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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의 기절 4.
순자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차 안으로 들여다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진하게 코팅되어 밖에서는 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밖에 있는 모두가 잘 보였다. 차 안에서 즐기고 있는 두 사람은 행동을 멈추고 쥐죽은 듯 조용하였다. 순자는 모텔로 가면 샤워도 할 수 있고 체위도 다양하게 바꿀 수 있는데 왜 이런 곳에서 사랑을 할까 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온종일 보슬비가 하염없이 뿌리는데도 순자는 우산을 들고 주차장 언저리에 우두커니 서서 사춘기 시절을 추억해 본다. 불타는 열정을 억제 못 하고 청춘을 뜨겁게 보냈던 시절을 추억하니 미소가 나왔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추억은 한순간에 멀어져 갔다. 순자가 소나기를 피하려고 전주처럼 똑바로 서 있었다. 갑자기 불어오는 미친 비바람이 여인의 우산을 뺏으려고 씨름하는 동안 옷을 흠뻑 젖고 말았다. 비바람에 우산이 뒤집혀 졌어 부서졌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비를 맞고 집으로 돌아올 때 희고 엷은 티셔츠가 비에 젖어 자주색 유두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순자가 골목길에 접어들어 집 앞에 서서 부서진 우산으로 젖가슴을 가리고 앞집 초인종을 눌렀다. 친구 혜숙이 누구세요? 하자 순자가 내다, 옷이 젖어서 못 들어가니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하고 대문을 열어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순자와 이혜숙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친구 사이다. 그녀들은 날마다 수영하러 다니면서 수다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거실로 돌아온 순자가 옷이 젖어 샤워실로 바로 들렀다. 샤워를 마치고 알몸으로 나온 순자는 옷을 입으려고 큰방 문을 열었을 때 남편이 침대 위에서 피를 흘리고 죽어있었던 그날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소름 끼치던 그 순간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 가끔 깜짝깜짝 놀랄 때도 있다.
국가감식 부서에 근무하는 김재규 의사는 박치기와 오미자 그리고 조미숙 등 세 사람의 지문이 나왔다고 연락이 왔다. 형사가 오미자는 정밀기업 경리고 자주 접하기 때문에 혐의가 없다며 면책하였다. 조미숙의 신상에 대한 정보를 복사하여 여인을 찾아갔다. 아파트에 혼자 사는 사십 대 초반 아가씨였다. 형사가 여인을 검거하여 조사하였는데 끝까지 부인하며 묵비권을 행사하였다. 형사는 미숙의 혐의를 찾지 못하여 잠시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미숙은 이튿날 회사에서 병원에 건강문제로 입원하여야 한다며 돈이 없으니 임금을 달라고 하여 다 받아 챙겼다. 정밀기업에 병가를 내고 돌아온 미숙은 경찰서에서 눈치를 채고 형사가 쫓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전세금을 뽑아 도피하겠는 각오로 부동산에 다시 전세를 내놓았다. 가을이 다가오니 이사를 하려는 사람이 많아 전세는 금방 나갔다. 미숙은 부동산 사무실에서 수당제로 일하는 아저씨와 짜고 주인행세를 하고 전세금을 받아 야반도주를 하였다. 명태 형사는 미숙의 혐의를 찾으려고 손 전화기의 통화내용을 모두 조사하였다. 일일이 알아보았으나 별다른 사람은 못 찾아도 박치기 과장과 가끔 통화한 사실을 알아냈다. 명태 형사가 미숙을 찾아왔을 땐 이미 도주한 후였다. 전국에 수배명단을 배포하여 반드시 잡을 것이라고 명태는 자신에 넘쳐있었다. 형사는 정밀기업 치기를 만나 여러 가지 조사하여도 관련된 혐의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치기가 친구와 만나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사는 미숙의 부모가 사는 지방 도시로 찾아갔다. 조미숙의 부모는 산기슭에 허물어져 가는 작은 집에 살고 있었다. 조미숙의 아버지는 여든이 넘은 나이라도 폐지를 거두러 다니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다. 형사는 미숙의 부모를 만나 상기의 죽음에 딸이 연관되어있다고 전했다. 딸에게 자수하라고 부모가 설득해 주면 감형해 준다고 형사가 말했다. 조미숙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더이다. 인생의 행로 따라 흘러갈 뿐이라며 본인의 삶을 이야기 했다. 미숙은 대학을 중퇴하고 무작정 부산으로 떠나버렸다. 