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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2010 한국시 특집>구석본 시-'어느 생애'외1편
어느 생애
구 석 본
상수리나무 꼭대기쯤에 까치집이 있다
무덤들
구 석 본
<약력>
▲1949년 경북 칠곡 출생. |
[장백산]<2010 한국시 특집>서종택 시-'이사' 외1편
이사
서 종 택
마당이 마음에 들어
십 년 넘게 살던 집
때가 되어 떠나게 되었답니다
마당은 물론 방도 두 칸이나 줄었으니
아끼던 살림살이
아낌없이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한 권, 한 권, 모았던 책만 수천 권
무더기로 묶어 버릴 때
평생 공부 쓰레기였구나 생각했지요
그래도 버리지 못한 물건 아직 많아서
이번 이사도 제 마음에 드는 건 아니랍니다
날마다 만나도 그리운 당신,
언제쯤이면
당신 집으로 영영 이사하기 위하여
가진 것 다 버리는 즐거움
알게 될까요
구부러진 산
서 종 택
우리집 바로 앞에
조그만 산을 하나 세웠답니다.
쓸쓸한 날 오르려고
구부러진 산길도 만들었지요.
마음이 구부러지면
구부러진 산길 따라 걷는답니다.
어디론가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구부러졌기 때문에 걷는답니다.
펼 수 없는 것들 모두 모아서
조그만 산을 하나 세웠답니다.
구부러진 길 때문에
저절로 구부러진 산이랍니다.
<약력>
▲1948년 경북 군위 출생.
▲경북대 사대 역사교육과를 졸업.
▲197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박목월시인에 의해 시 <호루라기>가 당선 되어 등단.
▲2000년 첫시집『 보물찾기 』(시와시학사) 펴냄.
▲'신감각' 동인.
▲대구시인협회장, 대구대학교 겸임교수 역임
▲현재 영신중 교장으로 재직.
[장백산]<2010 한국시 특집>서지월 시-'골무' 외1편
골무
서 지 월
어머니께서 손바느질 하실 때
엄지손가락에 끼워서 쓰시던 골무
그 골무를 찾고 있네
봉창문 밖에는 소쩍새가 울어
부엌아궁이의 북덕불도 죄다 사그라진 밤
바늘광주리 안에 담긴
골무와 실패 그리고 헝겊조각들
그것들이 나의 구멍난 양말을 기우고
돋보기안경 너머로는 붉게 익은 호롱불,
등잔 밑은 벼랑처럼 깜깜하여서……
지금도 그 골무를 찾고 있네.
네갈림길의 어느 모퉁이에서 묵객처럼
다시 만나뵈올지 몰라도
어머니께서 늘 쓰시던 골무
장독간 마당 채마밭 돌담밑
그 어디로 행방을 감추어버렸는지
혼자서 가는 먼 길
지금 나는 그 골무를 찾고 있네
소쩍새 울음소리도 뚝, 끊어진 밤!
얼레빗
서 지 월
분명한 사실은
장독대가 놓여있던 그 자리에
석류나무 한 그루 꽃 피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장독대에는 사철
하늘의 해와 달이 번갈아가며
주위를 맴돌았으며
얼레빗 하나 장독 밑에 숨겨져 있었다
눈가에 다래끼가 생겨
마루바닥에 따끈따끈하게 문지른
얼레빛 등떼기를 눈가에 갖다대면
눈물이 핑 돌았으며
번갈아 가며 수십 번도 더
문질러 그짓 반복하고는
아무도 몰래 장독 밑에 숨겼던 얼레빗,
분명한 사실은
장독대와 석류나무와 그 얼레빗이
어디론가 가고 없다는 것이다
내 눈의 다래끼 다 나아
길을 갈 때도 따라다녔던 검정고무신 마저
닳고 닳아 행망이 묘연했다
나는 이런 기억 속에서
음력 초사흗날 저녁 뜨는 달이 보며
그 얼레빗을 떠올리는 것이다
<약력>
▲1955년, 대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과 연개소문과 같은 생일인 음력 5월 5일 단오날
대구 달성 출생.
