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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ad 2 : 스티브 잡스에게 바보취급을 당한 건 삼성인가 아니면 우리인가
2011. 03. 30. 수요일
문화불패 miseryruns
애플은 어디까지 문화적인가
이 사진 한 장, 요즘 말로, 참 돋는다. 필자도 돋았다. Technology와 Liberal Arts의 교집합에 애플이 있다는, 일견 강의처럼 보이는 이 자기자랑이자 최고의 가격대비 성능비 프리젠테이션. 스티브 잡스는 병가 중에도 일어나 iPad2를 홍보했다. 필자 역시 ‘나올 거다’ 에 한 표 걸고 있었다. 애플의 신제품 마케팅은 이후의 광고 비용을 상당히 줄이는 효과가 있다. 무대에는 기업의 단일 행사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눈이 몰리고 있다.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는 늘 공연이었다. Engadget은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를 아예 ‘history’ 라고 묘사한다. 물론, 아직까지는, 청바지에 검은 폴라 티셔츠의 스티브 잡스가 무대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병색이 조금 나아진 것도 같지만, 어쨌거나 ‘죽으면 어쩌지’ 라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불안해하고 있을 스티브 잡스가 등장했다.
프리젠테이션에서 다른 회사들의 ‘iPad copycats’를 언급한 내용을 보자면 ‘니들은 더 멀다’ 는 의미도 되겠다. 그리고, 먼 곳으로 지적된 회사들 copycats 중에서 가장 대비하기 좋은 회사를 특별히 언급도 했다. 삼성이다. copycat 중에서도 삼성을 대놓고 언급한 것은, 삼성전자의 매출 중 연간 몇 조 정도를 올려주시는 구루이신지라, 좀 깐다고 뭐라고 대응도 못할 것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예상 매출인지 작년 매출인지는 모르겠지만, 약 8조 7천억원 수준이라고 본 기억이 난다. 또한, 갤럭시 탭이 아주 ‘까기 좋게’ 된 데다가, 시장에서 유일하게 iPad를 위협할만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아예 인용으로 sell-in과 sell-out의 차이가 크다는 말은 ‘많이 팔았다지만 사실 안 팔렸잖아’ 가 아니라, ‘니들은 sell-in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중요한 건 sell-out이지. 니들은 사기를 치고 있어.’ 라는 의미로 읽힌다. 스티브 잡스는 이전에도 갤럭시 탭에 대해 ‘7인치는 나오자 마자 죽을 것이다(dead on arrival) 라고 했었고, ‘갤럭시 탭은 결국 크기를 키울 것’ 이라는 말도 했다. 갤럭시 탭은 태생적으로 7인치밖에 될 수 없는 설계다. 안드로이드 OS 2.2 프로요의 해상도는 854X400까지가 한계다. 이런 스마트폰용 OS를 가져다 붙이다 보니 10인치는 픽셀이 너무 커지고, 결과적으로 ‘양복 주머니에 들어가는 7인치’ 가 나왔다. 이런 문제를 보고 나서 잡스의 예언이 이루어졌고, 결과적으로 맞는 말이 되었으니, 잡스가 의기양양한 것도 이해가 간다. 괜히 ‘구루’ 인 것이 아니다. 잘 질러서 잘 맞추면 되는 거다. 점집 괜히 흥하고 망하나.
한국에서야 갤럭시 탭을 사느니 iPad를 사는 것이 낫다는 게 일반적인데, 그 이유는 한국에서는 99만 7천원에 팔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미국에서는 599.00 USD에 할인이 붙는다. 잡스 입장에서야 이 구조가 ‘미국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우리를 위협함’ 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얼마나 팔렸는가’ 는 밝히지 않는다. 16%의 반품이 이루어졌다는 미국발 기사에 삼성이 아니라고 펄쩍 뛰었는데, 삼성이 발표한 것 치고 믿을 만한 게 별로 없다 보니, 이것도 믿음이 안 간다.
그러니, 잡스 입장에서는 한국 언론들이 말하는 대로 ‘잡스도 삼성을 신경 쓴다’ 는데, 신경 쓴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잡스의 시선에서는 갤럭시 탭이 미국에서 이상한 짓을 하는, 실패한 상징적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왜 신경을 안 쓰겠는가. 애플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거하는 실패한 사례인데. 가져다 써도 부담도 없는데.
