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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대한 새빨간 거짓말
자유일보
오광조
고대부터 피는 특별한 액체였다. 따뜻하고 새빨간 피는 힘과 생명을 상징한다. 몸과 관련된 표현 중 가장 다양하고 자주 사용한다.
‘피 같은 돈’은 힘들게 번 돈을 의미한다. ‘피비린내’는 참혹한 현장을 대변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은 냉혹한 사람을 뜻한다. 핏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직계나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혈통과 피를 동일시하는 표현은 전 세계 공통이다.
피는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고 노폐물을 운반한다. 고형성분이 45%고 나머지는 액체성분이다. 액체성분인 혈장의 90%는 물이다. 고형성분은 대부분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다. 백혈구는 생체방어에, 혈소판은 혈액응고에 관여한다.
혈액량은 몸무게의 8% 정도다. 성인 남성은 5리터 남짓이다. 1리터만 유실되면 정신을 잃고 1/3 이상을 잃으면 과다 출혈로 생명이 위독해진다.
피가 빨간 이유는 적혈구의 헤모글로빈 때문이다. 헤모글로빈의 철이 산소와 결합하면 산화철이 되어 빨간색이 된다. 산소가 풍부한 동맥피는 선홍색이지만 산소가 적은 정맥피는 검붉은 이유다.피는 몸 밖으로 나오면 검게 변한다. 이를 놓고 질병의 원인인 죽은 피를 제거했다고 호들갑을 떠는데, 사기다. 죽은 피를 뽑은 게 아니라 뽑아서 죽인 거다.
피를 뽑는 사혈 요법은 효과는 없고 부작용만 많아 현대의학에서는 사라졌다. 조지 워싱턴은 목의 염증으로 숨쉬기 힘들자 의료진이 사혈을 했다. 하루에 1350㎖의 피를 뽑았고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현대의학에서 인정된 사혈은 진성 적혈구증가증에서 피가 너무 진해질 때 정맥 절개술로 하는 사혈뿐이다. 사혈은 아니지만 의료용 거머리를 이용해 피부 이식이나 접합술 후 혈액순환을 촉진한다.
피를 ‘알칼리성으로 만들어 준다’ ‘맑게 해준다’는 약품과 식품 광고는 천지에 널렸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피가 알칼리성이 되면 사람이 죽는다. 피가 맑아지면 빈혈이다.
의학적으로 피가 탁해지는 고지혈증은 식이요법과 약물로 치료한다. 혈관이 막히는 허혈성 뇌졸중 위험이 있는 환자는 피를 묽게 해서 혈전 발생을 예방할 목적으로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한다.
‘피’하면 드라큘라를 빼놓을 수 없다. 드라큘라는 피를 먹고 젊음을 유지하고 영생한다. 하지만 피에는 단백질과 철분 외 영양분은 별로 없다. 편식한 드라큘라는 영양불균형으로 건강에 이상이 초래될 것이다. 하루 세끼 피만 먹어야 하는 영생이라면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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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조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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