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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결단 모양새 취했지만 셀프로 문제 재점화
정권 심판론에 다급해져 무리수 강행한 듯
공수처 탓해봤자 결국 수사 지연도 대통령 책임
이종섭 사의 표명으로 선거 내내 이슈될 듯
야당 "대통령 대국민 사과하고 공천 철회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 2023.9.12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기사 보강 : 오후 8시]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9일 사의를 표명했다. 4·10총선을 앞두고 여론 악화를 우려해 윤석열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애초 피의자의 출국금지까지 해제하며 무리하게 임명했다는 책임론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제기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이 대사를 사실상 경질함으로써 여당은 총선에서 여론 반전을 꾀할 것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역으로 정권 심판론에 불을 붙인 모양새다.
공관장 임명 한 달도 안돼 사임…초유의 사태
이 대사의 법률대리인인 김재훈 변호사는 29일 오전 10시쯤 법조 출입 기자들에게 “이 대사가 오늘 외교부 장관에 사의를 표명했다”며, 이 대사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ㅇ 저는 그동안 공수처에 빨리 조사해 줄 것을 계속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공수처는 아직도 수사기일을 잡지 않고 있습니다.
ㅇ 저는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가 끝나도 서울에 남아 모든 절차에 끝까지 강력히 대응할 것 입니다.
ㅇ그러기 위해 오늘 외교부 장관께 주호주 대사직을 면해주시기 바란다는 사의를 표명하고 꼭 수리될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을 요청드렸습니다.
사의 표명이 나온 뒤, 외교부도 출입 기자단에 “이 대사 본인의 강력한 사의 표명에 따라 임명권자인 대통령에 보고해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이 대사의 사의 표명은 호주 대사로 임명(3월 4일)한 지 25일 만, 그가 한국에 귀국(3월 21일)한 지 8일 만이다. 국가를 대표해 외국에 주재하는 공관장이 임명 30일도 안돼 사임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상황으로, 당사국 호주에도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리한 대사 임명으로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이다.
그동안 호주 대사 평균 재임기간 33.3개월이었다. 이 대사 전임자인 김완중 대사 재임 기간이 1년 3개월로, 1987년 이후 역대 최단 기록이었다. 사실상 이 대사의 임명으로 전임자가 밀려났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방부 장관 출신이 차관급인 호주 대사에 임명된 것도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개통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 수서~동탄 구간 시승을 마친 뒤 경기도 화성시 동탄역에 도착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3.2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 대사의 갑작스런 사의 표명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건의와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전해지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사의 표명이 전해진 오전 단독 보도를 통해 “수사 회피 공세를 받았던 이 대사가 전격 사의를 나타낸 것은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으로 알려졌다”고 전했으며, <조선일보>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등 국민의힘 측에서도 이 대사의 결단 필요성을 대통령실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여권 관계를 인용해 “윤 대통령도 여러 정치적 부담을 감안해 이날 오전 이 대사 교체를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보도했다.
정치권에서도 이 대사가 자진 사퇴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질은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 대사가 사의를 표명한 지 약 9시간 뒤인 오후 7시 11분쯤 출입 기자들에게 문자를 통해 “윤 대통령은 오늘 오후 외교부 장관이 제청한 이 대사의 면직안을 재가했다”고만 짧게 공지했다. 이 외에 정확한 재가 시각이나 방법(서면결재, 전자 결재) 등 다른 언급은 없었다.
이 대사의 사의 표명이 있던 이날 윤 대통령은 공식선거운동 기간임에도 외부활동을 하며 사실상 선거운동을 했다. 오전 서울 강남구 수서역에서 열린 광역급행철도(GTX)-A 노선 수서~동탄 구간 개통 기념식과 시승식에 참석한 뒤, 오후엔 경기 화성시로 넘어가 아인초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프로그램에 일일 특별강사로 참여했다.
대통령 결단 모양새 취했지만 ‘도피’만 재확인
이번 사태는 윤 대통령이 지난 4일 이 대사를 호주 대사에 임명하면서 시작됐다.
