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왕과 왕비가 죽음에 임하여 가장 바랐던 것은 봄이 되면 봉분 주위에 다시 피어나는 꽃들의 再生力이 아니었을까?
朴源植
(우리가 잘 아는 그 박선생님. 선생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1. 제4의 불, 마음의 불(心火)
活里驛(활리역)의 사람 志鬼(지귀)가 선덕 여왕의 아름다움을 사모하다 못해 병이 났 을 때, 영묘사를 행차하던 중 여왕은 그 소 문을 듣고 지귀를 만나보려고 하였다. 그러 나 지귀는 여왕을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어 버렸고 여왕은 팔찌를 빼어 그의 가슴 위에 얹어 두고 갔다. 잠에서 깨어난 지귀의 마 음에서 불이 일어나 그 불은 그의 몸을 태 우고 탑을 싸고 돌았다. 마침내 지귀는 신 라의 火神(화신)이 된다.
화신의 유래에 관한 이 설화는 나무판과 막 대기의 마찰열을 이용해 일으키는 도구로서 의 불과는 또다른 차원 곧 정신으로서의 불 에 대한 선인들의 놀라운 통찰을 잘 보여준 다. 전기불에 이어 제3의 불이라는 원자력 에 이르기까지 과학적 이성은 도구로서의 불을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마찰열에 의해 불을 일으켜 일상 생활에 사용했음에도 불 은 고대인들에게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생 성과 소멸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불의 작용 은 고대인들에게 생명의 원리에 유추되었는 지도 모른다. 불이 곧 생명이었고, 따라서 살아가는 것은 바로 연소되는 것이었다. 나무의 마찰열에 의해 불이 생기듯이, 성기 의 마찰에 의해 태아가 생기고, 그와 마찬 가지로 마음의 집중도 불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정신분열적 방화범을 비롯한 심인성 질환은 현대에 와서 정신의학의 대상이 되었지만 , 古來(고래)로 마음의 불은 종교와 예술의 영역에 속하였다. 요즘의 개인적, 혹은 사 회적 心火(심화)는 과학적 이성에 의해 분 석되고 연구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 술과 종교 활동은 흔히 그것의 승화 작용이 었다.
생명 활동의 주체인 인간의 마음에서 불이 생긴다는 우리의 옛 설화는 고대의 무덤에 서 나온 왕과 왕비의 冠(관) 장식에 왜 화 염문이 들어가며 불상의 뒤에 왜 꼭 광배가 따라 다니는가 하는 등의 질문을 풀어보는 데에 작은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물론 이것을 고대의 태양숭배에 연원지을 수도 있다. 사실 태양이 숭배된 것도 태양이 불 의 근원, 빛과 열의 근원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자식을 낳고 기 르는 일상의 삶을 살면서도 생명의 궁극적 근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비감을 가지는 것처럼 부싯돌의 마찰에서 불을 얻던 옛 사람들도 불의 궁극적 근원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祈求(기구)할 때 손을 맞부비는 행위도 어쩌 면 불을 얻고자 나무막대기를 돌리던 행위 의 무의식적인 원형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 은 아닐까?
하지만 태양과 불의 숭배가 하나의 우상 숭 배가 아닌 것은 그것이 태양과 불이라는 사 물 자체에 대한 숭배가 아니라, 생명 현상 을 표상하는 것으로서의 불에 대한 인식에 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것은 오히려 심오한 생명 의식의 발현이라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 글의 목표는 기독교 도상학이나 불교 도 상학에서 광배가 고대 페르시아 지역의 조 로아스터교(배화교)의 西漸(서점)과 東漸( 동점)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는 것을 고증 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 간의 영향과 習合 (습합)이나 어떤 양식의 原流(원류) 관계를 떠나 인류 보편의 입장에서 생명에 대한 깊은 인식으로서의 불을 탐구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2차대전이 발발할 무렵 히틀러는 유럽 곳곳 에 몰래 불을 지르는 방화범이라고 비난받 았다. 그 2차대전은 제3의 불이라는 원자력 까지 동원되고서야 끝이 났다. 핵폭탄의 소 유가 점차 확대되는 이즈음, 기술 以前(이 전)의 불이자 동시에 최후의 기술 以後(이 후)의 불인 마음의 불, 곧 정신의 불이자 영혼의 불인 제4의 불은 바로 생명의 불이 어야 할 것이다.
그런 불의 이미지를 미술 작품을 통해 살펴 보자.
G.바슐라르는 「촛불의 미학」에서 꽃이나 나무를 불의 이미지로 표현한 유럽 낭만주 의와 상징주의 시인들의 시구를 쉴새없이 끌어온다. 그와 같은 표현을 한 우리의 문 필가는 없는가? 우리의 현대시에서도 부지 기수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우리 말에서는 「불꽃」이라는 일상어가 아주 흔 하게 쓰이고 있다. 상투적으로 쓰이는 이 단어에서 慣用(관용)의 묵은 때를 벗겨보면 「불」과 「꽃」, 이 두 단어의 은유적 결 합이 광채를 띠고 나온다. 이 은유적 결합 은 타오르는 불이야말로 하나의 꽃다발이요 , 피어나는 꽃송이는 하나의 불길이라는 의 미를 함축하고 있다. 동사 「피다」 역시 「불」과 「꽃」 둘 다를 주어로 삼는다. 두보 시의 한 구절 「山靑花欲燃(산청화욕 연)」을 「산이 푸르니 꽃빛이 불 붙는 듯 하다」고 하면 불충분한 번역이다. 꽃의 붉 은 색과 불의 붉은 빛의 유사성만을 연결짓 는 직유로는 이 구절의 의미가 제대로 밝혀 지지 않는다. 「산이 푸르니 꽃은 타려고 한다」 혹은 「산은 푸르고 꽃은 타오른다 」고 하면 꽃과 불의 생명적 이미지, 그리 고 봄의 재생력을 좀더 뚜렷이 부각시켜 줄 것이다.
