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子曰 法語之言 能無從乎 改之爲貴 巽與之言 能無說乎 繹之爲貴 說而不繹 從而不改 吾末如之何也已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올바른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잘못을 고치는 것이 귀한 것이다.
완곡하게 해주는 말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실마리를 찾는 것이 귀한 것이다.
기뻐하기만 하면서 찾아내지 않고, 따르기만 하면서 고치지 않는 사람은 나도 어찌할 수 없다.”라고 하셨다.
法語者 正言之也 巽言者 婉而導之也 繹 尋其緖也 法言 人所敬憚 故必從 然不改 則面從而已 巽言 無所乖忤 故必說 然不繹 則又不足以知其微意之所在也 法語라는 것은 그것을 올바르게 말해주는 것이다. 巽言이라는 것은 완곡하게 인도하여 주는 것이다. 繹이란 그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바르게 해주는 말은 사람들이 공경하고 어렵게 여기는 바이기 때문에 반드시 따른다. 그러나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면전에서만 따르는 것일 따름이다. 완곡하게 인도하는 말은 거스르고 거역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기뻐한다. 그러나 실마리를 찾아 그 이치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 은미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에 충분하지 못한 것이다.
新安陳氏曰 如絲有端緖 尋求其端緖而思慮紬繹之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예컨대 실에 단서가 있기에 그 단서를 찾아 구해서 깊이 생각하여 실마리를 찾아 그 이치를 아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如漢武帝見汲黯之直 深所敬憚 至帳中可其奏 可謂從矣 然武帝內多欲而外施仁義 豈非面從 如孟子論好色好貨 齊王豈不悅 若不知繹 則徒知古人所謂好色 不知其能使內無怨女外無曠夫 徒知古人所謂好貨 不知其能使居者有積倉 行者有裹糧也 주자가 말하길, “예컨대 한무제가 汲黯의 강직함을 보고서 깊이 공경하여 함부로 하지 못한 바가 되어서 출정 중의 막사에 이르러서도 그의 주청을 할 수 있도록 하였으니, 그의 말을 따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무제는 안으로 욕심이 많으면서도 밖으로 仁義를 베풀었으니, 어찌 겉으로만 따름이 아니겠는가? 예컨대 맹자가 여색을 좋아함과 재물을 좋아함를 논했을 적에, 제나라 왕이 어찌 기뻐하지 않았겠는가? 만약 실마리를 찾아서 그 이치를 알아낼 줄 모른다면, 헛되이 옛사람이 말한 호색을 알 뿐이고, 그가 능히 안으로 시집 못가고 늙는 처녀가 없도록 하고 밖으로 홀아비가 없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옛사람이 말한 이른바 재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뿐, 그가 능히 거주하는 사람은 쌓아놓은 양식창고가 있도록 하고 여행 다니는 사람은 싸맨 양식을 갖고 있도록 할 수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 楊氏曰 法言 若孟子論行王政之類 是也 巽言 若其論好貨好色之類 是也 語之而不達 拒之而不受 猶之可也 其或喩焉 則尙庶幾其能改繹矣 從且說矣 而不改繹焉 則是終不改繹也已 雖聖人 其如之何哉 양씨가 말하길, “法言이란 마치 맹자가 왕정을 행하는 것을 논한 종류와 같은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巽言이란 맹자가 재물을 좋아한다거나 여색을 좋아한다는 것을 논한 종류와 같은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잘못을 말해주어도 이해하지 못하거나 거절하여 받지 않는 것은 오히려 괜찮은 것이다. 만약 그가 혹시라도 이해한다면, 아직도 거의 잘못을 고치고 실마리를 찾아 그 이치를 알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따르고 기뻐할 뿐이고 잘못을 고치거나 실마리를 찾지 않는다면, 이것은 끝내 잘못을 고치거나 실마리를 찾아 이치를 알지 못할 것이니, 비록 성인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을 또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謂全不從不說者 此等不足責 신안진씨가 말하길, “오히려 괜찮다는 것은 전혀 따르지 않고 전혀 기뻐하지 않는 자라면, 이런 등등의 부류는 뭐라고 책망하기도 부족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旣曉喩則有能改繹之機矣 而止於此 此等深可責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미 깨우쳐 알았다면 그것을 고치고 실마리를 찾아 그 이치를 아는 기틀을 갖게 된 것임에도 여기에만 그치고 만다면, 이러한 무리는 깊이 책망할 만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巽謂巽順 與他說都是敎他做好事 重處在不改不繹 聖人謂如此等人與他說得 也不濟事 故曰 吾末如之何也已 주자가 말하길, “巽은 공손하고 온순한 것을 일컬음이니, 그와 더불어 말하는 것은 전부 그로 하여금 좋은 일을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중요한 부분은 고치지 않고 실마리를 찾아 이치를 알지 않는 것이 있으니, 성인께서는 이러한 사람이라면 그와 더불어 말하여도 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를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法言明義而正告之 巽言委曲而開導之也 自非肆於惡而無忌憚者 其聞之 能無面從與說意乎 然聞善將以善其身也 苟有暫說而不改其故 面從而不改其非 則亦何有於己哉 남헌장씨가 말하길, “法言은 義를 밝혀서 올바르게 알려주는 것이고, 巽言은 완곡하게 활짝 열어 인도하여 주는 것이다. 스스로 악에 방자하고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자가 아니라면, 그가 이런 것을 듣고서, 면전에서 따르고 기뻐하는 뜻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善을 듣는 것은, 장차 이로써 제 몸을 善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잠시 기뻐하고서 그 옛것을 고치지 않고, 면전에서 따를 뿐 그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또한 자기에게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從法語說巽言 秉彛之性也 從而不改者 物欲堅强而不屈 就於理說而不繹者 志氣昏惰而不反求諸心爾 學之不進 德之不修 家之不齊 國之不治 皆由是 基之若此之人 雖聖人亦莫如之何也已 경원보씨가 말하길, “法語를 따르고 巽言에 기뻐하는 것은 떳떳함을 붙잡는 본성인 것이다. 따르기만 할 뿐 고치지 않는 자는 물욕이 굳세고 강하여 굽히지 않기 때문이고, 이치에 나아가 기뻐할 뿐 실마리를 찾아 그 이치를 알려고 하지 않는 자는 志氣가 어둡고 게을러서 마음에 돌이켜 구하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배움이 나아가지 않고, 덕이 닦이지 않으며, 家가 가지런하지 않고, 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모두 이것을 말미암는다. 터전이 이와 같은 사람이라면, 비록 성인이라고 할지라도, 역시 그를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