운동가
사돈: 정병욱(鄭炳昱, 1922년 3월 25일 ~ 1982년 10월 12일, 국문학자)
其他(기타)
윤동주의 창씨개명은 1990년대 이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창씨개명설을 지적받게 되자 윤동주를 연구하던 한 교수는 이를 언급하기를 꽤 난처해했다 한다.[6] 윤동주의 창씨개명설은 2005년 이후에 공식적으로 언급 인정되었다. 다만 윤동주가 일본 유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개명에 참여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大衆文化(대중문화)에 나타난 윤동주(尹東柱)
放送(방송)
KBS1 《마돈나여 광야에서 별을 노래하라》 제2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영상시극, 1984년 12월 22일(방영시간 120분)
KBS1 《영상기행3.1절 — 민족시인 尹東柱》, 1988년 3월 1일(방영시간 60분)[25]
NHK 《NHK스페셜》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尹東柱, 일본통치하의 청춘과 죽음〉, 1995년 3월 11일(방영시간 60분)[26]
EBS《지식채널e》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부: 별 (2006년 7월 31일 방영), 2부: 시 (2006년 8월 7일 방영)
KBS《해피선데이 - 1박 2일》백두산 탐방 특집 윤동주 생가 방문 (2008년 6~7월)
SBS《그것이 알고싶다》윤동주 그 죽음의 미스터리, 후쿠오카 형무소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2009년 8월 15일)
MBC《MBC스페셜》가을, 윤동주 생각 (2011년 11월 4일)
KBS1 《KBS공사창립특집》 불멸의 청년, 윤동주 (2016년 3월 6일)
映畫(영화)
《동주》(2016, 강하늘)
노래
당신의 밤 (황광희, 개코, feat. 오혁)
별 헤는 밤 (김민규, 윤현선)
같이 보기
도시샤 대학
릿쿄 대학
연희전문학교
송몽규
문익환
정병욱
안병욱
장준하
정지용
김기창
참회록
김영랑
박목월
박두진
박종화
송진우
심련수
이광수
장면
조지훈
마루타
연세대학교
후쿠오카현
윤영춘
김소월
윤명선
조만식
윤형주
마광수
脚注(각주)
1.↑ 이동: 가 나 윤필립, 「윤동주 서거 60년,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신동아》, 2005.4.[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 김혁 (2010년 7월 5일). “디아스포라의 화자(话者)- 윤동주”. 2010년 9월 19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 '조선족' 윤동주를 생각해 보셨나요?:민족시인 윤동주 서거 65주년에 부쳐 - 오마이뉴스 2011년 02월 17일자
4.↑ 이동: 가 나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5.↑ 네이버캐스트 독립운동가 <윤동주>
6.↑ 이동: 가 나 김기창과 윤동주 Archived 2016년 7월 5일 - 웨이백 머신 - 조선일보
7.↑ 유종호, 나의 해방 전후:1940-1949 (민음사, 2004) 12페이지
8.↑ 조한서, 《윤동주:겨레의 마음에 별이 된 시인》 (도서출판 아름다운사람들, 2005) 122페이지
9.↑ 윤동주, 《오줌싸개 지도(윤동주 시집)》 (효리원, 2005) 119페이지
10.↑ (단독) “윤동주, 조선독립 실현시키려 했다” 세계일보 2010년 7월 15일 작성
11.↑ 박덕규, 「‘민족시인’ 윤동주-폭압의 겨울, 봄을 그리며 별로 지다」, 《경향닷컴》, 2006.2.
12.↑ 조상인 (2017년 3월 1일). “윤동주 첫 시집표지는 파란색 아니라 갈색?”. 서울경제. 2018년 8월 28일에 확인함.
13.↑ 박두진, 「殉節의 詩人 尹東柱」, 《동아일보》, 1965.3.4
14.↑ 정한모, 「저하늘의 빛나는 별로」, 《경향신문》, 1965.2.17.
15.↑ “"가장 좋아하는 詩人은 尹東柱"”. 동아일보. 1986년 2월 4일.
16.↑ 尹東柱 遺稿詩 북한서 발굴, 《동아일보》, 1992.4.27
17.↑ 연세대에 '윤동주 기념관' 문 연다, 《한국경제》, 2013.2.6
18.↑ “윤동주문학관”. 2018년 7월 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7월 9일에 확인함.
19.↑ '윤동주 시인을 생각한다' ...낭만파클럽, 30일 다양한 행사 Archived 2016년 10월 9일 - 웨이백 머신, 《미주한국일보》, 2005.7.6
20.↑ “시인 尹東柱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경향신문. 1990년 8월 15일.
