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이라고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나부터도 시간내기가 쉽지 않다.
선생의 덕목 중에 제자의 삶을 지켜본다는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초년 교사시절 전남연수원장이던 정동인 선생의 말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난 이 시대의 선생으로 제 역할을 못하는지라 아이들의 삶을 지켜본다는
의무감에서 스스로 벗어난다.
가난한 부모를 만나 학교를 못 가고 일터로 가는 아이들을 지켜보지 못했고
학교로 가더라도 무슨 공부를 어찌하는지, 무슨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휴학을 하고 학비를 벌어야 하고, 학교를 졸업해도 전망이 보이지 않고,
학기 중에 취업준비를 하고, 제대 후 학교로 돌아가지 않은 아이들도 지켜보지 못한다.
1년간 의무적으로 내 앞에 앉아 허접한 내 말을 듣거나 듣지 않고 떠나는 아이들에게
나는 무슨 선생이었다는 말인가?
그래도 졸업한 아이들이 날 보고 싶다고 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건
내가 가짜 선생노릇이라도 한 탓일게다.
그래서 전날은 이제 대학 2학년이 된 화순만연 6학년 7반 애들 몇을 화순에서 만났다.
페북 메신저로 연식이와 연락하다 삐걱거려 포기했는데, 예지가 전화를 했다.
풍양에서 운전하고 6시 무렵 차를 화순우체국 뒷담에 세운다.
정류장으로 가니 연식이와 예지가 나와 있다.
한성여대에서 한국무용을 하는 예지는 근육주사를 맞았다고 작은 발을 절고 있다.
사회인 야구를 한다는 연식이는 예전처럼 여전하게 상체가 튼튼하다.
누구가 오기로 했냐고 물으니 모두 바쁘단다.
승현이가 가까운 마트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 찾아간다.
제복을 입고 훌쩍 큰 키에 미남이 된 승현이는
지난 번 만남때 보다 공손해졌다.
화순실고를 졸업했는지 모르겠는데 지난번 만남 때는 그와 걸으면
거리의 꺼먹 고등아이들이 승현이 형 하며 인사를 꾸벅꾸벅했었다.
어릿양 피듯 술을 쑥쑥 마시던 그 모습이 더 나았다.
정식 직원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오면서 근검절약하라고 실없는 말을 한다.
셋이서 나와 2층 벌집 삼겹살 집으로 간다.
예지의 다리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탄다.
연식이가 고기를 굽고 술을 시키지 않고 두터운 고기를 먹는다.
새벽까지 술을 마신 내 몸은 안주를 보자 술생각이 나지만
광주로 운전할 것을 염려해 참는다.
한참 후 육지수가 온다.
고려대 공대에 다니는 그는 건설회사에서 일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서 산다. 그나마 편하게 보인다.
광주교대에 진학 해 내 후배가 된 시원이는 학교를 휴학하고
화장품 회사에서 알바하며 살고 싶다했단다.
통화 해 지가 다닌 윤리교육과의 선생들을 물어보는데 괜한 걸 물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연이는 일본에 갔다하고 핸드폰 가게에서 일하는 은빈이는 온다했는데 늦다고 한다.
몇 아이들의 안부를 물으니 그 애도 우리반이었냐고 되묻는다.
광주대 유아교육과에 다니는 차에스델이 온다.
다섯이 모이는 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예지가 무용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한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른다.
예전 6학년 때의 친구들 이야기를 하며 예지는 무슨 일을 해도 잘 해 낼 것이라고
뜬구름 잡는 이야길 한다.
8시 반쯤 나와 인사를 받고 뒤돌아보지 않고 구비를 돌아 내 차로 간다.
저 아이들에게 힘을 주소서
8월 29일 토요일 아침 아홉시에 증심사 주차장에서 동면 아이들을 만나기로 했다.
느리작거리다가 버스를 환승해 주차장에 내리니 9시 5분이다.
종수에게서 전화가 와 도착했다고 한다.
무등산 한자가 씌여진 돌 앞에서 기다리니 그들이 아래에서 올라온다.
종수 경규 민구 현근이 넷이서 차 두 대를 갖고 왔다고 한다.
모두 제대를 했단다.
경규눈 화순 녹십자제약인가에 취직을 했단다.
청궁 아래 마산에 사는 현근이는 동강대에 다니기 멀어 차를 샀댄다.
중머리재 식당에 들러 막걸리 두병과 머릿고기 대자를 산다.
모두가 무등산에 한번도 와 보지 않았다고 한다.
새인봉 쪽으로 오른다.
목을 그르렁거리며 가뿐 숨을 헐떡이며 앞장 서 오르는데
종수가 앞지르지 않고 가까이 따라온다.
첫 고개에서 숨만 고르고 능선을 바로 올라 목재 계단 위에서 쉰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장 많이 산에 갔고
군 전역 후엔 산에 가 보지 못했다고 한다.
운소봉 지나 새인봉 위험선을 넘어 자리를 잡는다.
막걸리를 조금씩 따뤄주며 쉰다.
차를 가져 온 경규와 현근이는 적게 준다.
한참을 놀다 다시 길을 잡아 중머리재로 오른다.
아이들도 말이 없어진다.
나는 저 아이들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서인봉을 지나 샘에서 물을 마신다.
다음번에는 아니 너희들끼리 장불재 지나 서석대에 오르라고 한다.
이서에서 규봉으로 올라 무등을 감고 다니라고 한다.
저 도시에서 데이트하지 말고 이 무등의 골짜기에서 연애를 하라고 한다.
물을 마시고 술없는 간식을 먹고 있는데, 옆자리의 젊은 부부가
옥수수와 계란을 주신다.
1시에 신사형님의 소개로 알게 된 '나비야 청산가자'에 예약을 해 두었다.
12시 무렵 중머리재를 지나 당산나무 쪽으로 내려온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니 등산화를 씻고도 1시 이전에
식당에 도착한다.
차를 가지러 간 아이들을 두고 민구와 자리를 잡고 앉는데
수정이랑 하나 주영이 들어온다.
대학 4학년이 된 아이들은 숙녀가 다 되었다.
전주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하늘이가 왔다.
등치가 큰 하늘이는 의외로 많이 먹지 않는다.
먹거리를 물어보며 큰 애 애길 하며 잘 챙겨먹으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어제 화순읍에서 한 말을 또 한다.
어른을 잘 모시라고. 한번 만나고 속 상하다 끝내지 말고 세번을 가라고
하늘이 옆에 앉은 민구가 힘내라고 하자
하늘이 힘내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힘내라는 말에 힘을 내보아야 아무런 대안이 보이지 않은
그들의 마음이 보이는 듯하여 마음이 아프다.
남자 주인이 송이버섯 담근 술을 한병 갖다 주신다.
운전하는 아이들을 빼고 모두 술을 마신다.
수정이는 안 마시다가 오빠가 오기로 했다고 몇 잔 마신다.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이야기를 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설령 그런다 한들 내가 그들에게 무얼 해 줄 수 있을까?
한 시에 시작한 식사가 3시 반이 지나서야 끝난다.
태워다 주겠다는 걸 사양하고 뜨거운 햇볕아래 정류장으로 올라간다.
'애들아, 너희들은 힘을 내어 세상을 잘 헤쳐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