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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의 기절 5
최상기가 밤이 익어가는 깊은 심야에 적막을 깨뜨리고 검찰청 숙직실로 들렀다. 숙직원은 깜짝 놀라 올빼미 눈처럼 동그랗게 뜨고 다시 쳐다보며 긴장한 몸으로 덜덜 떨었다. 검사는 상기의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보고 불안해하면서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두 사람은 신상을 밝히고 어서 조사해 보라고 했다. 검사는 덜덜떨면서 조사보다는 간첩같은 느낌으로 죽음에서 벗어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신상을 조사해 보라고 했어 찾아 보았다. 상기와 지독한 놈은 사망자 명단으로 나타나 숙직검사는 더욱 긴장하는 모습이다. 최상기가 사건을 소상히 알려주면서 그놈들을 일망타진할 때 적극 협조하겠다고 하였다. 여러번 일망타진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니까 숙직원은 그 말을 믿어도 되는가 하면서 이리저리 알아보았다. 확실한 정보는 몰라도 대충 알았다며 그때야 긴장을 조금 풀었다. 사력을 다해 급하게 오느라고 길가에 세워둔 승용차를 주인의 허락도 없이 가져왔다고 최상기가 실토하였다. 검찰청 숙직원은 팬티만 입은 두 사내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상기는 숙직자에게 어서 확인하고 피곤하니까 좀 쉬고 싶다고 했다. 생사를 건 탈출이 이렇게 끝나자 긴장이 풀려 두 사람은 피로에 지쳐 쓰러졌다. 검찰청 숙직자는 놀랐던 긴장을 풀고 소방요원을 불러 두 사내를 병원으로 후송시켰다. 정신을 차려보니 발에는 붕대를 감고 병실에 누워 있었다. 검찰 숙직원이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실려 보내도 그들은 수면 상태라 알 수 없었다. 이튿날 검찰은 그들이 이야기한 곳으로 헬기를 이용하여 확인해 보았다. 검찰은 그들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세밀하게 확인하고 닷세후 작전을 펴기로 했다. 검찰은 병원에 찾아와 경찰에게 감시를 맏기고 그들을 철저히 관리 하라고 하엿다. 상기와 지독한 놈은 병원에서 며칠간 피로를 풀고 잠에서 깨어 있었다. 검찰은 현장 확인을 위해 기상이 아주 좋은 날 상기를 데리고 섬으로 갔다. 바다에는 은빛 윤슬 이 눈을 부시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마약거래 공장을 둘러싸고 주위에서 돈을 벌어먹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경찰이 그들의 조직에 합류되어 있었다. 부두에 불량패와 바다를 지키는 전투경찰까지 모두 마약범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을 돕고 있었다. 파도가 잠자는 고요한 바다, 수평선 위로 거닐고 싶었다. 넓은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은 아주 평화스러워 보인다. 해경은 두 대의 배로 섬을 돌면서 탈출을 경비하고 있었다. 경찰특공대원 한 중대와 헬기 1대를 투입하였다. 해경은 섬의 포구를 지키며 출입을 통제하였다. 하늘에서는 경찰 헬기가 아래로 내려다보며 섬을 주시하고 있었다. 경찰 중대가 고요한 섬으로 들러서 산길 따라 한 참을 걸었다. 높은 곳에 있는 초소가 보였다. 수용소 초소 같아 보여 아주 긴장한 모습으로 접근했다. 주위가 산으로 쌓여 외부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래쪽에 공장으로 보이는 건물 앞 정문에는 대성산업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정문에 들어서니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경계가 삼엄해 보여 경찰 두 중대는 공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경찰 지휘자는 특공대 요원에게 공장에서 탈출하는 자가 반항하면 모조리 사살하라고 했다.
