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차 크게 패했고 나름 대량실점 했습니다만 그냥 <1패>입니다. 복장 터지는 모습을 보이거나, 황당한 실수나 본헤드 플레이를 범해서 욕이 절로 나오거나 뭐 그런 장면은 없었죠. 상대 선발이 너무 잘 던졌고, 우리 선발은 출발이 좋았으나 3-4회 고비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중반 이후 각각 한번의 찬스에서 득점에 성공했는데 이미 벌어진 점수차가 너무 컸네요. 그게 전부입니다. 이런 경기 나올 수 있죠. 장원삼이 예전 같지 않은 투수지만, 적어도 오늘은 예전 같은 공을 던졌고, 이렇게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어제 같은 날도 있고 또 오늘 같은 날도 있는거죠.
어제 오늘 두 경기를 했는데 삼성 선발은 14이닝 6실점, 우리 선발은 7.1이닝 12실점 했습니다. 상대 선발이 우리보다 2배 길게 던지면서 점수는 절반만 내줬죠. 그런데 1승 1패로 맞섰으니 결과는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다만, 역시 선발이 버텨줘야 좋은 야구를 할 수 있다는 명제는 변함이 없죠. 김민우의 구속은 만족스러웠는데,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의 제구는 좀 보기 안 좋았습니다. 다음 등판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다음에 마운드에 서는 날에는 본인의 공을 좀 더 믿기 바랍니다. 홈런이야 언제든 맞을 수 있지만, 볼넷이 없었으면 실점이 6개까지는 안 쌓였을테니까 말입니다.
오늘은 장민재와 정우람의 등판이 어렵고, 송은범-안영명-이태양 모두 하루 쉬거나, 나오더라도 짧게 던지는 게 좋았을 날입니다. 박주홍도 원포인트 정도만 가능했고요. 박상원과 서균 위주로 오늘자 불펜을 세팅해야 되는데 두 선수 모두 롱릴리프가 아니죠. 중간계투 운용이 완전히 꼬일 수도 있는 날인데 이태양이 4.1이닝을 모두 책임져 주면서 동료들의 부담을 덜었네요. 선발투수를 1+1으로 운용한 느낌인데, 어쩌면 (중계방에서 한 회원님이 언급하신대로) 애초에 오늘 운용 계획을 그렇게 잡았던 것 같기도 하네요. 1패를 적립했고 결과는 나빴지만 투수진의 무리한 등판은 막았으니 나름 괜찮은 선택입니다. (투수 운용 부분에서 보면) 이런 경기가 잘 지는 경기죠. 다만, 이태양이 수-목 이틀간 18개를 던졌고 오늩 투구수가 70개를 넘겼는데, 이왕이면 다음주 수요일까지는 쉬어주면 좋겠네요.
양현종도 무너뜨리고 장필준에게 블론도 안기던 타선이 오늘은 장원삼에게 꽁꽁 묶였습니다. 통산 118승 투수지만 최근 모습을 감안하면 이기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오늘은 예전 같은 공을 던졌네요. 이래서 야구가 참 어렵습니다. 그리고 타자들이 원래 그렇죠.
야구선수 출신이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 칼럼니스트인 잭 햄플이 본인의 저서 <Watching Baseball Smarter>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가 쓴 글로 오늘 타자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대신합니다. 내일부터는, 내일 혹시 비가 온다면 다음주 부터는 타자들이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이 책은 '야구 교과서'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국내에도 출간됐습니다)
<메이저리그타자라는 사람이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공은 눈 뜬 채 그냥 흘려보내고, 땅바닥에 튀기도록 낮게 오는 볼에 스윙 하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지 않은가? (연봉이) 1년에 290만 달러라면, 여러분도 그 선수 만큼은 해낼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 뭐 그 반만 받고도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왜냐하면 적어도 우리 인생에서 몇 번쯤은 배트를 쥐고 우리에게 날아오는 작고 둥근 물건을 향해 맹렬히 스윙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을 딛고 설 정도의 나이가 된 이래로 이런 말을 들어왔다. "공에다 눈을 맞춰" "때릴 수 있는 공을 기다려"
듣기에는 쉽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도 쉬운 일이기는 하다. 당신은 투구 하나하나를 치기 좋도록 느리게 던져주는 친구나 홈 플레이트 근처에 공을 보내는 것도 힘겨운 아이를 상대로 배트를 휘둘러왔다. 투구의 방향과 궤적을 가늠하고, 저녁으로 뭘 먹을지 생각하면서 스윙을 할지 말지 결정할 시간이 아주 많은 것이다. 이 경우에는 모든 공이 똑같은 속도로 날아오기 때문에 타이밍도 고려 요소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로 스트라이크존을 비껴가는 공을 쫓아 방망이를 휘두른다.
왜 메이저리그 타자도 똑같은 짓을 할까? 왜냐하면 볼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오기 때문에, 공이 투수 손을 떠나 홈 플레이트로 날아오기 시작할 때부터 어떤 공이 올지, 스윙을 할지 말지 짐작으로 맞혀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공이 갑자기 가라앉고, 꺾이기 전까지는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날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존 바깥으로 날아오는 것 같은데 막판에 심판으로부터 스트라이크 판정을 얻어내는 공도 있다.
그러니 타자가 나쁜 공에는 스윙을 하면서 좋은 공은 흘려보내는 것을 볼 때면 그에게 마음껏 화는 내되, 그가 한 짓이라고는 자신을 아웃시키기 위해 전 인생을 바쳐온 세계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을 상대로 추측을 잘못한 게 전부임을 명심하자.>
"야구교과서(잭 햄플 지음. 보누스) 19~20p"
첫댓글 오늘 차분히 결과를 상기해볼수 있을만큼 좋은 글 잘봤습니다 ^^
정말 좋은 글 이네요.
질땐 이렇게 져야죠.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김읍읍과 너무나도 비교되는 프로야구에서 가장 정상적인 운영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운영을 보고 기뻐하고 있는 제가.. 참.. 어떤 면에서는 그동안 얼마나 김읍읍이 엉망으로 운영을 했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