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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n0rmand1e&logNo=223724767496
하인츠 구데리안은 1945년 3월 28일, 회의 중 제9군 사령관 테오도어 부세를 변호하다가 히틀러에게 해임당했다. 이 사건이 여러 책에서 어떻게 서술되는지를 비교해보자.
1) 하인츠 구데리안, <한 군인의 회상> (1951)
1945년 3월 28일 14시에 국가수상부의 좁은 벙커에 익숙한 사람들이 모였고, 부세 장군도 참석했다. 히틀러가 나타났다. 부세는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몇 마디 말하기가 무섭게, 히틀러는 부세의 말을 끊고는 내가 어제 충분히 반박했다고 생각한 이유를 들어 부세를 비난했다. 두세 마디를 듣자 화가 치밀었다. 나는 히틀러의 말을 끊고 그에게 어제 구두로나 서면으로나 보고했던 내용을 상기시켰다. "잠시 끼어들겠습니다. 제가 어제 상세하게, 구두로나 서면으로나, 부세 장군에게는 퀴스트린 공격 실패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제9군은 공격을 위해 할당된 탄약을 모두 사용했습니다. 병사들은 의무를 다했습니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사상자 수가 이를 증명합니다. 그러니까 부세 장군에 대한 어떠한 비난도 하지 마십시오." 히틀러는 답했다. "원수와 상급대장만 남고 모두 회의실에서 나가시오!" 수많은 청중이 대기실로 나가자 히틀러는 짤막하게 말했다. "구데리안 상급대장, 장군의 건강 상태를 보건대 6주간 병가를 내야겠소!" 나는 오른손을 들어 경례했다. "물러갑니다." 그런 다음 문으로 걸어갔다. 내가 문 손잡이를 잡았을 때 히틀러가 나를 불러세웠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 주시오." 나는 말없이 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참석자들은 다시 회의실로 불려 들어왔고, 회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계속되었다. 다만 히틀러는 부세에게 더 이상의 비난을 삼갔다. 나는 내 의견을 묻는 짧은 질문을 두세 번 받았고, 영원 같은 시간 끝에 회의가 끝났다. 참석자들은 벙커를 나갔다.
카이텔, 요들, 부르크도르프와 나는 남겨졌다. "건강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시오. 6주 후면 상황이 매우 위태로워질 거요. 그때 장군이 급히 필요할 거요. 어디로 갈 생각이오?" 카이텔은 내게 바트 리벤슈타인으로 가라고 조언했다. 무척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 나는 그곳에 미군이 이미 도착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배려심 있게 말했다. "그럼 하르츠 산맥 근처의 바트 작사는?" 나는 그의 친절함에 감사를 표하고는 48시간 내에 적에게 점령당하지 않을 만한 곳으로 적당한 장소를 직접 고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오른손을 들어 경례한 후 카이텔의 배웅을 받아 총통 벙커에서 영영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는 도중, 카이텔은 히틀러에게 말대답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겠나? 한 마디만 대꾸했어도 도를 넘었을 것이다.
2) 베른트 프라이타크 폰 로링호펜, <히틀러와 벙커에서> (2007)
원제: <Mit Hitler im Bunker: Die letzten Monate im Führerhauptquartier>. 프라이타크 폰 로링호펜은 기갑장교 출신으로, 동부전선에서 기갑부대 사령관으로 근무했으며 1944년 7월 20일 이후 구데리안의 요청을 받아 참모총장 보좌관이 되었다.
히틀러는 퀴스트린 반격이 실패한 다음 날 기회를 잡았다. 3월 27일, 제9군은 퀴스트린에 포위된 병력을 구출하려다 실패했다. 오후 회의에서 히틀러는 제9군 사령관 테오도어 부세 장군에게 부당한 비난을 퍼부었다. 이러한 비난에 극도로 반발한 구데리안은 즉시 그를 변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다음날 부세와 함께 불려간 구데리안은 험난한 회의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또 한 번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던 부세를 변호했다. 그리고는 쿠를란트 사단들을 후퇴시켜 베를린 방어에 활용하는 안의 승인을 거부한 히틀러의 결정을 상기시켰다. 히틀러는 시체처럼 창백해진 채 말 그대로 펄쩍 뛰어올라 회의가 열리고 있는 새 국가수상부 건물의 커다란 집무실을 안을 이리저리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구데리안에게 포메른 공세의 실패, 총참모본부의 패배주의적 태도와 그의 작전을 망쳐 놓는 행위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구데리안은 지휘의 한계에 대한 총통의 책임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오래 전부터 몰려들었던 폭풍이 허리케인처럼 폭발했다.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총통 각하!' 부르크도르프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며 그를 앉게 하려고 애썼다.