21.↑ 中國에「尹東柱 詩碑」건립, 《동아일보》, 1992.9.29
22.↑ 윤동주詩碑 日서 내일 제막, 《경향신문》, 1995.2.15
23.↑ 日도시샤大 정지용 시비 제막…오양호 인천대 교수 특별기고, 《동아일보》, 2005.12.28.
24.↑ 「詩(시)와 영상」이엮어낸 진한感動, 《동아일보》, 1984.12.24 - 광복절에 방영되는 것으로 기획되었으나 한일회담을 앞두고 반일감정 자극의 우려로 연기되었다.
25.↑ 「영상기행—민족시인 윤동주」밤7.30>, 《동아일보》, 1988.3.1
26.↑ 日 NHK 尹東柱특집…"京郷新聞서 대중에 첫 소개", 《경향신문》, 1995.3.12
參考資料(참고자료)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이상섭, 「윤동주의 무서운 아이러니」, 《새국어생활》제14권, 국립국어원
"욘사마보다 윤사마가 좋아" 생체실험 희생의혹 윤동주, 日에서 부활하다 뉴스엔 2009년 08월 16일자
'조선족' 윤동주를 생각해 보셨나요?:민족시인 윤동주 서거 65주년에 부쳐 - 오마이뉴스 2011년 02월 17일자
네이버캐스트 독립운동가 - 윤동주(尹東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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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尹東柱)
윤동주(尹東柱) : 독립유공자 공훈록국가보훈처
연세대학교 윤동주 기념사업회
〈윤동주(尹東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윤동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을 안고 간 청년 시인 - 네이버캐스트
「北문학지 "윤동주는 반일 애국시인"」, 매일경제, 2008.3.26.
윤동주(尹東柱)의 신앙은 기독교 구국정신과 일치[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김기창과 윤동주(尹東柱) - 조선일보
윤동주 사진, 한국독립운동사정보시스템
가수 윤형주, 알고보니 시인 윤동주의 친척 동생 화제
조영남(趙英男) 日本(일본) 위한 음악회에서 (序詩) 개사(改詞) !
"윤동주(尹東柱)가 痛哭(통곡)할 最惡(최악)의 放送事故(방송사고) !
(에버뉴스) KBS 일본 대지진 피해자를 위한 성금모금방송 및 지진 피해자에게 위로를 주고자 마련한 '희망의 음악회'에서 조영남은 독립운동가이자 저항시인인 윤동주의 대표적 작품 '서시'를 개사하여 불렀습니다.
그러나 윤동주 시인은 다들 아시다시피 일제시대 말 일제에 저항하다가, 20대 창창한 나이에 그토록 원하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5년 일본 감옥에서 한 맺은 삶을 마감하신 분이십니다. 게다가 윤동주 시인은 일본 감옥에서 일제의 생체실험(마루타)에 희생되었다는 설도 강하게 제기될 정도로, 일제 강점기 시절 끝까지 저항을 하다가 희생된 우리들의 아픈 역사 그 자체이시기도 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또한 윤동주 시인이 돌아가시고 난 후 1948년 윤동주 시인 지인들이 저항시인 윤동주를 기리고자 그가 남긴 시를 모아서 낸 유고 시집입니다.
그런데 윤동주의 6촌인 윤형주와 절친한 사이에, 누구보다도 윤동주가 어떻게 한 많은 삶을 마감했는지 잘 알 법도 한 66세의 조영남이 윤동주가 오직 조국의 독립을 바라면서 피를 토하면서 쓴 서시를 일본을 위한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쓰다니, 정말 천국에서 윤동주 선생님이 땅을 치고 통곡할 입니다.
특히나 지난 가을 추석특집 mbc 놀러와 '세시봉 특집'에서 조영남이 '서시'를 원작이 아닌 다른 가사로 개사해 불렀다가, 윤동주 시인 6촌동생인 윤형주로부터 "나도 윤동주의 시를 가사로 하여 노래를 만들려고 했지만, 고인의 유해를 가지고 온 우리 아버지가 원작을 훼손하지 마라고 하셨다면서, 호시탐탐 윤동주 시인의 가사가지고 개사하여 노래를 부르고자하는 조영남의 행동에 일침을 가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영남은, 끝내 윤형주를 비롯한 윤동주 집안에게 윤동주 시인의 유작을 노래 가사로 불러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은지, 역시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본인 마음대로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개사하여 불렀는지, 결국은 일본을 위한 방송에서 일본때문에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윤동주 시인을 두 번 죽이는 어처구니 없는 대형사고를 일으켰습니다.
