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 역사의 전환기
발췌: 옥구장씨대종회(沃溝張氏大宗會) http://cafe.daum.net/ockujang
지금으로부터 250여 년 전에 간행 되였던 장명천의 팔관장씨(八貫張氏) 족보로 인해 한국 장씨의 역사는 진실을 왜곡한 오류 투성이 족보가 지난 250여 년간 수백 만 권 편찬 발행되어 왔습니다.
지난 8년 여간 장씨 종족사를 바로세우려는 뜻있는 분들이 족보 고증과 역사 고증 그리고 줄기찬 홍보 활동으로 이제는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50년의 역사와 수백 명의 회원과 수많은 장씨 유명 인사들이 관여해온 장씨대종회중앙본부가 해체되느냐 아니면 한국장씨총연합회로 개편되느냐의 기로에 서있으며 지금은 폭발전야의 정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금년 74세의 옥구장씨(沃溝張氏)로 충숙공 화수회 사무총장 입니다. 옥구장씨는 흥덕계(興德系) 씨족입니다. 옥성부원군(玉城府院君) 장만(張晩) 도원수의 사우(祠宇)가 있는 통진에 살고 있습니다. 옥구장씨 시관조(始貫祖) 옥성군(沃城君)과는 구슬옥(玉), 기름질옥(沃)으로 옥자만 다릅니다. 장씨 역사를 9년째 고증 추적하고 있고, 8년간 인동대종회장을 지내신 장병화씨와 긴밀히 교류 중입니다. 한국 91만 장씨들에게 잘못 전해진 뿌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려 노력 중입니다.
끈질긴 개인적인 각고의 노력으로 한국 장씨 역사가 바로서는 계기가 되기를 염원합니다. 기대하십시오.
우리나라 장씨는 뿌리가 전혀 다른 인동계(仁同系), 흥덕계(興德系), 안동계(安東系)의 삼대산맥과 여러 장씨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며, 인동계가 2/3인 59만여 명이고 흥덕계가 15만여 명, 안동계가 9만 여명이며 아라비아계인 덕수장씨(德水張氏)가 2만여 명이고 나머지 기타씨족은 어느 계열인지 불분명합니다.
옥구, 옥천, 흥성, 결성, 단양, 여흥, 순천, 연좌공파, 나주, 붕한공파는 흥덕장씨 계열입니다.
2008. 1. 19 충숙공 화수회 사무총장 장병관
인동(옥산)장씨 대표카페 Cafe.Daum.Net/JangGround
우리 인동(옥산)장문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전 종인이 힘을 모읍시다.
첫댓글 그동안 범장씨 대종회중앙본부에서 줄기차게 주장해 온 우리나라 장씨는 장태사 후손이란 논리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각 관 장씨마다 조상대대로 전승된 뿌리의 역사를 왜곡 날조한 행위는 비판 받아 마땅하며, 이제부터 각 관 장씨들은 진실을 바탕으로 서로 존중하고 각 가문의 뿌리를 인정해 주는 아름다운 풍토를 만들어 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 생각합니다.
양측 남자 다섯명만 골라서 DNA 검사 하면 되는데 뭘 이렇게 어렵게들 푸시는지요?
ㅎㅎㅎ...!! 올은 말씀입니다 왜~! 그리도 답답한지 뭐가 겁이나 그리들 한지 무슨 말못할 사연들이 숨겨 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간단하고 쉬운 첨단 과학을 왜들 그리 꺼리는지~ 넉넉잡고 한달이면 명확하게 밝혀질 일들을...
