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夕陽)에 물든 금호강
김시종
ksjong4321@hanmail.net
금호강에 해가 저문다.
석양에 물든 강물이 햇살을 받아 은쟁반처럼 찬란하다. 강변에 저녁노을이 짙어 갈수록 석양은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는 듯했다. 강바람이 불어온다. 물결이 바람을 타는 듯 파도처럼 밀리어 왔다가 썰물같이 퍼져 나간다. 강물이 출렁거릴 때마다 너울을 만들었고, 노을에 물든 강물은 강줄기를 따라 멀리멀리 멀어만 갔다.
서쪽 하늘에 붉게 물든 석양은 서녘 지평선을 붉게 달구고 있다. 노을 진 금호강에 어둠살이 깔리면 강변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강기슭을 따라 옹기종기 흩어진 산자락의 초가집마다 솜털 같은 조개구름이 몽실몽실 산자락을 적신다. 이때쯤이면 고기잡이 나갔던 통통배가 그물을 걷어 동구 밖 나루터에 정박할 때다.
오랜 세월이 지난 노곡동, 조야동 주변 풍경이기도 했다. 세월은 강물 흘러가듯이 지난 옛이야기가 그 시절 금호강 언저리의 운치이기도 하였다. 지금은 그 풍광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아련한 추억 속에만 머물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첨단산업의 발달로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탐사하는 시대다. 작금처럼 미묘 복잡한 사회를 생각하면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예전에 먹거리가 부족할 때는 그래도 이웃 간 정의 문화가 충만했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싶다. 요즘 아파트나 공동주택의 집단생활 속에 소음 문제로 살인극이 벌어지는 비극이 현실화 되어가는 세태가 아닌가? 그래도 아직 농촌은 이웃 간에 인정을 베풀고, 예의범절을 지키며 서로 소통하는 집단적인 생활을 영위(營位)하고 있다.
인간 사회에 정(情)의 문화가 공존하는 것은 인륜의 미래가 지향하는 점진적인 생활 방향이 아닌가 싶다.
금호강의 지류인 신천은 언제나 맑은 물이 흘렀다. 한여름에는 개구쟁이들의 놀이터로 물장난을 치는 수영장이 되었고, 해 그름 해 질 때면 아녀자의 빨래터가 되었으며, 일몰하면 홀랑 벗고 목욕을 즐기던 신천이었다.
신천은 무태에서 금호강을 만난다. 합수된 물길은 두물머리에서 낙동강과 합류하여 칠백 리 뱃길을 따라 세월 가듯이 남해로 흘러만 간다.
장마철에 폭우라도 쏟아지면 강변 사람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천 부지에 경작한 농작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일이 비일비재 했었다. 대구에 200mm 폭우가 쏟아지면 금호강은 황토 강으로 변한다. 어린 시절 범람한 강물을 구경하기 위해 날뫼 언덕바지에서 내려다본 금호강은 경부선 철로를 삼킬 듯 노도와 같았다. 수량이 많아지고 유속이 빨라질수록 상류에서 떠내려 오는 가재도구며 돼지, 사과나무가 뿌리째 뽑히어 둥실둥실 떠 내려와 팔달교 기둥에 부딪히며 낙동강으로 흘러갔다. 수확이 가까운 사과나무에는 국광이며 홍옥 등의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채 황토물을 뒤집어쓰고 떠내려왔었다.
어린 나이에 범람한 강물이 무서운 줄 모르고 매미채로 떠내려 오는 사과를 건지기 위해 장대 같은 비를 맞으며 다리 난간에 선 자화상을 돌이켜 생각하면 아름다웠던 추억의 한 토막이 눈앞을 스치는 듯 아련해진다.
금호강은 대구의 남과 북을 가르고 있다. 강북 쪽은 농촌 마을이었고, 강남 쪽은 주택이며 모든 생활 여건이 형성된 도시로 발전했다. 당시 대구의 인구는 30만 전후가 아닌가 싶다.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다리는 팔달교와 아양교가 있었지만, 지금은 조야교, 노곡교, 서변대교 등 많은 교량이 신설되었고, 강북의 생활 문화도 많이 변모했다. 먹거리가 풍부한 지금에는 산수 좋고 풍광이 어우러진 농촌을 찾은 사람이 점차 증가하는 듯하다. 이들은 생활 전선에서 물러난 6070세대는 경관이 좋은 지역을 찾아 전원주택이며, 펜션 등지에서 텃밭을 가꾸며 노후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는 노인층도 있다고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것도 내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구국, 호국정신으로 헌신한 7080세대가 아니었던가?
해방 전 어린이가 이제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이 되었다. 이제 그들은 노년기에 병마와 씨름하며 무정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증가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지금 요양 병원에는 7080세대가 투병 중에도 삶에 대한 애착심을 지닌 체 병석에 누워 있는 노인이 늘어 가는 추세다. 젊어서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치며 출가시키고 나니 정녕 노후 대책을 세우지 못한 노인층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늙은 것도 서러운데 병이 들면 자식들마저 부양하기 싫어 요양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세상인심인가 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고유한 풍속은 사라지고 개인적이고 이기주의가 극도로 팽창함에 따라 노령에 가진 돈이 없는 노인들은 자식으로 부터 외면 받는 작태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 오는 듯 서글픈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삶에 대한 욕구가 충만하다. 비록 병석의 환자일망정 생에 대한 욕망은 간절하듯이, 그것 또한 인간의 심성(心性)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석양에 물든 강물은 세월 가듯이 유유히 흘러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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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녕하세요? 봄 문학기행 다녀온후 수성못 상화문학제에서 뵈었지요.
예 방문 감사 합니다. 송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