조영남과 절친한 사이이기도한 윤형주도 6촌 형 윤동주 시인의 숭고한 얼을 기리고자 하였지만, 누구보다 윤동주의 안타까운 순국에 아파한 아버지 때문에 하지 못한 일을, 왜 조영남이 단지 윤형주가 하지 말라고 말렸음에도, 그것도 일본 성금 모금 방송에서 '서시'를 부른 것 자체가 황당하고 불쾌할 따름입니다.
아무리 현재 지진으로 고통받고 있는 일본 지진, 원전 피해자들을 위한 좋은 일이라고 하지만, 일제의 치하 하에서 조국을 위해서 아무런 일을 하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쓴 한 독립운동가의 거룩한 시를, 그것도 정작 6촌 동생 윤형주가 하지 말라고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자기 뜻대로 일본을 위해서 그 노래를 바친 조영남이 과연 제대로 된 역사의식이 있은지 자체도 궁금할 지경입니다. 만약에 조영남이 진정으로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리고 절친한 동생 윤형주의 난처해질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일본을 위한 방송에서 일본에 저항하는 시를 아무렇지 않게 부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尹東柱(윤동주)
정 조영남이 윤동주 시인의 시가 마음에 들어, 윤형주를 비롯한 윤동주 유족들은 반대하는데 기어이 부르고 싶다면, 3.1운동 기념식이나, 8.15광복절 등이나 독도에서 불러야하는 것이 맞습니다. 물론 조영남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진정한 화합을 위해서, 숱한 비난을 무릅쓰고, 윤동주 시인의 노래를 윤형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본 지진 복구에 쓰이는 무리수를 두었지만, 아직 일본이라는 나라는 국가적 차원에서 종군위안부는 물론 일제시대 우리나라에서 저질렀던 만행에 대해서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음은 물론 수시로 명백한 우리나라 영토인 독토까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도 인도적 차원에서 정부와 일부 한류 스타 연예인이 일본 지진 피해자들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개인적 차원에서 사비를 털어서 돕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일이라도, 우리는 한 때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독립을 외쳤던 많은 사람들을 고문하고 숨통을 끊은 그들이 저지른 과거와 늘 자신의 목숨을 다바쳐 이 나라 독립을 위해 살아온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조영남이 일본 대지진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한 많은 돈을 얻어내는 자리에서 버젓이 일제에 저항하다 그들에게 희생당한 윤동주 시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만약에 윤동주 노래가 유족의 동의 하에 윤형주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윤동주 시인의 작품을 개사하여 부르도록 허락하였고, 만약에 윤동주 시인이 생전에 자신의 작품을 마음껏 사용하려고 허락을 하였다면 사정은 달라졌겠지요. 그러나 조영남은 일제에 저항하는 서시를방송국에서 버젓이 부르면서, 윤형주 등 윤동주 유족들에게 제대로 그에 대한 저작권료는 주었는지도 관건입니다. 아무리 윤형주와 절친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윤형주 아버지가 반대한 일을 공중파 방송국에서 일본을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기멋대로 또 부른 조영남입니다. 게다가 국민을 위한다는 공영방송 kbs는 윤동주 시인과 유족들은 물론, 국민들마저 분노케하는 조영남의 경솔한 행동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그 방송을 보던 다수의 시청자들이 이와같은 조영남과 kbs의 몰지각한 행동에 그들을 대신하여 윤동주 시인에게 진심으로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할까요?
조영남은 방송에서 윤동주 6촌동생인 윤형주에게 윤동주 시인 노래 개사하여 부르지 말라고 일침을 받았어도, 계속 윤동주의 노래를 불러왔습니다.
하긴, 기껏 조영남을 생각해서 지인들이 여자 좀 그만만나고, 방송에서 전 아내 윤여정 이야기 좀 그만해라고 뜯어말려도 계속 방송에서 수도없이 여자 울린 이야기와, 오로지 조영남만을 바라보면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미국에 갔지만, 결국 조영남에게 버림받은 조강지처 윤여정과의 추억담을 오직 방송에서 관심받고자 읊조리는 분입니다.
정작 윤동주 유해를 모시고 온 아버지를 생각해서 감히 윤동주 시를 부르지 못하고 있는 윤형주라도,그가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부르지 말라고 일침까지 놓은 서시를 개사해서 그것도 일본을 위하는 자리에서 부르는 철없는 조영남을 누가 말리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한다고해도, 대중들의 관심과 돈을 최우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연예인이라고 할지라도 , 일본인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좋은 취지라고 할 지라도 해서는 안될 일이 있습니다. 이제 곧 70을 바라보는 가요계의 대선배이자, 이 사회의 원로이신만큼 후배들과 자라라는 아이들과 청소년들 보기 부끄럽지 않게 제발 좀 본인 스스로 자중 좀 하셨음 좋겠습니다.