나는 구데리안이 체포당할까봐 두려웠다. 보닌 사건*이 여전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긴장을 완화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빠져나가 초센에 있는 크렙스 장군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회의를 중단할 핑계를 만들어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즉시 상황을 이해했다. 나는 회의실로 돌아와 구데리안에게 크렙스가 그에게 급히 할 말이 있다고 말했다. 크렙스는 10분 동안 구데리안을 전화로 붙들어 놓았다. 그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 분위기는 조금 풀려 있었다. 요들이 서부전선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요들의 부하인 빈터 장군은 구데리안을 회의실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그를 계속 달랠 수 있도록 했다. 마침내 히틀러는 카이텔과 구데리안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나가라고 명령했다. 몇 분 후 구데리안은 내게 히틀러의 명령에 대해 알려주었다. '장군, 건강을 위해 즉시 6주간 요양하시오. 그때가 되면 상황이 절대적으로 위태로워질 것이고 장군이 긴급히 필요할 거요.'
(* 1월 16일 동부전선에서 육군 총참모본부로 전황 전달이 잘못되는 바람에 작전과장 보기슬라프 폰 보닌 대령이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다하우로 끌려간 사건.)
3) 게르하르트 볼트, <국가수상부 최후의 나날들> (1964)
원제: <Die letzten Tage der Reichskanzlei>. 초판은 1947년에 출판되었으나 1964년에 개정증보판으로 새로 만들어졌다. 볼트는 정보장교로, 총참모본부의 라인하르트 겔렌 휘하 정보부에서 일했다.
이 폭풍 같은 회동이 끝날 무렵, 히틀러는 구데리안에게 3월 28일 오후 2시에 부세 장군과 함께 전투에 대해 보고하라고 요청했다. 같은 날, 3월 27일 늦은 밤, 구데리안은 히틀러에게 퀴스트린 작전과 준비 과정에 대한 보고가 담긴 문서를 전달했다.
그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독일군의 공격력과 소련군의 방어력, 그리고 아군 손실이 얼마나 치명적인 수준인지 설명했다. 그는 문서의 마지막 문장에서 그날 오후 히틀러가 부세 장군에게 제기한 중대한 혐의에 이례적으로 날카로운 표현으로 반대했다.
3월 28일 구데리안과 부세는 히틀러가 정한 시각에 국가수상부에 나타났다. 감정 없고 냉랭한 환영을 받은 부세는 곧장 퀴스트린 공격 작전에 대한 보고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서두를 마무리하기도 전, 히틀러가 그를 순전한 인신공격의 소용돌이에 빠뜨렸다. 그의 분노에 찬 비난은 부세뿐만 아니라 공격을 수행한 병사들을 향하기도 했다. 그러자 구데리안의 크고 거친 목소리가 히틀러가 내뱉는 언어의 홍수를 뚫고 터져 나와 그의 말을 끊어먹었다. 구데리안은 흥분했음에도 전날 저녁 히틀러에게 제시한 논거를 한 마디 한 마디 분명하고 명백하게 내던졌다. 그는 작전, 사령부, 병사들에 대한 히틀러의 비난에 전면으로 항의했다. 히틀러는 한 마디도 끼어들지 못했다. 그는 얼굴에서 모든 색이 사라진 채 앉아 있는 의자 속으로 점점 파고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자리에 있던 누구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만큼 민첩하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드문드문 붉게 얼룩져 있었다. 그의 왼팔과 몸의 왼쪽 전체가 평소보다 심하게 떨렸고, 마치 구데리안에게 몸을 던져 물리적으로 공격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구데리안은 다른 참석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몇 초 동안은 두 사람의 불안정한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만큼 조용했다. 그리고 히틀러가 욕설과 비난과 혐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주제는 더 이상 퀴스트린과 오더에서의 전투가 아니었다. 