왜 굳이 삼성을 까느냐고, 그냥 잡스 칭송기나 쓰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수 있겠다. 백버튼을 눌러 조용히 나가시라. 당신을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는 쪽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기 더 좋기 때문이다.
애플의 인문학
사진에는 LIBERAL ART와 TECHNOLOGY가 쓰여있고, 각자 거리가 적혀 있다. 단위는 모르겠지만, 미국이니 마일이겠지. 600마일이면 갈 길이 아직 멀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964km이라는 의미다) TECHNOLOGY보다는 LIBERIAL ARTS가 더 중요하게 읽힌다. 애플과 같은 디지털 하드웨어를 만드는 회사에서 기술이야 당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 스티브 잡스의 발표에서는 LIBERIAL ARTS 외에도 HUMANITIES라는 단어도 쓰였다. 이 두 단어는 모두 한국어로는 인문학이라고 번역되는데, 이렇게 번역하는 순간 의미를 이해하기 난해해진다. 우선 이 두 단어를 정의하자.
** 무명씨님의 제보 : 600, 1500은 번지수랍니다. 그러니까 오해를 한 셈인데, 내용적으로는 이 정도를 거리로 설정해도 별 문제가 없다 싶어 우선 글은 그냥 두기로 합니다. :)
Liberal Arts.
한 마디로 번역하자면 ‘전인교육’ 이다. 한국식 전인교육과는 내용상으로 비슷하지만 적용에서는 거리가 멀다. 즉, 문화예술의 넓은 영역에서의 기초적 상식 수준의 지식을 쌓는 학문을 말한다. 삶의 가장 기본적이자 기초적인 요소 이상의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지식이다. 이런 지식들은 대개 어린 시절 문화예술교육으로 함양된다. 움베르토 에코가 설명하는 방식을 빌어 설명하자면, 적어도 몰타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 대충 이탈리아 남쪽 근처에서 찾아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십자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이보다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할 것이지만, 사실 살면서 십자군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하는 사람은 전 인구 비율로 따질 때 소수점 이하일 테니, 이것은 Liberal Arts에 속한다고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 말로는 ‘상식’ 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상식’ 과는 조금 다르다. ‘상식’ 이 백과사전적 지식을 말한다면, Liberal Arts는 그보다는 유기적이고 구조화된 지식이다.
예를 들어, 몰타가 이탈리아 남쪽 근처에 있다는 것으로, 유럽의 최남단에 해당하며, 당연히 지중해에 있을 것이고, 섬나라이며,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여름과 겨울이 매우 뚜렷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살기 좋을 것이다. 지중해 영역이 고대로부터 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이러한 계절의 변화로 인해 비옥한 토지를 가졌기 때문이니까. 이탈리아와 아프리카 사이에 끼었으니 당연히 종교는 카톨릭일 가능성이 높고, 인종적 분류로는 혼재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도 유추 가능하다. 그렇다면, 다국어 국가일 수도 있다. 실제로 몰타는 다국어 국가이며, 몰타어와 영어, 이탈리아어 등이 섞여 쓰이고, 1934년까지는 이탈리아어가 공용어였다. 현재 공용어는 몰타어와 영어이지만 이탈리아 방송도 청취가 가능하며 국민 중 이탈리아어 사용자가 많다. 심지어 2007년까지 화폐 단위도 몰타 리라였다. 또한, 2007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에 선정되기도 했다. (링크)
이 정도가 Liberal Arts에 해당하는 지식 수준이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모든 내용은 사실 고등학교, 또는 이전의 교육수준에서 배웠을 것이다. 기억하는가는 별개의 문제지만. 이런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우리의 교육 시스템에서는 이러한 정보를 암기하는 기술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나 여러분의 삶에서 몰타가 의미 있는 어떤 곳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러니, 몰타가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좋다. 하지만, 지도에서 몰타의 위치를 확인했을 때, 아래의 유기화된 확장이 어디까지 가능한가가 문제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이 가지는 차별점이라고 자랑하는 Liberal Arts라는 것은 1차적으로 이런 의미에 해당한다. iPad 2를 소개하면서 Garage Band와 iMovie를 같이 홍보한다. 이는 이러한 ‘기본적인’ 도구들이 기본적으로 들어있어, Liberal Arts를 위한 툴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기초적인 Liberal Arts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고,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한국에서는 아무도 거기에 신경 쓰지 않는다.