그 후로는 소식이 없더니 나중에 들었는데 주점에서 마담을 하였다고 들었다. 마담 생활 몇 년 후 딸이 직접 주점을 운영하다가 그 지역 깡패들과 이권 다툼으로 몇 번 싸운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점에서 화재가 일어나 모두 불타버렸다. 조폭의 행동이라고 알고 있어도 증거가 없어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조미숙은 조폭들이 저지른 화재에 폭삭 망해버렸다. 딸이 가지려는 꿈은 크지만 잘 행해지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아비를 닮았다 했다. 나의 계획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리자 미숙은 삶을 찾아 집을 나갔다. 병들어 누운 아비가 보기 싫어 가출하였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미숙은 통솔력이 강하지만, 경험이 부족하여 성공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아비는 직장생활 하라고 그렇게 말렸지만, 기어이 몸을 던져서라도 자영업을 하겠다고 하더니 결국엔 거지가 되어버렸다. 그러는 사이 혼기도 놓치고 지금까지 혼자서 삶에 허덕이고 있다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노부모는 눈물을 흘리면서 무남독녀가 이 못난 아버지를 위해 이렇게 살고 있다 했다. 딸이 돌아오면 반드시 설득시킬 것이니 형을 감해 달라고 형사의 손을 잡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조미숙은 경찰관이 무서워 도망을 가지만 상기를 죽이지 않았다. 미숙은 사실을 알려도 믿어주지 않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어 잠적해 버렸다. 형사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되새기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밀기업에 수없이 드나들어도 코밑에 범인을 놓고 멀리서 찾는다고 시간만 낭비하였다. 형사는 미숙의 흔적을 찾아다니지만,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었다. 조미숙의 생각은 민가와 동떨어진 곳을 찾아가려고 했지만, 갈 곳이 없었다. 생각을 바꾸어 가장 붐비는 곳으로 끼어들어 모습을 위장하기로 했다. 머리 모양도 긴 머리에서 단발머리로 바꾸었다. 조미숙은 광대뼈 아래에 점도 만들어 넣고 얼굴은 몰라보게 변장하였으니 안심하리라고 믿었다. 아주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조미숙은 누구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종교가 없어도 종교인으로 행세하려고 수천 명의 교인이 드나드는 교회를 찾아갔다. 남편으로 학대받다 참을 수 없어 집을 나왔다 했다. 갈 곳은 없으나 숙식이 해결되니 교회식당에서 일하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듣고 있던 집사는 딱한 사정에 온 힘을 다하여 미숙 신자를 도와주려고 했다. 미숙은 집사와 함께 목사를 만났다. 김은경이라고 가명을 상용하면서 재치 있게 연출하였다.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목사는 식당에서 일하라고 했다. 집사의 도움으로 미숙은 생각보다 쉽게 일자리를 찾았다. 교회식당에서 전전긍긍하면서 뒷일을 도우며 끼니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미숙은 화장할 때 광대뼈 아래에 점을 반드시 만들어 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에는 위치가 약간 다른 곳에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을 유심히 본 동료가 집이 어디며 어떤 곳에서 일하다가 왔는가 하고 상세하게 물었다. 산비탈 마을식당에서 일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대답을 싫어하는 미숙은 이름까지 김은경으로 바꾸어 알렸다. 식당에서 일하는 동료 중 한 사람이 미숙을 찾는다는 전단을 보았다. 그것을 본 여인은 조미숙의 행동이 수상하게 보인다며 은밀히 경찰에 신고하였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곧장 달려왔지만, 조미숙은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조용한 곳에서 일하면서 마음을 닦아보려고 절로 찾아들었다. 절에 가는 보살을 따라가면서 절에서 일하겠다고 스님에게 일자리를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다. 미숙에게 간청을 받은 보살은 모 사찰의 신도회 회장이었다. 보살은 미숙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 인품을 알아보았다. 