무령왕릉 출토 왕과 왕비의 冠(관) 장식이 나, 평양시 출토 투각 화염문 금동관은 애 매한 언어를 통하지 않고 우리의 눈앞에다 바로 불을 지른다. 백제인들은 금동으로 화염무늬를 만들고 거기다가 꽃모양을 덧붙 인 장식판을 무령왕릉에다 부장한 것이 아 니라 꽃과 불을 무덤 속에 넣었던 것은 아 닐까? 김소월의 시에서 가신 님 무덤가의 금잔디는 봄이 되면 불이 되어 타오른다(「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가신 님 무덤 가의 금잔디」). 백제의 왕과 왕비가 죽음에 임 하여 진정 바랐던 것은 봄이 되면 봉분 주 위에 다시 피어나는 꽃들의 재생력이 아니 었을까? 백제인들이 땅 속에 묻은 것은 왕 의 권력과 재물이 아니라 깜깜한 무덤 속에 도 해가 뜨고 꽃이 피기를 바라는 그들의 소망일지도 모른다.
고흐의 1888년 작 「복숭아나무」는 아를르 에서의 최초의 작품으로 헤이그 시절 그에 게 그림을 가르쳐준 사촌형인 화가 모브의 죽음 앞에 바쳐졌다. 꽃이 만개한 두 그루 의 복숭아나무가 화면을 가득 차지하는 이 그림에는 불의 기운이 서려 있다. 농사 짓 기 쉽도록 전지를 한 과수원의 복숭아나무 와는 다르게 이 그림 속의 복숭아나무 줄기 는 약하게 보이면서도 위로 한껏 뻗쳐 올라 가고 있다. 그래서 이 나무는 바람이 불지 않아도 불길처럼 일렁인다. 그 다음해에 그린 여러 그루의 과수원의 복숭아나무와 비교해 보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가지 끝의 꽃을 표현한 연붉은 색 주위로는 밝은 무채색의 터치가 가해지고 있다. 이것은 마치 불길 주위에 생겨나는 하얀 연기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타오르는 장작불이 흔히 그러하듯, 고흐의 복숭아나무는 우리의 눈 길을 잡아끌어 넋을 놓고 멍하게 들여다보 게 만든다.
고흐의 복숭아나무는 무령왕릉의 冠 장식과 불의 이미지로서 서로 상통한다. 복숭아나 무의 밑둥치는 흡사 관 장식의 슴베부분 같 기도 하다. 시대와 재료의 차이에도 불구하 고 두 작품은 죽음과 재생의 모티브를 지닌 불의 영상으로 포개어져 우리들의 눈앞에 서 이글거린다. 이 복숭아나무는 육안으로 관찰한 나무가 아니라 心眼(심안)에 비친 생명으로서의 불의 형상이다. 그것은 꽃나 무라기보다는 화가 모브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켜놓은 수십개의 초가 꽂힌 커다란 촛대 같기도 하고 化佛(화불)이 현란하게 새겨진 擧身光(거신광)의 광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다음의 편지 구절은 그러한 몽상에 계속 젖어 있어도 좋다고 우리들을 격려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그대로 나무의 단순한 줄기를 그리고 싶지 않다. 나무의 드러나지 않은 은밀한 부분, 뿌리들 , 모양, 수액, 탄생, 죽음 등이 담겨진 나 무줄기를 그리고 싶다」
일본 京都(교토) 神護寺(징고지) 소장의 佛畵(불화)는 생명력의 발현으로서의 불과 꽃 의 상관 관계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 다. 비단에 채색을 한 이 여래상의 頭光(두 광)과 身光(신광)은 원형 채색띠의 일반적 인 양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원형의 띠로 된 광배 뒤로 우리어나는 듯한 불빛 의 광배가 한 겹 더 그려져 있다. 밝은 색 을 엷게 칠하고 그 위에 金泥(금니)로 작은 꽃들을 폭죽놀이할 때에 날리는 불티처럼 그려넣은 광배이다. 이 광배는 불길의 현 존을 느끼게 할 정도로 화려하고 精緻(정치 )하다. 불의 모습을 화폭에 형상화시킨 것 이 아니라 불을 그대로 법당에 옮겨다 놓았 다. 이 그림은 그러한 畵工(화공)의 의지를 뜨겁게 전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광배는 끊임없이 생성되는 생명력, 그 에너 지의 顯現(현현)을 나타내는 아우라(Aura) 로 기능한다. 따라서 광배 없는 불상은 눈 동자 없는 안구, 호흡이 없는 육신이다. 광 배에 의해 불상은 聖化(성화)된다. 이러한 광배의 성격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부석사 무량수전의 여래상을 들 수 있다. 극락세 계에서 無量壽(무량수)의 생명을 누리는 아 미타여래는 곧장 법당을 태워버릴 듯한 기 세로 타오르는 불길의 광배를 등에 지고 있다. 여래는 타오르는 불로써 침묵의 설법을 한다.
『불 속의 천국을 보아라. 타오르는 매순간 은 영원이니라』
여래는 법당 앞의 사리가 들어있는 탑을 내 다보면서 다시 설법을 한다.
