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화는 돌아서는 환희의 등을 향해 몇 마디를 빗살처럼 내뱉은 후에 스프레트 천을 곱게 개었다. 정말 가지 말자니까. 괘가 좋지 않았다. 솔직히 좋지 않다는 건 느낌일 뿐이지만, 이 녀석하고 몇 년인데 그 흔한 필- 이 안 통하겠냐는 말이다. Secret Deck 을 배낭 구석에 잘 넣었다. 혹시 알까. 나침반 대신 좋은 길잡이라도 될지-
괘 해석으로 애태운게 얼마 안된것 같은데 벌써 사람들이 모여있다. 환희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체크 하느라 바쁘고. 빨리 오라더니 거들떠도 안 보는구만... 하늘은 참 맑다. 우울한건 자신 혼자 뿐 인가보다. 달 아래의 창백한 여자의 나신과 빨간 꽃게 한마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버스에 올라타자 설레임은 절정에 달했는지 다들 시끌시끌하다. 먹을 것을 벌써 꺼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옆자리의 윤성은 가이드북을 꺼내놓고 코스를 짜는 중이다. 어차피 단체행동일 텐데- 천화의 말은 이제 출발하는 버스의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과 함께 날려버린 듯 묵묵부답이다.
차라리 함께 동화되어 떠들고 놀기라도 하면 기분이 나아질 듯도 한데 안쪽에 앉아버린 탓에, 그리고 뚫어져라 책만 보고 있는 바깥쪽의 윤성 탓에 천화는 꼼짝없이 외톨이 아닌 외톨이가 되어버린 꼴이었다.
힐끔- 가이드북을 들여 다 보았다. 치악산의 대표적 코스인 구룡사 사다리 병창 코스라던가 구룡사 계곡, 상원사 계곡 영원골, 곧은골 계곡등이 아름다운 전경과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무얼 찾는지 윤성은 이리저리 책을 뒤적이고만 있다. 악, 자가 들어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천화는 벌써 부터 치가 떨린다. 차를 타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봤던 설악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잊지 못해 가입하게 된 산악 동호회 인데, 첫 신고식을 월악산으로 치뤘으니- 후에 안 사실이지만 산 이름에 악. 자가 들어가면 험하다더라 라는 것이다.
다녀 온 선배들 모두 그 높이의 다른산에 비해 험난하다, 힘들다. 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한지라 결코 치악산엔 가지 않겠다 라고 다짐했는데- 막상 선배 앞에서 가기 싫다 라는 말을 할 수 없어 끼게 된 것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괘까지 좋질 않으니.
어느샌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윤성이가 천화의 우울한 표정을 읽었는지 빙긋 웃으며 가이드북을 힐끔 보여준다.
“이것좀 봐봐. 걱정마, 괜찮을거야”
코스 처음 3m는 평탄 한 길이다. 라고 써 있다. 윤성아, 넌 정녕 바보니? 처음 3미터만이래…. 천화는 윤성이의 손을 멀찌감치 밀어버렸다. 뭐 미리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다.
“ 천화야, 일어나!”
윤성이의 목소리 뒤로 짐 챙기라는 환희의 목소리도 언뜻 들린다. 어느새 도착한건지 버스는 금새 휑해졌다. 올려뒀던 배낭을 낑낑대면서 꺼내려니까 기운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월악산 때 혼자 소형을 매고 갔다가 덜렁덜렁 손에 든 게 많아서 쿠사리를 엄청 먹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장만한 중형인데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땀에 모자가 돌아갈까 두건을 질끈 두르고 모자를 돌려썼다. 평일임에도 꽤 많은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 환희도 그런지 시간이 지체되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연락을 받아보니 동해안쪽이 날씨가 꽤 안 좋다고 하던데 장마철은 지났지만, 치악산까지 영향이 미칠게 뻔하다. 그래도 이 많은 사람이 조난당할라고.
저 멀리 윤성은 험준한 절벽을 향해 손가락으로 앵글을 잡고 있다. 한때 꿈이 사진작가였다고 하더니... 손가락 앵글 속으로 저 멀리 산 중턱의 철 계단이 보인다. 문득 산세가 망쳐지는 듯해서, 주위의 정경과 너무 안 어울리는 모습에 인상이 약간 지푸려 졌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줄이라도 타라고 했으면 금새 쓰러져 버렸을 테지.
“ 올라가자!!”
환희의 외침에 고만고만 모여 있던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화는 윤성이의 배낭에 대롱대롱 매달린 씨에라컵을 보며 발길을 재촉했다. 꼭 컵도 지 같은 것만….