수사 외압 사건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해 ‘수사 회피’ 의혹이 제기됐지만, 당사자인 이 대사는 지난 7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4시간의 짧은 조사만 받은 채, 8일 법무부가 출국금지 조처를 해제하자 10일 호주로 출국했다. 피의자 출국금지 해제는 매우 이례적이라 논란은 컸다.
국내에선 수사 외압 사건의 핵심 피의자를 대사 임명한 데 대해 반발이 일면서 ‘런(Run) 종섭’ ‘도주대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호주 최대 공영방송 ABC도 이 대사가 부임하자 “한 병사 사망 관련 비리 수사에 연루된 한국의 전직 국방장관이, 임명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던 대사직을 수행하고자 호주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실·여당의 예상과 달리, 이 대사 출국 이후 서울에서 여당 지지율이 15%포인트 빠지면서 반전이 생겼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한동훈 위원장까지 나서서 이 대사 즉각 귀국을 요청하게 됐고, 대통령실도 당초 “적임자를 발탁한 정당한 인사”라고 완강하게 버티다, 이 대사를 귀국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됐다.
이에 국내에선 이 대사의 귀국이 여론을 의식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지만, 이 대사는 지난 21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해 “제가 임시 귀국한 것은 방산협의 관련한 주요국 공관장회의 참석하기 위한 것”이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언론에 “업무에 충실하도록 하겠다”며, 자진 사퇴에도 선을 그었다.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방위산업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에 입장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4.3.28. 연합뉴스
외교부도 거들었다. 조태열 장관은 4월 재외공관장 전체회의를 계획하면서 주요 방산 대상국 공관장들을 따로 모아 심도 있게 협의할 필요가 있어 귀국시켰다며 계획된 일정이라고 입을 맞췄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여론을 의식한 급조된 일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일부 공관장만 모아 방산회의를 연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복잡한 과정을 거쳤지만, 윤 대통령은 이번 이 대사의 사임을 통해 국민 눈높이를 고려해 스스로 결단했다는 듯한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그러나 호주 대사 임명권자가 대통령 본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책임을 피해가긴 어려워 보인다. 애초 사건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해 외교적 결례를 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정상 국가라면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다. ‘적임자’ ‘정당한 인사’라고 한 대통령실 입장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됐다.
아울러 외교부는 이 대사의 귀국과 관련, 방산협력의 ‘중요성’ 증가로 대면회의를 개최했고 이날(29일)까지도 회의가 이어진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렇게도 ‘중요한’ 공관장 회의 일정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중간에 대사의 사의를 재가함으로써 스스로 급조된 회의임을 자인한 셈이 됐다.
정권 심판론에 다급해진 대통령…무리수 강행
이처럼 대통령 본인의 책임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에도 이 대사의 사임을 밀어붙인 이유는 결국 총선을 앞두고 거세진 정권 심판론 때문으로 해석된다.
지난 21일 이 대사 귀국 이후, 한 위원장은 ‘문제가 다 해결됐다’면서 반강제로 여론의 반전을 꾀했지만, 효과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MBC가 지난 26~27일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종섭 호주 대사 거취를 묻는 질문에 유권자 62%가 해임이나 사퇴를 해야 한다고 답했고, 그럴 필요 없다는 응답은 25%에 그쳤다.
또 같은 조사에서 정권심판 응답은 56%, 정권안정 응답은 38%였으며, 지역구 투표 정당을 묻는 질문에도 유권자 43%가 민주당을 택했다. 국민의힘은 35%에 그쳤다.(표본오차 95% 신뢰 수준 ±3.1% 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여기에 국민의미래(국민의힘 비례대표 위성정당) 인요한 선거대책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외국 사례 같으면 이슈도 안 된다” “죄가 있는 게 확실하냐” 등 국민 다수의 의견과 배치되는 발언을 함으로써, 여론에 다시 불을 붙이고 사태를 장기화하는 데 일조한 것도 부담을 키웠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대위원장이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8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거리에서 이용호 후보와 함께 첫 집중유세를 하고 있다. 2024.3.28. [공동취재] 연합뉴스
‘런종섭 사태’로 이미 민심이 걷잡을 수 없이 돌아선 상태에서 ‘대파 875원 논란’ ‘의대정원 증원’ 등 국민들이 분노하거나 피로감을 느낄 이슈들이 총선에서 함께 부상하면서, 대통령도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던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약식 조사, 출금 해제, 출국 후 부임, 긴급 귀국, 사의 표명, 대통령 재가 등 25일 동안 속전속결로 이뤄진 일련의 과정은 대통령실과 여당의 당혹감과 위기감, 긴박감 등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대통령 입장에선 결단이겠지만, 국민 입장에선 대통령이 결국 본인이 잘못 판단해 자초한 문제를 ‘셀프’로 수습한 것으로 비칠 공산이 커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대사 사임에 국한된 대통령의 ‘셀프 수습’이 여론에 미칠 영향도 매우 미미할 것으로 분석된다.