최상기가 경찰 특공대 대장에게 건물 내부를 설명해 주었다. 경비실에 들어서니 경비원이 재재하여 못 들게 하자 경찰 간부가 공장장을 불러달라고 했다. 덩치가 크고 억세게 생긴 놈이 공장장이라고 하며 나타났다. 공장에 조사할 것이 있으니 안으로 들러보자고 했다. 공장장은 대원을 쳐다보더니 올 것이 왔구나 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는 구름이 한 점도 보이지 않고 강렬하게 쏟아지는 자외선만 얼굴을 후려치고 있었다. 공장장 앞에 경찰 특공대원이 있으니 종말이 왔구나 하며 고개 숙였다. 공장장을 체포하여 쇠고랑을 채우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니 근로자가 보이지 않고 불이 꺼져있었다. 대장은 대원을 앞세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러보니 공장으로 보이며 규모는 중소기업 정도로 보였는데 근로자는 한 명도 없었다. 비상벨이 울릴 때 모두 사라진 것 같아 공장장에게 물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최상기가 실내 전등불을 켜고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작업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근로자가 일하던 자리에는 따뜻한 열기가 감지되었다. 공장에서 일하다 말고 어디론가 숨어버렸는지 주위를 돌아보아도 도망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공장장에게 물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공장 내부에는 숨소리마저 울릴 정도로 적막감이 흘렀다. 공장 내부를 돌아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좁을 골목으로 이어지더니 또 다른 공장이 보였다. 공장 안은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최상기가 여기는 마약제조 공장이라고 대장에게 알려주었다. 문을 열려니 잠겨있어 열리지 않아 공장장에게 열어달라고 했더니 고개만 저었다. 태풍에 망가진 건물을 보수하여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특공대장은 대원에게 사격 자세를 하라고 명했다. 그중 한 대원이 총을 쏘아 문을 부수고 모두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마약냄새만 났다. 근로자들은 비상벨이 울릴 때 땅굴 속으로 숨어버렸는지 이곳 마약공장에도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밖에는 날씨가 좋아 푸른 이파리는 짙은 녹색을 자랑하며 팔랑거리고 있지만, 공장 안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최상기가 특공대장에게 내부는 개미집처럼 얽혀 있다고 설했다. 땅굴 속에 만들어진 공장 내부를 소상히 설명해 주기도 했다. 공장 내부를 샅샅이 뒤지다 마약을 발견하고 주위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있었다. 개미집 같은 땅굴 속에는 마약이 엄청나게 적재되어 있었다. 책임자는 마약제조 공장으로 들지 못하게 기계실에서 정전해 버렸다. 갑자기 어두워지자 경찰 특공대원은 긴장하여 모두 엎드려 사격자세를 취하라고 명했다.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다. 특공요원은 구석진 곳으로 한 참을 포복하다가 빛이 비치는 곳을 발견하였다. 대원은 긴장한 상태에서 빛을 따라 계속 포복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외진 곳에서 덩치가 좋은 놈이 총으로 동료를 사살하는 모습을 보고 저격수가 오른쪽 어깨와 허벅지를 쏘아 쓰러뜨려 놓았다. 동료를 왜 사살했는지 물었다. 위급한 상황에 잘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최상기가 저 좁은 통로로 들어가 보라고 했다. 공장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경찰특공대대원은 동굴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최상기가 오른쪽 벽을 살펴보라고 했다. 금이 간 틈이 보인다고 하자 그곳을 밀어라고 했다. 특공대원은 벽 전체를 힘주어 밀었다. 벽이 밀리면서 안으로 통하는 통로가 열렸다. 창고로 보이는 곳에는 마약을 외국으로 보내려고 저장해 놓은 곳이었다. 최상기가 특공대장에게 조심하라고 경고 신호를 보냈다. 밖에는 반드시 경호원이 포구를 지키고 있었다. 특공대장은 여기도 선착장이 있는가 하고 물었다. 마약을 운반하는 장소기 때문에 경계하면서 주위를 조사하라고 했다. 