『산다는 것은 불타는 것이다. 너의 삶이 너의 茶毘(다비)가 되게 하라』 광배에 금을 입히는 것은 세속적 권위나 사 치의 차원으로 이해될 것은 아니다. 고대에 금의 가치는 희소성에 기인한 경제적 가치 가 아니었다. 빛을 담는 그릇인 금은 금속 으로 화한 불이었다. 금은 곧 불이었고, 불 의 가치는 생명의 가치였다. 연금술사들에 게 금의 精髓(정수)는 불 그 자체였다. 경 전을 寫經(사경)하면서 금니와 은니를 사용 하고 또 사경의 앞부분에 화염문을 한 도상 들이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 다. 경전의 설법은 언어의 설법이 아니라 침묵의 설법, 곧 불의 설법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백장 스님이 제자인 위산 스님에게 화로의 불씨를 찾게 했을 때. 위산이 없다 고 대답하자 백장은 화로를 다시 뒤져서 작 은 불씨를 찾아 내어 위산에게 보여주었다 . 그 때 위산은 크게 깨쳤다고 한다. 거기 서 위산이 작은 불씨를 통해서 본 것은 삼 라만상을 태우고도 남을 불의 환상, 시방세 계에 가득한 생명으로서의 佛性(불성)이 아 니었을까? 단하 스님이 법당의 木佛(목불) 을 쪼개어 불을 땐 것은 난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불성의 현존을 대면하고자 함이 아 니었을까?
일연 스님은 신라의 혜숙 스님과 혜공 스님 의 행적을 예찬하는 시에서 「불 속의 연꽃 (火中蓮)이라 하였다. 또 원오 스님은 「벽 암록」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달인을 기린 의 뿔과 불 속의 연꽃에다 비유하였다. 그 런데 서산 마애 삼존불이나 황복사 석탑에 서 나온 금제 여래 좌상 등을 보면 그 두광 은 연화문의 바깥을 화염문이 둘러싸고 있 어 두 스님의 말 그대로 「불 속의 연꽃」 을 연출하고 있다. 진흙뻘에 뿌리를 박고 물 위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의 생리에 의거 한 염화시중의 가르침은 익히 아는 일화이 며, 고뇌의 승화로서 이해되는 점이 없지 않지만, 불 속에서 연꽃이 핀다는 것은 도 대체 무엇일까?
蓮花化生(연화화생)의 믿음에 의하면 중생 은 연꽃에 싸여 극락 세계에 왕생한다고 한 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연화화생을 모티 브로 하는 그림들이 나온다. 광배의 연꽃은 빛살 환한 불 속 극락의 세계로 우리를 실 어간다. 연꽃이 열리는 순간은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라 는 이호우 시조의 한 구절처럼 하나의 하늘 이 열리는 순간이다. 극락은 다름 아니라 그와 같이 생명력이 넘치는 세계이다. 그래 서 뿌리를 물 속에 두고 있는 연꽃도 거대 한 불덩어리인 태양에서 나오는 환한 빛살 속에서 피는 것이다. 연봉오리는 불꽃이며 개화한 연꽃은 빛살 그 자체이다. 시궁창 같은 현실이지만 저녁 햇살을 받는 서산 마애삼존불을 보노라면 금방울 구르는 듯한 소리 없는 빛의 웃음소리가 연방 들려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연화문을 둘러싼 화염문의 광배 는 생명력의 발현으로서 꽃과 불의 상응관 계로 이해된다. 실제로 금속을 재료로 하는 불상이나 소조불은 불의 단련을 거치지 않 으면 제작될 수가 없다. 그 불상들 자체가 이미 불의 작업을 통해서 얻어진 것들이다 . 석불 또한 마찬가지이다. 돌을 쪼는 정과 돌이 부딪칠 때 튀는 불꽃, 손바닥에 불이 나는 듯한 조탁의 노동없이 석불은 만들어 질 수 없다.
특유의 구불구불한 필선으로 불의 이미지를 잘 구사한 唐(당)의 화가 尉遲乙僧(위지을 승)의 그림 또한 긴 세월의 격하고서도 원 유와도 같은 우리 마음의 밑바닥에다 불꽃 을 튀긴다. 동투르키스탄 지역 귀족 화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7세기 후반에 중국의 장안에서 주로 활동함으로써 중국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꽃이 핀 나무 아래 를 걸어가는 석가모니를 그린 그의 그림은 석가의 의습과 뒤틀어진 나무의 樹皮(수피 ) 결 그리고 바위의 표면을 불길이 연상되 는 구불구불한 필선의 기법으로 처리한 데 다가 만발한 꽃송이와 석가의 옷을 선명한 붉은 색으로 채색하여 화면 전체에 火氣( 화기)가 넘치게 하였다. 이러한 위지을승의 필선은 멀리 한반도에까지 전파된 듯하다 . 비록 많이 파손된 상태의 석조각이지만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의 남면 불좌상에는 위지을승의 필선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화염문의 거신광 광배가 있다. 고흐 말년의 작품에 보이는 아지랑이와 같 이 일렁거리는 필치는 위지을승의 필치와 닮아 있다. 일본 판화에 심취한 그였다지만 위지을승의 그림을 보았을 리는 만무하고 , 그러한 필치는 태양에 대한 강렬한 집착 에서 빚어진 당연한 귀결이라 보인다. 189 0년 작의 마지막 자화상에서 얼굴 배경 부 분의 일렁거리는 필치는 마치 화염문의 광 배처럼 보인다. 莫耶劍(막야검)이라는 보검 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몸을 용광로 불에 던진 匠人(장인)과 같이, 도기를 완성시키 고자 굽고 있는 도기 가마에 뛰어드는 도공 과 같은 기분으로 남프랑스의 햇살 아래에 서 고흐는 권총으로 그의 가슴을 쏘았던 것 일까? 그가 가슴에 박고자 한 것은 차가운 권총알이 아니라 어쩌면 환하고 따스한 햇 살이었을지도 모른다.