사태의 본질은 채 상병의 죽음과 이를 수사한 수사단장(박정훈 대령)에 대한 외압이기 때문이다.
공수처 탓 해봤자 결국 수사 지연도 대통령 책임
여당은 당장 총선이 시급한 만큼, 이 대사의 사임을 계기로 공수처와 야당으로 공격의 화살을 돌릴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은 그동안 이 대사가 자진 귀국했음에도 공수처가 수사를 하지 않고, 민주당이 이에 맞춰 이 대사를 비판하고 있다면서 의도적인 ‘언론 플레이’ ‘정치 공작’이라고 주장해왔다. 또 이 대사가 수사를 받겠다고 의사를 표명하고 귀국했으니 ‘도주’가 아니라고 했다.
국민의힘 박정하 중앙선대위 공보단장은 이날도 이 대사의 사의 표명에 대해 “이 대사를 둘러싼 의혹을 두고 공수처는 제대로 된 수사는커녕 소환 조사조차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면서 “수사 준비도 안 된 사안에 대해 수사기관이 입장까지 내며 정치적 현안에 직접 뛰어들어 불을 지폈다”고 했다.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박 단장은 “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 정치공세에 화력을 집중했다”며 “대사직을 수행하던 공직자에게 도피 프레임을 씌우며 기어이 외교 결례까지 무릅쓰게 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정치공작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나”라고 책임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토록 민주당이 원하는 진실이 밝혀지도록 공수처가 신속히 조사하라”고 했다.
그러나 여당의 주장을 국민들이 수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수처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도 대통령의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8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경기도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출석하고 있다. 2023.9.8. 연합뉴스
공수처는 수사 외압 의혹이 지난해 8월 제기됐지만, 5개월이 지난 올해 1월에 와서야 국방부와 해병대사령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물 분석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핵심 관계자들에 관한 조사도 마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수처장까지 공석으로 남겨 수사들이 줄줄이 지연되고 있다.
공수처장 임명 지연은 전적으로 대통령 탓이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달 29일 2명의 최종후보를 선정했지만, 윤 대통령은 1개월월 가까이 지명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당장 지명하더라도 총선을 고려하면 인사청문회 일정 조차 미지수다. 이에 정치권에선 대통령이 정권 관련 수사를 표류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수사 외압 사건을 담당하는 공수처 수사 4부는 감사원이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민주당 중·성동갑 후보)에 대해 표적 감사를 벌였다는 의혹을 함께 수사하고 있어 인력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수처장이 인력 조정을 해야 하지만, 수장 공백 상황이라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이처럼 공수처가 공회전하는 상태임에도 이 대사가 귀국했으니 당장 수사하라는 여당의 요구는 무리수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당이 공수처를 계속해서 압박하는 것은 ‘공수처 책임론’을 제기하기 위한 명분 쌓기로 해석된다. 이는 여당이 추진하는 공수처 해체와도 궤를 같이한다.
정치권에선 오히려 여당의 공수처에 대한 수사 압박과 관련,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사례가 소환되면서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송 전 대표는 지난해 4월 ‘돈봉투 의혹’으로 프랑스에서 자진귀국해 검찰의 수사를 촉구했지만, 서울중앙지검은 “다른 관계자 조사를 먼저 해야 한다”며 거부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 위원장은 송 대표를 향해 “수사는 일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으니 마음이 다급하더라도 절차에 따라 수사에 응하면 된다”며 요구를 외면했다.