의미를 모르고 베끼면 문제가 생기는 법. 갤럭시 탭으로 콘서트를 준비해야 한다던 슈퍼스타 K2의 4강 진출자들이 나오는 광고는 어떻게 봐도 Liberal Arts를 위한 광고라고 보기 어렵다. 그것이야 이미 ‘유명인’ 이 된 그들의 리그다. 애플의 광고에서 유명인의 이미지가 극히 제한되는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삼성은 돈이 많으셔서 그러신지, 마케팅에 유명인을 가져다 쓰는 데 더 익숙하다. 내수 시장에서 이게 먹힌다는 건 참담한 일이다. 왜 참담한지는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다.
Humanities.
인류애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문학’ 이다. 이런 학문의 특성은 인간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왜 이러는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설명하려고 만들어진 학문 영역이라는 것이다. 언어학, 법학, 철학, 종교학, 논리학, 인식론, 미학, 문학, 역사학, 인류학, 기타 학문으로서의 예술 장르 등이 포함된다. 여기에 사회학, 심리학의 ‘메타 학문’을 결합하기도 하며, 이런 결합으로 나타난 하위 학문의 장르까지를 아우르기도 한다. (이 정의는 필자가 만들어낸 것인데, ‘메타 학문’은 다른 학문 단위에 가져다 붙여 학문화할 수 있는 학문이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도시+사회학, 경영+심리학, 스포츠+심리학, 문화+사회학. 이런 결합이 새로운 학문영역으로 정의가 가능한 학문이라는 의미에서 ‘메타’ 라는 말을 붙였다)
이러한 학문의 목적은 인간을 설명하기 위한 학문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상황적인 전제가 아니라 사변적인 관찰을 기반으로 시작하는 학문을 인문학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학문 영역으로 나누자면 철학, 논리학, 인식론, 미학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상적인 사고의 결과로만 나오는 결론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고의 주체가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지라, 결과적으로는 현실과의 대응을 통해 변화하고 발전하게 되기 때문에, 이런 분류가 합리적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현재 쓰이고 있는 ‘인문학’ 은 이러한 사변적인 영역보다는 사회학이나 문화학에서의 현실을 이해하는 방법론으로서의 학문과 사변적인 방법론이 결합한 것까지를 광범위하게 이른다고 보는 쪽이 낫다.
간단히 정의하자면, Liberal Arts는 사회를 이해하는 넓은 의미의 교양기초과목 정도 되겠고, Humanities는 사회의 구성과 변화의 근원에 위치하는 원리를 깊이 찾아 내려가는 전공심화과정 정도로 보면 되겠다.
이런 인문학의 특성은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이고, 또한 지속적으로 정-반-합의 구조를 통해 발전해왔다는 것이며, 필요에 따라 새로운 학문이 주창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유행이 가고 오듯, 사회가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삶이 다변화되면서 이러한 장르들은 그에 맞추어 서로 싸워가면서 증식, 발전한다는 특성이 있다. 사회의 발전 양태에 따라, 메타 학문까지 결합하면, 어떤 것도 이러한 인문학의 영역에 들어올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 와서는 어떤 것이든 인문학인 것처럼 이해하는 경향도 생겼다. 또 움베르토 에코를 인용하자면, <푸코의 진자>에서 등장인물들은 ‘머리카락을 네 개로 나누는 기술’ 이라든가, ‘사하라 사막의 군중 심리학 이라든가 하는 전혀 쓸 데라고는 찾을 수 없는 학과로 가득한 학교를 상상하며 이야기하는데, 이는 이러한 발전 양태가 기술적으로 분화되어 원래의 인문학적 의미가 도구화되는 것을 풍자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이런 이데올로기의 사례가 ‘통섭’ 이다.