이제 구데리안뿐만 아니라 총참모본부 전체, 장교단 전체를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히틀러는 지난 몇 달간 있었던 모든 실패의 책임을 그들에게 돌렸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옛 장교단과 당 사이의 간극이 드러났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대립하고 있었다. 구데리안은 점점 더 맹렬해졌다. 그는 절망적인 아르덴 공세, 쿠를란트 전선의 항복과 23개 사단의 철수 지연, 동부전선을 위해 서부전선을 무자비할 정도로 약화시켜야 한다는 사실, 발라톤 호수 공세에 필요한 병력, 히틀러가 독일 동부의 주민들을 파렴치하게 포기한 점과 같은 자신의 옛 요구와 히틀러의 군사 지도력에 대한 비판을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방관자들이 이 독특하고 비범한 언쟁이 일으킨 무감각한 마비에서 깨어났다. 구데리안 장군의 부관 폰 프라이타크 로링호펜 소령은 구데리안이 언제라도 체포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대기실에 있는 전화기로 향해 크렙스 장군에게 전화를 걸고 국가수상부의 상황을 묘사한 후, 그가 우려하는 상황을 설명하고 전선에서 온 중요한 연락을 주제로 전화하며 구데리안을 붙잡아 달라고 애원했다.
그동안 토말레 장군과 함께 있던 장교 하나가 구데리안을 히틀러에게서 떨어뜨려 놓으려고 했고, 히틀러의 보좌관 중 하나는 말 그대로 그를 의자로 조심스럽게 밀어넣었다. 구데리안은 대기실로 향해 크렙스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회의실로 돌아왔을 때, 그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방 안에는 자제력이 회복된 분위기가 흘렀다. 히틀러는 부세 장군에게 사소한 질문 몇 가지를 더 한 후 퀴스트린 교두보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했다. 그런 다음 평소 같은 회의가 이어졌다. 회의실의 분위기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팽팽한 긴장과 억압을 띠었다. 개별 발표들은 매우 짧고 간결했다. 질문은 거의 없었다. 모두가 필사적으로 가능한 한 빨리 국가수상부에서 탈출하려 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날 무렵, 히틀러는 카이텔과 구데리안에게 남아 달라고 요청했고, 구데리안은 해임당한 후 휴가를 받았다. 이틀 후인 3월 30일, 구데리안은 후임자인 크렙스 장군에게 업무를 넘겨준 초센에 있는 독일 사령부를 영원히 떠났다.
4) 코넬리우스 라이언, <마지막 전투> (1966)
원제: <Last Battle: The Classic History of the Battle for Berlin>. 인용한 부분은 고트하르트 하인리치와의 인터뷰를 통해 습득한 정보를 구데리안 회고록을 기반으로 재구성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하인리치의 참모들은 그날 밤늦게에야 사건의 조각들을 짜맞출 수 있었다. 구데리안의 해임은 국가수상부에서 목격된 역대 최고의 난장판 중 하나였다. 히틀러의 오후 상황회의는 차분하게 시작되었지만 겨우 억눌러 놓은 적대의 기운이 감돌았다. 구데리안이 총통에게 퀴스트린 공격이 실패한 이유를 설명하는 비망록을 써서 제출했던 것이다. 히틀러는 구데리안이 채택한 어조뿐만 아니라 구데리안이 제9군, 특히 부세 장군을 옹호하는 것에도 불쾌해 했다. 총통은 부세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로 마음먹고 그에게 회의에 참석해 상황 전체를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평소처럼 히틀러의 최고 군사 고문들이 참석했다. 구데리안과 부세 외에도 히틀러의 참모장 카이텔, 작전참모 요들, 총통의 보좌관 부르크도르프, 그 밖의 여러 고위 장교와 다양한 부관이 참석했다. 히틀러는 몇 분동안 현 상황 전반에 대한 보고를 들은 후 부세에게 보고하라고 말했다. 부세는 공격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병력을 투입했는지를 간략히 설명함으로써 운을 떼었다. 히틀러는 짜증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작스럽게 말을 끊었다. "왜 공격이 실패했나?" 그는 소리쳤다. 그는 곧장 자신의 물음에 대답했다. "무능함 때문에! 태만 때문에!" 그는 부세와 구데리안, 그리고 최고사령부 전체에 비난을 퍼부었다. 그들은 모두 '무능'했다. 그는 퀴스트린 공격 때 '포병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다!'