감은사 서3층석탑에서 나온 탑형 사리그릇 은 영원한 생명으로서 타오르는 불에 대한 명상을 계속하게 만든다. 연꽃 받침 위에 있는 火輪寶珠(화륜보주)가 바로 그것이다 . 청동으로 만든 이 보주 장식은 사리라는 것이 다비를 끝낸 뒤에 얻는 차가운 결정 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불, 영원한 생명임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유리 구슬은 빛을 투과시키면서 像(상)을 비치 게 한다. 또 유리 렌즈는 빛을 모아서 초점 위에다 불을 일으킨다. 빛과 열의 정수로 서 유리 구슬은 태양의 파편이다. 사리를 담는 용구에 수정 따위의 유리제를 사용한 것은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 흔히 가을의 단풍를 보고 불타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겨울나무도 자세히 보면 불 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잎을 다 떨구고 난 뒤의 굵은 가지와 잔 가지의 어울림은 아궁이 속의 불길을 연상시킨다. 그 가지 에 겨울 바람이라도 몰아치면 겨울나무는 봄철의 꽃 못지않게 그대로 타오르는 하나 의 불꽃이다. 가을 단풍이 茶毘라면 겨울 가지는 舍利(사리)이다. 광배를 진 금당의 불상은 금당 앞 마당의 탑 속에서 타오르 는 사리를 보면서 불의 和答(화답)을 나누 고 있는지 모른다. 현대의 원자로 안에는 핵연료가 타고 있지만, 옛날 중앙아시아 사 막 연도의 오아시스 도시의 포탄형 스투파 속에서는 영혼의 불인 사리가 타고 있었다.
3. 초록의 불꽃
일본 도쿄 淺草寺(아사구사데라) 소장 혜허 의 양류관음도는 고려 불화 중에서도 異形 (이형)에 속한다. 버들가지를 든 관음보살 뒤에 그린 기묘한 형태의 이 초록 거신광 은 보면 볼수록 몽상의 오솔길을 헤매게 한 다. 원형의 頭光(두광)과 擧身光(거신광)을 가지는 여느 고려 불화와는 전연 다른 모 습의 이 광배는 빛과 관련지어 볼 때 촛불 의 이미지이다. 초록색 불꽃을 배경으로 하 고서 그 가운데 초의 심지 자리에는 관음보 살이 버들가지를 들고 서 있다. 의상은 동 해 바다를 면하고서, 원효는 남해 바다를 면하고서 관음을 친견하였다고 한다. 고려 의 화승 혜허는 촛불 속에서 관음을 친견이 라도 한 것일까?
촛불을 들여다 볼 때 우리가 보는 것은 불 이 아니다. 촛불 속에는 불이 있는 것이 아 니라 추억과 소망이 있다. 촛불 속에 녹아 내리는 것은 촛농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과 시간의 흐름이다. 촛불을 들여다보는 눈은 눈이 아니라 하나의 영혼이다. 관음보살과 대각선의 위치에 작게 그려진 선재동자는 혜허 자신이다. 이 그림을 보는 가장 바람 직한 위치는 바로 선재동자가 손을 모으고 선 자리이다. 선재동자의 자리에 우리의 눈을 두고 이 그림을 볼 때, 초록 광배는 단순한 초록 색깔이 아니라 그 테두리에 그 려진 흰선이 암시하듯이 백색광이다. 그것 은 삼라만상의 존재를 드러내는 빛살이다. 촛불 속에 나타난 양류 관음은 혜허에게 이렇게 말하는지도 모른다.
『혜허야, 삶이란 한 자루의 초와 같으니라 . 내가 지금 바로 초 심지의 자리에 서 있 듯이 너도 너의 마음자리에 곧 네 삶의 심 지가 있어야 하느니라. 그리고 네가 가진 붓을 보아라. 그 붓털이 바로 불꽃이니라』 불 속에서 본 관음을 재현하고자 할 때, 화공의 붓은 어찌 불꽃이 아니며, 그 바탕 천은 불의 먹이가 아니겠는가? 또 한편으로 이 초록의 광배는 버드나무 잎 을 연상케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벨기에 의 초현실주의 화가 R. 마그리트의 그림 「 최후의 절규」를 잠시 보자. 나뭇잎 속에 뻗어 있는 잎맥의 모양이 흡사 한 그루 나 무의 자태와도 같이 보인다는 데서 착안한 이 그림은 그림으로 철학을 하는 마그리트 의 회화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생명체로서의 개체는 전체에 대해 서 기계적인 한 부분으로 결코 전락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부분은 전체에 , 전체는 부분에 유기적 관련을 가지는 것 이 생명의 원리라는 것을 이 그림은 말하고 있다.
영국의 시인 W.블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우주를 본다』 고 했고, 의상의 「 화엄일승법계도」에는 『하나의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들어 있다』 (一微塵中含十方),
『하나 가운데 일체가 있고 많은 것 가 운데 하나가 있다』(一中一切多中一) 라는 구절이 나온다.
