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아쉬움이 자기주장의지가 되어 솟구치나
이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덮어 정결케 하옵소서.
잠잠히 주님의 행하심만을 기대합니다.
오늘은 온 집안 형제들이 함께 모이기로 한 날입니다.
이 집안에 예수님 믿는 믿음을 주시고,
주님으로 인해 더욱 우애 있는 형제들이 되었으니 참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행복한 날 되게 하옵소서.
저는 토요 전도에 빠지지만
전도팀들에게 은혜를 더하여 주셔서
기쁨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생명의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진리의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본문 주해)
32절 : 바울의 설교가 계속 이어진다.
16~31절까지 아브라함의 선택과 출애굽, 가나안 정복과 사사 시대, 사울 왕과 다윗,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을 시키고 있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 요한이 증거 하였고, 성경에서 증거 한 대로 죄 없이 죽임 당하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리심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올라간 자들, 즉 예수님의 제자들이 증거 하였는데 이것을 바울 자신도 증거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바울과 바나바)도 사도들이 증거 한 것과 같이 증거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증거 하느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전파한다는 것이다.
33~37절 :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었다는 것을 바울은 성경을 근거로 말씀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2:7)--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음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사55:3)--다윗의 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함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시16:10)--예수님의 부활을 말씀하심
다윗과 연결된 이 모든 말씀을 인용함은 다윗은 죽어서 썩음을 당하였으나 예수님은 다시 살아 나셨다는 것이다.
38~39절 : 이렇게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는 예수를 믿음으로 무엇이 주어지는 것인가?
예수님을 힘입어 죄 사함을 얻는 것이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로움을 얻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의 내용이다.
40~41절 : 41절은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심판을 선포하였으나 아무도 그런 선지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일들이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도 일어난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합1:5)
왜 예수를 믿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가?
지금 바울 사도가 증거하는 예수는 저주받은 죽음인 십자가 처형을 당한 사람이었다. 그저 십자가에서 힘없이 달려 죽은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으라고 하는 것이다. 부활했다고는 하지만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만 보였고 다 보여주시지도 않고 하늘로 가버린 것이다. 그런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다.
거기다 아직도 예수 믿으면 잡아 가두고 죽이겠다는 세상이다. 그래서 스데반도, 야고보도 순교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정말 가능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서에서 말한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보아라, 너희 비웃는 자들아, 놀라고 망하여라. 내가 너희 시대에 한 가지 일을 할 터인데, 그 일을 누가 너희에게 말하여 줄지라도 너희는 도무지 믿지 않을 것이다.'”(41절, 새번역)
(나의 묵상)
하나님의 언약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성취된다.
바울은 이 복음을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잘 알고 있다고 하는) 성경 말씀으로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두 가지 결론을 낸다.
그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든지(38~39절), 끝내 믿지 않아 멸망을 당하든지(40~41절)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
지금은 내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기에 이와 같은 말씀을 볼 때마다 감격과 감사함이 넘치지만, 과거에 ‘이신칭의’란 말을 듣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했을 때 이런 말씀이 참으로 밋밋하게 다가왔다.
당장 삶의 현실에서 눈에 보이는 어떤 유익도 없는데....그저 ‘죄사함과 의로움’이라니!
얼마나 막연한지....
지금은 나의 죄인됨을 절절하게 깨닫고 느끼며, 죄의 종노릇이란 것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암담한 것인지를 알기에 진저리를 치지만, 그때는 ‘내게 있지도 않은 죄 때문에 끙끙댈 필요 없고, 예수 믿으면 당장 내게 무슨 유익이 있을까?’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복을 구하고 기대하며 교회 생활에 열심을 냈다.
그렇게 수도 없이 들었던 죄사함과 의로움, 그 앞에 밍밍하게 굴었던 나를 주님의 때에 주님께서 변화시켜 주셨다.
정말 하나님의 그 선물이 마음이 쏙 들었으니, 그것은 나의 노력으로 된 일이 아니라, 내 눈도, 귀도, 마음도 다 성령께서 주관하신 결과이다.
더구나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니 매일 이 죄사함의 은혜, 자격없는 자를 의롭다 하여 주신 은혜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니 세월이 흐를수록 처음보다 더 크고 깊은 은혜를 노래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시편과 선지서의 말씀들이 증거 하는 예수님을 보니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기쁨이 있다. 주님을 알아가는 기쁨이니, 영생을 누리는 참된 행복이다.
내게 이 확신과 기쁨이 있기에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바울과 같이 나도 복음을 선포하고 전하기를 소망한다.
흔히 하듯이 개인적인 특별한 간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증거 하는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오직 ‘말씀 충만’하게 되기를 주님께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로지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만을 증거 하게 하옵소서.
간증처럼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는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 하지 말고
오로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저로 예수 충만, 말씀 충만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