라고 호통쳤다. 그러고는 구데리안을 향해 말했다. "장군의 주장대로 부세에게 탄약이 부족했다면 — 왜 더 주지 않았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구데리안이 나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미 설명했습니다만 — " 히틀러는 팔을 휘적거리며 그의 말을 끊었다. "설명! 변명! 그게 전부야!" 그는 소리쳤다. "자! 그럼 누가 퀴스트린에서 우리를 실망시켰는지 말해 보시오 — 병사들이었소, 부세였소?" 구데리안은 갑자기 격분했다. "헛소리!" 그는 소리질렀다. "헛소립니다!" 그는 거의 뱉어내듯 말했다. 그는 분노에 찬 얼굴이 점점 벌겋게 달아오르는 동안 장광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부세를 탓하지 마십시오!" 그는 고함쳤다.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명령에 따랐다고요! 부세는 가용한 탄약을 전부 썼습니다! 가진 걸 전부 썼다고요!" 구데리안의 분노는 기념비적이었다. 그는 말을 잇기 위해 애썼다. "병사들의 탓이라니 — 사상자 수를 보라고!" 그는 몰아쳤다. "희생자 수를 보십시오! 병사들은 의무를 다했습니다! 그들의 희생이 그걸 증명해주잖습니까!"
히틀러는 마주 고함쳤다. "그들은 실패했소!" 그는 날뛰었다. "실패했다고."
이제는 얼굴이 자줏빛으로 변하기 시작한 구데리안은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그러니까 좀... 그러니까 좀 부세 장군과 그의 병사들에게 더 이상 책임을 전가하지 말란 말입니다!"
두 사람 모두 이성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멈추지는 않았다. 구데리안과 히틀러가 서로를 마주보고 어찌나 격렬하고 무섭게 언쟁을 주고받았는지, 다른 장교와 부관들은 충격에 빠져 얼어붙고 말았다. 히틀러는 총참모본부를 향해 '줏대 없는 놈들', '머저리들', '얼간이들'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그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오도하고', '잘못된 정보를 넘기고', '속였다'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구데리안은 총통이 '잘못된 정보'와 '오도'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다. 겔렌 장군이 러시아군의 전력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입수했던가? "안 그랬죠!" 구데리안은 포효했다. "겔렌은 멍청이야!" 히틀러는 대꾸했다. 그러면 발트 연안국, 쿠를란트에 포위된 18개 사단은? 구데리안은 소리치며 물었다. "누가 댁한테 그들에 대해 오도했습니까? 정확히 언제 쿠를란트 군을 철수시킬 생각을 하셨답니까?"
언쟁이 너무 시끄럽고 격렬했던 나머지 나중에는 아무도 어떤 순서로 대화가 오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무고하게 언쟁의 주제가 된 부세조차 훗날 하인리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상세하게 말하지 못했다. "우린 거의 마비 상태였습니다." 그는 말했다. "아무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믿을 수 없었어요."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행동한 사람은 요들이었다. 그는 악을 쓰는 구데리안의 팔을 붙잡았다. "제발! 제발!" 그는 애원했다. "진정 좀 하시오." 그는 구데리안을 한쪽으로 끌어냈다. 카이텔과 부르크도르프는 지쳐서 의자에 주저앉은 히틀러를 돌보기 위해 나섰다. 공포에 질린 구데리안의 보좌관 프라이타크 폰 로링호펜 소령은 상관을 당장 회의실에서 끌어내지 않으면 그가 체포되리라 확신하고 밖으로 뛰어나가 초센에 있는 참모장 크렙스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렸다. 폰 로링호펜은 크렙스에게 전선에서 긴급한 소식이 도착한 척하고 구데리안이 진정할 때까지 수화기 앞에 붙잡아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어려운 설득 끝에 구데리안을 회의실에서 내보냈다. 상황에 맞게 정보를 조작하는 데에 능했던 크렙스는 아무런 문제 없이 15분 이상 구데리안의 주의를 전부 끌었고, 그쯤 지나자 육군 참모총장은 다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었다.