워낙 리더쉽이 강한 환희는 친해 졌다기보다, 선배로써의 의미가 더 크다. 물론 지금도 그렇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의 주위엔 사람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런 저런 일로 해서 같은 초보인 윤성은 편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윤성은 오래전부터 치악산에 꼭 오고 싶다고 말하곤 했었다.
산은 꽤 험했다. 등산로를 타고 올라가도 이 정도인데... 천화는 허리를 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름다우면서도 아찔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떨어져도 무성한 숲 위로 튕겨오를 것 같은... 한 순간 감상에 젖어있던 천화는 금새 머리를 휘휘 저으며 발길을 재촉했다.
괘 속의 꽃게 한마리가 머릿속을 슬금슬금 돌아다니는 느낌이다.
한참을 부지런히 오르다 보니 역시 우려했던 정체사건이 일어났다. 좁은 계단으로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치다 보니 교대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길고 지루한 시간 이던지.. 주위의 전경이 사진처럼 눈에 박히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모두들 치가 떨리고 악에바치는 산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윤성은 그 와중에도 주위를 끝없이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었고 천화는 그런 윤성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나무 빼면 바위였다.
“ 원래 가을에 붉은계열 단풍이 너무 예뻐서 적악산이라고 불렀다는데.. 그 얘기알아? 뱀에게 먹힐뻔한 까투리를 구 해준 선비가 그 꿩의 보은으로 위기에서 탈출했다는...그 상원사 종소리의 전설에서 나온 이름이 치악산이라는 거야. ”
온통 초록빛에서 새빨간 단풍을 보듯 윤성은 숨도 차분하게 내뱉는다.
“여기서 좀 쉬자- 뭣들 좀 먹어.”
그때 저만큼 위에서 환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기력도 없었는데…. 윤성은 환희에게 자리를 툭툭 쳐보이며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과일을 쓱쓱 문질러서 하나를 건네고 자신도 포도를 똑똑 따 먹었다. 겉옷을 하나 벗어서 배낭속에 쑤셔넣고 있는데 윤성이가 갑자기 머리위로 손을 얹었다.
“ 비가 와.”
“ 뭐?”
놀란 천화가 일행을 올려다 보자 다들 부산한 분위기다. 딱히 피할곳도 없는데 비가 온다면 낭패다. 환희는 그나마 탄탄한 곳을 찾아 그쪽으로 옮겨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었고 천화와 윤성이도 서둘러 일어섰다. 어느새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지고 있었다.
날씨가 맑을땐 발목에 심한 무리가 가는데 돈들여 왜 아스팔트로 도배냐- 욕을 해댔는데 비가 오고 나니까 또 마음이 달라진다. 탄탄한 길이 아닌 비에 젖어 푹푹 꺼지는 흙길을 생각하니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비는 안개처럼 가늘었다. 하지만 멀쩡한 날에도 힘겨운 산행인데 천화와 윤성에게는 최악이었다. 정말 아까 까지만 해도 보이던 일행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선명한 길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미풍에 흔들리는 낙엽이, 안개비에 떨어지는 작은 돌맹이들이 크게 확대되어 다가왔다.
“ 천천히 가자.”
윤성이가 잡고있던 천화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빨리 따라잡아야지- 천화의 말에 윤성은 옷을 탈탈 털기만 할 뿐 급 한 기색이 없다.
“ 그때도...아무일 없었으니까.”
“ 뭐라고?”
아냐- 천화의 물음에 윤성은 대충 나무가 많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깔고 앉아버리는 윤성이의 모습에 천화는 헛웃음부터 나온다. 너 제정신이야? 식식대는 천화의 말은 못들은 척 윤성은 주위를 약간 둘러보다가 가만히 나무에 기대었다.
“ 힘들어서 그래….”
“ 너 여기에 꼼짝말고 있어!!”
윤성이의 말에 천화는 화난듯 소리치고 길을 따라 걸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길은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천화는 왔던 길을 잊지 않기 위해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걸었다. 그러면서 한참을 걸었는데 길이 두곳으로 나뉘어져 버린다. 천화는 문득 덱을 꺼내볼까 하다가 비에 젖을까 관두기로 하고 대충 감으로 정해 걷기 시작했다. 칡넝쿨과 가시덤불... 아무래도 등산로가 아닌가- 문득 드는 두려움에 다시 발길을 돌리려는데...
다리에 갑작스런 통증이 일었다. 중심을 잃고 쓰러질뻔 한 것을 겨우 나무기둥을 잡고 일어섰는데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죄여오는 고통에 숨이 막힐지경 이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자 온 몸이 싸- 해 진다.
