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골목을 걸으며 그분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야겠다고 생각했다. 초가을 인가, 한여름인가부터 역사 독서 모임에
나오는 은퇴자시다. 웃음이 많고 호탕해서, 그 웃음 소리를 들을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몸도 가볍고 재빠르다 생각이 드는 분인데, 모임 때마다 집에서 드시는 커피를 내려오시기도 하였다. 그 커피를 다들 좋아했다.
그러니까 그제, 어제 모임을 알리는 메세지를 보내자 바로 답이 왔다. '내일은 병원지료가 예약이 되어 있어서 참석하지 못합니다.'
그러려니 했다. 정기검진을 받을 일도 있고, 독감이나 코로나 예방주사를 맞기도 하고, ... 병원 갈 일이야 한두 가지가 아닐테니까.
어제 모임에 참석했던, 그분을 아는 지인께서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박선생님은 3년 전에 암이 있으셨대요. 그것 때문에 검진을 받으러 다니신다는데...'
그의 경쾌한 걸음, 호쾌한 웃음소리 안에 그런 일이 있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얼마 전에 모임이 끝난 후 잠시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야기의 시작은 그거였다.
- 내가 11월에 올리는 극은 취업준비생을 다룬 작품이에요. 혹시 관심있으시면 연극 한 번 해보실래요?
연극같은 건 못한다며 거절하더니, 취준생이라는 말에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난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뒀는데...'
나는 내가 취준생을 다룬 이야기를 쓰게된 과정을 설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10년째 직업을 구하지 않고 있는 어떤 청년. 또 다른 청년... 이런 것은 사회문제이기도 하지만, 개인 차원에서 너무 힘든 시간일 거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러자, 그분은 자녀 둘이 집에 있다는 말을 했다.
'부모님이 너무 너그러우시군요.' 말했다.
'아직 20대니까.'
'시간제 일은 하나요?'
'그냥 집안 일을 거들어요. 내가 허리가 아파서 운전을 하기 어려우니까. 나나 집사람 운전해주고.... 자신들도 집에서 쉬는 거 그다지 불편해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분은 부부가 모두 은퇴하였고, 다달이 나오는 연금이 넉넉해 네식구가 돈을 쓰고 남는다는 말까지 했다. 그리곤 '괜찮더라고요. 그렇게 사는 것도....'
그런데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괜찮을 리가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타인 앞에선 모든 것을 다 솔직하게 표현하기 어려울테니까 괜찮다고 이야기를 한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
그분에게 아침임사를 전하자 생각하고, 잠시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자리에 가서, 모임방에 인사를 남겼다.
'병원 진료는 잘 받으셨나요? 화이팅하세요.'
바로 답이 왔다.
내일도, 다음 주 목요일도 병원엘 갑니다.
누군가의 인생이 다른 인생의 표본이 될건 아니지만 가끔 이렇게 아픈 시절을 건너야하는 것은 숙명인듯하다.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