조미숙은 살아남기 위해 또 거짓말을 하면서 슬픈 연극을 연출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아이를 못 낳는다고 학대하더니 이혼하자고 강요하였다. 이혼하지 않고 있었더니 여자를 데리고 와서 옆방에서 자고 갈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저를 인간 취급을 하지 않고 술만 먹으면 폭행이 심하여 도저히 함께 살 수가 없었다. 돈을 벌어오라고 생활비도 주지 않았다. 조미숙은 어쩔 수 없이 이혼하고 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집을 나왔다고 했다. 한 참을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다가 불쌍하게 보여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로 했다. 절에 가면 주지 스님에게 말씀드려 일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신도회 회장은 사찰에서 운영하는 작은 정지에서 일하도록 주지 스님에게 간청하였다. 조미숙은 원로 보살의 지시에 몸을 아끼지 않고 뒷일을 도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형사계에서 미숙을 찾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 전국 불교 단체에 연락하여 주방에서 일하는 근로자를 조사하였다. 미숙이라는 여인이 있으면 신고해 달라고 통지문도 보냈다. 미숙이가 숨어있는 절에도 수배자를 찾는다는 전단이 입구에 붙었다. 형사는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최근에 들어온 사람이 있는가 하고 주지 스님에게 알아보았다. 불모산기슭에 지명사 주지 스님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하였다. 형사 두 명이 불자처럼 행동하며 주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미숙이가 거사님들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묻자 주지 스님 만나려고 왔다 했다. 조미숙은 절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주지 스님은 손님이 있으니 공양을 방으로 가져다 달라고 미숙에게 부탁했다. 멋모르고 스님 방으로 공양을 갖고 들어가니 낯 서른 거사 두 명이 조미숙을 쳐다보았다. 조미숙은 형사라고 판단하고 튀려고 하다가 조용히 따르기로 했다. 형사는 사진의 얼굴과 전혀 달라 아니라고 지나쳐 버리려다 간단한 조사를 하기로 했다. 형사는 신분을 밝히고 미숙에게 몇 가지 질문했다. 주민 번호와 이름 주소를 물었다. 조미숙은 딱 걸렸구나 하며 망설이다 허위 주소와 이름 주민등록번호를 말하고 잠시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했다. 신분 확인을 하는 동안 조미숙은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산속으로 튀었다. 조미숙은 도망치려고 하자 밖에서 지키고 있던 여경이 태권도가 3단의 실력을 발휘하여 잡았다. 조미숙은 신도회 회장에게 거짓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형사와 쫓고 쫓기기를 반복하다 결국은 잡혔다. 그녀의 손목에 쇠고랑을 채우자 갓 잡은 전어처럼 후다닥 거리며 발버둥쳤다. 형사 두 명이 다가와 여경과 함께 미숙을 태우고 사라졌다. 경찰서 조사실에서 조미숙은 입을 열지 않았다. 조사실 형사는 3교대로 번갈아가며 계속 같은 질문을 계속하였다. 조미숙은 묵비권을 반복하면서 끝까지 입을 열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다. 명태 형사가 다가가 타협하면 서로가 좋을 것인데 왜 말을 하지 않는지 의문을 던졌다. 조미숙은 거금을 누구에게 주었는지 따지고 묻자 여인은 며칠을 더 굶주릴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배가 고파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지자 실신 상태에 이르렀다. 약간의 응급조치로 포도당 5%짜리 한 병을 맞고 의식이 돌아왔으나 역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조미숙은 사랑하는 치기가 다칠까 전전긍긍하면서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미숙은 경찰서 조사실에서 일주일 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먹지도 않고 굶주리면서 단식 투쟁을 하더니 정신이 몽롱해 졌는지 입을 열었다.
명태 형사가 이제 말할 때가 되었으니 말해보라고 했다. 조미숙은 정밀기업회사원이라고 했다. 형사는 미숙에게 물 한 모금 마시게 하였다. 갈증에 입술이 타든 미숙이가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형사는 여인에게 물었다.
“박치기를 잘 아는가?”
“같은 회사 직원이라서 조금 압니다.”
“통화한 사실이 있던데 자주 만나요?”
“아니요 휴일에 서로가 심심하면 한 번씩 통화해요.”
