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청소년의 대표적 키워드(key word)는 자기주장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서슴없이 자기주장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그렇지 못하면 미련 없이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한다.
과거 지각하면 무릎 꿇고 앉아 벌을 받거나 학생주임의 훈계(訓戒)와 함께 체벌(體罰)을 받았던 교복시절이 있었다. 기성세대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면 이 시대 청소년들은 “부모도 내게 손대지 않았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그리고 학교 대신 주유소니 게임방이니 혹은 다른 아르바이트를 위해 아예 가출해 버리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우리 시대 청소년은 공부와 입시(入試)에 의한 끊임없는 스트레스 속에서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다. 심리적 측면에서 청소년기는 자기정체성(正體性)과 인생관 형성을 위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우리 청소년은 이 문제를 뒷전에 제쳐둔 채 공부와 경쟁, 성적 올리기에만 내몰림으로써 심한 정신적 동요와 불안정, 욕구불만에 시달리고 있다.
청소년은 이런 불안정성을 반영, 자기주장을 표출해내지 못하는 데 따르는 자기불만을 가지게 된다. 자기주장이 강한 만큼 자기불만도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지가 더 약해지고, 충동에 대한 조절이 힘들며, 행동에 대한 판단 역시 즉흥적으로 변하게 된다. 특히 주위 사람으로부터 무시당하거나 거부당한 경험이 있을 때에는 그에 대한 반항으로 비행(非行)을 저지르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들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지도 못한 채 자기탐닉과 자기변명에 함몰하게 된다. 그리고 윗세대에 대한 불신감과 적개심으로 즉흥적, 충동적으로 문제 해결에 임하면서 그것이 곧 그들만의 해결법이라 생각하게 된다.
●즉흥적 ‘인스턴트 문화’ 영향도 커
우리 시대 청소년의 이같은 특성에는 빨리 먹고 가볍게 해결하는 ‘인스턴트 문화’의 영향도 크다. 이들은 경제성장기를 맞아 맞벌이 혹은 한 부모 밑에서 양육된 경우가 많다.
쉽고 빠르게 한끼를 해결하기 위해 패스트푸드를 먹어온 세대여서 인간관계 역시 쉽게 사귀고 쉽게 헤어지는 것을 당연시 한다. 이성(異性)과의 관계도 쉽게 맺으면서 정해진 직업이나 직장을 갖기보다는 이것저것 가벼운 일거리들을 찾아 다니는 것을 선호한다.
여기에 사이버문화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청소년들의 즉흥성과 충동성은 과격한 PC게임 중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현실감각을 상실하게 만든다. 게임 캐릭터의 무기를 구하기 위해 부모의 지갑에 손을 대기도 하고 책임 없이 카드를 만들어 마구 쓰기도 한다. 심지어 게임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상혼(商魂)에 물든 일부 어른들은 가출 청소년에게 게임으로 무기를 얻어내 판매하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만들어주고 이들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청소년들은 학교까지 그만두고 사이버문화의 그늘 속에서 헤매고 있다.
청소년의 이런 문제점들이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은 이들이 학업에 실패했을 때 혹은 학업과 관련된 경우이다. 이때 청소년들의 불안정성, 즉흥성, 충동성은 두드러지게 된다. 입시장애증후군이 전형적 예가 될 수 있다. 또 학습부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PC게임 중독증, 학원중독증 등을 비롯한 많은 청소년 정신질환들이 부모의 지나친 공부 강요에서 비롯되고 있다.
입시장애증후군은 무언가에 쫓기고, 깜짝 깜짝 놀라며, 불안ㆍ초조해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신경질이나 공격적인 성향이 늘어나는 것도 특징이다. 상태가 심해지면 두통, 복통, 시력장애, 불면, 가슴 답답 등의 신체적 증상을 동반한다.
물론 모든 수험생들이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 부담과 갈등, 스트레스까지 입시장애증후군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작은 것들이 입시장애증후군으로 발전할 수 있는 소지는 충분하다. 마치 감기가 심해지면 폐렴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경우와 똑같은 이치이다.
입시장애증후군은 우울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울증이 생기면 매사를 염세적이고 비관적으로 생각한다. 부모는 이를 가볍게 느낄 수도 있지만 청소년 입장에서는 매우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왜냐 하면 자살이라는 극단적 사고가 이런 청소년들에게서 가장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는 이성이 아직 남아 있어 그런 자신의 처지를 깨끗하게 되돌리고 싶다는 일념에서 이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은 주위에서 얻어 듣는 소식이나 언론보도 등에 민감하다. 그래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남들이 많이 한다는 것,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 등을 무비판적으로 자녀에게 권유하거나 강요한다. 이 때에 자녀의 적성이나 소질은 무시된다. 부모 자신의 기분이나 밖에서 물어온 정보가 판단의 기준이 될 뿐이다.
자녀가 어릴 때 속셈학원이 좋다면 속셈학원으로, 태권도가 좋다면 태권도 도장으로 끌고 간다. 입시생들에게는 의대를 가라, 법대가 어떻겠니, 컴퓨터 쪽이 유망하다더라, 외국대학중에서는 ○○대가 더 좋다더라 하면서 자녀를 일방적으로 몰아가려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부모나 사회의 필요가 아니라 자녀 자신의 필요, 즉 자녀의 소질이나 희망, 꿈 등과 같은 것들이다. 부모나 사회가 자녀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급속한 사회 변화와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우리 청소년들을 성숙된 인재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 인식의 변화가 절실하다. 청소년기에는 누르는 힘이 강할수록 튀어오르는 힘도 강하다. 사회적으로 예의ㆍ규범이 무너지고 있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권위주의를 강조하거나 지나친 도덕규범으로 자녀 행동을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보다는 일관성 있는 태도와 언행일치를 통해 부모가 자녀에게 건전한 동일시의 대상(identification object)이 되어 주어야 한다.
●가정은 가족들의 ‘재충전’ 장소
보상과 처벌에 대한 체계가 명확하여 자녀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가 어떠할지를 예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동일한 실수나 잘못을 해도 일관적이지 못해 어느 때는 말 없이 넘어가고 어느 경우엔 과하게 꾸중하는 행동을 한다면 자녀가 기준이 모호함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다. 또 제한과 처벌의 근거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어서 자녀 스스로가 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가 본래 기능에 충실해져야 한다.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를 진학과 취업을 준비하는 곳쯤으로 여기고 있다. 학교가 청소년들에게 입시준비 역할을 할 뿐 인간적·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진학에 뜻을 둔 학생이 아니거나 진학 가능권에 들어가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학교는 정신적 부담과 갈등의 소재지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가정은 더욱 중요하다. 특히 가정에서 지나친 입시관련 스트레스를 주거나 경쟁적인 사고를 불러일으키면 청소년은 정서적 안정감을 가질 수 없다. 청소년에 대한 수용적인 자세 역시 필요한 부분이다. 자녀에게 무조건 엄격한 태도는 청소년의 긴장과 열등감을 확대시켜 놓게 된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관심사나 가치관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주로 학업 성적과 그를 통한 사회적 성취나 출세 등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이로 인해 자녀는 과중한 학업부담을 가지게 되며 부모에 대한 존경심마저 잃게 된다.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이 항상 재충전할 수 있고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는 본래 기능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