모든 國民(국민)이 天人共怒(천인공노)할 일
엉 ~ 엉 ~ 엉 ~ 痛哭(통곡)한다.
조영남
Cho Youngnam.JPG
기본 정보
출생
1945년 5월 13일 (75세)
일제 강점기 황해도 평산군
직업
가수, 화가
배우자
윤여정(이혼), 백은실(이혼)
가족
조승초(아버지), 김정신(어머니)
조영수(동생)
종교
개신교
대표곡
딜라일라(조영남 작사/김인배 편곡) 1969년
불꺼진 창(이장희 작사/작곡) 1973년
최진사댁 셋째딸(전우중 작사) 1975년
물레방아 인생(조영남 작사) 1976년
내 고향 충청도(조영남 작사) 1976년
사랑이란(이장희 작사/작곡) 1979년
제비(연경 작사) 1979년
점이(진남성 작사/작곡) 1982년
지금(김수현 작사/조영남 작곡.편곡) 1985년
화개장터(김한길 작사/조영남 작곡.편곡) 1988년
사랑없인 난 못살아요(김한길 작사/조영남 작곡.편곡) 1988년
도시여 안녕(조영남 작사/작곡) 1989년
겸손은 힘들어(조영남 작사/작곡) 1991년
그대 그리고 나 (정현우 작사/작곡 소리새 원곡 [1988]) 1994년
우리 사랑 (With. 패티 김)(조영남 작사/작곡) 1997년
모란동백(이제하 작사/작곡/편곡/원곡) 2001년
나는 신의 뜻을 알고 싶다(조영남 작사/작곡) 2010년
대표작
체험, 삶의 현장 1993년 역할:진행(1대:이경실 2대:정선희 )
지금은 라디오 시대 2006년역할:DJ (1대:이종환/최유라 2대:전유성/최유라 3대:조영남/최유라)
조영남(趙英男[1], 1945년 5월 13일(음력 4월 2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본관은 배천(白川)이다.
서울대학교 성악과에 재학 중이던 1968년 학비를 벌기 위해 미군 악단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대표곡으로는 화개장터 등이 있다.
目次(목차)
1 생애 1.1 초기 활동
1.2 가수 활동
1.3 귀국 이후
1.4 다양한 활동
2 사건
3 학력
4 앨범 4.1 정규 앨범
5 출연작 5.1 방송 출연/진행작
5.2 드라마 출연작
5.3 라디오 진행작
6 기타 활동 6.1 특별공연/전시회 등
6.2 광고
6.3 저서
7 수상 경력
8 가족
9 인맥
10 脚注(각주)
생애 ~ 初期(초기) 활동
本貫(본관)은 배천(白川)이며, 황해도 평산군에서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1951년 한국 전쟁때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국군이 중공군을 피해 1.4 후퇴를 할 때 온 가족이 LST미국 군함에 몸을 실어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면으로 피란했고 어린시절을 그 곳에서 보냈다. 배우 백일섭과는 고등학교 동문이다.
어릴 적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조영남은 처음에 한양대학교에 입학했으나 개인사정으로 자퇴하고 1966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입학하였다. 서울대 재학 중 세시봉, 오빈스 케빈 등 캠퍼스 가수로 명성을 얻었다.
歌手(가수) 活動(활동)
대학에 다니던 1968년에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삼아 미8군 부대의 주한 미 8군 쇼단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1969년에 영국 가수 톰 존스가 발표해 영국 싱글차트 2위까지 오른 팝 가요〈딜라일라 (Delilah)〉를 한국어로 번안한 곡으로 김인배 편곡집에 수록되어 1969년 대한민국 가요계에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데뷔 이후 대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가수로 활동하는 데에 어려웠기 때문에 잠깐 '고철(高哲)'이라는 예명으로 작사가 활동을 하였다.[2] 서울대학교를 자퇴하고 세시봉이라는 음악 다방에서 윤형주, 이장희, 송창식, 김세환, 김민기 등 여러 가수와 함께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조영남은 세시봉 활동 때 김시스터즈 내한 공연에 초청되어 노래를 불렀는데,〈신고산 타령〉을 '와우 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 로 개사하여 불렀다가 미움을 사서 군대에 입대하였다.[3]군 복무 중에 당시 대통령 박정희 앞에서 이애리수의〈황성옛터〉를 부를 것을 요청받았지만 분위기를 띄울 목적으로〈각설이 타령〉을 불러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초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영 변호사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군대에 있을 때는 그림그리는 취미를 길러 화가 수준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현재 그림 대작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歸國(귀국) 以後(이후)