조미숙은 치기의 정성에 감동하여 절대로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했다. 형사의 끈질긴 질문에도 혼자서 저지른 일이라고 강조했다. 남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치기는 정말 모르는 일이다. 미숙은 치기를 가져야 회사를 얻을 수 있다. 치기에게 조금의 연관성이 있어도 모두 허사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과장과 절대로 엮이지 말아야 한다. 형사가 미숙에게 사장을 무엇으로 죽였는가? 조미숙은 절대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하면서 다시 입을 다물고 묵비권 행세를 했다. 무엇으로 왜 죽였는가 하고 다시 물었다. 조미숙은 덜덜 떨면서 정신병자처럼 연극을 했다. 조사실에서 명태 형사가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주지 않겠다고 강조하였다. 형사가 일주일 되도록 잠을 제대로 재우지 않았다. 형사가 다시 다그쳐 묻자 미숙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여인은 자신이 꾸민 일이라고 울면서 자백했다. 조미숙은 일 년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한 범행이라고 실토하였다. 여인은 결혼도 못하고 밑바닥 인생으로 살기가 싫었다. 비참하게 사는 것은 죽음보다 못한 삶이라 생각하여 목숨 걸고 범행을 음모했다. 조미숙은 사장이 죽이면 누나가 동생에게 회사를 맡기고 월급사장으로 명하리라 믿고 저지른 행동이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장 자리에 앉히려고 계획한 단독범행이라고 자백하였다. 박치기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명태 형사는 누가 어떤 방법으로 죽였는지 묻자 미숙은 “상기는 살아있다.”라는 단편소설이 서랍에 있는데 책장마다 범인의 지문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범일 전화국 앞 현금인출기에 7월 13일 10시 CCTV를 보면 그곳에 나타나는 얼굴이 범인이라고 했다. 박치기과장이 사장이 되면 아내와 이혼시키고 조미숙은 박치기의 아내로 살 생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박치기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아파트 전세금으로 빌려준 돈이 엉뚱한 곳에 사용되었다고 투덜거렸다. 미숙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사장을 죽이고 기업을 뺏으려는 파렴치한 여자였다. 명태 형사는 박치기를 불러 공범죄로 추궁하자 전혀 아는 바 없다 했다. 형사는 거액의 금전 거래가 공범죄에 해당한다고 했다. 형사는 청부살인자의 사진을 전국에 수배하고 찾아보았지만, 조치원은 출국하였으므로 잡지 못하고 귀국할 날만 기다렸다. 말레이시아 경찰에게 인터폴로 통하여 협조를 부탁했다. 형사는 성과 없는 줄 알면서도 연락했다. 명태 형사는 미숙을 살인청부 죄로 압송하고 박치기를 범인에게 금전협조 죄 범인 은닉죄 두 사람은 김해 교도소에 수용되었다. 일차공판에서 조미숙은 살인청부 죄로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했다. 그리고 박치기를 회사공금 회령 및 거금으로 살인청부를 도와준 죄 그리고 범인 은닉죄로 징역 오 년형을 내린다고 판사는 명했다. 행복을 누리려던 두 사람은 평생을 불행으로 살아야만 했다. 여인이 한순간 잘못된 생각으로 두 사람은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다. 목숨만 있다고 사는 게 아니다. 박치기는 김해교도소에 면회 온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고개 숙이며 인간답게 살아야 사랑하며 사는 것인데. 듣고 있던 아내는 지금까지 고생했지만, 앞으로는 밖으로 나올 생각하지 말고 그곳에서 주~욱 살아보라고 했다. 박치기 아내 해수가 우리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화목한 가정이었는데 아내를 배신한 죄로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라고 하고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집으로 왔다.
최하라는 7월 12일 아버지의 기일이라 일 년 만에 집으로 왔다. 누나 명희도 친정에 와서 어머니와 함께 기일의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양팔 벌려 자식을 반긴다. 최하라가 얼싸안자 어머니는 등을 툭툭 치면서 반가움에 눈물을 글썽거린다. 하라는 어머니의 핼쑥한 얼굴이 안쓰러워 포옹한 채 눈물을 흘렸다. 반가움의 눈물이어야 하는데 혼자서 고생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최명희는 가족이 다 모였으니 거실로 가자고 동생을 달래며 어머니를 모시고 먼저 들렀다. 최하라는 샤워장에서 온몸을 깨끗이 씻고 방으로 들러 조카를 안고 많이 컸구나 하며 좋아한다. 최명희의 남편도 기일에 참석하려고 모처럼 처가에 들렀다. 하라는 오랜만에 매형의 손을 잡았다. 하라가 범인을 잡았는지 궁금하다고 할 때 어머니는 그래 잡고 보니 외삼촌도 연유되어 있다고 들었다. 외삼촌이 아빠를 왜 죽였는지 알아보려고 외숙모를 불렀다. 외숙모는 생질 앞에서 분노를 터뜨리며 못살겠다고 땅을 치며 하소연하였다. 너의 외삼촌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 젊은 여인이 임신했다고 좋아하더라.
