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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합니다. "
[34,35]
내 말에 놈의 표정의 굳어지기 시작했다.
놈의 싸늘한 표정에 가슴이 욱신거려 왔다.
그래 이건 아까 일에 놀라서 그런 거야, 놀라서.
그때 싸늘하게 굳은 놈의 입에서 담담한, 조금은 서글픈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조금은 솔직해 지는 게 어때?”
내 속을 꽤 뚫어 보려는 듯한 놈의 짙은 시선에 나는 고개를 돌려 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으며 놈의 눈을 담담하게 마주 보았다.
“..이게 내 솔직한 대답이야.”
순간 놈의 눈이 무섭게 번뜩였다.
그런 놈의 눈을 이를 악 물고 마주보는데 순식간에 놈의 손이
내 손목을 당겨 옴과 동시에 남은 한손이 내 뒷목을 쥐어 왔다.
놀랄 틈도 없이 입술을 부딪혀오는 놈.
갑작스런 키스에 머리는 놈을 거부했지만
애틋하게 부딪쳐 오는 놈의 입술에 몸은 놈을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놈의 입술이 내 입술을 살며시 덮으며 말하고 있었다.
사랑한다고,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듣지 않아도 놈의 키스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머리가 아득 해져 왔다.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놈의 혀가 달래 듯 입술사이를 어르며 들어왔다.
어지럽게 헤집고 다니던 놈의 혀가 매끄럽게 내 혀에 감겨 오며
원래 하나였던 듯 딱 맞게 자리 잡았다.
그런 놈의 키스에서 나에 대한 마음이 잔뜩 묻어나는 것만 같아 나는 울컥하는 마음에
놈의 목으로 팔을 감고 말았다.
간절함이 묻어나는 놈의 키스에 온몸이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키스일 뿐인데 마치 놈의 커다란 손이 내 온몸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때 놈의 입술이 냉정하게 떨어져 나갔다.
키스의 여운으로 멍하게 놈을 바라보던 나는
순간 놈에게 또 반응하고 말았다는 억울함과 동시에 좀더 놈을 맛보고 싶다는
알 수 없는 심정이 교차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공허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놈.
“네 몸은 언제나 솔직한데, 네 그 예쁜 입술은 왜 솔직하지 못 한거지?”
놈의 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질 순 없었다.
승우현, 우린 어울리지 않아.
즐기는 관계라면 모를까, 결혼상대로는 아니라고.
그래 어쩌면 놈에게 고백을 원했었는지도 모른다.
늘 나를 가볍게 여기는 놈의 행동에 화가 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덜컥 닥친 현실에 나는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육체적으로 너한테 동했을 뿐 이야.”
"육체적으로..그것뿐인가? “
“..그럼 더 뭐가 있겠어?”
놈의 눈이 상처 받은 듯 잠시 일렁이다 곧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나는 그런 놈의 눈을 애써 마주보며 태연하려 노력했다.
차갑게 나를 내려다 보다 이내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텅 빈 웃음을 지어 보이는 놈.
놈이 자신의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꼴좋게 차인건가?”
그렇게 말하며 웃고 있는 놈의 눈이 상처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아냐, 잘하고 있어 주가혜. 흔들리지 마.
나는 그런 놈의 눈을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때 놈이 여전히 웃음을 지으며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응? 주가혜, 내가 어떻게 해야 해?”
놈의 눈을 마주볼 자신이 없어졌다.
놈의 목소리만으로도 머리 속에는 놈의 표정이 그려졌다.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
“나 잊고 신혜영이라는 그 여자와 약혼해.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그렇게 나 보란 듯이 잘살아. 내가 질투 날 정도로. 그게 내가 바라는 일이야.“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왠지 놈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승우현, 그래도 가끔은 내 생각도 좀 해줄 거지?
천천히 놈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는 더 이상 시릴 수 없을 만큼이나
차가운 표정의 놈이 보였다.
남을 쳐다보듯 나를 바라보고 있는 놈.
