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아이러브사커
 
 
 
카페 게시글
…… 국내토크 서울☆ 83년 출범부터 96년 이전 프로축구 지역 연고 개념
FC★서울★UTD 추천 0 조회 870 09.04.05 20:18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09.04.05 20:22

    그 얘기 적어놨는데요. 차붐을 빼고 그 프로그램 얘기를 못하죠.

  • 09.04.05 22:14

    정말 궁금한 게 96년도에 연고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면 왜 안양, 부천, 성남으로의 이전 시에는 패륜이라는 소리가 안 나왔을까요?? 그 당시 연고이전에 대한 비판이 그 시절에 있지 않았다는 건 그 때의 연고지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 09.04.05 22:32

    물론 지금 보다는 덜했겠죠.ㅎㅎ 근데 가장 큰 이유는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 이전이란게 99년이나 00년에 나왔으면 아마 난리 났을겁니다.

  • 작성자 09.04.05 22:58

    연고 이전을 시킨 주체가 연맹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작금의 연고 이전 사태의 가장 큰 책임자는 연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시 럭키금성팬들이 96년에 안양에 가서 항의했고 그리고 97년인가 안양경기장 보수 때문에 동대문 운동장에서 경기를 했을때 왔었을때 안양 서포터와 서울축구팬들 사이에 마찰도 있었습니다.

  • 09.04.05 22:59

    연고지 개념이 하루아침에 생기는것도 아닌데 그러한 것들이 생기고 형성되기 전에 연맹에 의해서 쫓겨난거죠. 그당시 2000년도 때처럼 시민운동이 활발하고 자유로웠던 시기도 아니었고 사람들이 모이고 규합하는데 한계가 따랐죠. 그시절에 연고지 의식에 대해서 어땟는지 저역시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패륜소리가 안나왔다고 해서 그당시 연고의식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단지 목소리를 낼 힘이 없었던 거죠.

  • 09.04.05 23:02

    참고로 조직적인 서포터즈 문화가 막 생기기 시작한게 95년즈음이었고 98년쯤에가서야 제대로된 조직적 응원이 보편화되었고 서포터즈들이 골대뒤에 앉는것이 정례화 된건 그보다 더 뒤의 일입니다. 팬들의 조직이 제대로 없었단건 당시 팬들은 이런 상황에대해 어쩔수없이 수긍할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 작성자 09.04.05 23:13

    그리고 정확히 말씀 드리면 당시 프로축구가 인기가 많이 떨어지니까 저도 당시 어디에 프로축구 보러 간다고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좀 특이한 사람 취급 받는거 같기도 하고 무슨말인지 대충 이해가 가실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포터스나 아니면 인터넷으로 사람들이 합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것이라도 있었으면 좀 나았을텐데 이런것마저 없으니 연고 개념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웠던 거죠.

  • 09.04.05 23:06

    추가로 프로축구가 정말 대단하다고 할수있는것은 지금과같은 팬문화가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조직되어서 여기까지 왔다는점입니다. 물론 90년대 당시에 후발주자였던 수원이나 전남의경우 다른양상이었을수 있지만 구단이 직접 연회비를 받고 조직적인 응원을 주도해나가는 농구나 야구의 서포터즈란 단어의 개념을 보면 완전히 축구와는 다른세상임을 느낄수있죠. 사실 지금도 프로축구보러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저를보고 희귀종 취급하는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단순히 '축구장에 간다' 하나만으로 '광팬' 이 되버리는게 한국이니 말입니다.

  • 09.04.06 19:06

    문제는 이런 얘기는 서울팬만 관심있어하는듯..;;;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