“ 젠장..쥐난건가..”
언젠가 갑작스런 움직임에 주의를 하던 환희의 말이 떠올라 천화는 빠르게 가방을 뒤졌다. 한손으론 죄여오는 다리를 탕탕 치면서 급한대로 옷핀을꺼내들었다. 기술이 없는지라 체했을때 어머니의 손끝을 어렴풋이 기억해서 사혈을 하고, 다리를 계속 주물렀다. 그러길 30여분... 긴장이 쭉 풀리면서 몸에 힘도 같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배낭을 베고 다리를 곧게 폈다. 묵직한 다리가 참 막막하다. 고통은 감소했으니 이제 곧 힘도 줄 수 있을 듯. 잠시 눈을 감았다.
조난이었다.
[中]
“ 흐음...”
“ 사찰이에요..정신 들어요?”
“ 누구...”
“ 여기 사는 사람이에요. 윤성씨도 다른방에서 쉬고 있으니까 걱정말아요.”
불확실한 의식속을 단아하게 가르고 들어오는 목소리. 새까만 눈동자가 뚜렷하게 각인되었다. 천근만근인 눈꺼풀이 천천히 닫히고 천화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런데… 윤성을…어떻게 아는걸까…
“ 천화야!! 신천화!! 윤성아!!!”
환희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메아리 친다. 사정거리 안에 흩어져서 한참동안 찾고 있지만 감감 무소식. 머리를 거칠게 쓸어올리며 환희는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분명 잘 따라오던 천화와 윤성이가 비가 오고 일행이 급하게 피하면서 사라져버렸다. 자신의 불찰이 크다. 초행길인 윤성과 천화를 잘 챙겼어야 하는데…
“ 선배 아직 못찾았어요?”
“ 어..미치겠다. 다른 애들보고 흩어지지 않게 조심하라 그래.”
“ 예. 이따 정문에서 뵈요. ”
환희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 만큼, 숲도 점점 짙은 어둠으로 물들고 있었다.
“ 김린아 에요...”
“ 아..예.”
천화는 몽롱한 정신에도 끊임없이 분주한 린아의 손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이마에 있던 물수건을 갈아주고 이리저리 방바닥을 짚어보며 온도를 확인한다.
묻고싶은게 백만가지였지만 천화는 칼칼한 목상태 때문에 이름을 묻는 것 조차 힘들었다. 길게 질문하는건 생각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감기까지 심하게 온 모양이다. 천화의 얼굴을 빤히 바라다 보던 린아가 달싹이는 천화의 입술에 가만히 손을 가져다 대었다.
“ 윤성씨는 지금 자는 중이에요. 전에 한번 만난적이 있거든요.”
자신은 참 운이 좋은편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초행길이라도 산에서 조난당할줄은 생각도 못했는데…뒤늦게 119 차에 실려가는 것 보다야 이편이 훨씬 낫지 않은가. 그나저나 정신은 왜이리 몽롱한지. 린아의 서늘한 손길이 이마를 한번 쓸어주면 괜찮다가도 다시 지근지근 아파온다.
“ 갑자기 움직인데다가 지금은 긴장이 풀려서 더 힘들거에요. 감기도 겹치고. 푹 쉬면 괜찮을테니까 걱정마요. 난 윤성씨한테 다녀올께요.”
천화가 생각하기에 아무리봐도 린아는 독심술을 하는 것 같았다.
“ 보고싶었어요.”
“ 정말.…말 안듣는 타입인가봐요.”
“ 보고싶었어요.”
“ 빨리… 데리고 떠나요…”
천화에게 그랬던 것처럼 린아는 서늘한 손을 윤성이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빰에 입술에… 충혈된 윤성이의 눈동자를 피해 허공을 응시하던 린아는 이불을 윤성이의 목까지 끌어다 덮어주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 나랑... 같이 있어요.”
갈라진 목소리. 흐르는 눈물… 미련없이 돌아선 린아가 문고리를 잡았을 때 윤성이의 목소리가 다시한번 린아를 붙잡았다.
“ 떠날…테니… 오늘만 같이 있어줘요.”
“ 어쩌죠?”
후배녀석이 걱정스럽게 물어온다. 하나 둘 정문으로 모이고 있었다. 다들 표정이 어두운걸 보니 아무도 천화와 윤성을 찾지 못한 것 같다. 솔직히 금새 찾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빨리 신고하지 않은게 후회가 되었다.환희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를 숙소로 돌려보냈다.