“진심이야? ”
놈의 찬 서리가 이는 듯한 목소리에 온몸이 아프다며 비명을 질러댔다.
“진심이야.”
“그래, 네가 바라는 대로 해줄게. 그런데 있잖아, 나는 너처럼 그런 말은 못해주겠다.
나 말고 딴 놈이 네 옆에 있는 거 나는 죽어도 못 보겠다.
그러니까, 차라리 앞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마. 꿈속에도 나타나지 마라.“
말을 마친 놈이 마지막으로 ‘잘 지내’ 란 말만 남기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놈이 사라지자 내 다리는 중심을 잃은 듯 후들거렸다.
나는 애써 버티려 하지 않고 바닥으로 스르륵 주저앉아 버렸다.
잘 한거야. 놈과 나는 진지한 상대로는 어울리지 않아.
더 이상 감정이 깊어지기 전에 잘라내야 했어.
잘했어, 잘 한거야 주가혜.
놈을 사랑하지 않는데 눈에서는 끝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
그날 이후로 놈은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연락 한번, 얼굴 한번 비치지 않았다.
네가 원하던 거였잖아 주가혜.
처음부터 놈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했었잖아.
그런데 가슴은 채한 것 마냥 답답하고 더부룩했다.
“주가혜 밥 먹으래!”
경미의 외침에 나는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방문을 열고 나섰다.
당분간 시골로 내려갈 때까지 경미네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나는 결국 놈이 남기고간 그 집에서 지내지 못했다.
놈에 손이 닿아있는 그곳은 왠지 발을 들이면 안 될 곳인 것만 같았다.
놈의 명의로 계약된 대로 계약금은 시골에 있는 엄마에게로 붙여졌다.
염치없이 그렇게 놈의 돈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그 집은 내 집인 양 버티고 있었다.
그곳에 있으면 자꾸 그날의 놈이 떠올랐다.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놈.
사랑을 속삭이며 부딪쳐 오던 놈의 입술.
“얘가 왜 밥 먹다가 먼 산을 봐?”
순간 멍해져 있는 나를 보며 경미가 건넨 말이었다.
나는 그런 경미와 걱정스런 시선을 보내는 그녀의 가족들에게
어설픈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입맛이 없다는 핑계로 방에 들어와 버렸다.
너 답지 않게 요즘 왜 이러는 거야 주가혜.
나는 내 뺨을 찰싹찰싹 때려 보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버릇처럼 다시 그날을 떠올리며 멍해져 버리는 나를 느끼고는
결국 머리를 쥐어뜯으며 침대위로 다이빙 하듯 쓰러져 버렸다.
벌써 1주나 지난 일이였다.
이제 차츰 잊을 때도 되었잖아.
놈은 그 계집애랑 잘 먹고 잘살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침대에 누운 채 나는 무심코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나 스스로에게 한심하단 듯이 픽 웃어 버린다.
한심해 죽겠어 주가혜, 한심해 죽겠어.
그때 거짓말처럼 핸드폰이 울려댔다.
덜컥거리며 흔들리는 심장.
흔들리는 눈으로 던지듯 내려놓았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처음 보는 낯선 번호. 주가혜 뭘 기대한거야.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거친 동작으로 핸드폰 폴더를 열었다.
“..여보세요?”
“주가혜씨?”
낯선 여자의 목소리에 온몸이 잔뜩 긴장했다.
신혜영의 목소리인가 했지만 그것 보다는 좀더 낮고 깔끔한 목소리였다.
마치 직업용 멘트를 내뱉는 목소리처럼..
“그런데 누구시죠?”
“저는 우성그룹 회장님의 비서입니다.
지금 회장님께서 가혜씨와 만나길 원하십니다.
지금 그쪽으로 차를 보냈으니 준비하고 나오도록 하세요.“
“네?”
내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30분후입니다.“ 라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어버리는 여자.
아니 대체 왜 승우현이랑 관련된 사람들은 다 이 모양일까?
그리고 내가 있는 곳은 어떻게 안거야?
또 내가 왜 그 회장님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랑 만나야 하는데?