답답하거나 겁날 것도 없지요... 허나 우리 선대 조상님들께서 물려주신 기록 이 외의 그 무엇이 그리도 궁굼 하십니까?! 지난 영조(英祖)39년(1763년)에 자신들의 선대기록이 불분명한 이북에사는 어느 장씨가문 및 그저 그런 몇몇 장씨 가문에서 억지로 끼워 맞춘 왜곡된 족보를 보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물론 갑오경장 이전까지 성을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이 왜정시대의 호적령이 제정되면서 인동장씨로 우리와같은 관향성씨를 쓰게되어 같은 혈족이라 억지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에 부하뇌동한 여러장씨들이 1960년대에 "전국장씨대종회"란 것을 조직하여 타 성씨에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그 번성함이 부족한 장씨가문을 대동단결시켜서 그 무엇을 얻고자 한 사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에 혼란을 겪는 종현들이 많이 계신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龍雄종문님~! 제가올린 뎃글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음 양해하시고~ 종문님께서 올리신 글 보면서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뭐가 올코 그릇된 점을 떠나서 어렵고 힘들게 한다는 느낌이 와서 몇자 적어봤습니다 몰론 우리 인동[옥산]일가님들의 심기를 언짠게 할려고 한건 아니고 더더욱 우리 선조님들께 불경을 드린다는 언지의 말씀은 너무 과한 말씀 같습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의견은 선조님께 불경스런 점은 없을줄 알고요 되려 선조님들께서 칭찬할 일 같군요 우리 인동 종문의 후예들이야 대종회의 결과에 따르고 순응 한다지만 타관 8관 장씨들의 잘못된 상식을 일거에 바로잡을 수 있는 첨단의 과학이 있는데
물론 일선에서 타 집안과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실려고 애쓰고 노력한 분들이 있기에 지금의 문제점들이 표출되어 표면상으로 나타난게 아닙니까 ? 꼭 제가 생각한것이 올타고는 보지 않지만 그래도 뚜렷이 시비가 가려지는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하는 심정에서...... 그래야만 우리 인동에서 8관 장씨들에게 특히 안동장씨 들의 주장을 일거에 파헤칠수 있잔습니까 혈맥은 아주 소중한 선조님들의 소산물이죠 얼토당토 않는 안동의 주장을 지하에 계신 선조분님들께선 일련의 사태를 보시고 뭐라고 하실지 그런 고심을 하고 있는 중에 제영종문님의 글을 보고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 끝에 뎃글을 달았는데 룡웅종문님께서 선조님들에
대한 불경 운운하니 어떠한 부분이 불경죄에 해당하는지 저는 감이오질 안습니다 나만의 생각이 올타고 무조건적으로 강요 내진 부정으로 치부해선 금물일것 같군요 한 할아버님의 자손 이지만 수많은 종문님들의 생각이 일률적으로 통일되는건 아니죠 많은 사람이 있다보면 많은 의견도 제시 될 거고요 그중에서 제일 타당성 있는 의견을 골라서 행하는것이 요즘의 세상사가 아니나요 나 또한 그러한 의견을 말할 권리는 충분하고요 제차 말씀 드리지만 선조님들에 대한 불경은 추허도 한 일이 없네요....유전자 검사는 우리의 친족을 밝히는데 아주 유용한 첨단의 과학입니다 우린 아닌데 저쪽에서 자꾸 허위 날조하니 여기에 괜한 여력을
낭비할 수 없잔습니까? 나의 생각으론 다른 8관장씨 들의 개념은 요지부동이죠 안동으로선 더욱그렇고요
저의 객관적이지 못한 주제넘은 댓 글이 濟榮현종님과 鳳基현종님께 큰 결례가 되었습니다… 정중히 사죄 드립니다… 다만 선대 조상님에 대한 추측이나 추정되는 이야기를 함부로 되뇌이다 집안 어른들께 큰 경을 친 어릴 적 기억으로 그만 제 주관적인 생각을 적었습니다… 두 현종님께서 해량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지웠습니다... 다시 한번 사죄 드립니다… ㅡ꾸벅ㅡ
아닙니다 저 또한 잘한 것이 없습니다 선조님들에 대한 공경심이 높다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자세죠 그렇지 못한 저의 불찰입니다 저 역시 죄송합니다......꾸벅~~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에 장보고 대사가 우리 할아버지인데 계속 부정을 한다면 조상님들께서 우리 앞날을 축복하시겠어요? 밝힐 것은 차라리 밝히고 넘어갑시다 술값만 한 오백 쓰면 공짜로 검사해 주겠다는 의사선생님도 있어요 500을 100으로 좀 사정해서 낮춰야 하겠지만
빛나는 얼을 남기셔서 우리 한민족의 위인으로 추앙 받으시는 장보고 장군께서는 그 후손의 정확한 기록이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어느 문중이 장보고 장군의 후손 집안 인지요??
