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국어원이 있다. 그곳 홈페이지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하면 '근로'는 '부지런히 일함', '노동'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로 각각 정의되어 있다. 노동절을 앞두고 누군가가 국립국어원에다 노동자와 근로자의 용어 사용에 대해 질의하자 답변하길 노동자 대신 근로자로 쓰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단다.
누라꾼들은 국립국어원 답변이 못마땅해 그럼 정부의 ‘고용노동부’는 ‘고용근로부’로 다듬어 써야하지 않느냐고 발끈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다듬어 쓰라는 권유가 없다는 등 비판 의견을 쏟아냈다. 논란이 커지자 국립국어원은 '노동자'와 '근로자'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고 서둘러 정정했다. 트위터 담당자가 근로자를 노동자의 순화어로 착각해 잘못 답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립국어원 설립 목적은 누리집에 “합리적인 국어 정책 추진에 필요한 체계적 조사, 연구와 언어 규범 보완 및 정비를 수행하고 국가 언어 자원을 수집하여 통합 정보 서비스를 강화함으로써 국민 언어 생활의 편익을 증진하며 국민의 원활한 의사소통 증대를 위하여 국어 사용 환경을 개선하고 한국어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설립되었습니다.”라고 밝혔다.
국립국어원은 차관급 원장을 비롯한 여러 직원들 가운데 박사급 원구원도 다수인 것으로 안다. 그곳은 국민의 표준 언어생활을 지원하고 국어의 정보 서비스를 강화시켜준다. 국어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국어사용 능력 향상을 위해서 애쓴다. 소외계층을 위한 언어복지와 인터넷과 방송언어 순화에도 많은 관심을 가진다. 국민의 국어능력 향상을 위한 전문 연수과정도 있다고 들었다.
오월 첫날은 노동절이다. 대다수 기업체는 휴무다. 학교와 공공기관을 제외한 금융기관과 공기업에서도 하루 쉰다. 하필 이날을 앞두고 짓궂은 누리꾼이 던진 개인이나 단체의 의식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예민한 질문에 성급한 답변을 해 국가 기관 체면이 구겨지고 정정 보도 자료를 냈다. “노동자와 근로자는 모두 사용해도 좋은 말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모두 등록되어 있다고.”
‘근로자’는 고용주 입장을 대변하고 보수적 성향 사람들이 쓰길 좋아하는 말이다. 반면 ‘노동자’는 투쟁적이고 진보적 이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합한 말이다. 같은 대상을 두고 표현하는 어휘가 무엇이냐에 따라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성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사례가 ‘근로자’와 ‘노동자’다. 달력에는 5월 1일이 대개 ‘근로자의 날’로 표시되어 있다만 ‘노동절’로 일컬음이 대세다.
나는 이참에 ‘근로자’니 ‘노동자’니 편 가르기 식으로 부르는 것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용어로 통일시켰으면 싶다. 이 일을 국립국어원에서 맡아주었으면 한다. 국립국어원은 국어 사용 환경 개선과 한국어 교육의 수준을 높이는 일 뿐만 아니라 재외 동포의 한국어 교육과 통일 시대를 대비한 어문정책까지 내다봐야 할 아주 중요한 기관이다. 그곳에서 나서면 충분히 될 일이다.
나는 ‘근로자’와 ‘노동자’를 대신할 말로 낯설거나 어렵지 않은 ‘일꾼’으로 불렀으면 한다. 얼마나 쉽고 편한 말인가. 표준국어대사전 검색에 ‘-꾼’은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또는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어떤 일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 또는 ‘어떤 일을 즐겨 하는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어떤 일 때문에 모인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이런 사설시조가 전한다. “댁들에 동난지이 사오. 져 장스야, 네 황후 긔 무서시라 웨는다, 사쟈. / 외골내육(外骨內肉) 양목(兩目)이 상천(上天) 전행후행(前行後行) 소(小)아리 팔족(八足) 대(大)아리 이족(二足) 청장(淸醬) 아스슥하는 동난지이 사오. / 쟝스야, 하 거복이 웨지 말고 게젓이라 하렴은.” 뭐 그리 어려운 말 늘어놓지 말고 ‘게젓’이라 하면 되듯이. 그냥 ‘일꾼’이라 하면 될 걸. 14.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