머릿속은 의문점 투성이였다.
놈과 나는 이제 완벽한 남남 이였다.
놈이 머리털 하나 안보이고 깨끗이 사라진 걸 보아서는 놈도 동의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나를 만나겠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 하면서도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그곳에 가면 놈을 볼 수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놈을 봐서 어쩌겠다고.
나는 엉뚱한 생각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저 놈과 나는 더 이상 아무사이도 아니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는 것뿐이야.
맹세코, 그것뿐이야.
**
전에 한번 경미에게 끌려 온 적이 있는 기죽을 만큼 으리으리한 건물.
앞에서 길을 안내하는 검은 양복의 남자의 뒤를 졸졸 따라
전에 나를 잡상인 취급하던 경비원을 지나쳐 엘리베이터의 올라탔다.
꼭대기 층을 누르는 남자.
좀 전까지 괜찮았는데 엘리베이터의 울렁임과 동시에
온몸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놈의 할아버지라던 회장은 어떤 사람일까?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사실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듣기 좋은 말을 하려고 나를 부른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곧 꼭대기 층에 도달한 엘리베이터가 맑은 기계음과 함께 멈추어 섰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눈에 부담이 될 정도로 깨끗한 대리석이 늘어서 있었다.
내가 밟으면 발자국 나는 거 아니야?
괜한 걱정을 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남자의 뒤를 따랐다.
목소리만큼이나 직업적으로 생긴 비서를 지나 회장실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는
축구장만한 내부에 헛바람을 삼키고 말았다.
“왔군.”
순간 낮게 울려오는 중후한 목소리에 나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류더미 앞에 앉아 있다가는 나를 발견하고 쇼파 쪽으로 몸을 일으켜 걸어오는 노인.
노인 이라고 하기에는 풍기는 이미지가 너무 압도적 이였다.
“자리에 앉도록 하지.”
노인의 말에 나는 뻣뻣한 몸으로 쇼파 의자에 앉았다.
노인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자니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자세히 보니 그놈과 약간 닮은 듯도 했다.
무표정 일 때 싸늘한 눈매라던지 풍기는 분위기도 비슷한 것 같았다.
어느새 노인에게서 놈의 모습을 찾고 있던 나는
그런 내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때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노인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내 손자 녀석을 알고 있지?”
잠시 노인의 물음에 망설이던 나는 그저 알고 있느냐는 질문일 뿐 이였기에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네.”
“아가씨 나이가 올해 스믈 여섯으로 알고 있네.
우현이의 배경을 노리고 결혼을 목적으로 다가선 것이라면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아.“
노인의 말에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 멍해졌다.
지근 저 노인이 무슨 소리하는 거야?
저 밑에서 서서히 짜증이 꾸물꾸물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 의도로 놈에게 다가선 적도 없을뿐더러
놈과 저는 아무사이도 아닙니다. 그러니 그런 얘기를 제가 들어야 할 이유는 없네요.“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내 당당한 말에
노인은 의외란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다시 표정을 굳히고는 입을 여는 노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녀석은 어미와 아비가 없네.
정확히는 내 아들 놈은 죽었고, 며느리는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이지."
노인의 말에 내 눈은 휘둥그레 졌다.
처음 듣는 사실에 놀라움도 있었지만 노인이 내게 그들의 가족사를
얘기 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기도 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사이가 좋지 못했네.
결국 이혼을 결정한 날 아들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지.
그때 우현이놈은 겨우 9살 이였어.
나는 아들놈이 절대 사고로 죽은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 자살 이였던 게지.“
심장이 불안하게 뛰어 왔다.
어린 나이였지만 분명 엄마와 아빠 사이의 기류를 어렴 풋 짐작할 수 있는 나이였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상처가 컸을까.
가슴 한 구석에는 이런 마음이 들어 왔지만.
나는 가장 중요한 사실에 정신을 다잡고는 노인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 얘기를 제게 하는 이유가 뭐죠?”