총통도 그 사이에 진정했다. 구데리안이 돌아왔을 때 히틀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회의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그가 들어오는 모습을 본 히틀러는 카이텔과 구데리안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회의실에서 나가라고 명령했다. 그리고는 차갑게 말했다. "구데리안 상급대장, 장군의 신체 건강을 위해 6주간 요양을 떠나는 게 좋겠소." 구데리안은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겠습니다." 하지만 히틀러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명령했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시오." 회의가 끝날 때까지는 몇 시간이 더 걸렸다. 그쯤 되자 히틀러는 거의 구데리안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건강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시오. 6주 후면 상황이 매우 위태로워질 거요. 그때 장군이 급히 필요할 거요. 어디로 갈 생각이오?" 카이텔도 알고 싶어했다. 갑작스러운 걱정에 의심을 품은 구데리안은 신중하게 자신의 계획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이만 가보겠다고 말하고 국가수상부를 떠났다. 구데리안의 퇴장이었다. 기갑전술의 혁신가이자 히틀러의 마지막 거물급 장군이 사라졌다. 그와 함께 독일 최고사령부의 마지막 남은 건전한 판단력의 흔적도 사라졌다.
5) 위르겐 토르발트, <끝은 엘베 강에서> (1950)
원제: <Das Ende an der Elbe>. 토르발트는 종전 직후부터 여러 장군들을 따라다니며 인터뷰를 따냈다. 아주 당연하게도 그 중 하나는 구데리안이었다. 구데리안은 이 책을 읽고 자신이 악몽을 꿨다고 서술된 부분에만 태클을 걸었지, 그 밖에는 꽤 마음에 들어했다.
3월 23일, 부세의 병력은 첫 번째로 퀴스트린과의 연결 재구축을 시도했다. 러시아군의 포격이 그들에게 큰 손실을 입히며 뒤로 밀어냈다.
히틀러는 공격을 반복하라고 명령했다. 새로운 공세 지점이 정해졌고, 대포와 전차가 그리로 이동했다. 이번에도 항공지원은 거의 없었다. 3월 27일, 제9군은 두 번째로 퀴스트린 구원을 시도했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하인리치는 세 번째 시도가 자살행위임을 알았다. 그는 구데리안에게 퀴스트린 방어군이 '요새'를 포기하고 서쪽으로 돌파를 시도할 수 있도록 승인해달라는 건의와 함께 실패를 보고했다.
3월 27일 오후, 구데리안은 하인리치의 보고서를 총통 사령부에 전달했다. 히틀러는 격노하며 부세 장군에게 폭언을 퍼붓고 구데리안에게 다음날 부세와 함께 퀴스트린 문제를 특별히 논하는 회의에 출석하라고 명령했다. 그날 저녁 구데리안은 히틀러에게 퀴스트린 전투의 개요,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력 차에 대한 중요한 사실들, 독일군의 손실 수치 등을 담은 요약서를 전달했다. 문서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저는 오늘 오후 부세 장군과 그의 병사들에게 가해진 비난에 단호하게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데리안과 부세는 정해진 시각에 모습을 드러냈다. 히틀러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로 부세에게 보고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부세가 세 번째 문장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히틀러는 또다시 격앙된 목소리로 그의 말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구데리안이 히틀러의 말을 끊었다.
히틀러의 말은 구데리안의 목소리에 묻혔다. 그의 목소리는 방 안을 가득 울리며 퀴스트린의 상황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반복했다.
