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첫발을 내디딘 80년대의 대학가는 아주 살벌한 곳이었다. 처음엔 지긋지긋했던 대학 입시의 중압감에서 해방이 되어서, 이제는
'꿈과 낭만'으로 가득한 화려한 신세계가 펼쳐질 거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헛된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대학
캠퍼스 안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가 있었다.
87년
6.10 민주화 항쟁이 있기 이전의 대학 캠퍼스는 교수조차 도청 공포 때문에 교내 전화 대신에 공중 전화를 이용해야만 했고, 대학
교내에서조차 사복 경찰이 횡행하던 참으로 '잔인한 시절'이었다. "난 구경만 했다니까요!"라면서 시위 현장 근처에서 구경하다가
잡혔을 뿐이라고 자신의 억울함을 항변했지만 결국 개처럼 끌려가야만 하던 내 또래 학생의 절규를 눈앞에서 목격할 수 있었던
'참혹한 시절'이었다.
물론 아무리 잔인하고 참혹한 시절이었다고 해도 나처럼 사회 현실에 대해 모른 척 '눈만 질끈 감으면' 충분히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시절이기도 했었다. 그 속에서도 얼마든지 '꿈과 낭만'을 누릴 수 있었던 아주 '멋진 시절'이기도 했다. 사회 현실에 대해 '눈만 질끈 감으면' 말이다...
그런 암울했던 시절에 사회 현실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했던 나와는 달리 그런 그 시대의 아픔 속으로 온몸을 바쳐 희생을 했던 내 친구 전라도 '깽깽이' 녀석의 이야기다....
이
친구는 전라도 목포 출신이었다.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나서, 중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보낸 친구였다. 그런 이 친구에게서
가장 도드라진 것은 남의 험담을 절대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간단한 식사 자리든 술자리든 어디든 상관 없이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의 험담은
일절 입에 올리지 않는 게 이 친구의 주요한 '특징'이었다. 워낙에 이런 점이 두드러지다 보니 이 친구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다른 사람의 흉이나 험담을 입에 올리기가 어려웠을 정도였다. 그런 녀석에게 주위 사람들은 "원래 사람 흉은 뒤에서 봐야 한다.
사람 보는 앞에서 그 사람 잘잘못을 거론하면 누군들 그걸 순수히 받아들이겠냐. 이건 싸우자는 말밖에 더 되겠냔 말이다!"라는 식으로
항변을 해 보았지만 그 녀석은 그런 반론(?)조차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사자가 없는 데서 그 사람의 험담을 하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확고한 태도를 보였기에, 결국 나를 포함한 주위 친구들은 두손 두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 녀석이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이 아니었다는, 실제 생활에서도 자신이 말하는 것처럼 '도덕군자'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순순히 그 녀석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결코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은 걸 눈앞에서 오랫동안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그 녀석 말을 정면에서 거스르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3차까지 갔던 술자리로 기억을 하는데, 그 자리에서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그 친구에게 '핀잔'을
주었다. 너무 그렇게 도덕군자처럼 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지나칠 정도로 그렇게 나오니까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겠냐면서 마치 하소연이라도
하듯이 그 녀석에게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을 건넸다. 다들 그 말에 얼마나 크게 공감을 했는지, 술이 얼근히 취한 상태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아주 큰 동작으로 머리를 끄덕이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런 반응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 녀석은 잠시 뒤에 갑자기 얼굴을 치켜든 채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왜 그러는 줄 아냐? 난들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아냐?"
예상치도 못한 그 녀석의 이런 반문에 다들 그 답이 뭔지 궁금해서, 말없이 그 녀석을 뚫어져라 쳐다만 보았다. 그랬더니 곧바로 그 녀석은 이렇게 말을 했다.
"내가 뒤에서 남 험담이나 하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는 줄 아냐? '전라도 새끼'라서 저런다고... '전라도 깽깽이'들은 남들
앞에서는 웃는 얼굴을 하면서도 뒤로는 저렇게 남 뒤통수를 치는 종자라고.... 어릴 때부터 듣던 그 소리가 내 가슴에 한으로
맺혀서 그런다. 그래서 그런 소리 듣기 싫어서 그런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이 말에 그 술자리가 일순 얼어붙듯이 착 가라앉았던 걸 말이다. 다들 잠시 할 말을 잊은 채 그 녀석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런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그 녀석은 "
농담이었다"면서 급히 분위기를 바꾸려고 괜스레 웃기도 하고, 엉뚱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등 참으로 어색한 행동을 연출했었다.