그때 앞바다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경찰 특공대대원들은 엎드려 사격자세로 취하고 있었다. 마약범들이 섬 언저리에 바위로 은폐된 곳에 숨겨놓은 배를 타고 도주를 시도하였다. 경찰 헬리콥터가 섬에서 나타난 배를 발견하고 해경에게 알렸다. 해경은 도주하는 선박을 잡기 위해 작은 쾌속선으로 따라붙었다. 그때 마약을 운반하는 쾌속선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해경 한 명이 총에 맞아 쓰러지자 마약 밀항선과 총격전이 벌어졌다. 은폐할 곳이 없는 작은 배에서 경찰은 마약범들이 쏜 총에 맞아 세 명이 숨지고 쾌속선으로 도주하는 살인범 다섯 명 사살하고 세 명을 생포하였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였다. 해경은 그들이 탈출을 시도한 곳을 찾아가 보았다. 전면에서는 큰 바위가 가로막아 바위 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위 뒤쪽으로 들러보니 작은 동굴이 있었다. 경찰 대원이 그 앞에서 손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었다. 바위틈에는 비밀통로가 공장까지 연결되어 왕래가 잦은 곳으로 보였다.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넓게 보이는 곳에서 인적기가 들렸다. 특공대원이 큰 소리로 불을 켜지 않으면 모두 총을 쏘아죽이겠다고 하였는데 갑자기 전등불이 밝아졌다. 칼날 같은 돌이 산재한 터널 속에 근로자들이 모여 있었다. 경찰 특공대 요원들이 마약공장 근로자와 사출기공장 근로자를 선별하였다. 공장 근로자들은 길들여진 짐승처럼 순순히 따라주었다. 특공대원은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를 모두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특공대원은 공장 간부와 직원이라고 하는 자들을 샅샅이 선별하여 굴비 엮듯이 줄줄이 묶었다. 체포한 근로자 중 일부를 데리고 마약이 저장된 창고로 갔다. 마약을 모두 포구로 옮겨 선적하였다. 공장에서 압수한 대량의 마약을 배에 싣고 총기와 국제간의 마약 거래명세서 등 다수의 증거물을 가지고 해경과 경찰 특공대원들은 섬에서 모두 철수했다. 최상기가 두 번 다시 그곳에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복수를 위해 다시 찾았을 땐 지휘자가 되었다. 그놈들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시원하게 정리하고 돌아올 때 악마들의 소굴이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길 바랐다.
최상기는 특공대원 네 명과 뭍으로 갔다. 뭍에서 탈출자를 잡기 위해 상주하는 건달패를 찾아다니다 머리를 섰다. 육지에 도착한 특공대원은 밤이 깊어 오자 부두에서 고성으로 소란을 피웠다. 섬에서 탈출했다는데 자유를 찾았다고 떠들어댔다. 그때 덩치 좋은 청년 두 명이 달려오더니 특공대원을 잡아끌며 차에 싣는다. 숨어서 보고 있던 특공대원은 싸우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건달패 두 명을 잡으려 하자 흉기로 덤벼들었다. 대원들은 오랫동안 싸움을 계속하였다. 특공대원들은 밑감을 던져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승용차가 나타나더니 덩치 좋은 청년 세 명이 특공대원을 포위하고 위협을 가했다. 그곳을 지키던 특공대원과 건달패 다섯 명과 또다시 싸움이 붙었다. 한 참을 싸우고 있었다. 경위는 건달패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경찰차가 싸움 장소로 찾아왔다. 싸움에 지쳐 허우적거리는 9명을 모두 쇠고랑을 채우고 지구대로 데리고 갔다. 그 속에는 상기도 끼어있었다. 건달패는 간단한 조사를 마치고 돌려보냈다. 상기와 특공대원은 지구대에서 치욕적은 언어와 머리에 구타까지 당하면서 조사를 받았다. 지구대 경찰은 타지에서 이곳에 왜 왔는가 하였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때 특공대원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했다. ‘이곳에 좋은 경치가 있다고 하여 들렀다고 했다.’ 경위가 싸우게 된 동기를 적으라고 했다. 최상기는 사실대로 적었다. 우리는 특공대원이다. 섬에서 도주하는 놈들을 잡는 건달패를 잡으러 왔다고 적었다. 경사는 거짓으로 적은 것으로 판단하였다. 천지도 모르고 날뛰지 말라는 둥 깡패 같은 놈들이 왜 타지에서 겁 없이 설치는가 하였다. 거제지구대 대장은 이놈들 대기실에 가두라고 했다. 경사가 알았다며 특공대원을 데리고 보호실에 감금하였다.