혜허 그림의 광배를 버들잎으로 보면 그것 은 관음보살이 손에 든 버들가지와 서로 개 체와 전체의 관계를 이루게 된다. 그럴 경 우 버들잎은 그냥 버들잎이 아니라 하나하 나의 구슬에 전체 구슬이 서로 다 비치는 구슬 그물이라는 因陀羅網(인타라망)이 된 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현란한 빛의 소용 돌이이다. 그러므로 버들잎은 하나의 불꽃 , 결국 화엄의 사상을 설법하는 빛의 불꽃 이 되는 셈이다.
귀를 자르고 난 뒤에 고흐의 자화상에는 초 록의 광기가 넘치고 있다. 연두색 문짝 옆 에 초록색 벽을 배경으로 초록색 망토를 두 르고 눈의 흰자위마저도 온통 초록색으로 한 채, 그는 서 있다. 『나는 붉은색과 녹 색을 가지고 무서운 인간의 정열을 표현하 려고 애를 썼다』 고흐는 이와 같이 쓴 적 이 있다. 「귀를 자른 자화상」은 그가 말 한 바 녹색의 무서운 정열을 보여준다. 앞 서 김소월의 시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가 신 님 무덤 가의 금잔디」라는 이미지에서 살펴보았듯이, 푸른 잔디도 인간의 정념에 서 보자면 타오르는 불꽃이다. 고갱과의 공 동생활도 파탄으로 끝낸 그는 극도의 고독 속에서 오직 생명의 푸른 불길로 그의 눈 을 채우고 그 푸른 불길의 다사로움 속에 그의 전 존재를 녹이고 싶었으리라. 20세기 초 영국 이미지즘의 시를 개척했던 T.E.흄은 추운 겨울밤에 취해 쓰러진 어느 신사의 소망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오! 신이여. 저 하늘의/ 별들이 좀먹은 낡은 담요를 작게 해 주시오. 내 몸에 둘러 싸고 편히 쉬게」
여기서 별들이 좀먹은 낡은 담요란 밤하늘 을 비유한 것으로 신사는 밤하늘이 담요가 되어서 쓰러진 자신을 덮어주었으면 하는 기원을 하고 있다. 연두색 벽과 초록색 문 짝을 배경으로, 초록 불꽃으로 짠 망토를 걸치고 초록 불꽃에 파랗게 타버린 자신의 눈을 그린 고흐도 다음과 같이 말하지는 않았을까?
『생 레미의 측백나무야, 겨울 보리밭아, 겨울나무야, 내게 초록의 불꽃을 보여다오 . 초록의 불로 나를 데워다오. 아아, 초록 의 불로 날 태워다오』
한국 미술사학의 태두인 고유섭은 청자를 두고 고려인들의 「파란꽃」이라고 하였다 . 그리고 그 파란꽃이란 고려인들이 동경한 영원한 정적의 세계를 의미한다고 했다. 파란꽃을 영원한 세계의 상징으로 삼은 독 일 낭만주의 시인 노발리스를 채용한 적절 한 표현이라 하겠다. 노발리스는 파란꽃의 영상을 죽은 연인의 무덤가에서 얻었고. 고려 도공은 고온의 가열 속에서 청자의 비 색을 발견하였다. 박물관 진열대에 놓여진 녹유리 사리병에서 다비의 푸른 불길을 느 낄 수 있는 것처럼 청자도 결국 불의 열매 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국보 제95호 청자칠보투각향로 는 불에 대한 몽상을 더욱 재촉한다. 그것 은 이 향로를 받치고 있는 세 마리의 토끼 때문이다. 어찌하여 연약함의 대명사격인 토끼가 아틀라스인 양 향로 전체를 밑에서 받치고 있는가? 석가 본생담의 얘기를 들 어보자.
옛날에 토끼가 있었는데 전생에 보살이었다 . 전생의 남은 업으로 인해 토끼의 몸을 받 았지만 지혜와 자비가 있어서 토끼왕이 되 어 토끼들을 제도하였다. 그 근처에 출가수 행자가 있었는데, 멀리서 토끼왕의 설법을 듣고 감동되는 바가 있어 서로 친구로 사 귀었다. 그러던 중 세간의 백성이 죄악을 짓자 그 지역에 기근이 닥쳤다. 오랜 주림 끝에 출가수행자가 그곳을 떠나려 하자 토 끼왕은 하룻밤만 더 머물러 식사 대접을 받 고 가길 청하였다. 다음날 아침 토끼왕은
『내 보시할 재물이 없어 이 몸을 그대로 바치기를 원하니 자시기를 바랍니다』하고 는 불 속에 뛰어들었다. 수행자가 급히 불 속에 들어가 건져내었지만 이미 죽은 뒤였 다. 수행자가 토끼왕을 안고 『애닯다. 남 을 제도하기 위해 자기 몸을 버리다니. 내 가 이제 당신께 귀의하여 주인으로 삼고 내 세에 항상 제자가 되겠습니다』는 서원을 發(발)하고는 함께 불 속에 뛰어들었다. 부 처님이 말씀하셨다.
『옛적 수행자는 미륵이요, 저 토끼는 바로 내 몸이니라』
토끼의 捨身供養(사신공양) 설화에는 한 알 의 밀알이 썩어야만 풍성한 밀 이삭이 수확 되는 것처럼 영원히 순환하는 생명의 원리 로서 자기희생의 테마가 들어 있다. 흙이 불 속에 구워질 때 자기가 되고, 향은 불 속에서 타야만 그 향내를 공간에 끼치게 된 다. 그리고 가마의 불은 화목이 태워짐으로 써 얻어진다. 이런 명품을 만든 도공도 청 춘을 불사르는 인고의 수련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여기서 이 본생담은 현세불인 석가 와 미래불인 미륵의 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마저 담고 있다. 「현재」가 「미래」 를 위해 스스로를 바칠 때, 「미래」는 「 현재」를 받든다는 것이다. 석가와 미륵이 함께 타는 것은 충실한 현재의 순간이 바 로 영원한 미래가 되는 것임을 말해준다. 불이야말로 실존의 충실성을 설파하는 하나 의 현존이 아니겠는가?