제영문님 한말씀 올리겠습니다 외람되지만 이런 허무에 글을 올리시는 걸 자제하였음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민족의 역사에 찬란히 빛난 장보고대사님이 우리의 선조였음 하는 생각은 나 또한 한번쯤 갖어보았죠 그러나 그건 아주 어릴때 우리의 집안 역사를 모를때 일이고요 엄연한 역사의 고증이 있는 지금에도 8관 장씨들이 주장하는 그런 말에 현혹되어 만인이 보고 있는 소중한 우리 인동[옥산]문 카페에 올리심은 조금은 생각할 일입니다 장보고대사는 우리 인동과의 관계는 전혀 없고요 안동과는 더더욱 없습니다 장보고대사는 슬하에 아들은 없고 딸만 있었지만 왕비추대로 반대파벌의 자객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대 무슨 후손
입니까~~! 장보고대사는 우리 인동과 안동의 그 어떤 장씨와도 연관이 없습니다 특히 안동에서 주장하는 장보고대사가 안동의 시조공의 증조부로 그들의 족보에 기록하고 있더군요 허구에 지나지 안는 기록이죠 장보고 대사는 월래 성은없고 그냥 궁복이란 이름뿐이였는데 어떻게 안동의 시조공의 선조라고 감이 말할 수 있을까요 정필공은 신라로 들어올때 부터 장씨성을 갖고 들어 왔지요 또 그리고 정필공의 원래 본은 오월국 절강이 본으로 생각됩니다 그의 조부께서 오월국의 왕자의 난을 피해 지금의 함경북도 청진내지는 만주봉천 근방에서 살다 본국이 평정을 되찾자 입국했지만 정세가 불안하여 다시 우리나라 강원도 강릉
근방으로 재차 피신해 오며살다 조부께서 작고하시고 혼자 남아 점차 내륙으로 들어와 지금에 구미근방에 살다 청장년쯤에 다시 절강으로 들어가 벼슬을 했다지만 기록에는 없고 신변에 위험을 느낀나머지 재차 우리나라로 도래 했다는 문언을 자기네 족보 문헌 서문에 기록해 놓고 이제와서 말을 바꾸면 과연 누가 그 말을 믿겠습니까 그리고 얼마전에 평산신씨[신숭겸]대종회와 평산유씨[유금필]문중에서 폐낸 그 집안만의 유래의 내용 이였지만 내용중에서 잠깐 언급했던 장정필 공의 출신내력도 짧막하게 피력한 부분이 있어 살펴본 결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안동 시조공의 약력에 모순점이 많다는걸 알았죠 알려진 것과는
너무도 판이한 내용들 이라서 간단하게 말씀 드리자면 그때 즉 신라 말엽에 그지방의 토호에 불과 했는데 관작을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여서 제일 신빙성 있는 부분은 왕건 태조의 스승직인 태사란 직 이것도 벼슬이나요~~ 허니 앞으론 8관 장씨측에서 주장하는 그런 내용들로 교묘히 이용 당하질 않길 부탁 드립니다 죄송 합니다 주제넘은 말씀을 드려서~~
역사에는 왜곡이 너무 많다는 것이 저의 기본적 관점입니다. 배복신 3성과 유씨 등은 고려조의 개국일등공신이었고 안동의 김 권 장 3성은 이등공신이었습니다. 따라서 일등공신 집안에서야 이등공신 집안의 기록을 그렇개 훌륭하게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갔다 온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었군요 저 자신은 이런 모든 것들을 가지고 말로 싸울게 아니라 과학의 힘을 빌리자는 것이지요
종친회원님들 반갑습니다~~까페지기 장승원입니다.이 논리는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사항입니다.어떤것이 정확한 내용인지는 누구도 알수가없습니다..과학의 힘을 빌리던 검증된 자료문헌을 찿던 상대방이 우기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수밖에 없는것 같습니다,...나라의 역사도 왜곡되는 점을 감안하면 한 문중의 종족사 왜곡은 아주 쉬운일이였을것입니다...
언젠가는 모든것이 밝혀지겠지요.....오늘은 불천위 충정공 安자世자 할아버지의 제사가 있는 날입니다. 종가에서 지내는 가장큰 제사입니다..종친회원님들도 1년후..10년후 언제라도 좋으니 한번오셔서 음복이라도 하시길~~~
죄송합니다 ~~!! 그렇군요 종택은 몇번 방문을 했지만 오늘이 충정공 諱 安 世 府君 할아버님의 제사날 인줄은 모르고 살아왔네요 청명 대제날 합동으로 모신줄로만 알고 있었으니 참으로 바보스런 생을 살아왔다는 걸 이제서야 일께웠습니다 비록 음복은 못할 지언정 종가에서 몇대 할아버님까지의 제사를 모시고 제사 날짜정도는 알고 있어야 도리 이고 그날 만큼은 언행과 행실을 바로해야 후손으로써의 도리인데 그렇지 못한점 부끄럽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