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이라고 하면 의림지의 공어회를 연상키 마련이지만 실제로 알고 보면 유명한 것이 두가지 더 있다.
제천은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 육상 운송의 주력 이었던 철도의 요충지 즉 요즘 말로 하는 역세권 이었던
탓에 유순한 사람들이 사는 충청도 땅 이지만 의외로 깡패가 많이 드글 거렸다. 깡패란
말은 영어 깽(gang) 과 무리 즉 패거리의 합성어 이고 두번째는 제천고와 육사를 14기로 졸업한 민정당
시절의 이 춘구 국회의원 인데 이 분은 청렴이 지나쳐서 일체의 검은 돈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당 소속
의원들도 무척이나 어려워 하고 가까이 하길 꺼렸다고 한다.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은 매미 처럼 이슬만 먹고 살라고 매미 날개 처럼 생긴 익선관 이란 관모를 씌웠다고 하는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춘구 의원께선 평소의 식사가 찬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이 전부 였다고
한다. 내무부 장관인가 하던 시절 집안의 형님이 생활고로 돌아 가셨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어렴풋 하다.
그리고 충청도라고 하면 유순한 어떤 이미지를 떠 올리지만 산은 그와는 정반대 이다. 엄청도란 말이
나올 정도로 대부분의 산이 초장 까락 부터 엄청나게 가파르다. 오늘 우리
느림보가 청풍면 학현리에서 미인봉을 향해서 오르는 등정 코스 또한 초장 댓바람에 입에 단내가 나면서
가파른 벼랑 아래를 우연히 내려다 보노라면 오줌이 나올 듯 말 듯 하면서 꼬추 끄트머리가 짜릿 짜릿 하다.
오늘의 산행은 미인봉과 학봉 그리고 신선봉을 경유하는 도마뱀 등껍질 같은 암릉 산행인데 산봉우리 이름이
참으로 특이하다. 신선봉이나 십장생의 하나인 학봉은 그렇다 치고 미인봉의 또 다른 이름이 돼지 저자에
오를 승자를 써서 저승봉 이라 한다. 그리고 저승봉 바로 목전에 자그만 팻말이 붙어 있었는데 저승봉 암벽
등산코스 라고 하며 화살표를 그려 두었다. 저승으로 간다는 얘기인 듯 해서 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산 이름에
돼지 이름이 나오는 건 가까운 이천에 있는 도드람산이 유명하다. 돼지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하여 저명산
혹은 제명산 이라고도 불리웠는데 개 즉 개새끼를 연상 시키는 산이름은 여태껏 들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개의 나쁜 이미지 탓일 것이다. 개는 성장하여 어미와 같이 살게 되면 마당에서 틈만 나면 어미 등에
올라 타서 뽐뿌질을 해 대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개 같은 놈이니 개새끼니 머니 하면서 욕지꺼리를
하는데 오늘 산행기는 작가 천 승세의 단편소설 황구의 비명 이란 글이 갑자기 생각나는 탓에 주제를 개로
함 잡아 보지요 무어.
개는 셰퍼드 처럼 주둥이가 늑대 처럼 긴 종류와 불독 처럼 입이 뭉툭한 두 종류로 대별 되는데 불독 종류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교잡종 이다. 불은 영어로 황소(bull)를 뜻한다. 고대 서양에선 참으로 하릴 없는
개같은 새끼들이 황소하고 개를 싸움 붙였는데 개의 주둥이가 늑대 처럼 뾰족하면 황소의 뱃가죽을 물지
못하기 때문에 백상아리의 입 처럼 뭉툭하게 맹글어 버렸는데 이렇게 주둥이가 뭉툭한 종류는 대부분
개이름에 투견 핏불 처럼 불이란 말이 반드시 들어 간다. 개는
여러가지 몸짓언어 즉 바디랭귀지를 사용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 몇가지만 소개하면 개는 반가우면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들지만 고양이는 공격을 하겠다는 표시로 꼬리를 흔들고 개가 위협을 느꼈을 때 꽁지를
아래로 내리는 이유는 뒷쪽에 있는 생식기가 가장 상대의 공격으로 부터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네나 탄천 시냇가를 걷다가 갑자기 개의 공격을 받았을 경우에 도망을 치는 건 금물이다. 개의 걸음이
사람 보다 빠르기 땜에 금새 따라 와서 취약한 발뒷꿈치를 물어 뜯기기 때문에 개가 달려 들면 정면으로
마주 쳐서 몸을 아래로 굽혀서 땅에 있는 돌이나 몽둥이를 잡는 시늉을 하면 특별히 훈련 받은 개가 아니면
대부분 뒤로 물러 선다. 그리고 개들이 마당에서 놀 적에 큰 개가 나타 나면 작은 개는 배와 목을 위로 드러
내고 땅바닥에 누워서 꽁지를 흔드는데 이는 나의 급소인 목을 너의 손에 맡긴다는 즉 항복이나 복종을
뜻하는 의미이기 때문에 큰개는 절대로 물지 않는다고 한다.