특공대원 중 한 명이 검찰청 마약담당실장에게 문자를 넣었다. 거제지구대에 특공대원들이 잡혀있다고 문자 보했다. 잠시 후 지구대에 전화벨이 울렸다. 경위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책상 위에 걸쳐놓고 전화를 받는데 검찰청 박정민 실장이라고 하였다. 전화를 받다 놀라더니 긴장하여 부동자세로 전화를 받았다. 지금 즉시 그들을 풀어주고 건달패 모두를 그곳에 불러놓으라는 지시였다. 네 알겠습니다, 하더니 전화기를 내려놓고 힘없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긴장이 다소 완화되었는지 특공대원에게 다가왔다. 경위가 달려와 쇠고랑을 풀어주면서 사죄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최상기가 조금 전에 풀어준 그놈들 즉시 불러드리지 않으면 모두 구속하겠다고 했다. 지구대 경위는 그들에게 연락하여 즉시 오라고 하자 다섯 명이 들어왔다. 마약공장에 관련된 다섯 명에게 쇠고랑을 채웠다. 지구대 경위에게 며칠 후에 보자고 경고하였다. 지구대 승합차로 그놈들을 압송하여 부산 경찰청 청사로 왔다. 미리 압송한 섬 근로자를 사출기공장에서 마약근로자를 분류하여 조사를 마쳤다. 사출기공장에 근로자들은 집으로 돌려보내고 살인범과 국제마약범을 철저하게 조사하였다. 그리고 뭍에서 지구대 요원과 함께 놀아난 보스 다섯 명도 조사를 마치고 모두 주례교도소에 수용하였다. 지구대 경위와 경사 등을 불러 조사를 하려고 했는데 그들은 모두 행적을 감춰버렸다. 섬에서 잡은 놈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검찰은 큰 충격에 빠졌다. 현직 공무원이 연루된 무서운 조직이었다. 지구대 간부가 철저하게 관리를 돕고 있었다. 돈 때문에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세상이 무섭기만 하였다. 돈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이 현존하는 우리들이다.
근로자들은 최상기의 탈출로 인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자유의 몸이다,” 외치며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살아가는 근로자들이 몇 달 후 다시 한곳에 모였다. 근로자들은 상기를 데리고 가서 고맙다며 모두가 동시에 큰절하고 연회장에서 함께 춤추며 파티를 벌였다. 최상기가 많은 근로자 앞에 서서 삶의 철학을 연설하였다. ‘삶이란 개울물이 흘러가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폭포를 지났으니 이젠 호수에서 머물다가 여유를 찾아 유유히 흘러가자고 상기가 열변을 토했다. 행방불명되었다고 걱정하는 가족 친지에게 사실을 알리고 가정의 화목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자고 덧붙였다.’ 자유의 몸으로 살아남은 동료가 자신들을 구해준 상기를 높이 던졌다. 헹가래를 받는 최상기가 행복한 미소를 보였다.
최상기와 지독한 놈은 다시 병원으로 입원하였다. 며칠을 보내고 검찰 직원이 가져다준 의복을 갈아입고 퇴원할 때 검찰이 협조를 부탁하였다. 지독한 놈은 병원에서 확실하게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갔다. 치료비가 많이 나왔지만, 신고 한 보상금으로 처리되었다고 간호사가 말해주었다. 최상기는 사망자로 되어있고 지독한 놈은 실종자로 되어있어 바로 집으로 가기를 두려워했다. 같은 방법으로 당할까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최상기는 지독한 놈과 이별의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최상기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집 부근 골목에서 차창 밖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아내는 전 남편을 잊고 새롭게 만나 출근하는 사나이의 팔짱을 끼고 대문 밖으로 나와 배웅하였다. 순자는 남편을 잃고 삼년상도 지나지 않고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여인은 일 년이 넘어가자 우울증에 시달리며 병원치료가 되지 않아 고생을 많이 하였다. 친구의 소개로 남자를 소개받아 사랑에 빠져들자 우울증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유부남을 만나 가끔 잠자리도 함께하면서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다. 박순자의 머리에는 최상기의 영혼은 흔적도 없이 지워져 있었다. 최상기가 납치된 지 삼 년도 넘지 않았다. 최상기가 아내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걱정하면서도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상기를 죽이려 하지 않았는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최상기가 초인종을 누르자 순자는 누구세요? 