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관광명소탐방객즉석시낭송대회(2024.7.30) - 강원도 강릉 세인트존스호텔 - 제2회 해변시낭송학교 - 지정시 4편
바다에 오는 이유 이생진
누군가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다
모두 버리러 왔다
몇 점의 가구와
한쪽으로 기울어진 인장과
내 나이와 이름을 버리고
나도
물처럼
떠 있고 싶어서 왔다
바다는 부자
하늘도 가지고 배도 가지고 갈매기도 가지고
그래도 무엇이 부족한지
날마다 칭얼댄다
동해바다 신경림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하게
동산만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하늘바다 이용헌
‘싱싱한 오징어가 한 마리에 천 원, 열 마리에 만 원’ 하는 소리를 누워 듣다가
죽은 오징어가 싱싱하면 얼마나 싱싱할까를 생각하다가
열 마리를 묶어 팔면서 한 푼도 안 깎아주는 장사꾼의 인색함을 가늠하다가
문득 한 마리 두 마리 하는 ‘마리’라는 말이
한때는 ‘머리’와 같은 뜻이었다는 책속의 글을 떠올리다가
머리가 머리이지 못하고 마리가 되어버린
오징어의 비애를 헤아리다가
저 망망한 바다에서 머리를 곧추 내밀고 질주하는
수많은 물고기들을 그려보다가
그러니까 머리와 마리,
선 하나를 경계로 둔 넘 하나의 향배에서
머리는 머리를 잘 다스려 끝까지 머리로 살아남고
마리는 저도 모르는 사이 대가리란 놈을 앞에 매단 채
제 몸뚱이나 세는 마리로 밀려난 셈인데
이를테면 물에서 살다 뭍에서 팔리는 저 오징어처럼
나도 언젠가는 머리가 꼬리가 되고 꼬리가 마리가 되어
한 세상에서 또 한 세상으로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인데
하여 어느 먼 하늘바다, 눈 먼 어부의 그물에 걸려
누군가의 식탁 위에 오를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 싱싱하지도 않은 이 살덩어리
천 원어치도 안 될 이 뼈다귀를
누가 맡아줄까
누가, 막막한 우주의 길모퉁이에서 나를 사 잡수실 것인가
바다를 찾는 이유 권경우
찬란한 은빛으로
신비의 속살을 투영해도
뿌리를 드러내지 않는 근원은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겉으로는 잔잔한
호수 같은 고요일지라도
실상은 거센 물살과 사투하며
자아를 실현하는 인내입니다
우레 비 소리가
폐부를 겁박하는 내리침에도
눈 감고 오체투지의 낮춤은
소리 없는 침묵의 겸손입니다
때로는 황천으로
수천만 번 자맥질의 노역에도
한량없이 용서하는 너그러움은
내일을 희망하는 기다림입니다
잠든 새벽을 깨우며
일용하는 넉넉함을 베풀어도
탐욕을 만류하는 준엄함은
남김의 미학을 아는 지혜입니다
파도여, 바다여,
파도는 얼굴, 바다는 마음입니다
마음을 보며 삶의 힘을 얻습니다
오늘도 바다를 찾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