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와 사랑 4 (고전 13:4-7)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계속해서 은사와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인지 15가지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다 기억하고 실천할까요? 사랑하면 다 지켜집니다. 사랑의 항목이 아무리 많고 율법이 많아도 그리고 몰라도 지켜집니다. 그래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 했습니다.
방사성 라듐을 발견하여 노벨상을 받은 폴란드의 물리학자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는 어려서부터 철이 들 때까지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하면서 자랐다고 합니다. 한 번도 어머니의 키스를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일생 폐결핵을 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딸이었지만 병 때문에 안아보지 못하는 어머니의 마음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렇게 했던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랑하면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고 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골4:6에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했습니다. 이처럼 은혜 끼치려고 하면 거기에 합당한 말이 나옵니다.
계속하여 사랑이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9.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사랑하면 당연히 악한 생각을 할 수 없지요. 어떤 사람이 625 때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찾아서 복수하려고 무술을 연마하고 수십 년간 찾아다니다 결국 원수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복수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공산당이었던 그가 돌이켜 예수 믿고 그 아들이 목회자로 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그때는 이미 자신도 하나님을 만난 때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상처가 남아 있다면 사역할 수 없습니다. 해석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실 줄 알고 사탄이 나에게 억울한 일 당하게 했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남달리 더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면서 사랑 안에서 마음의 상처를 깨끗하게 씻으시기를 바랍니다. 누구를 만나도 좋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10. 6절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11.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원문은 이 두 구문 사이에 ‘도리어’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데’가 있습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말고 도리어 선을 기뻐하라." 그런 마음이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야 바르게 자랄 수 있습니다. 칭찬을 많이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칭찬만 해도 안 됩니다. 잘한 것은 더 잘하라고 칭찬하고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데려온 자식도 자식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그 자녀에게 꾸지람 한 번 안 했답니다. '네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서 꾸지람하냐' 는 소리를 들을까 봐서, 남의 자식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내 자식처럼 생각한다면 당연히 바로 길러야지요. 잘못되면 누구 잘못입니까? 진실로 사랑한다면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12. 모든 것을 참는 것입니다.
"참는다"는 것은 4절의 오래 참는 것과는 뜻이 다릅니다. 4절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오래 참음이지만 여기, ‘참는다.’는 말은 원문에 ‘지붕’이라는 뜻에서 온 말로 그를 위해 수고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지붕이란 집입니다. 수고하기 때문에 모두가 그 아래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고후11:23-28에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그러면서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구를 위한 수고였습니까? 하나님을 위한, 한편으로는 교회와 성도를 위한 수고였습니다. 여러분이 손발이 닳도록 수고한 이유는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전1:3에 "사랑의 수고"라 했습니다. 사랑하면 수고해도 힘들지 않습니다.
13. 모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여기 “모든”이라 했듯 어떤 상황에도 끝까지 신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에게는 기초 소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남달리 투철한 어떤 장점을 기초소양이라고 합니다. 될성부른 사람은 떡잎부터 다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떡잎도 안 된 사람을 우리에게 맡기신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느 식물농장에 갔더니 옛날에는 짐승을 사육했는데 지금은 식물만 키운다고 합니다. 이유는 동물은 아프면 죽어가는 걸 보면 부담스럽지만, 식물은 죽어도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도 식물은 키워도 동물은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은 식물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잖습니까? 내 맘대로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변화하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능성이 없어도 그들이 변화될 것을 믿고 기대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밧모섬의 요한과 같이 거기는 악인들만 유배를 보낸 그런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승리했습니다. 복음화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기도하고 하늘을 쳐다보기를 반복한 것처럼 성령을 받게 하면 가능합니다.
14. 모든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여기 바란다는 것은 원문에 ‘엘피제이’ 소망을 잃지 않고 밝은 마음으로 끝까지 바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구제불능의 상황이라는 배경으로 깔려있습니다. 그렇게 힘썼지만 원하는 대로 자라주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바란다'는 엘피제이 낱말 속에는 기도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구제불능이라고 말해도, 우리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대기만성이란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으로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15. 마지막 모든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만큼 절망 상황을 시사합니다. 그만둬버릴까? 하는 생각이 수백 번 교차할지라도 사랑하기에 그 생각을 물리치고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참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도 그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죄인들의 행위만 본다면 그런 자를 위해 희생의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눅19:28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했습니다. 이 인내의 사랑은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사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자녀와 마귀 자녀의 차이는 사랑에서 차이가 납니다. 특히 어떤 직분과 은사와 사명을 받았을지라도 사랑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방해꾼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더 온전한 믿음과 사랑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가장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