며칠 전에 김해교도소 면회실에서 만나고 왔는데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평생 그곳에서 살면서 뉘우쳐보라고 했다. 그리고 너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바로 외삼촌의 애인이란다. 외삼촌도 공범죄로 김해교도소에 있더라. 하라는 외숙모를 달래며 진정하라고 했다. 외숙모는 내가 진정이 되겠는가 하면서 울분을 터뜨렸다. 박순자도 올케를 달래며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외숙모는 생질 앞에서 큰소리쳤다. 이토록 고생하며 자녀를 길러놓았는데 신랑이 저토록 외도하면서 새로운 가정을 꾸미려고 계획했으니 원통하고 분하여 가슴이 터지려 한다 했다. 한 시간이나 화풀이하면서 떠들더니 외숙모는 참지 못하고 엉엉 울면서 돌아갔다. 하라가 어머니에게 요즘 꿈에서 자주 아버지를 보았다고 했다. 그러자 최명희도 아! 나도 아버지가 꿈에 보이더라고 했다. 어머니도 며칠 전에 남편을 꿈에서 만나 가족과 함께 여행하자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모두가 이상하다는 뜻으로 대화하면서 어머니는 기일이라서 자식들이 보고 싶어서 그랬을 거라고 말꼬리를 돌렸다. 초복이 가까워오는데 갑자기 날씨가 변덕스럽게 이변을 일으키고 있었다. 누워서 흐르는 강물이 갑작스러운 폭우로 아주 많이 불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윗마을에 비가 많이 온 모양이다. 두 번째 기일이라 종반이 한 명도 빠짐없이 다섯 사촌이 제주로 모였다. 최하라가 사촌 형님은 세상에 삼촌 성품처럼 좋은 사람은 없을 것인데 하면서 숙모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숙모 박순자도 조카들에게 바쁜 시간에도 참석해 주니 고맙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최상기가 잡혀간 지 다섯 시간 만에 의식이 돌아왔다. 온몸이 묶인 채 자루에 담겨 어디론가 이송되고 있었다. 손발이 묶인 채 입에는 테이프로 봉하여 겨우 콧구멍으로 숨 쉬며 쪼구려 자루에 담겨 있었다. 7월 초순이 지난 어느 날 밤이었다. 외딴 섬에 끌려간 최상기가 자루에서 나왔다. 입에 붙은 테이프와 다리에 끈은 풀어주었지만, 양손은 풀지 않았다. 상기는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지만, 밤하늘에 별빛은 보이지 않았다.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만 들었다. 섬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덮고 있었다. 양팔이 묶인 채 한참을 가다가 안갯속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가로등 아래 회사 간판이 붙은 건물이 하나 보였다. 입구에는 대성산업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안내자는 양팔을 묶은 끈을 길게 늘어진 줄을 잡고 뒤에서 재촉하였다. 최상기가 보기엔 포로수용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경계가 아주 삼엄하고 경비초소에 근무자는 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탈출을 못한다는 광경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교도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사출기공장 정문에서 검문하는 경비원은 덩치가 좋고 체격이 아주 건장한 사내였다. 상기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생활용품을 찍어내는 플라스틱 공장이었다. 사출기공장에는 야간에도 수십 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었다. 공장 밖에는 주택이 보이지 않고 출퇴근하는 배도 없는데 공장의 근로자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하였다. 