1982년에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였고 가수 김도향과 함께 음악작업을 하면서 그와 함께 음반을 발매하며 활동을 해왔다. 1987년에는 주시경 선생을 존경한다는 신념에 따라 사극 MBC 드라마 《한힌샘》(MBC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출연하였다. 한편 조영남은 결혼 후 윤여정 사이에 2남을 두었으나 성격 차이와 본인이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점으로 결국 1987년에 이혼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공백기를 가졌다. 공백 기간 동안 조영남과 같이 지내며 의지가 되어주었던 김한길과 함께 지냈을 무렵, 어느 날 신문에 화개장터 기사를 보고 소설가로 활동하던 김한길이 가사를 쓰게 되었다. 그 가사에 조영남이 직접 작곡한 멜로디로 노래를 만들었는데 곡명을 〈화개장터〉로 하고 앨범을 발표하였다. 데뷔 이후 번안곡이나 성가를 주로 불러 국민들에게 널리 불리는 히트곡이 없었는데 〈화개장터〉가 히트하면서 조영남을 TOP 가수 반열에 오르게 하여 80년대 최고의 가요로 자리잡았다. 또한 사랑노래 〈사랑없인 난 못살아요〉도 김한길이 작사하였고 이 곡도 히트하였다. 1988년에 두 곡이나 히트하게 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정상에 오른 조영남은 여러 공연과 무대에 출연하여 인기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多樣(다양)한 活動(활동)
1989년에 자니 윤이 진행하는 KBS 2TV 《자니윤 쇼》에 보조 진행자로 활동한 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가수로서의 조영남보다는 방송인으로서의 조영남이 대중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1993년에 이경실과 함께 1대 진행자를 맡은 KBS 2TV 《체험 삶의 현장》이 주목을 받았다. 윤여정과 이혼 후 1995년에 백은실과 결혼하고 딸 조은지를 입양하며 새로운 가정을 꾸렸지만 현재는 딸과 같이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1990년대에 일어난 와우 아파트 붕괴사건이 일어났을때 함경도 신민요 신고산 타령을 가사만 바꾸어 "와우 아파트가 우루루루루루 무너지는 소리에..."로 시작하는 노래로 불러 그 첫구절이 문제가 되어 신문과 뉴수에 나기도 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조영남은 가수가 아닌 화가로도 활동하면서 화투그림을 그려 자신만의 화투화가의 영역을 개척했다고 알려졌으나, 200편 이상을 대작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약 10권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2005년에 저술한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에서 각종 친일 발언으로 인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2010년 1월 3일 새벽 0시 경에 경미한 뇌졸중 초기 증상으로 서울 강북에 있는 모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완쾌되는 등 건강 문제가 불거지기도 하였었으나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 DJ로 다시 복귀, 이후 12월에는 데뷔 41년 만에 모두 신곡으로 이루어진 앨범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에 거주하며, 2010년 조영남의 청담동 집이 연예인들 중에서 가장 비싼 집에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12월 조영남의 미술작품이 현대자동차 갤러리를 장식했다. 2012년 8월에 조영남이 작곡하고 김연식 태백시장이 작사한 〈태백의 노래〉를 선보였다.
事件(사건)
조영남은 각종 친일 언행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논란을 일으켰었다. 우선 2005년 1월 9일 방송된 MBC의 다큐멘터리 '거울속의 한일', 1월 18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등 언론을 통해 친일 발언을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5][6]이후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의 출간과 독도와 야스쿠니 신사와 관련하여 일본 산케이 신문과 진행한 인터뷰 중 '일본이 한 수 위이다' 등의 발언을 하여 더 큰 논란에 휩싸였다.[7] 이러한 친일 발언으로 인해 결국 자신이 진행을 맡고 있던 KBS 1TV의 프로그램 《체험 삶의 현장》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2009년 1월 10일, 자신이 진행하는 MBC 표준FM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 대해 "점쟁이같은 모르는 남의 말을 추종하는지 모르겠다. 다들 믿다가 잡아보니 별 이상한 사람이고 다 속았다."라는 발언을 하여 논란을 불러왔다.[9] 결국 조영남이 1월 12일 방송에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를 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되었다.[10]
2011년 9월 21일, KBS 2TV의 《빅브라더스》 방송 중 게스트로 출연한 소녀시대의 태연에게 기습적으로 포옹을 시도하였다는 논란이 발생하였다.
2015년 8월 29일 《불후의 명곡 2 - 전설을 노래하다》에서 그룹 이름 마마무를 엄마가 없다는 뜻으로 말하여 네티즌과 마마무 팬클럽의 비난이 KBS 홈페이지와 각종 사이트에 빗발친 적이 있다.