“제 아비와 어미를 통해 불신을 얻게 된 결혼이란 것을
놈이 하겠다고 하더군, 아가씨와 말이야.“
노인의 말에 알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오기 시작했다.
뭐지? 지금 이 기분 뭐야?
“내일 대현호텔에서 손자 놈의 약혼식이 있네.”
순간 심장이 땅 밑으로 덜컥 내려앉았다.
네가 바라던 거였잖아 주가혜. 네가 그러라고 말했던 거잖아.
그런데 왜 이리 심장이 아프도록 죄여 오는 거야.
순간 놈이 다정하게 신혜영과 약혼식장에 서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아닌 신혜영에게 키스를 하는 놈의 모습도.
그 순간 또다시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죄여 왔다.
보기 싫다. 놈의 그런 모습들.
“그러니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라면 이만 내 손자 놈을 놔 주게나.
아가씨가 내 손자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잖나. 놈이 잠시 착각을 하고 있는 것뿐이야.
시간이 지나면 놈도 차차 이해하겠지.“
머리 속이 정지 했다.
그와 함께 내 주위를 돌고 있던 세상도 함께 정지했다.
더 이상 놈과 신혜영이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아무쪼록 내일 있을 약혼식에 해가 없길 바라네.”
“..사랑합니다.”
“.....지금 무슨.”
그 순간 처음으로 당황한 노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머리가 맑아져 왔다. 그리고 깨끗한 머릿속 안은 놈의 얼굴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깨 닳아 버렸어. 나도 놈을..
“저도 그놈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노인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답답한 회장실 문을 열고 가뿐한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뒤쪽에서 중얼거리는 듯한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지금 내 머릿속은 놈의 생각으로 가득 차 노인의 말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제 나이차이고, 생활환경 차이고 뭐고 필요 없었다.
염치없고 바보 같은 짓일지도 모르겠지만 놈을 다시 찾아와야했다.
이미 깨 닳아 버린 감정,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느낀 사랑이란 감정을 놓칠 순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일 있을 놈의 약혼식을 머리에 곱씹으며 경미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쪽에서 노인이 미소 짓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한 채.
“..나도 내 손자가 행복하길 바란다네..”
**
역시 재벌가의 약혼식이라 그런지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호텔 입구부터 줄서듯 늘어진 외제 차의 행진이라..
나는 그런 차들을 보며 콧방귀를 뀌고는 팔 안에 작게 꼬물거리는
그것을 다시 재차 안아 들었다.
놈의 약혼식장은 어렵게 찾지 않아도 부티 나는 사람들의 뒤를 쫓아
쉽게 도착 할 수 있었다.
휘황찬란한 건물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바라보던 나는
이내 초대장을 확인하는 듯한 입구에 멈춰서고 말았다.
흥, 무슨 왕자님 공주님 무도회장도 아니고 뭐 하러 초대장이 다 필요해?
그렇게 생각하며 콧방귀를 끼는 내 표정과는 다르게
내 발은 막혀버린 길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러자 내 팔에 안겨 있던 그것이 꼼지락거리며 내 얼굴을 더듬어 왔다.
“응,응 그래 아가야~ 기다려 봐, 아직 우리가 활약 할 때가 아니야~”
내 팔에 안겨있는 이제 막 옹아리를 땠을 듯 한 간난 아이가
입을 웅얼거리며 즐거운 듯 손을 흔들어 댔다.
이 아이는 경미의 조카로 경미와 나의 계획 하의
산책을 다녀온다는 말로 구슬려 데리고 나온 아이였다.
아가야! 네가 바로 히든카드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음흉하게 웃어 보였다.
사랑이란 감정을 알아차린 내 눈엔 두려운 게 없었다.
세상에 존재 하지 않을 것만 같던 사랑이 내게 찾아오다니!
당장 놈을 내 앞에 끌어다 말하고 싶었다.
나도 널 사랑해!
그리고 확 끌어안으며, 애틋한 키스를...
어후야~
그렇게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약혼식이 시작한 듯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음악이 홀 안을 울려오기 시작했다.