그렇데 여유롭던 한 위원장이 1년 만에 입장이 바뀌어 마음이 다급해진 나머지 공수처에 수사를 압박하는 것은 그야말로 ‘아니러니’다.
이종섭 사의 표명으로 선거 내내 이슈될 듯
대통령실과 여당은 정권 심판 프레임 전환을 위해 다각도로 출구를 모색할 것으로 보이지만,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대통령이 나서서 스스로 해명하거나 사과하지 않으면 선거 내내 정국 이슈로 타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채 상병이 순직한 지 이날로 225일째지만, 안타까운 한 장병의 죽음은 여전히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고, 진실을 파헤치려던 수사단장만이 홀로 군에 남아 재판을 받고 있다. 반면 사건 관련자들은 고위직으로 영전하거나 총선에 출마(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 채 상병 두 번 죽인 사람들 '꽃길'
이 대사의 사의 표명이 발표된 이날, 야권은 일제히 대통령과 여당을 비판하며 정권 심판 목소리를 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 등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종섭 주호주 대사 내정자 출국을 규탄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해병대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공수처 수사를 받은 이 내정자가 출국한 것을 두고 "사실상 국가기관이 공권력을 동원해 핵심 피의자를 해외로 도피시킨 초유의 사태"라고 비판했다. 2024.03.11. 연합뉴스
민주당 선대위 김민석 상황실장(서울 영등포 을)은 서면 브리핑을 내고 이 대사의 사의 표명에 대해 “총선 민심에 떠밀린 ‘울며 겨자 먹기식 사의’일 뿐”이라며 “어차피 이럴 걸 왜 임명해서 국가를 망신시켰냐”고 했다. 그러면서 한 위원장을 향해 “신범철 전 국방부 장관(충남 천안갑)과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경북 영주·영양·봉화)에 대한 공천을 철회하고, 채 상병, 이종섭 양 특검법을 수용하라” 촉구했다.
김 실장은 이 대사에 대해선 “빨리 소환하라는 할리우드 액션 말고 공수처에 제출 안 한, 쓰던 휴대폰부터 내놓고 공수처 조사에 협조하기 바란다”며, 공수처를 향해서도 “당장 이종섭 대사를 출금조치하고, 쓰던 휴대폰을 확보하기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종섭을 호주로 도피시키고 외교 망신까지 초래한 이 모든 사태의 장본인은 윤 대통령”이라며,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조국혁신당 강미정 대변인도 논평에서 “윤 대통령은 즉각 사의를 수리하고, 피의자를 도주시키듯 대사로 임명한 데 대해 국민께 사과하라”며 “(대통령은) ’안타깝다. 국민 뜻에 따라 사의를 수용하겠다’라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갈 생각은 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대변인은 거듭 대통령을 향해 “왜 이 전 장관을 임명하고, 국민도 모르게 호주로 보냈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하라”면서 “국민께 진심을 다해 사과하고, 방지책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또 사의를 표명한 이 대사를 향해선 “공수처 조사를 재촉하는데, 자중자애하라”면서 “조사기관에서 준비가 되면 어련히 부르지 않겠냐”고 비꼬았다.
출처 : '런종섭' 아니라면서 대통령이 왜 '교체' 결단할까 < 정치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런종섭 25일' 막장 드라마 각본은 누가 썼을까
임명 때부터 작동해 온 '보이지 않는 손'에 관심
기획 대통령실, 배역 이종섭…막장 드라마의 진실은?