삼성은 스티브 잡스에게 감사하라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이러한 문화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copycats가 아무리 난리를 쳐도 우리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그들을 비웃는다. 성과 위에서 비웃으니 뭐라 하기도 어렵다. 물론, 이런 행동이 야비하다는 데는 필자도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스티브 잡스가 우리에게 준 것은 선물에 가깝다. 특히 Liberal Arts와 Humanities의 개념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준 것은 그야말로 선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Liberal Arts는 한국에서는 이제 고사 직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그럴 시간 있으면 공부나 하라’는, 그 지고의 가치인 대학 입시에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그래서 ‘선택적으로 배울 수 있는’ 지식이 이 Liberal Arts다.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만들겠다는 미친 발상이 문제인 이유는 이것이다. 물론, ‘고도화된 지식을 가진 전문가를 만들면 된다.’ 는 논리가 있다. 아. 물론 문화예술의 교육을 받는 학생들도 있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교육영역에 있어 더 무지한 상태가 되곤 한다. ‘먹고 사는 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문화예술영역을 자기의 대학 진학 방법으로 삼는 순간 ‘누구보다 잘 해야 하는’ 더 좁은 시장에서의 성공 논리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 가서도 교수에게 얻어터지면서도 참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만다. 그것밖에 길이 없으므로. 결과적으로는 단일한 개체로 구조화된다. 모두가 같은 점수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단일한 서열의 세계.
이에 대한 반론은 우습게도 애니메이션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공각기동대>에서 모토코 쿠사나기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전뇌화도, 의체화도 하지 않은데다, 군인 출신도 아닌 토구사를 멤버 중 하나로 선발했다. 그가 자신을 왜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소령은 이렇게 답한다. “전투 단위로서 아무리 우수해도 같은 규격품으로 구성된 시스템은 어딘가 치명적인 결함을 갖게 돼. 조직도 사람도 마찬가지. 특수화의 끝에 있는 건 느슨한 죽음. 그것뿐이야.” Liberal Arts를 무시하는 사회가 얻을 수 있는 전망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 사회의 결과물이 갤럭시 탭과 같은 제품일 것이다.
갤럭시 탭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쓸만하다’ 고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도 ‘갤럭시 탭을 사라’ 고 하는 사람은 적다. iPad는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만족한다. 그런데,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사라고 한다. 단순히 인기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써 보면 알게 된다. 무엇이 다른 것인지.
발표 후 24시간 정도가 지난 지금, 수 많은 언론 기사들이 iPad2와 갤럭시 탭 10인치 모델을 비교하고 있다. 스펙이 어떻고, 하드웨어 성능이 어떻고 하는 기사들 말이다. 결론은 대동소이하다.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자들이 모르고 있는 것, 기사를 읽고 ‘그러면 삼성이 AS를 잘 해주니 갤럭시 탭을 살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으니, 하드웨어의 성능만이 제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300만화소의 카메라보다는 500만화소가, 그보다는 1,000만화소가 좋다’ 는 논리에 대해 ‘아니다’ 라고 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다른 조건을 걸면 일이 커진다. ‘그래픽 메모리는 2MB다.’ 라는 조건이라면 어떨까. 500만화소, 1,000만화소보다 300만화소가 훨씬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성능상으로 훨씬 뛰어난 Playstation Portable이 Nintendo DS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PSP가 ‘PS 시리즈의 게임을 모바일로’ 라는 전제 하에 성능을 중심으로 할 때 닌텐도는 여유롭게 ‘굳이 고성능이 아니라도 게임은 재미있을 수 있다’ 로 응수했다. 결과는 어떠한가. 그러고 보니 이명박은 한국형 닌텐도도 만들라고 했고, 한국에서 스티브 잡스도 10명은 나와야 한다고 했구나. 미친거 아냐
iPad 2는 이미 검증된 OS를 달고 있다. iOS는 맥북 프로의 OS 업데이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iPhone, iPad, iPod에서도 비슷한 시각적 디자인으로 적용되어 있다. 그런데, iOS의 장점은, 각 하드웨어 장비의 사용 용도에 최적화가 매우 잘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갤럭시 탭의 OS는 안드로이드 OS이지만, 구글이 타블렛용으로 만들겠다고 한 OS가 나오기 전에 빠르게 출시하느라 모바일 2.2 버전의 OS를 올렸다. 핸드폰을 쓰는 것과 타블렛을 쓰는 것이 같을 리 없다. 쓰는 환경도, 쓰는 이유도 다르다.그런데 OS는 같다. 삼성은 무엇이 중요한지, 애플이 왜 이런 강력한 소비자 신뢰를 얻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하드웨어 성능이 같으면 같은 것이니까.