중국 돈황의 막고굴에는 비천상 무늬 안에 연화문을 두고 그 연화문 안쪽, 곧 연밥이 있을 자리에 세 마리 토끼를 그려 넣은 천 장화가 있다. 청자의 향로를 받치고 있는 토끼가 상승하는 불기운을 따라 하늘로 오 르면 바로 이 천장의 토끼가 되지 않을까? 토끼가 多産(다산)의 상징이 아니라 오롯 한 희생으로 자비행을 실천하는 여래의 화 신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4. 지옥의 불꽃
지옥의 위력과 벌은 흔히 불로 대표된다. 지옥의 종류에는 칼이 산처럼 솟아 있다는 도산지옥, 끓는 무쇠솥 속에 삶는다는 확 탕지옥, 혀를 길게 잡아 뽑는 발설지옥 등 여러 지옥이 있지만 고통과 파괴의 힘으로 서 불의 이미지가 지옥도 전체를 지배한다 . 흥천사 시왕도에 보이는 여러 종류의 지 옥 그림에는 그 지옥벌의 내용과 상관없이 공통으로 불이 등장한다. 몰론 그렇지 아 니한 지옥도가 더 많다. 그러나 불과 무관 한 종류의 지옥이라 할지라도 지옥도를 자 세히 보면 죄인에게 벌을 주는 형리들의 모 습은 대부분 그 머리털 부분이 화염문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이 지니는 운동성, 확장성, 극렬성은 고 통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하는 면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자전적 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태형을 받 는 죄수들의 고통이 어떠한가를 밝혀놓았다 . 소설 속 話者(화자)인 나는 회초리나 곤 장을 맞고 들어오는 죄수들을 상대로 아픔 이 어떠한지를 묻는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 도 하나같이 불에 타는 것 같다는 답을 얻 어낸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는 태형이 자행되는 당시의 러시아 사회에 대한 심리 적 분석을 가함으로써 습관화된 포학으로 체형이 만연하여 폭군의 마음이 지배하는 사회적 병폐를 지적한다. 피와 권력은 사람 을 취하게 하고, 그 속에서 형리의 횡포와 방종은 자라나며 그러한 형리의 야수성이 근대인의 마음의 싹에서 발견된다고 도스 토예프스키는 설파한다. U. 에코의 소설 「 장미의 이름」에서 악마는 다름 아니라 「 독선」이었듯이 화형제도를 만든 것은 권력 의 독선이었다. 1, 2차 대전은 지옥도에 나 타난 여러 지옥의 양상을 역사 현실 속에서 실연을 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도스 토예프스키는 고난 속에서 단련된 예지자였 지만, 지옥의 이미지를 불로 나타낸 화가 또한 인간 심성의 탁월한 관찰자였다. 지옥도에 나타난 불도 실은 마음의 불인 것 이다. 지옥의 불은 욕망의 불, 분노의 불길 , 어리석음에서 나온 맹목의 불길, 이른바 貪(탐), 瞋(진), 痴(치)의 三毒(삼독)의 불길이다. 또 생전에 지은 죄를 비춰준다는 업경대의 불꽃에서 느끼게 되는 것도 불 속을 보는 듯이 환히 보이는 죄의 명확성과 벌의 엄정성이다.
불의 모양을 가장 사실적으로 보여 주는 예 는 밀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 불교 미 술에서 찾을 수 있다. 大日如來(대일여래) 가 일체 악마를 항복받기 위하여 몸을 변하 여 분노한 형상을 나타냈다는 不動明王(부 동명왕)의 불꽃그림은 마치 화폭에 불이 붙 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사실적이다 . 불길의 묘사로써 파괴의 위력과 창조의 에너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부동명왕의 그림 은 일본에서 여러 점의 명품을 남기고 있다 . 부동명왕은 분노이면서 자비, 위세이면서 지혜, 파괴이면서 창조인 불의 양 측면을 끝없이 상념하게 만든다.
일본 高野山(고야산) 明王院(명왕원)에 있 는 부동명왕 그림은 원진대사가 그렸는데, 목욕재계하던 중에 영감을 얻고는 바위 모 서리에 머리를 쳐서 흘러내리는 피로 그림 을 그렸다는 얘기가 전한다. 그러면 파괴적 위력인 지옥의 불과 생명의 에네르기인 광배의 불, 이 상극적인 불의 양 측면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둘 사 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가? 禪(선) 불교에서는 말한다. 번뇌가 곧 菩提(보리) 라고. 어느 스님은 말했다. 『진흙이 많으 면 불상도 커진다(泥多佛大)』고. 시커먼 연기를 내는 욕망과 번뇌의 불길도 더 큰 불길 속에 타오르면 창조의 불로 수렴될 수 있다. 불교적 패러독스를 빌려서 말하자면 , 空(공)이 곧 色(색)이고 색이 곧 공인 것 처럼 지옥이 불과 천상의 불도 결코 둘이 아닌 것이다.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성냥팔이 소녀는 겨울밤 얼음지옥 같은 추위에 죽어가면서 자신이 켜는 성냥 불꽃 속에서 천국의 환상 을 본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에도 비슷 한 얘기가 있다. 거리의 동냥 소년이 크리 스마스 이브에 환한 빛살을 받으면서 크리 스마스 트리 아래 인형을 안고 어머니를 만 나는 환영을 본다. 물론 그 아이는 다음날 아침 장작 더미 위에서 얼어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왜 장작 더미에서 죽었을까? 그 의 몸은 얼어 죽었지만 그의 영혼은 고스란 히 태워져 하늘로 올라간 것이리라. 그와 같이 위대한 종교 예술에는 고통을 뚫고서 바라보는 빛의 세계가 그려지는 것이다.