영화배우 브리짓드 바르도는 우리나라의 보신탕 문화에 대해 거의 야만인 수준으로 잇빨을 드러 내며 몰아
세우는데 조선시대에는 소는 우선 도축이 금지 되어 있어 허가를 득해야 잡을 수가 있었고 돼지는 워낙이
귀해서 잔칫날이 아니면 먹을 수가 없으니 유목을 하지 않는 우리는 개고기를 먹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북한에서 개고기를 단고기라고 하는 것은 맛이 단맛이 날 정도로 기가 막히게 좋다는 뜻이고 개의 고기는
아미노산 조직이 사람과 흡사하여 소화 및 흡수가 뛰어 나게 좋기 때문에 병후 회복엔 최고의 음식이다.
포카리 스웨터나 링거 주사가 수분흡수와 갈증해소에 뛰어 난 것과 비슷한 논리인데 개고기를 넣고 끓인
국을 요즘엔 멍멍탕,사철탕,영양탕,계절탕,구탕, 국 갱자를 써서 구육갱,견육갱, 코메디언 심 형래가 기르는
개의 이름을 따서 땡칠이탕 등등이 있는데 개장국이 바른 표현이고 일제시대에 들면서 소고기를 많이 먹게
되면서 소고기로 끓인 국이 육개장이 되었고 닭은 닭개장이 되었는데 개장국의 장은 젓갈 장자를 쓰고
해장국의 장은 창자 장자가 아니라 된장을 풀어 넣는다고 해서 된장 장자를 쓴다.
예전에 경기도 파주에는 용주골이란 유명한 집창촌이 있었는데 껌둥개나 백구들 한티 몸을 파는 양공주들도
많이 살았던 가 보다. 우리는 미군들에게 몸을 파는 여자들을 좋게 말해서 양공주 혹은 양색시라고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남자의 피를 빨아 먹고 산다고 하여 빈대 갈자를 써서 양갈보 라고 하지만 이차대전에 패망한
일본은 진주해서 들어 온 미군들에게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몸을 팔았는데 귀한 딸라의 벌이처로 존대를 할
따름이지 우리 처럼 더러운 년들이라며 절대로 개무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용주골에서 자그만 체구의 얼굴이 노오란 황구가 딸라 몇 푼 벌어 보겠다고 등치가 엄청나 백구나 먹구 밑에
깔려서 외마디 비명을 질러대는 양깔보들의 애환을 적나라 하게 그린 그 모습은 어릴 적에 동네에서 봤던
그 광경을 연상 시키는 걸로 대체를 하고 개새끼를 가축이 아니라 가족으로 착각을 하여 개를 보고 이리 와
이리 엄마 한테 이리 와 하는 몇 몇 개 보다 못한 어미개 두마리를 소개 하면서 이바구를 마무리 하졈.