하면서 대문을 열었다. 죽었다고 초상까지 치렀던 최상기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박순자가 상기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귀신이다.” 하며 비명을 지르고 실신해버렸다. 최상기는 놀라서 멍청하게 서 있었다. 비명을 듣고 달려온 혜숙은 멍하니 상기를 바라보았다. 최상기가 앞집 부인을 보고 반갑다며 인사해도 모른 체했다. 최상기는 앞집부인 혜숙에게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했다. 혜숙이가 또다시 119에 연락하여 구급차를 요청했다. 요란한 소리를 울리면서 달려온 소방구급차는 순자와 상기를 태우고 용호로의 빗속을 달렸다. 이혜숙은 멀어져가는 구급차를 바라보면서 꿈인지 생시인지 혼란스러웠다. 최상기는 순자를 구급차에 태워 용호동 모 병원으로 갔다. 응급실로 옮겨 치료했으나 하루가 지나서야 겨우 의식은 돌아왔다. 그러나 말문이 열리지 않아 대화하지 못했다. 기절하면서 넘어지는 순간 충격 때문에 뇌 손상이 온 것 같았다. 최상기가 집으로 오자마자 방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아내를 간호해야 했다.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달라진 게 없어도 화단에 오이는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최하라는 아버지의 기일에 맞추어 박사학위를 받아 영정 앞에 올려놓겠다고 귀국하였다. 최하라가 집으로 돌아오니 대문은 열려있고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누나에게 전화하여 졸업하고 왔다고 전하고 어머니의 소식을 물었다. 최명희는 미국에서 돌아온 동생을 보려고 작업복 입은 채 단숨에 달려왔다. 최명희는 동생 하라가 박사가 되었다고 좋아하였다. 엄마에게 전화하였는데 큰방에서 휴대전화기 소리가 들렸다. 남매는 앞집으로 찾아가 미국에서 돌아왔다고 인사하고 엄마의 소식을 물었다. 앞집 아주머니는 박순자의 남매를 앉으라고 해놓고 조금 전에 본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믿지 않았다. 그래서 병원으로 함께 가자고 하여 남매와 혜숙은 순자가 입원한 성모병원으로 가려고 나섰다. 최명희는 아빠를 만나러 오면서 KIM 방송국 기자에게 연락하여 용호동 성모병원에 337호 병실로 찾아오라고 했다. 이혜숙은 남매를 데리고 박순자의 병실을 노크하였다. 병실은 일인실이 아니고 오인 실이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놀랍게도 아버지 최상기가 엄마 순자 곁에서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남매는 아빠를 보는 순간 반가워서 말문이 막혀 허리를 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온 가족은 집에서 파티해야 하는데 병실에서 만났으니 어쩔 수 없이 병실만 분잡 서럽게 했다. 급하게 달려온 방송국 기자는 상봉하는 가족의 모습을 낱낱이 영상에 담았다. 그리고 상기에게 질문했다.
“헤어진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납치당했어요.”
“언제쯤인가요?”
“만 삼 년 전이었다고 했다.”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살았어요?”
“별천지 같은 곳에서 죽지 못해 노예처럼 일하다가 탈출했어요.”
“그곳이 어디인지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조금 후에 신문에 상세하게 보도 될 것이라고 했다."
"기자는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물었다."
"어저께 일어난 일이라고 여유있게 인터부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기자는 인터뷰에 응해주신 상기에게 고맙다 하고 급하게 방송국으로 되돌아갔다. 주위에서 듣고 있던 환자들과 그의 가족들은 삶의 행로가 궁금하다며 꼬치꼬치 물었다. 잠시 후 오후 다섯 시 뉴스에 최상기가 가족과 상봉하는 장면이 나왔다. 기자가 인터뷰하면서 요즘도 그런 곳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잠시 후 뉴스를 본 검찰은 서둘러 진행하기로 하고 상기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이곳 검찰청으로 와서 표창장을 받으라고 했다. 최상기는 고맙다며 가족과 함께 가겠다고 했다. 검찰청 대 강당에는 섬에서 풀려난 일행가족과 주민이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