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우 혹독하다
나의 인생관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별것도 아니다” 생각하고 태평스럽게 사는 것이다. 그렇게 처신했던 것이 내가 약한 몸을 가지고도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 생각한다.
처세술에서 대인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사려면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갈1:10을 보자.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사람에게 좋게 보이려면 못 본체, 못 들은 체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후덕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런 처신으로는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없다”고 바울은 못을 박았다.
나는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별것도 아니다” 생각하고 평신도들에겐 매우 너그럽게 대한다. 교회 건축헌금 몇억을 개인용도로 사용한 사람도 용서했다.
그러나 목사(종교 지도자)는 “본”을 보여야 할 사람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걸 보고 따라간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도 없는 것을 말하거나 왜곡하는 목사에게 나는 “매우 혹독하다.” 예수님도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매우 혹독하셨다.
AD70년 이스라엘이 로마 제국에 멸망 당했던 그 뒷배경에는 본이 되어야 할 종교 지도자들이 본이 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 되었다(마23: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