지금 쳐들어갈까? 아니야 좀 더 뜸을 들이고 클라이맥스 때 당당하게 들어가는 거야.
그렇게 나름대로의 계획을 짜며 비장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나였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때다 싶은 나는 아이를 당당히 안아 들고는 입구로 힘차게 걸어 나갔다.
초대장을 보여 달라며 손을 내미는 남자가 보였지만 나는 못 본 척 무시하고는
남자를 지나쳐 힘차게 걸음을 내딛었다.
잠시 멍해져 있다가 정신없이 나를 뒤쫓아 오는 남자.
이미 때는 늦었어!
“승우현!!!”
내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좋아 계획대로 가고 있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우리 애는!! 애는 어떡하라고!”
그렇게 말하며 약간의 눈물까지 비치며 놈과 놈의 약혼녀인 그 계집애가 있을
단상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좀 전에는 연기에 몰두하느라 미처 알아차리지 못 했는데
신혜영은 보이는데 승우현이 보이지 않았다. 이놈이 화장실 갔나?
게다가 주위 분위기가 싸한 게 뭔가가 이상했다.
잘 생각해보니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사람들이 이상하게 술렁였던 거 같았다.
그때 아이를 안아들고는 뻘쭘하게 단상 앞에 서있던 내 귀로
단상 한 자리에 당당히 앉아있던 어제 놈의 할아버지라던 회장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아가씨 뒷북 쳤구만.”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재미있다는 듯 내 쪽을 바라보며 능글맞게 웃고 있는 회장이 보였다.
어째, 저 영감은 웃는 것도 그놈이랑 판박이람?
무슨 소린가 싶어 시선을 옆으로 돌려 보자.
울 듯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신혜영이 보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제 서야 나는 조심스럽게 회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예요? 승우현은 어디 갔어요?”
“가긴 어딜 가. 오늘 그놈 여기 안나왔어.”
회장의 말에 나는 잠시 멍해져 버렸다.
그리고 이내 번뜩 정신을 차린 나는 홀린 듯 예식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내 뒤로 발악을 하며 따라 나오려는 신혜영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내 그년은 회장의 손길에 발길이 붙잡히고 말았다.
놈이 약혼식에 나오지 않았다 했다.
그 사실 만으로도 내 가슴은 알 수 없는 기분에 벅차올랐다.
어쩌면 놈은 지금 그곳에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정신없이 호텔을 빠져 나왔다.
“주가혜! 잘 끝냈어? 어떻게 됐어? 엉?”
밖에서 기다리던 경미 년이 닦달을 하며 달려들었지만
나는 그런 경미의 물음들을 무시한 채 안고 있던 아이를 경미의 두 팔에
턱하니 건네주고는 다가오는 택시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갔다.
“야! 주가혜 어디가!”
“나중에 말해 줄게! 택시!”
아이를 안은 채 황당한 표정을 짓는 경미를 뒤로하고 택시는 달리기 시작했다.
놈에게 향하는 내 입가로는 벅 찬 미소가 스르르 머금어 졌다.
기다려라 승우현. 누님이 간다.
차가 멈추어 선 곳은 나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익숙한 곳 이였다.
정말 놈이 여기 있을까? 아니야, 확실해 놈은 분명 여기 있어.
나는 택시에서 걸음을 내딛은 뒤 익숙한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 나갔다.
내가 살던 집으로 가는 길.
지금까지 놈이 숱하게 이 골목을 찾아 왔던 것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이 골목에서 놈과 얽힌 여러 웃지 못할 일들.
경미가 놈을 좋아한다고 오해 했던 일.
술 먹고 온 놈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며 잠들었던 일.
3달 안에 자신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했던 일.
가만.. 이건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니었다.
정말 그렇게 되 버렸네?
풋- 하고 웃음이 세어 나왔다.
그때 어느덧 가까워진 그 골목에는 예상대로 놈이 서있었다.
늘 세워놓던 그 자리에 차를 세운 채 몸을 기대고 서있는 놈.