조영남은 자신이 입양한 여아에 대해 “이제 막 은지 가슴이 봉긋해지기 시작했다. 엄청 사정해야 한 번 보여줄까 말깐데 정말 예쁘다. 환상적이다. 그렇게 성스럽고 아름다운 걸 브래지어 속에 꼭꼭 숨기고 다녀야 하다니”라고 말해 큰 논란을 샀다.
조영남은 1973년 첫 개인전 이후 40회 남짓 전시회를 열며 스스로 ‘화수(화가 겸 가수)’라 표현해 온 조씨는 오래 전부터 화투 그림에 천착해 왔다. 정식으로 미술을 배운 적 없는 조씨는 독창성 있다는 호평과 산만 조악하다는 혹평을 함께 받아 왔다. ‘그림 대작(代作)’ 사건은 2009년 조씨가 알고 지내던 뉴욕 출신 무명 직업화가 송씨에게 자신의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다시 그려보라고 제안한 게 발단이다. 완성품이 마음에 든 조씨는 그때부터 작품을 직접 만드는 대신 송씨로부터 200점 이상 화투 그림을 받아 덧칠 등만 한 뒤 자신 이름을 걸고 전시했다. 결국 1심 사기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으며[12] 그 이후 2018년 3월 18일 방영된 KBS 2TV 1박 2일에서 잡지(2016년 우먼센스 6월호)에 실린 본인의 사진이 모자이크 처리되어 2016년 7월 1일 자로 KBS·EBS·MBC 출연정지 연예인 명단에 올랐고, 나중에는 JTBC·MBN·TV조선 출연정지 연예인 명단에 올라야 했으나 현재 KBS SBS 출연정지 연예인 명단에서 해제됐다. 2018년 8월 17일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녹화 방송 촬영 현장에서 사유리에게 몇명과 성관계 해봤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대법원도 항소심 판결을 인정하여 미술계에서 조직적으로 자행되던 사기극을 인정하는 정치재판을 했다.
學歷(학력)
삽교초등학교 졸업
삽교중학교 졸업
강문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성악과 중퇴
서울대학교 성악과 중퇴
트리니티대학교 신학 학사
앨범~정규 앨범
번호
음반 정보
트랙 리스트
1 《내사랑 딜라일라》 발매일 : 1970년
편곡:김인배
1.딜라일라 (조영남)
2.빗줄기의 리듬 (이시스터즈)
3.쌘프라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꽃을 꼿고 (조영남)
4.사랑의 기쁨 (한상일)
5.Come See About Me (Little Sisters)
6.밤비나 밤비나 (최양숙)
7.Am I That Easy To Forget (조영남)
8.Yesterday (조영남)
9.어쩌면 좋을까요 (박연숙)
10.사랑하는 마음 (최양숙)
11.사랑은 기차를 타고 (케리부룩)
2 《趙英男 2집》 발매일 : 1972년 12월 5일
1.옛생각
2.이일병과 이쁜이
3.보리밭
4.떠나는 마음
5.오솔길
6.꿈은 사라지고 (안다성, 시온성 합창단 1958)
7.딜라일라
8.고향의 푸른잔디
9.선구자
10.웨딩드레스 (한상일 1969)
11.세노야 (양희은 1971)
12.눈물젖은 두만강(김정구 1938)
3 《사랑이란》 발매일 : 1978년 8월 27일
1.살사랑이란
2.난 너를 사랑해
3.제비
4.아베마리아 (Ave Maria)
5.바위고개
6.안녕
7.사랑이란
8.슈우베르트의 세레나데
9.내 생에 단 한번만
10.사랑의 기쁨 (Piacer D`Amor)
4 《趙英男 4집》 발매일 : 1979년 10월 30일
1.삽다리
2.아들
3.참사랑
4.사랑의 바람
5.제비
6.잊어야 해
7.인생
8.안녕
9.하늘 가는 밝은 길이 (성가)
10.산이슬 (건전가요)
5 《趙英男 5집》 발매일 : 1982년 3월 30일
1.점이
2.누가 이 여인에게
3.님이시여
4.제비
5.여름은 가고
6.겨울에 떠난 여인
7.여보
8.모정은 가득히
9.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남궁옥분 1988)
10.미련
11.사랑 (찬송가)
12.전우가 남긴 한마디(허성희 1978)
6 《趙英男 6집》 발매일 : 1982년
1.이별
2.서울
3.고향의 푸른잔디
4.선구자
5.내 생에 단 한번만
6.옛생각
7.그 얼굴에 햇살을(문정선 1972,이용복 1972)
8.등대지기
9.눈물젖은 두만강
10.제비
11.너
12.보리밭
13.이일병과 이쁜이
14.떠나는 마음
15.내집에 가고 싶네
16.오솔길
17.꿈은 사라지고
18.아! 대한민국(정수라, 장계현 1983)
7 《`86 Asia Singer》 발매일 : 1985년
1.지금
2.비둘기
3.이길수 있어요
4.운전기사의 노래
5.밀알 하나가
6.너는 예뻐
7.철없는 아내(차도균 1967(?))