Liberal Arts는 주체로서 접근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애플이 자사 제품을 새로이 발표할 때 마다 꼭 빼놓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contents를 만드는 툴이다. 이번 iPad 2의 발표에서도 Garage Band와 iMovie가 발표되었다. 두 프로그램의 기능은 음악과 영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Liberal Arts에서 보통의 개인이 가장 쉽게 다룰 수 있는 기능들이다. 여기에 사진을 찍는 기능까지 더하면, iPad 2는 세 가지의 기본적인 예술작업을 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한 셈이다.
이 두 툴의 발표는 단순히 ‘이런 게 됩니다’ 라는 자랑거리로 발표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다른 OS를 쓰는 사람들은 ‘이 OS에도 그런 프로그램은 있다’ 고 맞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애플이 자사의 제품 홍보에서 이 영역의 중요성을 계속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Liberal Arts는 상식의 영역에 가까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음악을 만들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고도의 예술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냥 일상 생활에서의 잠깐의 일탈과 같은 재미있는 일로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iPad 2가 그것을 지원한다는 것은, Liberal Arts의 의미를 체화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매력이다. 실제로 iOS의 프로그램 사용의 경험이 별로 없는 필자도 iMovie는 금방 다룰 수 있다. Garage Band도 매우 쉽게 음악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이 두 가지 툴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적인 작품을 만들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가수이거나 영화감독이 아니라면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그런 거 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 고 할 수도 있다. 아마도 삼성이라면 갤럭시 텝에 대해 ‘비즈니스용 모델이므로 그런 거는 프로그램으로 누가 만들 것이다’ 라고 할 것 같다. 그들은 이미 갤럭시 탭에 대해서도 ‘양복 주머니에 들어간다’ 고 자랑했던 경력이 있으니까. 그런데, 양복 입고 비즈니스용으로 사용하라고 만든 제품의 광고 모델은 왜 슈퍼스타 K2의 4명인 것인가.
한국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잘 읽어내지 못한다. 악기를 뚱땅거리거나, 영상을 만드는 일이 ‘쓸데 없는 짓’ 이라고 세뇌 당해 온 사람들이니까. IT관련 리뷰들을 볼 때 이런 지점을 지적해내는 사람이 없는 이유도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의 IT 관련 ‘전문가’ 들 역시 기능적으로 ‘고도화된 지식’ 을 가진 사람들이지, Liberal Arts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애플의 노트북들은 예술가나 크리에이터에게 맞는다는 인식이 있는 이유도, 제품이 예뻐서 그들의 미적 감각을 만족시키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에게 편하게 디자인되어 있고, 필요한 기능들 역시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어떤가? 일반의 대중, 보통의 사람들도 Liberal Arts에 우리보다 훨씬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유럽도 그렇다. 그들에게 iPad 2의 기능들은 우리가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예를 들어, 타블렛은 악보를 보는 데 있어 최적의 기능성을 자랑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어떤 학생이 연주하러 교수 앞으로 갈 때 iPad 2에 악보를 담아가 넘긴다면 어떨까. 글쎄, 요즘의 뉴스로 보자면 두들겨 맞을 지도 모르겠다.
Humanities는 기업에 체화되어 있어야 한다
Humanities의 영역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변적인 분석과 이해 이전의 기본적인 인간의 성향에 대한 공의가 성립하는 것이다. 윤리시간에 배웠던 성선설, 성악설과 같은 인간은 어떠하다는 논의들의 의미는 그 중 하나를 믿고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적어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윤리와 신의, 그리고 합리적인 사고의 체계를 유지하라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된다.