예전에는 내 요강은 깨끗하다는 놈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대세가 우리 개는 절대로 안 깨문다면서 개 대가리에
빠마와 염색을 하고 신발과 옷을 입혀서 산책을 많이 나오는데 약 일주일 전 아침에 탄천 산책을 마치고
주택가 뒷길에 접어 들어 등산모를 깊게 눌러 쓰고 사색을 한답시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목줄도 하지 않은 개가 으르렁 거리며 내 발목을 물려고 뛰어 든다. 개가 잇빨을 드러 내는 건 물겠다는 의사
표시이지 장난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 까진 참고 넘어 가겠는데 옆에 있던 내 나이 또래의 어미개
한마리의 대응이 사람 허파를 뒤집어 놓는다. 개의 목줄을 채우거나 안아 버리고 나서 죄송하단 말 한마디만
하면 그냥 지나 칠 일인데 사과 한마디 없이 얘야 이리 와 하면서 그냥 지나 치는데 이 개새끼는 뒤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재차 삼차 공격을 시도 한다. 몸을 아래로 굽혀 땅바닥에 있는 돌을 집어서 던지는
시늉을 하니 그제서야 개새끼가 도망을 친다. 함께 도망 치는 어미개의 등에 대고 야 이 개새끼야 니 애미와
집을 팔 놈의 개새끼야 하면서 몇 십년만에 처음으로 심한 욕지꺼리를 원 없이 했는데 결정적으로 심하게
내 뱉은 욕은 이곳 느림보 카페는 강 대장님께서 워낙이 십구금 머머 하면서 관리를 하는 통에 느림보님들이
이미지가 충분히 떠 오를 수 있는 아래와 같은 대체표현으로 가름 하겠습니더.
서양에선 동네에 길고양이나 유기견이 많아 지면 노처녀가 과부가 많아 졌구나 하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특히나 고양이과 동물은 사람들 처럼 아래 턱이 좌우로 움직이지 못하고 상하 로만 톱 처럼 베어 물 수가 있는
연륙칠를 가졌기 때문에 뼈에 붙어 있는 작은 살점의 고기를 처리 하기 위해 혓바닥에 까칠 까칠한 가시가
돋아 있다. 고양이과 동물이 혓바닥으로 쓰윽 핥으면 자지러 진다고 합니다.
야 이 개새끼야 그 주둥이로 내 발목을 물 것이 아니라 길냥이 처럼 니 애미년 ... 흐 흐.
우연일까? 아니면 개과 동물들과 어떤 악연이 있는 걸까? 그 며칠 후 그러니깐 지난 일욜날 관악산에서 친구들
모임 산악회 시산제를 마치고 사당역으로 하산을 하는데 어느 주택가에서 개새끼 한마리가 또 뛰어 든다.
목줄을 하긴 했는데 줄이 늘어 지면서 개새끼가 공격을 멈추지 않는데 개 어미년은 개를 제지할 생각은 않고
자신은 개 목줄을 했기 때문에 조금 늘어 지긴 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개새끼는 누런 잇빨을
드러 내고 계속 물려고 덤벼 든다. 이번엔 개어미란 욕을 하지 않고 내 평생 처음으로 여성의 면전에 대고
이 집팔년이란 쌍욕을 하는 죄업을 저질러 버렸다.
노가다판에선 비 오는 날은 공 치는 날 혹은 흔들리면 한잔 하면서 비 오는 날은 일을 하지 않고 술을 한잔
하곤 몸을 흔들 거린다. 오리역에 당도하여
유명한 빈대떡 집에 가니 만석이다. 아마도 비가 오니 빈대떡 신사가 되곺은 가 보다 건너 편 빈대떡 집에서
겨우 한자리 얻어 느림보의 몇 분 산동무와 좋은 시간을 보냈다. 만개한
청풍호의 벚꽃이 비바람에 흩날릴 까 걱정 된다.
분당 탄천변에서 한마리 조선빈대 돌삐 드립니다.
첫댓글 벚꽃 피는 저녁..빗소리에 취해 오리역 빈대떡집에서 저녁술이 과하셨던건 아니시지요?
좋은 벗들과 술 한잔하기엔 좋은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술김에 써내려간 건 아닐까..수위조절 하시랬더니 빨랫줄 바지랑대처럼 점점 높아만 갑니다. ㅎ
혹여 점잖으신 느림보님들 얼굴 붉어지실까 염려되옵니다 ㅎ
잘 읽었읍니다
나중에 이 글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냅시다
나도 일조를 하리다
다음 산행이야기를 기대해 봅니다
돌삐 대장님과 후미에서 헉헉거리며 급경사 오르느라 힘들었습니다.
만장일치로 신선봉 패스~
묘지에서 바라보니 손에 닿을듯 느림보 버스가 서있었다.
빠른길로 하산하려니 생각했던건 착각~
하산 첨부터 끝까지 밧줄의 밧줄~
이런 유격훈련은 지금껏 없었습니다.
든든한 돌삐대장님 호위로 안산 즐산 했습니다.
산행일기도 잼나게 잘읽었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