8.모두다 즐겁게
9.바우고개
10.마지막 편지(여의성 1969(?))
11.지금
12.아! 대한민국
8 《한강》 발매일 : 1988년
1.한강
2.사랑없인 난 못살아요
3.Welcome To Seoul Korea
4.이대로가 좋아요
5.아리랑
6.화개장터
7.사랑했기에
8.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1976)
9.그건 너
10.비는 내리고
11.온국민이 함께 부르는 노래
9 《조영남 `91》 발매일 : 1991년 6월 30일
1.도시여 안녕
2.서시
3.사랑없인 난 못살아요
4.지금
5.낙엽은 지는데
6.겸손은 힘들어
7.그대 따르리
8.화개장터
9.제비
10.딜라일라
10 《`94 조영남》 발매일 : 1994년 1월 1일
1.카루소
2.만남
3.그대 그리고 나
4.사랑의 미로(태원 1976, 최진희 1983)
5.사랑이여
6.서시
7.떠나가는 배
8.김군에 관한 추억
9.바위고개
10.고향생각
11 《밀레니엄 앨범》 발매일 : 1999년 9월 1일
1.에루화
2.고독한 계절
3.뉴 밀레니엄
4.청산은 나를 보고
5.지금
6.만남(노사연 1989)
7.제비
8.낙엽은 지는데
9.도시여 안녕
10.사랑이여
11.사랑의 미로(최진희 1984)
12.화개장터
13.그대 그리고 나(소리새 1988)
14.선구자
15.기다리는 마음
16.내 고향 충청도
12 《은퇴의 노래》 발매일 : 2001년 4월 28일
1.은퇴의 노래
2.우리사랑
3.모란동백(이제하 1991)
4.딸이야기
5.사랑없인 난 못살아요
6.언약
7.金君
8.비는 내리고
9.솔로의 노래
10.여기는 대한민국
11.제비
12.한강
13.그대 그리고 나 (Bonus Track)
13 《남자 조영남 노래 그리고 인생》 발매일 : 2010년 12월 2일
1.나는 신의 뜻을 알고 싶다
2.참으로 꿈만 같아라
3.사랑의 이중창
4.간절대박
5.눈동자
6.파리 공원의 아침
7.무반주 발라드
8.정주고 내가 우네(박일남 1966)
9.어허라 사랑(주현미 2005(?))
10.외롭지 않으려면
11.사막의 전갈
12.나도 이젠 네가 싫다
出演作(출연작)
방송 출연/진행작[편집]
2020년 SBS 교양 프로그램《궁금한 이야기 Y》- 게스트
2015년 KBS 예능 프로그램《나를 돌아봐》- 진행
2013년 TV조선 예능 프로그램《낭만논객》- 진행
2013년 KBS 특집 프로그램《스타 베이비시티 날 보러 와요》- 진행
2013년 KBS 예능 프로그램《이야기쇼 두드림》- 진행
2011년 KBS 예능 프로그램《빅 브라더스》- 진행
2011년 KBS 교양 프로그램《명작 스캔들》- 진행
2010년 KBS 특집 프로그램《조영남과 친구들》 - 진행
1999년, 2000년 KBS 예능 프로그램《가족오락관》- 게스트
2000년 KBS 교양 프로그램《체험 삶의 현장》- 진행
2000년 KBS 교양 프로그램《조영남이 만난 사람》- 진행
1998년 KBS 교양 프로그램《조영남, 황현정의 이야기 콘서트》- 진행
1997년 KBS 교양 프로그램《밤의이야기쇼》- 진행
1996년 KBS 교양 프로그램《TV는 사랑을 싣고》- 게스트
1993년 SBS 교양 프로그램《투맨 쇼》- 진행
1993년 KBS 교양 프로그램《체험 삶의 현장》- 진행
1993년 KBS 예능 프로그램《조영남쇼》 - 진행
1992년 KBS 예능 프로그램《생방송 토요스페셜》- 진행
1989년 KBS 예능 프로그램《자니윤 쇼》- 진행
1979년 TBC 예능 프로그램《조영남 TV스페셜》- 진행
드라마 出演作(출연작)
2016년 KBS 1TV 다문화 특집 드라마 《반짝반짝 작은 별》 - 이태원 초등학교 교장 역
1987년 MBC 8.15 특집 드라마《한힌샘》- 독립신문 인쇄공 역
라디오 진행작
2006년 ~ 2016년 MBC 표준FM 지금은 라디오 시대 - 진행
1973년 MBC 표준FM 별이 빛나는 밤에 - 진행
기타 활동
특별공연/전시회 등[편집]
1997년 한국화랑미술제 이목화랑 초대전 (예술의 전당)
1996년 서울대 음악대 동문회 명예회원
1991년 뉴욕 카네기홀 콘서트
광고[편집]
2011년 SK텔레콤 T store (With. 아이유)
1997년 부광약품 타코나
1993년 SK바이오팜 기넥신 (With. 남궁원, 현미, 손숙 등)
1993년 대웅제약 우루사 에프 (With. 백일섭)
1989년 JW중외제약 스로링
1988년 우성식품 블루 다이아몬드
1988년 빙그레 엑설런트
1983년 농심 뿅뿅 컵면
1979년 ~ 1982년 한독 브론치쿰 (With. 김상순)
1976년 해태htb 써니텐
著書(저서)