히틀러는 벌떡 일어났다. 잠시 동안은 그가 구데리안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 퀴스트린과 부세 장군은 잊혀졌고, 히틀러의 입에서는 속에서 들끓고 있던 불신과 원한, 증오가 터져나왔다. 히틀러는 구데리안뿐만 아니라 총참모본부 전체를 향해 격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구데리안은 쿠를란트 군의 손실과 낭비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받아쳤다. 그러나 히틀러는 구데리안과 총참모본부 전체가 완전히 무식하다고 소리쳤다. 히틀러 자신은 스탈린그라드에서 적군의 발을 묶어 남동부 전선의 재앙을 막았듯 항상 혼자서 전선 후방 거점 전략으로 적군의 발을 묶어냈다. 하지만 구데리안과 그의 정신 나간 겔렌 장군이 끊임없이 그를 오도했다. 구데리안의 작업물인 포메라니아 공세마저도 재앙으로 끝났다는 것이었다.
히틀러의 병든 팔이 위아래로 휘저어졌다. 구데리안은 히틀러보다 더 큰 소리로 고함쳤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모든 자제력이 사라진 채였다.
가장 먼저 경악에서 벗어난 사람은 부르크도르프 장군이었다. 그는 뒤로 다가가 히틀러를 다시 의자에 앉히려고 애썼다.
"총통 각하, 제발 진정하고 앉아 주십시오." 그는 외쳤다.
히틀러는 갑자기 지친 듯 의자에 주저앉아 멍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요들과 빈터는 구데리안을 창가로 끌고 갔다. 하지만 그를 진정시키려는 모든 노력은 실패했다. 수개월간 겪어야 했던 폭언, 분노, 고통은 입을 다물 수 없는 법이었다. 구데리안은 몇 번이고 계속해서 '그'가 말한 모든 것이 전부 완전한 엉터리라고 고함쳤다.
구데리안의 부관인 프라이타크 로링호펜은 히틀러가 참모총장을 체포할까봐 두려워하며 대기실로 뛰어갔다. 그는 구데리안의 사령부에 있는 크렙스 장군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리고, 이제 구데리안에게 수화기를 넘길 것이며, 뭐라도 좋으니 구데리안이 진정할 때까지 급해 보이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다. 크렙스는 납득했다. 프라이타크 로링호펜은 다시 회의실로 뛰어갔다.
여전히 극도로 분노한 구데리안은 그의 부관에게 소리쳤다. "관심 없네!" 하지만 프라이타크 로링호펜은 결국 전선에서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크렙스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그를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전화 통화는 거의 20분 동안 계속되었다. 회의실로 돌아온 구데리안은 적어도 겉보기에는 침착한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자신이 한 말을 한 마디도 철회할 생각이 없음이 드러났다. 그는 조용히 결말을 기다렸다.
히틀러는 카이텔과 구데리안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방에서 나가라고 했다. 문이 닫히자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구데리안, 건강 때문에 당장 휴가를 가는 것이 좋겠소. 심장이 안 좋아 보이는데. 6주면 회복할 수 있을 거요."
"휴가를 떠나겠습니다." 구데리안은 말했다.
"휴가를 어디서 보낼 거요?" 히틀러가 물었다. 그의 말은 의심스럽게 들렸다. 구데리안은 아직 계획이 없다고 대답했다. 카이텔은 튀링겐에 있는 리벤슈타인을 제안했고, 구데리안은 리벤슈타인이 미군에게 점령당했다고 대답했다. 카이텔은 하르츠 산맥의 발켄리트를 제안했지만, 구데리안은 내일이면 미군이 그곳에 도착할 것이라고, 그러나 지낼 곳을 찾아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답했다.
구데리안은 국가수상부를 떠나 원래 있던 사령부로 돌아갔고, 도착하자마자 크렙스 장군이 자신의 후임자로 지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이틀 동안 크렙스 장군에게 업무를 인계하고 떠났다.
6) 존 톨랜드, <마지막 100일> (1966)
원제: <The Last 100 Days: The Tumultuous and Controversial Story of the Final Days of World War II in Europe>.다양한 생존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활용했다고만 나오지, 장마다 정확한 출처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레퍼런스를 활용했는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해당 부분은 내용상 구데리안 회고록을 많이 참고한 모양.