그런 행동 연출로도 그 분위기를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그 녀석이 한 말은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우리들 가슴을 해머로 후려치듯이
충격적이었다.
어쩌면 '전라도 깽깽이'라는 서글픈 넋두리를 더욱 부각시키려고 그랬는지 몰라도 당시 그 자리를 함께했던 사람들은 - 나를
포함해서 - 전부 경상도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경주 출신으로 부산에서 자란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대구, 김해, 진주 출신의
'오리지날' 경상도 출신이었다. 다른 친구들로부터 '5인방'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함께 뭉쳐 다녔던 게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일행들이었다.
그 친구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쉽게 입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얼어붙다시피 한 그 분위기를 어떡하든 해소하려고 발버둥치는 그 녀석의 모습을 보는
건 참으로 가슴이 아프기만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아둔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순간 그 녀석이 울고 있었다는 걸, 가슴속에
묻어둔
처절한 아픔을 자기도 모르게 털어놓았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발악하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가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상하게
여길 행동을 하면서도, 어떡하든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거의 처절할 정도로 몸부림치던 그 녀석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내 기억 속에 슬픔처럼 자리잡고 있다.
이 친구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지역 감정'이라는 게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에서
불거진 지역 간의 갈등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려고 말이다!
만약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퍼부어 주고 싶다. 좆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건 절대로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서 벌어지는 지역 대립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건 두 지역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알력이 아니라, 순전히 전라도 사람들을 놓고서 벌인 지역 차별주의에 지나지 않다고 말이다.
근래 인터넷에서'만' 펼쳐지는 대구, 경북의 '묻지 마' 식 투
표 행태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 부각이 되고 있다 보니, 경상도 출신이라는 게 '욕'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상의 공간인 사이버 세계에서나 벌어지는 '극히 예외적인' 일일뿐이라고 말이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이 나라에서는
'경상도 출신'이라는 게 그리 흠이 되지
않았다. 내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던 시절에는 '경상도'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 대우를 받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건 강원도, 충청도, 제주도, 경기도 출신 역시나 별로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 역시나 별다른 흠 잡힘 없이,
서울을 비롯한 다른 어떤 지역에서도 별다른 차별 없이 무난하게 살아갈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라도'라고 하면 사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전라도' 출신이라면 절대로 차별 대우를 받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말 그대로 불온 시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전라도 지역이라면 "뭔가 한이 맺히고 천민적이고 저항의 피가 흐르고 있어 높은 공직에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차별대우의
상징, 그 앞에선 학력도 경력도 능력도 인품도 다 소용없는, 연변이나 북한 동포처럼 미개한 내부 식민지 출신이라는 뜻"으로 통할
뿐이다.
그렇기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어려운 사람들조차 전라도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전라도
새끼들이란..." 소리를 태연하게 내뱉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내뱉는 그 자신은 절대로 저런 '더러운 지역' 출신이
아니라는 아주 황당한 자부심(!)을 가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불운한 처지는 망각한 채 말이다.
그게 바로 이 나라에서 보여주는 '전라도'를 바라보는 태도인데도,
그걸 경상도와 전라도의 대립으로만 몰고가는 게 이 나라의 현실이다. 전라도라는 특정 지역을 놓고 벌이는 '지역 차별주의', 이게
바로 지금 이 나라에서 문제가 된다고 하는 바로 그 '지역감정'의 실체다. '전라도'를 고립시킨 채 벌이는 지역 차별주의라는
본질은 외면한 채, 그러한 진실(!)은 외면한 채 '지역 감정'이라는 엉뚱한 말로 그걸 둔갑시키고서는, 그게 단지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서 벌어지는 '지역 간
갈등'에 불과하다고 인식시키려고 드는 게 바로 이 나라의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란 말이다.
술이 아주 심하게 취해서 더 이상의 말을 하지 못하겠다. 다만 저 친구가 그 뒤로는 더 이상 저런 아픔을 겪고 살아가지 않았기를
바라고 싶다는 말만은 꼭 하고 싶다.
