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境界線)
시월의 셋째 주말, 유스티노회 동문과 함께 합천의 황매산에 갔다. 억새 축제 기간이 끝났는데도 많은 인파가 넘쳤다. 일행은 코스를 정해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하고 산을 올랐다. 오르는 길에는 보리수나무가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줄지어 우리를 맞이하는 듯해 사열하는 기분이었다.
모산재에서 올라와 만나는 능선에서 정상을 등지고 모산재로 향하는 아랫길을 택했다. 온 주위에 억새가 바람에 하늘거리며 일렁이며 출렁이는 모습이 마치 산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가족이나 연인들이 억새 군락의 숲에 들어가 추억의 사진을 남기려고 분주하다. 우리 일행도 전망대의 포토존에서 사진을 담았다.
한참을 내려오다 철쭉 군락지를 만났다. 봄이면 온 주위가 붉게 물들 텐데, 지금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자숙하는 것처럼 인내하며 수양하는지 담담하기만 하다. 뭇사람이 지나쳐도 눈길 한번 주지 않으니 말이다. 내려오다 뒤돌아보니 중간에 길을 경계로 오른편 북쪽에는 억새가 왼편 남쪽에는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봄이면 따뜻한 빛을 받아 꽃을 피우기에 제격이며 늦가을에는 북풍의 찬바람에도 억세게 잘 견디는 억새가 군락을 이루는구나 싶었다.
그런 생각에 잠기었는데 옛 추억이 하나 떠올랐다. 언젠가 중국 실크로드를 간 적이 있다. 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3,000km를 가는 광야였다. 그 길은 동서양을 잇는 비단길이었다. 가는 길을 경계선으로 오른쪽에는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은 물을 끌어들여 농작물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왼쪽에는 풀 한 포기 없는 메마른 황야였다. 오른쪽은 생명이 왼쪽은 무덤이 즐비한 죽음으로 갈라놓았다.
우리 삶을 돌아본다. 오늘 봄의 철쭉과 가을의 억새 군락을 갈라놓듯 세상의 삶도 그러하리라. 봄이면 온 산야에 생명이 부활하고, 겨울이면 죽은 듯이 시련을 겪으며 인내하고 있으니 말이다.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이 경계선처럼 갈라졌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그 경계선은 동전의 양면처럼 허물어진다. 한 알 밀알이 썩어야 새 생명이 돋고, 불행의 고통을 넘어야 행복이 옴을 저 산야의 경계선이 묵언의 메시지를 전한다.
일행과 함께 억새와 철쭉의 군락을 둘러봤다. 그것을 보면서 세상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봄(희망)과 겨울(고통)이 어김없이 순환하듯 우리의 삶도 행복과 불행을 맞으면서 겨울이 가면 봄이 오리라. 우리의 신앙도 고통을 겪으면서 성숙함을 깨닫는 여정이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낸다.”(로마 5,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