동부전선의 상황이 악화되며 히틀러와 전선 사령관 사이의 개인적 관계도 악화되었다. 3월 28일 아침 구데리안과 프라이타크 폰 로링호펜 소령이 초센에서 베를린으로 차를 몰고 올라갈 때, 로링호펜은 구데리안이 분명히 한계점에 도달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 회의가 쉽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는 독일 최고의 야전 사령관 중 하나가 회의실에서 총통과 쓸데없는 논쟁을 벌이는 데에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전부 말해주겠어!" 구데리안은 대뜸 말했다. 특히 그를 속상하게 한 것은 20만 명의 독일군이 쿠를란트의 러시아 전선 수백 마일 뒤편에 무의미하게 포위당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탄 차량은 이제 잔해로 뒤덮인 베를린의 거리를 통해, 연기가 자욱한 건물을 지나, 음식 조각이라도 찾아 헤매는 불안한 시민들을 지나 느리게 기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반파된 국가수상부 근처에 주차한 후 여러 개의 복도를 따라 걸었다. 마침내 경비병의 안내를 받아 계단을 내려가 친위대 둘이 지키는 강철 문으로 향했다. 이곳이 히틀러의 새 집, 국가수상부 정원 지하의 거대한 벙커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
두 장교는 더 많은 경비병에게 몸수색을 받고 이미 주요 인사들로 가득한 회의실에 들어섰다. 벙커의 모든 방에서 날카롭고 단조롭게 울어대는 환기 시설이 있었음에도 공기는 답답했다.
잠시 후 히틀러가 연결된 숙소에서 회의실로 걸어들어왔고, 오후 회의는 퀴스트린 구원 작전의 실패에 관한 부세 장군의 보고로 시작되었다. 부세가 세 차례의 반격이 실패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자, 히틀러는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내가 사령관이야! 명령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다고!"
만슈타인과 비슷한 회의에 여러 차례 참석했었던 부세는 이런 맥락 없는 방해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하지만 구데리안은 자제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봐요, 좀 끼어들겠습니다." 그는 말했다. "어제 제가 댁에게 상세하게, 구두와 서면으로 모두, 부세 장군에게는 퀴스트린 공격 실패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말 한 마디마다 그의 안에서 분노가 차오르는 듯해 보였다. 목소리가 커지고 태도는 격렬해졌다. "제9군은 할당된 탄약을 모두 사용했습니다. 병사들은 의무를 다했습니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사상자 수가 이를 증명합니다. 그러니까 부세 장군에 대한 어떠한 비난도 하지 마십시오!"
이 직설적인 공격에 충격을 받은 히틀러는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구데리안은 겁먹지 않았다. 그는 히틀러와 몇 주간 갈등했던 문제를 대담하게 꺼냈다. "총통 각하는 쿠를란트 군을 철수시킬 생각이십니까?" 그는 비난하듯 물었다.
"절대 안 돼!" 히틀러는 오른팔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히틀러의 얼굴은 시체처럼 희게 변했고 구데리안의 얼굴은 붉어졌다. 구데리안은 히틀러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갔다. 요들 장군의 부관인 아우구스트 빈터 장군이 구데리안을 뒤에서 붙잡는 동안 부르크도르프가 히틀러를 의자에 다시 앉히려고 애썼다.
빈터와 요들 두 사람은 이제 구데리안을 히틀러에게서 떼어놓으며 그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려고 했지만, 그는 자제를 잃은 큰 목소리로 총통에게 계속 악을 써댔다. 프라이타크 폰 로링호펜은 구데리안이 체포될까봐 두려워서 대기실로 달려가 구데리안의 참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황급히 크렙스 장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리고 전화를 끊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후 다시 회의실로 돌아가 구데리안에게 급한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그 후 크렙스는 20분 동안 구데리안과 통화했고, 구데리안은 회의실로 돌아올 때쯤엔 자제력을 되찾았다.
히틀러는 얼굴을 찡그린 채 다시 의자에 앉아 있었고, 손을 떨고 있었지만 적어도 평정심은 되찾은 상태였다. "원수와 상급대장을 제외하고 모두 방에서 나가 주시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카이텔, 구데리안, 히틀러만 남자, 총통은 이렇게 말했다. "구데리안 장군, 건강 상태를 고려해서 즉시 6주간의 병가를 내시오."
구데리안은 팔을 뻗어 뻣뻣하게 경례했다. "가보겠습니다." 그는 자리를 뜰 준비를 하며 말했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는 여기 머물러 주시오." 히틀러는 차분하게 말했다.