대학 저학년 때는 무척 친하게 지냈지만 그 뒤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때문에
거리가 멀어져서,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나는 사회 현실에 대해 '눈을 질끈 감은' 상태로 대학을
마쳤기 때문에 곧바로 무난하게 사회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 녀석은 '시대의 어둠'을 결코 외면할 수 없어서 불의한 사회
현실 앞에 온몸으로 저항을 하다가, 그 뒤로 지금까지 아주 어려운 삶을 이어나간 걸로 알고 있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저 친구는 자신이 치른 희생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마땅할 것인데도 그런 건 전혀 없이, 오히려 사회
현실을 외면했던 내가 더 풍요로운 혜택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게 참으로 분노가 치밀면서도 몹시 죄스럽기만 하다. 그렇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이런 항변도 늘어놓고 싶긴 하다. 지난 시절 함께하지 못했다는 '채무 의식'조차 없이 살아가는 사람에 비해서는
그래도 이따위 소리나마 지껄일 줄 아는 내가 낫지 않냐는, 그런 아주 가당찮은 항변을 넋두리처럼 남겨 놓고 싶기도 하다...........
술에 몹시 취해서 횡설수설 하다시피 했지만 내겐 결코 잊을 수 없는 이야기다. 오늘 전화 통화를 한 대학 시절 친구 녀석이 난데없이 저 친구 이야기를 하기에 다시 한 번 떠올려 봤던, 결코 잊을 수가 없었던 "전라도 깽깽이"와 관련한 이야기였다.........
첫댓글 내가 알기로는 군 문화에서 시작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군 문화가 정치와 어울려 두 지역을 갈라놓은 덧이지요! 물론 역사적으로 강원도와 전라도는 유배지 라는것을 강조하여 반란기질을 당토 않는 것에다 이용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런것이 남북의 지역 싸움이고 물지난 이데올로기 속의 생각 들이지요! 이런것들은 박정희의 농간일 뿐이고 이런것이 고착화 되다시피 하는것은 국정원과 그전신들의 행테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군벌! 그놈들이 작은 나라를 이지경으로 만든 것이지요! 역사적으로도 무신의난이 그렇고, 뽀켠이가 고구려의 기상에 매달리는 것도 어쩌면 편가르기의 개듁스런 기질 때문이기도 하지요!
저가 보는 관점은 큰 역사에서 우리를 보지 못하고 개 성계나 개 정희가 만들어 놓은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 우리 1 만 년 역사를 보면..... 어아가를 부르면서 환인하느님 12 제후국 다물을 가슴에 품고 고 담덕왕을 뒤 따를 때 우리에게 전라도니 경상도니 하는 망국의 지역주의가 없고 홍익인간으로 세상을 교화한다는 큰 정의가 사회에 충만해 있읍니다..^^
진심어린 글 잘보았습니다. 지역감정이 어떤 이들의 농간이라는 것을 아는 우리들이라도 조금씩 해소해 나갔으면 합니다. 어쩌면 근현대에는 전라도쪽 분들이 민중투쟁사의 한가운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분들이지요. 고래로 의롭고 정의로운 분들이 핍박을 받아왔지요.
처음에는 지역감정에대한 관심 없어죠 다 똑같이 대합니다 그러나 한번 경험하면 경각심을 가지게 됩니다 라도출신은 좀 똑독하다고 할까 손익계산을 넘 철절허개 잘한다 입니다 바보스런 행동을 일체 안 합니다 절대로 손해를 안본다는 것이조 그게 화근이 되는 것은 모르니 문제조 다른지역 사람들은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하고 손해보고 바보짓 합니다 그러나 문제의 라지역은 절대로 손해를 안보고 양보를 모르니 판이께지조 너무나 큰 아품을 경험하면 자연스럽게 경각심이 생깁니다 옛말이 하나도 안 틀리는구나 하고 그러니 자연히 차별 받게되는 기본 개념도 입니다 ,,,,,,
그러한 분석말고 미래지향적인 글을 보고싶소...
동학, 여순사건, 5.18...
뼛속까지 민족적인 그들을 존경해마지않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대구 출신 수운 최재우 선생께서 도피생활 끝에 호남으로 넘어 오는데... 호남인들이 호응하여 봉기한 것이 동학혁명의 시발입니다... 당시에도 서러운 사람은 서러운 사람을 껴안는 정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려운 사람일지라도 지역에 따라 행동하는 걸 보면... 100년 훨씬 이전으로 시대가 후퇴하였음을 확인합니다. 슬픈 일입니다.
징비록에 의하면 영남인들이 대단히 권력지향적인 사람집단으로 묘사되고 있어요...
그런 전통아닌 전통이 지금의 경상도 마피아집단이 형성되어온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