5. 불의 화가들
고흐의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에서 해바 라기 꽃잎은 거의 불꽃의 모습이다. 여기의 해바라기는 해바라기가 아니라 오히려 연 꽃이다. 그것은 불상의 광배와도 같이 불 속에 피는 연꽃이다. 그의 「별달밤」에는 별들이 마치 둥근 해덩이같이 표현되어 있 다. 하늘의 별들을 타오르는 불덩이로 느낀 그의 심미적 인식은 천문학적 지식과도 일 치한다. 별들은 태양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빛을 내는 恒星(항성)이다. 너무나 먼 거 리에 있으므로 작은 빛으로 반짝일 뿐이다 . 육안에는 보석같이 보이는 작은 별들을 고흐는 심안으로 光年(광년)의 거리를 앞당 겨서 불덩어리로 느낀 것이다. 그림 가운데 의 고딕식 첨탑 지붕과 왼쪽의 측백나무는 촛불인 양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타오른다 . 밤하늘은 빛의 본질을 인식하게 해 주는 빛의 고향이다. 어둠 속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검게 타오르는 측백나무는 생 명의 본원을 향한 그의 떨리는 영혼이다. 금강산을 그린 조선 시대의 민화 작품 한 편은 아주 이색적이다. 펼쳐진 산세의 모습 을 불꽃으로 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금강산 의 가을 단풍을 불길로 표현한 것인지, 아 니면 봄꽃들을 그렇게 표현한 것인지 그림 에 나타난 정보로는 알 길이 없지만, 여하 튼 산세를 불길로 표현한 그 이름 모를 화 가의 심성은 우리의 호기심을 충분히 끈다 . 금강산의 봉우리들을 앉아 있는 스님의 형상으로 표현해 놓은 민화도 있다. 진경산 수를 그린 것도 중국 산수화를 모방한 것도 아닌 이 그림들은 같은 대상을 하나는 불 꽃으로 하나는 스님의 머리로 표현하였지만 심안으로 본 상상력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고 조선조 우리 회화 세계를 더 욱 풍성하게 해 주는 값진 자료들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후기의 양반 화가 恭齋(공 재) 윤두서의 자화상은 참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참수당한 기개 높은 선비의 감을 수 없는 눈빛과 같은 박진감이 화면 가득 넘쳐나는 이 초상 속의 수염은 수염이 아 니라 거꾸로 놓은 불길이요, 그 눈동자에서 는 렌즈의 초점과 같이 불길이 일어난다. 동양화에서 초상화법의 핵심인 傳神寫照(전 신사조)에 따라 이 자화상은 화가 자신의 心火(심화)를 그린 역작이다. 그것은 아웃 사이더의 뜨거운 자기 인식, 타오르는 정열 과 고독이다. 그것은 고흐의 자화상에 보이 는 것과 다르지 않다. 둘의 차이를 굳이 말 하자면 고흐의 자기 인식은 自虐(자학)의 분위기를 풍기고 공재의 그것은 自矜(자긍 ) 쪽에 더 가깝다 하겠다.
나비 모양의 장식 불판을 단 조선 시대의 촛대는 단순한 그림자 놀이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이 촛대에 촛불을 켜면 불판은 벽에 나비 그림자를 만든다. 그리고 촛불 이 일렁이면 그림자 나비는 벽 위를 날아다 니게 된다. 불 속에서 끊임없이 환생한다는 서양의 불사조 같은 전설이 우리에게는 왜 없을까? 대신에 조선의 예술가는 이런 촛 대를 남겨놓았다. 나방류는 에트나 화산의 분화구에 몸을 던진 엠페도클레스처럼 불 속으로 날아든다. 그러한 불의 정령인 나 비를 이 촛대는 촛불 속에서 재생시켜 낸다. 테이블 위에 놓인 구겨진 종이, 달걀, 열쇠 등 일상의 사물을 타오르는 모습으로, 또 금관악기인 튜바에 불이 붙은 모습을 그린 초현실주의 화가 R. 마그리트는 고대 그리 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충실한 제자 임이 틀림없다. 이 그림들은 『만물의 근원 은 불이다』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제를 도해해 놓은 듯하다. 마그리트는 철학적 명제나 관념을 즐겨 이미지화한다. 그런 작 업을 통해 그는 일상의 때묻은 인식에 반란 을 일으킨다. 위의 두 그림도 일상의 도구 에 불과한 사물들에 불을 붙여 놓고서는 그 본질을 사고하라고 우리들을 다그친다. 마 그리트 그림의 매력은 그와 같이 일상의 영 역을 뒤흔들어놓는 충격과 도전에 있다. 노신사의 초상을 그린 그의 작품을 한번 살 펴보자. 실크햇을 쓰고 나비넥타이를 맨 점 잖은 노신사가 불을 배경으로 오른손에는 칼을, 왼손에는 푸른 나뭇잎을 쥐고 서 있 는 이 그림은 소재 하나하나는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그 소재들의 배치를 기상천외 의 방식으로 하는 마그리트 특유의 기법을 잘 보여준다. 노신사의 초상에다 불과 칼 과 나뭇잎을 장치한 마그리트의 의도는 무 엇일까? 그는 외양 묘사에만 그치는 초상화 를 그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초상화에다 노신사의 삶, 인간의 삶을 담고자 하는 마 그리트의 계산이 감지된다. 노신사의 뒤에 서 타오르는 불은 삶과 동격으로 곱게 늙은 노신사의 얼굴과 옷차림만 보지 말고 그 속에 칼도 있고 푸른 잎도 있다는 것을 생 각해 달라는 주문으로 들린다. 칼은 세속적 권세와 영광으로, 푸른 잎은 평화와 사랑 으로 읽힌다. 한 폭의 그림 같은 릴케의 짧 은 시가 있다. 화려한 일몰을 바라보면서 늙은 수도자와 젊은 수도자가 마음속으로 기원을 하는 장면을 그린 시이다. 거기에서 젊은 수도자는 『신이여, 제게 저와 같은 영광을 주소서』라고 기도하고 늙은 수도 자는 『신이여 제게 저와 같은 안식을 주소 서』 하고 기원한다. 마그리트는 노신사의 초상을 통해서 그와 같은 인간 삶의 역동 적 드라마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좋 은 시는 회화보다 더 회화적이고, 좋은 그 림은 시보다 더 시적이기 마련인 것이다.