상기는 양손이 묶인 채 긴장한 몸으로 끌려가면서도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한 참을 걸어가다가 터널 같은 좁을 길로 접어드니 또 다른 공장이 있었다. 세상에 은폐된 곳에서 마약을 제조한다고 안내자가 말하자 상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안내자는 여기에 들어오면 살아서 나가는 사람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다고 강조하였다. 섬 밖으로 나간다는 생각은 개미허리만큼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열심히 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생각을 바꾸면 바로 처형된다고 안내자는 엄포를 놓았다. 호적이 없는 사람으로 노예가 되었다는 것을 암시해 주었다. 안내자는 최상기의 의사도 물어보지도 않고 일할 곳을 가리키며 작업지시를 한다. 여기에서 마약제조 하는 일을 도우면서 틈을 내어 식당에서 뒷일을 도와야 한다고 했다. 식당일은 엄청나게 힘이 든다고 덧붙였다. 안내자는 상기를 야간 근무자에게 감시 잘 해라는 명령을 하고 잠자리에서 묶인 팔을 풀어주었다. 상기는 다시 군대로 돌아온 느낌을 받았다. 매트리스 하나에 모포 세 장을 주면서 여기가 당신의 안식처라고 말하며 어서 누우라고 명한다. 상기는 긴장하여 아침을 맞았다.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힘든 일을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식사 시간이 끝나고 어제 상기를 몰고 온 그놈이 다시 찾아와 마약공장으로 데리고 간다. 마약을 제조하여 봉지에 담아 다시 십 키로 정도의 포대에 담아놓은 마약을 비밀통로 운반하여 배에 선적하는 작업을 지시한다. 마약공장과 창고가 있는 지하에는 땅굴 속의 개미집을 방불케 했다.
섬에서 운영되고 있는 공장은 겉으로는 생필품 제조 공장으로 허가받아 놓고 일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공장 안에 공장에서 마약을 더 중점적으로 제조한다. 냄새를 제거하기 위하여 주로 북동풍이 불어올 때 야간작업을 쉴 새 없이 진행하고 있다. 조직도 대단하여 국제적인 단체라고 선임 근로자가 말한다. 여기서 만들어진 제품은 세계 각국으로 수출한다 했다. 상기는 끌러가는 날부터 주방에서 뒷일을 돕고 마약을 운반하며 노예처럼 살고 있었다. 근로자 숙소는 이 층 시멘트 집으로 되어 군대식으로 생활하였기에 젊은 시절을 회상케 했다. 한 막사에 삼십 명씩 생활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일하는 젊은 사람은 모두 연대가 비슷하였다. 가정에서 가장 활동적으로 열심히 벌어야 할 사오십 대이었다. 상기는 노예생활로 삼 년을 넘게 살고 있었다. 말복이 지나고 입추가 되던 날 태풍이 세상을 뒤집고 있었다. 역대 최고 강풍인 허리케인보다 더 무서운 태풍이 우리나라의 남해안 섬을 삼키려는 기세로 다가오고 있다. 비바람이 얼마나 세게 몰아치는지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날아갔기 때문에 막사의 창문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막사 안으로 빗물이 흘러들고 있었다. 정문 경비실에는 유리가 다 깨어지고 출입문이 바람에 날려가 버렸다. 전주가 넘어져 정전까지 되어 불안한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상기는 근로자 중에서도 인기가 많아 따르는 동료도 많았다. 상기 곁에는 생사를 같이하겠다는 네 명이 항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정문 경비실 초소가 바람에 날아가고 많은 비에 정전되어 암흑의 시간이 되고 있었다. 상기는 평생에 한 번 오는 기회라고 대원에게 말했다. 대원들은 하나같이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자고 하였다. 모두가 운동화 끈을 바짝 조여 매고 윗도리도 벗어 던져 버리고 오르지 가벼운 몸으로 최상기가 탈출하자 나머지 대원도 따라붙었다.