구데리안은 자리에 앉았고, 회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계속되었다. 구데리안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지던 몇 시간이 지난 후 회의가 끝났다. 하지만 그는 아직 자유롭지 못했다. 총통이 그가 남기를 원했던 것이다. "몸조심하시오." 그가 걱정하듯 말했다. "6주 후면 상황이 매우 위태로워질 거요. 그땐 장군이 필요할 거요. 어디로 갈 생각이오?"
카이텔은 독일 서부의 바트 리벤슈타인에 있는 온천을 추천했지만, 구데리안은 미군이 이미 그곳에 도착했다고 빈정거렸다. "그럼 하르츠 산맥에 있는 바트 작사는?" 카이텔은 상냥하게 제안했다.
구데리안은 48시간 내로 점령당하지 않을 만한 곳을 선택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팔을 들어 경례하고 카이텔과 함께 국가수상부에서 나와 차로 걸어갔다. 카이텔은 구데리안이 히틀러의 휴가 제안에 반대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둘은 헤어졌다.
다시 구데리안 회고록을 살펴보자.
1945년 3월 28일 14시에 국가수상부의 좁은 벙커에 익숙한 사람들이 모였고, 부세 장군도 참석했다. 히틀러가 나타났다. 부세는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몇 마디 말하기가 무섭게, 히틀러는 부세의 말을 끊고는 내가 어제 충분히 반박했다고 생각한 이유를 들어 부세를 비난했다. 두세 마디를 듣자 화가 치밀었다. 나는 히틀러의 말을 끊고 그에게 어제 구두로나 서면으로나 보고했던 내용을 상기시켰다. "잠시 끼어들겠습니다. 제가 어제 상세하게, 구두로나 서면으로나, 부세 장군에게는 퀴스트린 공격 실패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제9군은 공격을 위해 할당된 탄약을 모두 사용했습니다. 병사들은 의무를 다했습니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사상자 수가 이를 증명합니다. 그러니까 부세 장군에 대한 어떠한 비난도 하지 마십시오." 히틀러는 답했다. "원수와 상급대장만 남고 모두 회의실에서 나가시오!" 수많은 청중이 대기실로 나가자 히틀러는 짤막하게 말했다. "구데리안 상급대장, 장군의 건강 상태를 보건대 6주간 병가를 내야겠소!" 나는 오른손을 들어 경례했다. "물러갑니다." 그런 다음 문으로 걸어갔다. 내가 문 손잡이를 잡았을 때 히틀러가 나를 불러세웠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 주시오." 나는 말없이 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참석자들은 다시 회의실로 불려 들어왔고, 회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계속되었다. 다만 히틀러는 부세에게 더 이상의 비난을 삼갔다. 나는 내 의견을 묻는 짧은 질문을 두세 번 받았고, 영원 같은 시간 끝에 회의가 끝났다. 참석자들은 벙커를 나갔다.
카이텔, 요들, 부르크도르프와 나는 남겨졌다. "건강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시오. 6주 후면 상황이 매우 위태로워질 거요. 그때 장군이 급히 필요할 거요. 어디로 갈 생각이오?" 카이텔은 내게 바트 리벤슈타인으로 가라고 조언했다. 무척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 나는 그곳에 미군이 이미 도착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배려심 있게 말했다. "그럼 하르츠 산맥 근처의 바트 작사는?" 나는 그의 친절함에 감사를 표하고는 48시간 내에 적에게 점령당하지 않을 만한 곳으로 적당한 장소를 직접 고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오른손을 들어 경례한 후 카이텔의 배웅을 받아 총통 벙커에서 영영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는 도중, 카이텔은 히틀러에게 말대답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겠나? 한 마디만 대꾸했어도 도를 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구데리안은 자기가 빡쳐서 히틀러에게 소리지르며 개기고 날뛴 건 쏙 빼놓고 책을 썼다는 말이 된다.
히틀러가 갑자기 돌아서 해임해버린 게 아니라 잘릴 만한 짓을 저지른 것이다!
역시 미친 인간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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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이버포뮬러 생각나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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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텔 요들 크랩스 운트 부르크도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