6. 불의 소리
국보 제119호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 광배 의 화염문은 몸체의 힘찬 옷자락 선과는 대 조적으로 평면적이면서 부드럽다. 못으로 그은 듯한 촘촘한 선들을 꽤나 넓은 光背( 광배) 면에 「서리서리」 채워서 불꽃을 표 현하였다. 그래서 이 광배는 앞서 본 부석 사 광배에서와 같은 상승하는 불의 기세를 느끼기는 좀 힘들다.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도안적이면서도 다소 자유분방하게 처리한 불길의 선은 불이 지니는 시각적 이 미지보다는 오히려 불이 탈 때 내는 청각 영상을 환기시켜 주는 면이 있다. P. 클레 의 그림에 급류의 흐름을 이와 비슷한 선으 로 표현한 것이 있다. 금동여래입상의 광배 는 불을, 클레의 그림은 물을 표현한 것으 로 그 대상은 서로 다르지만 나타난 선의 기법이 주는 美感(미감)은 비슷하다. 왜 그 럴까? 그 둘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 일까? 클레의 그림은 여름철 계곡 물의 흐 름과 소리를, 금동여래입상의 광배는 겨울 철 불길의 흐름과 불이 내는 소리를 환기시 킨다. 두 작품의 線描(선묘)는 물길과 불길 에 있는 운동성과 음향, 그것이 반복되고 변화되는 리듬의 미감을 느끼게 해준다. 성덕대왕신종 종신의 꿇어 앉은 비천상의 몸통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寶相花(보상화 ) 무늬와 天衣(천의)자락이다. 그러나 이것 도 어김없이 불의 이미지를 풍긴다. 도상학 적으로 볼 때 그것은 구름처럼 피어 오르는 보상화문과 바람에 날려 올라가는 옷자락 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표출하는 조형 의 지는 불꽃의 인상이다. 전체적으로 비천상 은 燒身供養(소신공양)의 인상이다. 여러 금속이 불에 녹아서 만들어지는 종은 금속 들의 소신공양인 셈이다. 현상적으로 종은 차가운 금속의 응고체이다. 그러나 땅 속 흙구덩이에서 지펴져서 하늘 위로 사라지 는 불에 의해 주조되는 종은 뜨거운 불덩어 리이다. 종은 불의 딸이다. 종의 본질은 불 이고, 종소리는 불의 울음이다. 그 소리는 땅 밑 지옥에서부터 하늘 끝까지 울린다. 불티가 하늘로 올라가듯 소리 또한 하늘 속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음악의 精靈(정령 )인 天神(천신)들은 천상에서 내려온다. 조선 후기에 세워진 石鐘形(석종형) 부도에 서도 불의 소리는 들려온다. 다비한 스님들 의 사리는 종 모양의 부도 속에서 불의 설 교를 마치 종소리인 양 세상에 울려보낸다. 또 석등에는 청량사 석등,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개선사지 석등, 실상사 석등들에 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중대석에다 북 모 양을 새겨 놓은 異形(이형)의 석등으로서 이른바 鼓腹形(고복형) 석등이 있다. 이것 도 우리의 관심을 끈다. 조명 시설인 석등 의 기둥 가운데에다가 무슨 뜻으로 북을 새 겨 놓았을까? 망치로 돌을 두들기면 돌에서 불꽃이 튄다. 돌의 본질도 불이다. 예전의 석공들은 돌로 불꽃의 형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돌 속에 들어 있는 불을 새겨내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을 켜고자 했다. 옥 개석과 하대석에 화려한 귀꽃 장식을 한 석 등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타오르는 불길처 럼 아름답다. 그런데 왜 그런 석등에다 난 데없이 북을 새겼을까? 여기서도 불의 소리 가 들려온다. 눈에 비치는 빛을 귀에 들리 는 소리로 전환해 놓은 것이다. 참으로 기 발한 共感覺的(공감각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고복형 석등이 빛의 북이라면, 성덕대왕 신 종은 소리의 燈(등)이다. 석등에서 비쳐 나 오는 빛의 소리와, 종에서 울려나오는 소리 의 빛은 다음과 같이 설법한다. 소리와 빛은 둘이 아니라고 종과 석등과 북과 향이 모두 하나라고 예[古]와 지금과 東(동)과 西(서)가 모두 하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