애플은 자사의 제품이 신제품으로 업그레이드될 때, 2주 정도의 기간 동안 업그레이드 이전 제품을 구매하면 일부 금액을 환불해준다. 미국의 경우는 신제품으로 교환해주기도 한다. 삼성은 자신들이 하겠다고 공언한 OS 업데이트도 하지 않는다. iPhone이 처음 나왔을 때 옴니아를 ‘대항마’ 라고 내놓은 덕분에 옴니아를 구매한 사용자들은 분노하고 있다. 삼성이 더 이상 옴니아의 인터넷 검색의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옴니아 소비자 중 어떤 사람들은 ‘아이폰보다 옴니아가 낫다’ 고 떠들던 사람들일 것이다. 이에 비해 iOS는 4.3 업데이트 역시 3Gs부터 지원한다고 한다. 물론, 일부 기능이 제한되지만, 지금까지 큰 불만 없었던 사용자가 업데이트가 차등화된다고 크게 불만을 가질 일도 없다. 기다렸다가 iPhone 5를 사면 그만이다. 그런데, 왜 옴니아 사용자들이 그렇게 분노한다는 데 눈에 안 띄냐고 묻는다면, 지금 주변에서 옴니아를 아직도 쓰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삼성을 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당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긴, 법도 무시하는 기업인데, 약속 따위야.
애플은 자사의 제품을 발표하기 전까지 제품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보호하는 기업 중 하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중요한 하나는 발표회에서 충분한 파급력을 가져, 전 세계가 하루 동안 입에서 ‘애플’ 을 이야기하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이들은 소비자들이 ‘우리는 이런 것을 원한다’ 라는 말을 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늘 더 새로운 것을 내놓고, 내놓을 때는 별 것 아니라 하더라도 대단한 것이라고 자화자찬한다. 소비자는 때로는 ‘이번에는 별로로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애플은 적어도 자신들이 해야 할 기본적인 도리는 한다.
물론, AS 서비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할 수는 있겠지만, 필자의 경우 AS는 한국의 서비스 모델에서는 굳이 개선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본다. 어떤 경우라도 소비자는 욕을 하는 구조니까. AS가 좋다는 삼성의 경우 필자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미리 제품 가격에 AS비용을 포함한 상태로 보기 때문에, 지금의 삼성의 AS가 좋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외려 AS가 발생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셈이다. AS가 없으면 금전적 손해, AS가 있다면 금전적으로는 맞춰질지 몰라도 AS받는 과정을 생각하면 이래저래 손해가 아닐 수 없다.
AS의 시스템에서 가장 큰 차이는, ‘AS의 결정 주체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다. AS와 같은 서비스는 말단 단위에서 더 높은 권한을 가질수록 실질적인 만족도가 높아진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의 AS를 받을 때, AS에서 발생하는 비용 결정을 소비자는 가능한 빨리 알고 싶어한다. 가능하다면 그 자리에서 알려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서비스하지 않지만 미국의 대형 애플 매장에는 ‘지니어스바’ 가 있다. 이곳은 예약제를 기반으로 운영되며, 이곳에서 일하는 지니어스들은 상당히 넓은 범위에서 서비스의 내용을 결정한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서비스의 범위를 정할 결정권이 있고, 그 결정권을 기반으로 소비자와 협의한다. 어쨌거나, 결론은 빠르게 내려지고,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비용이 어떻게 발생하는가와는 별개로, 예약제를 기본으로 하므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그리고 상당수의 지니어스들은 매우 후하게 AS를 해주기 때문에, 소비자는 자주 감동한다.
그에 비해 삼성의 AS, 나아가 한국의 AS는 책임 회피의 구조에 해당한다. 게다가 때로는 엔지니어들이 자기만 아는 줄 알고 제품의 문제에 대해 허튼소리를 하다가 전문가 수준의 소비자에게 까이기도 한다. 엔지니어들은 AS센터의 안쪽에만 존재하고, 그들을 만나려면 소리라도 질러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담당자 나오라고 해!” 정도는 해야 얼굴이라도 볼 수 있는 존재다.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신뢰가 없고, AS가 재차 발생했을 때는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 물론, 그 대상은 AS센터 직원이 아니라 그 기업이다. 얼굴이라도 본 적 있어야 화라도 낼 것 아니겠는가. 고장난 제품에는 기업의 로고가 아주 잘 보이게 걸려 있으니, 욕할 대상은 명확하다.
말단에게 더 많은 비용에 대한 결정 권한을 주면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장담컨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우선 AS의 기간이 길어지고, 소비자가 2-3번 방문하는 것 만으로도 비용은 오른다.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더 많은 관리 시스템과 더 많은 처리 공간 등등 필요한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당연히 비용이 더 오른다.