경비는 비를 맞으면서도 경계하던 장소를 떠나지 않고 번갯불에 주위를 삼엄하게 살피고 있었다. 경비원은 간첩보다 더 철저하게 심리교육을 받은 자들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틈을 이용하여 최상기가 탈출할 때 경비원이 나타나자 몸을 숨겨서 변을 보는 체했다. 경비는 비바람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어 보지 못하고 스쳐 간 틈을 이용하여 행동을 개시하였다. 최상기가 모두 바지를 벗으라고 했다. 바지로 철조망을 덮어놓고 그 위로 넘어 죽음을 각오하고 포구 쪽으로 뛰었다. 상기를 따르던 네 명도 함께 따라붙었다. 파도는 10~18m의 높이로 치솟고 있었다. 배에는 모터가 없었지만, 대원들은 밧줄을 풀고 배를 밀어 물 위에 띄웠다. 대원들의 행동은 빠르게 움직였다. 배는 한 잎의 낙엽 같아 보였다. 다섯 명이 한마음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모두 회사작업복 상의를 벗어 던지고 물속에 몸을 던졌다. 작은 배에 의지하면서 파도타기를 반복하였다. 다섯 명의 생명은 낙엽 같은 배에 의존하면서 산마루처럼 높이 올랐다가 깊은 계곡으로 내려가기를 반복하였다.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으로 배를 밀면서 헤엄쳤다. 작은 배를 최상기가 뒤에서 밀고 옆으로 두 명씩 붙어 사력을 다해 밀고 또 밀었다. 비바람에 의하여 뒤집힐 듯 휘청거리며 파도는 육지 쪽으로 밀려가고 있을 때 섬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대원을 향하여 사격이 가해지고 있었다. 사격권 밖으로 밀려나지 않았지만, 바람에 흔들려 조준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저격수가 많다 하더라도 거리가 떨어져 명중률은 희박하였다. 번갯불에 조준하여 사격하기 때문에 정확도는 있다고 생각하여 배를 밀면서 도피에 정열을 쏟았다. 배를 뒤집혀 밑으로 들어가려는데 파도가 산더미처럼 높이 치솟을 때 번갯불이 번쩍하면서 위치가 발각되었다. 저격수로 이루어진 경비원은 m16 소총으로 연발 사격을 했다. 한 명이 총에 맞았다. 소발에 쥐 밟히듯 운 없게 주걱뼈 아래쪽에서 붉은 피가 바닷물을 벌겋게 물들이고 이었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시신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피비린내를 감지하여 식인상어가 나타날까 걱정되기도 했다.
한 사람이 사라지자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하여 뒤집힌 작은 배 밑에서 밀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해보기도 했다. 오로지 바람의 힘으로 배가 떠밀려가고 있었다. 동료가 총에 맞아 죽는 모습을 보는 순간 오히려 힘이 솟아났다. 총맞은 시신을 버려야만 나머지 대원이 살기 때문에 하는 수 없었다. 미쳐 배 밑으로 들어가지 못하여 생긴 일이다. 배 밑으로 숨었으니 쌍안경으로 보아도 보이지 않아 초소에서 총소리가 멎었다. 번갯불이 가끔 일어나도 어둠과 산 높이의 파도 때문에 멀리서 잘 보이지 않았다. 비바람은 쉬지 않고 연이어 불어 재낀다. 배를 머리에 이듯 뒤집힌 배는 바람에 밀리고 파도에 밀려 바다 바깥쪽으로 떠밀려가고 있었다. 다시 사력을 다해 배를 뒤집어 양쪽으로 두 명씩 붙어 배의 허리를 잡고 헤엄치면서 파도를 탔다. 섬에서는 잡으러 올 배가 없어 다행히 살아날 수이었다. 상기 대원들은 배를 바로 세우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과로에 한 명이 실종되었다. 총소리에 놀라 긴장한 몸으로 힘을 많이 소모하여 발에 쥐가 일어난 일이었다. 생사를 놓고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대원을 구호하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모두를 죽이는 일이었다. 최상기는 실종자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찾는다 하더라도 어떻게 할 힘이 없었다. 비바람이 상기 대원을 살렸다. 물보라가 심하게 흩어지자 작은 배가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상기 대원은 살아남았다. 뭍에서 감시하는 승용차가 낭떠러지로 지나가다 바람에 날려 뒤집혀 졌다. 차 밖으로 나오면 사람도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처박힌 차 안에서 공포에 떨면서 대책을 생각하고 있었다.
