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쉬운 성경 예레미야애가 3장 1 - 20절
1 나는 여호와께서 내리신 진노의 매를 맞아 고난당하는 사람이다.
2 주께서 나를 어둠 속으로 데려가시고
3 하루 종일 손을 드시어 나를 치고 또 치셨다.
4 내 살과 살갗을 약하게 하시고 내 뼈를 꺾으셨다.
5 슬픔과 아픔으로 나를 에워싸시고
6 죽은 지 오래된 사람처럼 나를 어둠 속에 앉히셨다.
7 내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가두시고 무거운 사슬로 매셨다.
8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청했으나 내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
9 돌로 내 앞길을 막으시고 내 삶의 길을 어렵게 만드셨다.
10 주께서는 엎드려 기다리는 곰과 같으시며 숨어서 기다리는 사자와 같으시다.
11 나를 그릇된 길로 이끄시고 갈기갈기 찢으셔서, 쓸쓸한 곳에 내버려 두시며
12 나를 과녁으로 삼아 활을 당기신다.
13 주께서 화살통의 화살로 내 심장을 맞추셨으니
14 내가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가 되었고 그들은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며 나를 놀려 댄다.
15 주께서 나를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고통으로 채우셨다.
16 주께서 자갈로 내 이를 부수시고 나를 재 속에 밀어 넣으셨다.
17 이제는 내게 평안이 없다. 행복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렸다.
18 나는 "이제는 힘이 다 빠졌다. 여호와께서 도와주시리라는 희망도 사라졌다"고 말한다.
19 주님, 제 고난과 제 괴로움을 기억해 주십시오. 쓰라림과 고통을 기억해 주십시오.
20 제가 모든 것을 기억하므로 제 마음이 몹시 슬픕니다.
<묵 상>
예레미야애가 3장은 예레미야의 개인적인 고난과 회복의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전체 애가서의 중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깊이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모두 강조하며, 절망의 최극단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소망으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합니다. 그중 1-20절은 선지자 혹은 고난 받는 인격체가 겪는 극심한 개인적 고통의 직면을 다룹니다.
1. 고난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개인적인 탄식(1-20절)
"나는 여호와께서 내리신 진노의 매를 맞아 고난당하는 사람이다. 주께서 나를 어둠 속으로 데려가시고 하루 종일 손을 드시어 나를 치고 또 치셨다."(1-3절) 선지자는 자신의 고난이 여호와의 분노로 인해 매를 맞아 고통당하며, 빛이 아닌 어둠 속에서 걸어가게 됨을 고백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통을 만날 때 재수나, 운, 혹은 남을 탓합니다. 하지만 성도는 고난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합니다. 어둠 속을 걸어갈 때라도 그 어둠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는 것이 회복의 출발점입니다. 여기 '고난'은 '괴로움'을 뜻합니다. 히브리어 어근은 '낮아지다, 눈을 아래로 두다, 억압받다'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생명을 다루시는 과정을 눈으로 목도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고난은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손길만을 바라보게 만드는 거룩한 낮추심의 과정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사방이 가로막힌 것 같은 때를 만납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하나님마저 나를 대적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멸망 앞에서 바로 그 바닥의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그 철저한 절망의 탄식입니다.
"내 살과 살갗을 약하게 하시고 내 뼈를 꺾으셨다. 슬픔과 아픔으로 나를 에워싸시고 죽은 지 오래된 사람처럼 나를 어둠 속에 앉히셨다. 내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가두시고 무거운 사슬로 매셨다.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청했으나 내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 돌로 내 앞길을 막으시고 내 삶의 길을 어렵게 만드셨다."(4-9절) 선지자는 육체적, 환경적 압박으로 괴로워합니다. 뼈가 꺾이고 어둠 속에 갇히며, 기도마저 차단당하고 길이 막히는 답답함을 고백합니다.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기도를 듣지 않습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은 응답의 부재입니다. 여기 '가두다, 막다'는 '담, 장벽'을 뜻합니다. 어근이 '울타리를 치다, 벽을 쌓다'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사람이 들어갈 문을 하나님이 은혜나, 심판의 목적으로 닫으시는 모습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방을 막으셨을 때는 세상을 향한 문은 닫히지만, 오직 하늘을 향한 문만 열려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정직한 탄식은 절망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만나는 통로입니다. 내 앞 길이 돌로 막히고, 내 삶의 길을 어렵게 만들어도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하나님께 불만을 토로하고, 탄식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남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기에 기도마저 막히는 영적 밤을 견뎌내십시다.
"주께서는 엎드려 기다리는 곰과 같으시며 숨어서 기다리는 사자와 같으시다. 나를 그릇된 길로 이끄시고 갈기갈기 찢으셔서, 쓸쓸한 곳에 내버려 두시며 나를 과녁으로 삼아 활을 당기신다. 주께서 화살통의 화살로 내 심장을 맞추셨으니"(10-13절) 선지자는 하나님을 엎드려 기다리는 곰, 숨어서 기다리는 사자, 그리고 자신을 겨냥한 사수로 비유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공격자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가 되었고 그들은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며 나를 놀려 댄다. 주께서 나를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고통으로 채우셨다. 주께서 자갈로 내 이를 부수시고 나를 재 속에 밀어 넣으셨다. 이제는 내게 평안이 없다. 행복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렸다. 나는 "이제는 힘이 다 빠졌다. 여호와께서 도와주시리라는 희망도 사라졌다"고 말한다."(14-18절) 선지자는 백성의 조롱거리가 되고 평안과 행복을 잃어버려, 여호와께 대한 소망이 끊어졌다고 탄식합니다. 이는 수치와 절망의 극치를 묘사합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자신의 힘이 다 빠졌고, 소망도 완전히 끝났음을 인정합니다. 영혼이 낙심하여 바닥에 엎드러질 때, 인간의 소망이 끊어지는 그 지점에서 바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주님, 제 고난과 제 괴로움을 기억해 주십시오. 쓰라림과 고통을 기억해 주십시오. 제가 모든 것을 기억하므로 제 마음이 몹시 슬픕니다."(19-20절) 고난과 괴로움, 쓰라림과 고통을 되새기며 마음이 몹시 낙심되었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 '쓰라림과 고통'은 생명의 쓰라림을 눈으로 보게 하시는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인생의 극한 쓴맛은 인간의 교만을 꺾고 오직 은혜만을 갈망하게 만드는 영적 스승이 됩니다. 여기서의 낙심은 곧이어 나올 21절의 '그러나 이런 것을 생각하면 저에게 희망이 있습니다'라는 반전의 발판이 됩니다. 나의 고통과 무력함을 숨기지 말고 인정하십시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토해낼 때 소망의 자리가 마련됩니다. 내 힘이 다하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인자와 자비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여호와 아버지 하나님! 때로는 사방이 돌로 막힌 것 같고, 기도를 드려도 응답이 없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내 힘과 소망이 다하여 영혼이 깊이 낙심되고, 쓰라린 고통만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 쓰라린 고통과 몹시 슬픈 고난의 현장 속에서도 주님을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내 꿈과 소망이 끊어진 그 바닥의 자리에서 오직 주님의 주권과 은혜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사방의 문이 닫혔을 때 오직 하늘을 향해 열린 문을 보게 하옵소서. 고난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깨닫는 영안을 열어 주옵소서. 낙심하여 무력하게 엎드러진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탄식이 변하여 찬송이 되는 반전의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