작년 말 아그레망 제출부터 사임까지 입 다문 '감독'
유력한 후보는 대통령실의 외교관 출신 고위 정무직
김진호 에디터
29일 이종섭 호주대사의 사퇴로 '막장 외교 드라마'가 조기 종영됐다. 수사 외압 의혹의 돌부리를 없애려다 국민적 저항의 더 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꼴이다. 지난 4일 대사 임명 이후 한국과 호주 사이에서 25일 동안 방영된 드라마의 종영만으로 덮을 일이 아니다. 대외적으론 한·호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남긴 피해를 복구해야 한다. 대내적으론 막장 드라마를 기획한 장본인을 색출해 적절한 책임을 물어야 할 절차가 남았다. 아무리 완벽한 복구를 하더라도 주요 우방국에 입힌 외교적 결례와 이로 인한 상처는 윤석열 정부 임기 너머까지 '흉터'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호주 동포를 포함한 국민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이종섭 주호주대사 구속 촉구 긴급 기자회견에서 청년단체 '청년하다' 회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4.3.23. 연합뉴스
한국 외교의 ‘흉터’
이마저 무시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국내의 온갖 난맥에 더해 외교적으로 혼란을 조장하는 정부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다. 대내외 대책은 기실 맞물려 있다. 정부가 '이종섭 카드'를 기획한 이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리는 것 자체가 인도·태평양 시대, 주요 우방국에 보일 진정성의 척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외교적 관행에 익숙하지 않은 대통령의 지시로 비롯된 막간 상황극이 아니다. 주연배우(이종섭) 1인을 달랑 내세워 벌인 모노드라마가 아닌 것이다. 시나리오를 쓴 '검은 손'은 사태가 이 지경이 됐음에도 장막 뒤에 몸을 숨기고 있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처음부터 끝까지 정략적 기획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 잔꾀가 총선 국면에 물의를 빚자 기획 입국을 시킨 뒤 다시 기획 사퇴를 종용하는 세 번의 기획이 이어졌다. 외교부 안팎에서 호주대사 교체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작년 12월쯤이었다. 그러나 호주대사 인사는 공관장 10명이 교체된 같은 달 28일 자 인사는 물론, 11명이 교체된 1월 26일 인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군 출신 대사 2명만 따로 발표한 3월 4일 자 공관장 인사에서야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이름이 나왔다. 12월쯤 첫 아이디어가 나온 이후 3월 초 인사 전까지 약 3달은 아그레망(주재국 동의)을 얻는 데 필요한 기간이었다.
통상적인 관행을 벗어난 발령과 부임 과정을 보면 인사의 긴급성을 짐작게 한다. 이 대사가 호주 정부의 아그레망 사본만 들고 지난 10일 출국한 점, 채 1주일도 안 된 전·현직 대사의 인수인계 기간 등이 이례적이었다. 전·현직 대사의 인수인계는 반드시 서울에서 한다. 주재국에서 한다면 1국 2대사가 있게 되기 때문이다. 통상 현 대사가 귀국한 뒤 짧아도 1주일에서 열흘 정도 서울에서 대면 인수인계를 한다. 임명 전부터 인수인계했을 리는 만무할 터. 임명일과 출국일을 제외하면 이종섭 전 장관과 김완중 대사가 서울에서 인수인계할 수 있는 기간은 5일에 불과하다.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이 11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고 손명순 여사 영결식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3.11. 연합뉴스
외교부가 이 전 장관에 내린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의 출국금지 조치까지 파악하지 못하고 발령을 한 건 사안의 긴급성을 말해주는 다른 증거다. 초보적인 인사 검증도 생략했다는 방증이다. 이때부터 무리수가 변명을 낳고 어설픈 변명이 다시 무리수를 부르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외교부가 전임 김완중 대사가 작년 말로 정년이 됐기에 인사 수요가 있었던 것처럼 발표한 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시도였다. 호주를 포함한 13개국 대사는 정년과 무관하게 통상 3년, 짧아도 2년 임기를 보장하는 자리다. 차관보급 대사 자리에 직전 국방장관을 보낸 파격은 되레 작은 문제였다.
침묵하는 조태용-장호진 라인
호주가 주요 방산협력국이기 때문에 국방장관 출신 대사를 보낸다는 설명은 더 말이 안 된다. 무기 자체의 경쟁력과 이를 판매하는 업체가 방산 수출의 주역이다. 주재국 대사는 조역일 뿐이다. 여기에 호주가 주요 방산협력국이 된 건 전임 김완중 대사 임기 중이었다. 지난해 방산 계약액은 12조 원 규모로 대통령이 부산 엑스포 투표 한 달 전 방문을 강행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3배 정도였다. 질적으로도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김 대사 재임 중 성사된 레드백 장갑차는 독일 라인메탈의 링스(Lynx)와 경쟁에서 선택된 것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주요 회원국 업체가 아닌, 한국 업체가 선진국 무기 시장에서 처음 이룬 쾌거였다. 방위산업이 미래 먹거리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한 건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다. 질적, 양적으로 성과를 낸 대사의 임기를 보장하기는커녕 경질한 꼴이 됐다.