라이트를 비춰야 간신히 보이는 숲길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런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환희와 함께 치악산 등반 경험이 있는 몇몇은 각각 무전기 하나씩을 들고 다시 숲을 향해 걸었다. 밤에 조난된 사람을 찾아 산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화를 더하는 일이다.
하지만 얌전히 날이 밝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건 환희로서는 더 못할 짓 이었다. 자신이 조난을 당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날이 밝으면 금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전기는 폼이 아니니.
“ 환희야 길 잃지 않게 조심해.”
“ 그래 너도.”
비가 와서인지 더 어둡게 느껴지는 숲길. 동료와 헤어지고 등산로를 따라 천천히 걷던 환희는 묘한 느낌에 주위를 쓱 둘러보았다. 어두운 숲에서 묘한 느낌 이래봐야 누가 쳐다본다거나 하는 오싹한 기분일테지만, 이 느낌은 그런것과는 확실히 틀렸다. 그 느낌의 근원을 찾는다면 도망가고 싶다기보다 더 다가가고 싶을 것 같은… 환희는 라이트를 끄고 몸이 이끄는 대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그는 등산로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윤성은 린아의 머리를 가슴으로 꼭 당겨 안았다. 서늘한 느낌에 몸이 약간 떨려왔지만 개의치 않고 린아의 얼굴과 목덜미를 쓸어내리는 윤성. 등에 닿은 린아의 손에 약간 힘이 들어감을 느꼈을때 윤성은 눈을 맞추고 천천히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짧은 입맞춤.
“ 당신의 하루..”
또 한번의 입맞춤.
“ 당신의 이틀...”
속삭이듯 말하던 린아의 위로 천천히 몸을 겹친 윤성은 이번엔 부드럽고 길게 입을 맞췄다.
“ 내 평생을 드릴테니...”
그리고 강하게 얽혀 들어오는 윤성이의 혀. 린아의 팔이 윤성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둘은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세게 감싸 안았다. 린아의 옷 속으로 손을 밀어넣는 윤성이의 낮빛이 조금씩 창백해져가고 있었다.
[下]
천화가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본다. 어두운 방이지만 익숙해 지자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아…머리…”
몸이 천근만근이라 힘겹게 팔을 들어 이마에 올리긴 했는데 열이 더해지니 이젠 속까지 이상하다. 어찌된건지 약을 먹어도 별 차도가 없는 것 같다. 감기쯤은 약 없이도 너끈히 이겨내곤 했었는데…린아의 손길이 간절하다.
“ 환희야!! 어디야!!”
무전기 소리에 환희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는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언제부터 이곳으로 걸어왔는지… 환희는 어딘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어. 왜 그래…”
“ 그만 내려가자고. 이제 동틀꺼야 그때 다시 찾아보자.”
“ 알았어.”
기계적으로 말을 내뱉은 환희는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정신없이 윤성과 천화를 찾은 모양이다. 이런일은 처음일뿐더러 계획없이 무작정 숲으로 들어온 것이니… 환희는 동료의 말대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허나 몇발자국 못가서 그는 다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서 있는곳이 어딘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천화는 사경을 해매고 있다고 해도 좋을만큼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공기가 탁하고 눈앞이 흐렸다. 머리는 깨질 것 같았다. 눈은 말라버려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데 너무 따가워서 빨갛게 충혈된 상태였다.
“ 린아…”
갈라진 목소리조차 이젠 나오지 않았다.
“ 천화씨가…”
“ 린아…”
“ …그가 죽을지도 몰라요.”
린아는 무덤덤한 얼굴로 윤성이의 허리를 쓸어주며 말했다. 약간의 움직임에도 윤성은 심하게 자극받고 온 몸이 떨려왔지만 린아는 그저 약간 상기된 얼굴. 그뿐이었다. 윤성은 그런 린아의 목덜미를 약하게 물었다.
“ 그는…”
“ 천화는… 나와 상관없어요. 당신과도 상관 없는 사람이야.”
“ 난…난…”
섹섹대는 입술에 입을 맞추고 린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환희는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왔던길을 되짚어 보았다. 하지만 무전기 소리에 정신을 차렸던 것 처럼 그 전의 상황은 도대체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날이 조금씩 밝아온다는 것이 환희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더 이상 움직였다간 등산로와 더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환희는 나무 밑둥에 가방을 내려놓고 무전을 취했다.
“ 어디야 지금?”
“ 너야말로 어디야! 우린 다 내려왔는데”
“ 길을 잃었어. 밝아지면 찾을 수 있을꺼야.”
