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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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예레미야 13,1-11 주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서 아마포 띠를 사, 허리에 두르고 물에 담그지 마라.” 2 그래서
주님의 분부대로 나는 띠를 사서 허리에 둘렀다. 3 그러자 주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나에게 내렸다. 4 “네가 사서 허리에 두른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프라테스 강으로 가거라. 그리고 거기 바위 틈새에 띠를 숨겨 두어라.” 5 주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대로 나는 유프라테스 강으로
가서 띠를 숨겼다. 6 여러 날이 지난 뒤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유프라테스 강으로 가서, 내가 너더러 거기 숨겨 두라고
명령한 띠를 가져오너라.” 7 그래서 유프라테스 강으로 가 흙을 헤치고, 숨겨 둔 곳에서 띠를 꺼냈다. 그런데 그 띠가 썩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었다. 8 그때 주님의 말씀이 다시 나에게 내렸다. 9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도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그처럼 썩혀 버리겠다. 10 이 사악한 백성이 내 말을 듣기를 마다하고, 제 고집스러운 마음에 따라 다른 신들을 좇아 다니며 그것들을 섬기고
예배하였으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 띠처럼 되고 말 것이다. 11 이 띠가 사람의 허리에 붙어 있듯이 내가 온 이스라엘 집안과 온 유다
집안을 나에게 붙어 있게 한 것은 ─ 주님의 말씀이다. ─ 그들이 내 백성이 되어 명성과 칭송과 영광을 얻게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다.” 복음 마태오 13,31-35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32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33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34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35 예언자를
통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농부가 황무지를 개간해서 논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볍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며 정성을
들여 농사를 지었고 가을에는 풍성한 결실을 맺었지요. 그런데 농부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글쎄 농부의 논 바로 아래 있는 이웃의 논에도
풍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이웃의 논은 자신보다도 늦게 개간했으며, 주인이 그렇게 열심히 농사를 지은 것도 아니거든요. 농부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분명 내 논에 있는 기름진 물이 아래로 내려간 덕분일
거야.”
농부는 자신의 논에 있는 영양가 있는 물이 그 논으로 흘러 들어가는 게 몹시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겨우내 논에서
작업을 했지요. 물 한 방울도 이웃의 논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막았습니다.
다음해에도 그는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부가 생각한 것처럼
논의 벼들은 쑥쑥 자랐습니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기도 전에 농부의 논에 고인 물이 나가지 못해서 썩기 시작했고, 결국 벼들도 볍씨 하나 맺지
못하고 모두 썩어버렸습니다.
자신의 정성으로 인해서 남이 이익을 얻는다는 것을 보기 싫었던 하나의 욕심이 결국은 자신의 커다란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놓아 버린다는 것이 정말로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까지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런 욕심과 이기심은 모두를 망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인 것이지요. 자신 안에 있는 욕심과
이기심.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질 때, 비로소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시지요.
이 말씀에 당시의 유다인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 것 같습니까? “와 정말로 대단한 말씀이다.”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공감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상당히 기분이
나빴을 것이며, 마치 뭐 밟은 사람처럼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질서 정연한 것은 거룩한
것이고, 무질서한 것은 부정한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겨자씨나 누룩은 바로 질서를 해치는 부정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겨자씨는 그 자그마한 씨앗이 급속하게 퍼져서 다른 채소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또한 누룩 역시 부패의
상징으로 일상생활 안에서 불결한 것으로 표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정하고 불결한 것들을 거룩한 하늘나라에 비유하니 사람들이 좋아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사람들이 싫어할 말씀을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늘 나라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접근될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규정한 거룩한 곳에만 하늘나라가 있어야 한다는 착각을 버리라는 것이지요.
그러한 착각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하늘나라를 소유해야 한다는 이기심과 욕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이기심과 욕심이 하늘나라를 더욱 더 멀리 있는
곳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늘 나라는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는 순간, 모든 것에 내재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며, 그 하느님 체험이 바로 하늘나라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단정 짓지 맙시다. 어디에든
하느님은 계십니다.
행운의 신이 찾아가는
얼굴(박성철)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을 바꿔 보십시오.
담배
한 개비를 가지고 화장실로 뚜벅뚜벅 걸어가던 당신의 습관을, 포트에 물을 올리고 커피부터 마셔야 하루가 시작되는 것처럼 여기던 당신의 모습을
바꿔 보십시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웃어보는 겁니다.
별 즐거운 일도 없고 웃음이 잘 나오지 않는다 해도 그냥
한번 웃어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겁니다.
물론 처음에야 익숙지 않겠지만 한 달 정도가 지나면 그 웃음은 자연스러워지고 그
습관을 두 달만 지속한다면 그 웃음은 당신의 고정된 표정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생각할 때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 웃음이 될
것입니다.
삶이라는 무대로 뛰어들기 전 아침마다 지어보이는 웃음.
사소한 것 같지만 당신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행운의 신 또한 웃는 얼굴을 가진 사람은 그냥 비켜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멋진 일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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