이런 식의 발상을 하는 이유는 기업에 Humanities가 없기 때문이다. 삼성은 AS가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AS가 좋은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AS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고 있다. After Service는 구매 이후에도 그들이 고객이라는 인식에서, 그리고 그들의 구매 경험이 아직 제품을 구매하지 않은 가망고객에게는 결정권을 부여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숫자로만 구조를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성은 AS가 좋다’ 는 이야기를 계속 해야 한다. 소비자가 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발언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이라면 응당 좋은 서비스를 받으면 기뻐하는 법이고, 그것으로 이득을 보았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삼성의 AS에서 이득을 본 경우가 있다면, 그건 그 ‘엔지니어 개인’ 이 ‘좋은 사람’ 이어서 그렇다고 소비자가 인식하는 것을 삼성은 모른다. 오죽하면, ‘어디 지점 엔지니어 기사분이 친절하시니 그리 가세요’ 라는 글들이 인터넷을 떠돌겠는가.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기업에서 서비스의 품질 수준의 평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는 이야기겠다. 하긴, 이 회사는 노조조차 설립하지 못하게 하는데 소비자의 발언 같은 거 신경이나 쓰겠나.
이게 안 되는 이유는, 삼성에 Humanities가 없기 때문이다. 애플은 지니어스바의 직원들을 믿는다. 그러나 삼성은 AS센터의 엔지니어를 믿지 않는다. 어느 쪽 직원들이 회사를 위해 충성하겠는가는 굳이 통계적 수치나 심리적 분석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런 게 Humanities다.
비웃음을 당했는데, 할 말이 없네.
삼성이 내 쪽 파는 거야 어제 오늘 이야기도 아니고, 굳이 더 말해 무엇하겠나.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이 발언은 한국에 대한 비웃음으로도 읽힌다. ‘너희들의 문화에는 Liberal Arts도 없고, Humanities도 없어. 그러니 니들이 우리를 어떻게 따라와?’ 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에 반박하기는 어렵다. 국사까지도 ‘선택과목’ 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고, 모든 학생이 영어를 잘 해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잘해서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으며, Liberal Arts는 고사하고 학생들에게 빚쟁이가 되어서라도 대학 졸업장을 따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나라에서, Garage Band의 기타줄이 눈에 들어오긴 할 것이며 iMovie로 영화는 커녕 저녁 노을이라도 한 번 찍어보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일을 하겠다면 ‘굶어 죽을 각오로 하라’ 고 윽박지르는 신문이 있는 나라에서, 누가 Liberal Arts에 관심이 있겠는가. AS를 잘 하지만, 노조가 없고, 그 iPad 2에 들어갈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46명이 백혈병으로 죽어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데, 누가 humanities에 입각하여 사고하겠는가.
해외에서 선전하는 삼성의 이미지와는 별개로, 전 세계적으로 삼성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고작해야 3% 내외다. 오직 국내 언론에서만 삼성은 전 세계적으로 강하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병상에서 일어나 그런 삼성을 비웃었다. 덕분에, 그가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전 세계의 ‘애플빠’ 들은 스티브 잡스를 웃게 해 주었노라고, 그래서 그가 조금 더 살아 우리를 조금 더 기쁘게 해 주었노라고 삼성에게 감사를 표할까.
이게 과다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에서나 Liberal Arts와 Humanities에 대한 개념이 없다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미국을 위시한 나라들에게서는 당연한 것을 하지 않는 셈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그게 뭐야' 수준의 비웃음을 당할 만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에게 이 두 가지는 사람으로서 합리적으로 살기 위해 당연히 갖추어야 하는 것이며, 그런 것을 갖추지 말라고 주장하는 정부가 있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라고 생각할 리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까인 것은 삼성인가, 아니면 삼성으로 대표되는 한국이라는 시스템인가.
삼성은 우리를 대표해서 스티브 잡스에게 비웃음을 당했다. 그런데 고맙지가 않다. 대신해서 당한 게 아니라, 치부를 제대로 까 드러내 보여 준 셈이니까. 그러니까 좀 나대지라도 말지. 그리고, 우리도 그것에 대해 뭐라 말할 처지가 못 된다. 한국에서, 과연 삼성 없이 살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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