약혼식에 가기 전 차림 이였는지 제법 맵시 나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저 섹시한 모습을 그 계집애가 못 보게 된 게 천만 다행 이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놈 쪽으로 다가갔다.
내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는 지, 내 집이 있는 쪽을 멍하게 바라 보고있는 놈.
그런 놈을 보며 나는 골려 줄 생각으로 표정을 굳히고는 놈 앞에 섰다.
“여기서 뭐해?”
내 물음에 화들짝 놀라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오는 놈.
나는 세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 얼굴을 바라보는 놈의 눈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간절한 표정에 가슴이 찡- 해져 오는 것 만 같았다.
그때 놈의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가 울려왔다.
“그쪽에서 올 줄은 생각 못했네.”
놈의 말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려 버리고 말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하는 소리가 ‘그쪽에서 올 줄 몰랐네.’ 라니
내가 놈을 쳐다보며 웃어 대자 놈은 조금은 긴장이 풀렸는지
표정을 푼 체 내게로 다가왔다.
“주가혜, 내가 잠시 있고 있던 게 있었거든.”
놈의 약간은 의미심장한 말에 나는 웃음을 겨우 참아내고는 입을 열었다.
“뭔데?”
“내기 기간인 3개월이 아직 다 채워지지 않았어. 그러니까 난 아직 진행 중이란 소리지.”
그렇게 말하며 마치 대단한 법칙을 발견한 마냥 대견해하는 놈의 표정에
나는 결국 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런 나를 이제는 조금 수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놈.
바보 승우현. 아직도 모르겠어?
나는 놈 쪽으로 천천히 다가가 놈의 목에 갑작스럽게 팔을 둘렀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놈.
그런 놈의 입술을 나는 내 입술로 덮어 버렸다.
갑작스러운 침입에 움찔 놀라는 놈의 몸.
나는 그런 놈을 무시하고는 놈의 목에 감겨 있는 팔에 힘을 주어 더욱 끌어 당겼다.
잔뜩 굳어있던 놈의 입술이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나는 놈의 입술을 사탕마냥 쪽쪽 빨아대다
놈의 혀가 내 입술사이를 밀고 들어오려는 순간 얼굴을 살짝 때어 버렸다.
“바보야 내 표정 보면서도 모르겠어?”
내 말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놈.
그런 놈의 표정이 너무 귀여워 나는 놈의 코를 살짝 깨물어 버렸다.
“그 내기 이제 필요 없어졌어.”
그제 서야 놈의 눈이 동그래짐과 동시에 내 입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 불안하게 떨려왔다.
나는 그런 놈의 표정에 생긋 웃어보이고는 살며시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이미 널 사랑하고 있거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놈의 입술이 거칠게 내 입술을 파고 들어왔다.
자신의 벅찬 기분을 숨기지 못하고 거칠게 몰아오면서도 내가 부서질까 소중히 다루는 듯한 놈의
행동에 행복한 기분이 온몸을 타고 돌았다.
그렇게 키스를 하는 중에 놈의 볼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나는 그와 반대로 입에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막바지에 이른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놈의 머리와 내 머리를 쓸고 지나갔다.
산뜻한 봄바람을 느끼며 그렇게 키스하는 내내 놈은 울고 나는 웃었더랬다.
첫댓글 1빠다 ㅠㅠㅠㅠㅠㅠㅠ재밋어요!!ㅠㅠ
너무 재미있어요~~
요오 넘재미있어요 ㅠㅠㅠㅠ
으아 상위권! ㅋㅋ
귤색톡톡님 펜카페에서 이미봣다는~ ㅋㅋㅋ다시본다는 !ㅋㅋ
완전 재밌어요 ㅠㅋㅋㅋㅋㅋㅋㅋ
너무재밌어요드디어 가혜가..
히히 너무 재밌어요..~
감동이에요 ㅠㅠ
짱감동!!!!!!근데이제......완결을봐야하는군
벌써 완결ㅜㅜ 아쉽지만 너무 재밌었어요^^
재밌어용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진짜 보면서 눈물이 뚝뚝,.불쌍했어요 ~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