“ 너까지 뭐하는거야 지금!! ”
“ 미안 금새 갈꺼야. 무전기 있잖아.”
따끔한 소리에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환희가 대답했다. 동료의 목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좀 깨는 기분이다.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주위를 살피던 환희… 순간. 멀지않은 곳에 누군가의 배낭을 발견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저건...”
천화는 몸이 조금씩 가벼워 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떳다. 린아가 옆에 누운채로 자신을 꼭 끌어앉고 있었다. 목 아래로 놓인 린아의 팔을 느끼며 천화는 조금씩 움직여 린아의 얼굴을 쳐다본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 유난히 붉어진 입술이 천화의 갈증을 더하게 했다.
“ 미..미안해요.”
단지 입술이 붉다고 생각한 것 뿐인데 어느새 천화는 린아에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린아의 밀침이 아니었다면…
“ 몸은 괜찮은가봐요.”
“ 아니…그게…”
“ 내일 떠나시는게…”
“ 미안해요. 정말.”
천화의 당황하는 모습에 린아는 별로- 라고 대답하며 이부자리를 정돈했다. 몸이 나았다면 떠나는게 당연한 일인데 천화는 무심결에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몸은 확실히 한결 가벼웠고 정신도 맑았다. 그것을 깨닫자 천화는 잊고있던게 떠올라 린아에게 묻는다.
“ 근데 윤성이는…”
“ 곧 만날꺼에요.”
“ 아, 예…”
“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조용히 말끝을 흐리는 린아. 바라보는 천화의 눈빛이 궁금함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린아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 여기살면…심심하지 않아요? 다시 치악산에 오게되면…”
“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요. 심심할 틈이 없을 정도로.”
“ 아. 그래도 또 놀러와도 되죠?”
“ 먼 훗날에…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세요. 여긴 오래 머무를 공간이 없으니, 잠시 스쳐가도 슬프지 않도록…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세요.”
그것이… 린아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잠들기 전, 흐릿한 시야에 비친 린아는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볼에 흐르는 눈물은 내것이었을까… 린아가 떨군 것이었을까…
“ 천화야!!!!”
환희는 천화임을 확인하고 그의 볼을 두드리며 외쳤다. 다친곳은 없는 것 같았지만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 천화야, 정신차려!!”
환희는 자켓을 벗어 천화에게 덮어주고 무전기를 꺼냈다. 날이 조금씩 밝고 동료들이 올때까지 환희는 천화의 곁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윤성이도 근처에 있을꺼라 확신했지만 자신이 아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자리를 뜰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때 동공에 저쪽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친구의 모습이 비쳤다.
“ 환희야! 괜찮아? 일어설수 있겠어?”
“ 나보다 우선… 천화 좀…”
등산로를 벗어난 탓에 천화와 환희는 그렇게 한참 후에나 구조가 되었다. 추위와 긴장 탓인지 환희는 발견 즉시 정신을 잃었다.
차분한 베이지톤의 커튼이 눈앞에서 흔들린다. 편안한 기분에 머리를 쓸어올리려 하는데 자신의 팔에 링겔이 꼿혀 있었다.
“ 아- 천화. 이제 정신이 드냐?”
“ 선배…”
“ 다행이야…”
환희가 이불을 끌어주며 말한다. 그의 얼굴이 많이 초췌하다.
“ 어떻게 된거에요…”
“ 비 피하면서…등산로를 벗어났던 모양이다. 나도 어쩌다가 발견했어. 천화 네가 나무밑에 쓰러져있더라.”
“ 나무 밑이라니… 저는 윤성이랑 함께 사찰에…”
“ 윤성이……죽었다…”
The moon. 창백한 여자의 나신과 빨간 꽃게.
민우의 부름에 천화는 덱을 주머니에 넣고 돌아섰다.
“ 선배 뭐하느라 늦었어요.”
“ 아...미안. 야야 빨리가자.”
천화의 말에 민우는 삐죽이면서도 금새 그의 뒤를 따른다. 첫 등반부터 치악산이란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선배가 경험이 있다고 하니 그나마 안심을 하는 민우였다.
…선배는 오래전부터 치악산에 꼭 가고 싶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것조차 거짓, The end.
[*] The moon: 상상의 여행, 알 수 없는 것에 이끌림, 거짓말, 위험, 불안정,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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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써 보는 거라 너무 어색하네요. 공백도 너무 많은 것 같고 길이도.. 아무쪼록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되시기를..
첫댓글 타로카드네요.. 더 문..잘못된 만남을 뜻하는..ㅋㅋ
오호~!!!타롯카드~!!!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건필하세요~!!^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