직선거리로 조정하여 포구로 들어갔으면 조직원에게 잡혔겠지만, 최상기가 바람의 흐름을 잘 파악하여 배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우회하였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최상기 대원은 배에 올라갈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작은 배 일부를 잡은 채 파도타기 하면서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사투가 네 시간이나 계속되는 과정에서 또 한 명이 실종되었다. 최상기가 실종자에게 명복을 빌었다. 내가 살기 위해 너를 구하지 못하여 미안하다고 기도했다. 뒤집힌 배를 바로 하면 바람을 많이 받아 빠르게 뭍으로 이동할 수 있어 양옆으로 한 명씩 붙었다. 그러다 다시 뒤집혀 졌다. 삶아놓은 채소처럼 처져버린 두 사람의 힘으로 배를 바로 세울 수 없었다. 생명이 끈질긴 두 사내는 뭍에 도착하기 직전에 생을 포기하려고 했다. 서로가 마지막 힘으로 용기를 주면서 살아남자고 앞니를 물었다. 파도는 산더미처럼 밀려오고 뒤집힌 배 안에 매달려 파도에 휩쓸려 떠밀려갔다. 최상기는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배의 꼬리만 잡고 생사를 건 사투를 계속하였다. 끝까지 목숨을 지키지 못하고 끝내 세 명은 실종되고 두 명만 살아남았다. 죽어가는 동료를 보아도 내 삶을 위하여 도와줄 수 없었다. 힘에 지쳐 세 명은 눈에서 멀어졌지만, 김망치는 마약공장에 있을 때도 지독한 놈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지독한 놈과 상기는 십 년을 살아온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이 흐르고 육지에 발을 닿았다. 그때의 기분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느낌과 같았다.
죽은 오징어처럼 축 늘어져 조금도 걸을 수 없었다. 큰 바위틈에 파고들어 바람을 피하면서 잠시 정신이 들 때까지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배는 계속 파도에 밀려 멀리 떠내려가고 있었다. 두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행동을 개시하였다. 더 있고 싶었지만, 주위를 지키는 대원에게 잡힐까 걱정이 되어 어서 이곳을 빠져나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하여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하였다. 오솔길 지나 비포장도로로 달려갈 때 산모퉁이 돌아오는 자동차 불빛이 보여서 최상기와 지독한 놈은 숲 속으로 깊숙이 숨어들었다. 최상기 쪽으로 달려오던 자동차는 감시하다 처박혀있는 동료를 구하려고 가는 중이었다. 배를 깔고 엎드려 있다가 자동차가 사라진 후 비바람을 헤치며 다시 뛰었다. 최상기와 지독한 놈은 러닝셔츠도 벗어버렸다. 신발은 헤엄치면서 언제 벗겨져 나갔는지 몰랐다. 두 사내는 국방색 팬티뿐 신발도 없었다. 태풍에 날리면서 여차리 천장산 숲을 헤치며 한 참을 걸어서 도로를 발견하였다. 여차리 해변로를 맨발로 뛰었다. 발바닥은 찢어져 피를 흘리며 부어올라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인근 주택을 찾아 담을 넘었다. 시골집 마루에 마른걸레가 눈에 띄었다. 다 떨어진 러닝셔츠를 절반으로 찢어 양발에 감고 나와서 다시 뛰었다. 마을에서 구호를 요청하고 싶지만, 이 지역 주민은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신고하여 보상금을 받기 위해 물들여진 사람들이라고 의심하였기 때문이었다. 여차마을 언저리에 승용차가 눈에 띄었다. 최상기가 작은 유리를 깨자 지독한 놈은 자동차 뒷문을 열어 안으로 들렀다. 운전석 문을 열어놓고 전선 껍질을 벗기더니 시동을 걸어 부산 방면으로 차를 몰았다. 지독한 놈의 전직은 자동차 정비공장 공장장이었다. 거제시 천장산 아래 여차리에서 승용차를 훔쳐 타고 달렸다. 다포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망치리 해변로로 달려갈 때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옥포를 지나 송정 인터제인지에서 거가대교를 향해 달렸다. 거가대교를 지날 때는 거친 바람에 차가 날아갈 듯 휘청거렸다. 두 사람은 거가대교로 달려가다 진해앞바다에 물귀신 될 뻔했다. 태풍이 심한 새벽이라 도로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았다. 지독한 놈은 경주하듯 달려가는 승용차가 을숙도대교를 지나고 있었다. 최상기가 지독한 놈에게 연제구 거제동에 있는 부산 지방검찰청으로 가자고 했다. 물에 빠진 생쥐 모습으로 최상기와 지독한 놈은 팬티만 입고 검찰청에 들렀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알몸으로 숙직실에 들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