2012년 《그녀 패티 김 - 열정 그 자체 패티김의 노래와 삶》
2011년 《쎄시봉 시대 - 쎄시봉 친구들의 음악과 우정 이야기》
2010년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 내가 죽기 전에 꼭 쓰고 싶었던 시 해설서》
2009년 《천하제일의 잡놈 조영남의 수다》
2007년 《조영남의 사랑과 예술이야기》
2007년 《어느날 사랑이》
2007년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2005년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
2004년 《강철이 집 어데고》
2003년 《조영남 길에서 미술을 만나다》
2003년 《태극기는 바람에 펄럭인다》
2002년 《조영남씬 천재예요》
2000년 《예수의 샅바를 잡다》
1995년 《놀멘 놀멘2》
1994년 《조아저씨 이야기》
1994년 《놀멘 놀멘1》
1993년 《삽다리를 아시나요》
1993년 《넌 노래를 부르지마》
1993년 《조영남의 양심학》
1988년 《한국 청년이 본 예수》
受賞(수상)經歷(경력)
2003년 KBS 연예대상 공로상 (체험 삶의 현장)
2011년 MBC 방송연예대상 공로상
2010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 MC 부문 최우수상
家族(가족)
그의 동생 조영수 역시 음악가이다.
人脈(인맥)
송창식, 이장희, 윤형주, 김세환
각주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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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1.↑ 포커스 인물《조선닷컴》
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만능 엔터테이너 조영남(1)
3.↑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 《28》 '엉뚱함의 최고봉' 조영남《조선뉴스》
4.↑ 조영남 재산은? 집 187평 시가 80억원대 갑부《뉴스엔》
5.↑ 조영남 "나는 친일파"에 네티즌 분노《브레이크뉴스》
6.↑ 조영남 친일선언 2탄은 '가미카제'인가?《브레이크뉴스》
7.↑ "일본이 한수위" 조영남 친일발언 일파만파《세계일보》
8.↑ KBS, 조영남 교체 결정, '체험, 삶의 현장' 결국 하차《마이데일리》
9.↑ 조영남, '미네르바' 비하 발언‥.파문 확산《경향신문》
10.↑ 조영남 '미네르바 폄하 발언' 공식 사과 "신중하지 못했다"《뉴스엔》
11.↑ 조영남, 소시 태연에 진한포옹+기습뽀뽀…팬들 경악《스포츠서울》{{ Archived 2011년 9월 24일 - 웨이백 머신
12.↑ “10만원 주고 그리게 한 그림 1,200만원에 판 ‘화가’ 조영남”. 《한국일보》. 2017년 11월 5일에 확인함.
분류: 1945년 태어남
살아있는 사람
배천 조씨
평산군 출신
월남자
강문고등학교 동문
대한민국의 남자 가수
대한민국의 작곡가
대한민국의 작사가
1970년대 가수
1980년대 가수
1990년대 가수
2000년대 가수
2010년대 가수
한국어 가수
대한민국의 방송인
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
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대한민국의 화가
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
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대한민국의 개신교도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
첫댓글 이승철 ~ 금 2020-12-11 오후 5:36 ~ 왜 ?! 우리나라가 일본으로 부터 많은 침략을 받았을 까? 우리민족은 단합이 잘 안되고, 자기가 최고 잘난 사람으로 생각 하기 때문에 분열이 됩니다.
지금 이나라 꼴이 꼴이 아닙니다. 전부 전라도 판입니다.
이승철 금 2020-12-11 오후 9:18 양 선생님 미국에서 이런 자료를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 사진과 좋은 자료 너무너무 감사 합니다. 고향이 거제다 통영이다 하는 유치진과 유치환에 대한 자료가 있으면 보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