이후 무리수는 정치권으로 넘어온다. 여기엔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들도 포함된다. 특히 직업 외교관에서 정무직 공무원으로 변신한 전·현직 국가안보실장에게 의혹이 집중된다. 이종섭 대사에 대한 아그레망이 호주 정부에 제출된 지난해 12월은 조태용 현 국정원장이 국가안보실장이던 시기다. 후임 장호진 실장은 지난 14일 SBS 방송 인터뷰에서 "공수처가 조사도 하지 않으면서 출국금지를 길게 연장한 것은 누가 봐도 기본권 침해이고 수사권 남용"이라고 생뚱맞은 인권 타령을 늘어놨다. 검찰·경찰·국세청 등의 수사 편의에 휘둘리는 국민 대다수의 체감지수에서 반발을 사기에 충분한 말로, 또 다른 자충수였다. 동시에 국가안보실이 기획의 중심이었음을 드러낸 꼴이다.
조태용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14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조 실장은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 참석차 일본 도쿄로 출국했다. 2023.6.14 . 연합뉴스
호주대사 발령이라는 아이디어가 조태용-장호진 등 외교관 출신 정무직 고위 당국자들의 기획이었음을 시사하는 장면이었다. "이종섭 대사를 임명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단언했던 장 실장은 자진 사퇴 이후 아직 입을 닫고 있다. '국가 안보'를 챙기라고 봉급을 주는 자리에서 '정권 안보'에 전념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호주대사 인사를 둘러싸고 외교가에서는 "공관장이 임기를 감안해 역점을 두어온 외교 일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비난이 제기됐었다. 그걸 가장 잘 아는 직업 외교관 출신이 앞장서 외교를 망친 셈이다. 전임 조 원장도 침묵으로 일관하기는 마찬가지다.
호주대사 최소 3개월 공백
익명의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부임 11일 만인 21일 이종섭 대사의 '공무 입국'을 '자진 입국'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한 것도 막장 드라마의 본산이 대통령실이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25일 동안 여론의 초점이었던 이 대사가 결국 부담을 느껴 사의를 표하자, 여권은 이를 '한동훈의 건의와 대통령의 결단'이라는 희한한 해석을 내놓았다.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이 울력으로 국민의 눈높이와 동떨어져 있음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으로 수사받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24.3.21 [공동취재] 연합뉴스
희생자는 16만 호주 동포와 국민
어찌 보면 이종섭 대사도 희생자이다. 전직 국방장관이 격이 낮춰져 호주 대사로 임명된 것도 모자라 25일 동안 여론의 몰매를 맞아야 했다. 그러나 멀쩡하게 임무 수행을 하고 있다가 졸지에 귀임한 김완중 전 대사에 비하면 결코 피해가 컸다고 볼 수 없다. 더 큰 희생은 막장 드라마를 지켜봐야 했던 16만 호주 교민과 국민이다.
한국과 관계를 중시해 온 호주 정부 역시 엉뚱한 유탄을 맞았다. 차기 호주대사는 빨라야 5월에나 부임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 2~3개월이면 아그레망이 떨어지지만, 호주 정부가 '무언의 항의'를 하면 더 길어질 수 있다. 일단 주한 호주대사관은 29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의 모든 분야에서 차기 호주대사와 긴밀히 협력하기를 고대한다"라는 정중한 수사를 내놓았다. 윤석열 정부가 작년 말부터 기획해 3월에 25일동안 상연한 막장 드라마의 무대로 삼은 호주는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나라였고, 앞으로도 중요한 파트너다.
출처 : '런종섭 25일' 막장 드라마 각본은 누가 썼을까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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