▲『심상』,『한국문학』신인작품상에 각각 시가 당선 되어 등단.
▲1993년 제3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중국「장백산문학상」수상.
▲「전업작가 대한민국 정부특별문예창작지원금 1천만원 수혜시인」으로 선정됨.
▲한국전원생활운동본부 주관, 詩碑「신 귀거래사」가 영천 보현산자연수련원에 세워짐.
▲달성군 주관, 한국시인협회 대구문화예술총연합회 MBC KBS 매일신문 영남일보 등 후원으로 詩碑「비슬산 참꽃」이 비슬산 자연휴양림에 세워짐.
▲현재,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 대구문인협회 외국문학분과위원장.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상임시인.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
[장백산]<2010 한국시 특집>고희림 시-'고장난 물' ' 외1편
지평선에서의 하룻밤
고 희 림
사람들보다 소리가 더 가까운 외딴 풀밭이었다
지평선은 말이 없지만 경운기 소리로 꽉 차 있었다
냇물은 불었으나 갈 길을 막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나를 붙드는 것일까 이런 생각 뿐이었을 때
개울은 커튼처럼 흘러내리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배역처럼
물 아래 소리와 물 위 소리 사이에 너와 내가 누웠다
저 모든 지상의 것들을 위한 희생자 되버린
대지의 자궁 속에 뼈처럼 산처럼 쌓여 있는
길고 예리한 뿌리들처럼 나는 누웠고
너는 늙은 왕자의 달처럼 내 위에 올랐으니
우리는 한 몸 지평선이 되었다
어쩌랴 어쩌랴 지평선으로 만난 너와 나의 하루밤
내일 아침이면 그 실루엣의 배가
지평선 위로 불룩 솟아 오를 것이다
땅 밑에서 올라와 땅 위를 미친듯 돌며
깊고 뜨거운 그 많은 길을 견뎌온
늙은 왕자의 달을 잉태할 것이다
매양 헐겁게 흐르기 일쑤인 사랑이라지만
살면서 단막극같은 무대 위
우리는 몇 번이나 올랐다 내려올 수 있을까
내 어릴적 흙은
고 희 림
속으로 잘 삐치던 내 어릴 적 흙은 배꼽마당에 부자로 살았습니다
주막집 초가를 담장이랄 것도 없이 끼고 제 배꼽을 공짜로 내주던 흙과
주막집 애 늙은 딸애가 분명합니다
실오라기 없는 흙을 엉터리 궁둥이에 깔고 뒹굴고 부벼대면
집으로 가는 길은 이미자 노래 처녀귀신 주막집이야기로 부풀려
나와 그녀는 창과 방패처럼 서로 필요한 병과 어둠을 얻었습니다
남자친구도 여자친구도 아니었을 때 내 어릴 적 흙은
주막집 뜰에 매달린 오디에 놀라 늘 젖은 이불이거나 악몽으로 버석거렸습니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지구의 자전을 따라 돌아온 원죄의 배꼽에서 나는 자주 결석쟁이였고
물레방아 도는 내력과도 꼭 닮은 노래가 주막집 딸에게서 한동안 흘러나오곤 했었습니다
<약력>
▲1960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
▲봉초, 정화여중, 효성여고, 숙명여대 정외과 졸업,
▲현재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과 재학
▲2009년, 대구문학상 수상.
▲1999년,『 작가세계』로 등단.
▲2003년, 시집 『 평화의 속도』 펴냄
▲현재, 남부도서관 맟 대구교대 평생교육원 시창작 강사.
[장백산]<2010 한국시 특집>정이랑 시-'해바라기는 평강벌을 바라본다' 외1편
해바라기는 평강벌을 바라본다
정 이 랑
용정 새전이벌 지나는 택시 안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윤동주 시인의 올려다본 하늘, 너럭바위 닮은
한 점 구름송이 어깨춤을 춘다
태양을 외면한 해바라기는 왜 목 꺾어
자신의 발등만 내려다보는 것일까
더 이상 높은 곳의 것들에게서 이별하고
백치같은 미소를 흘리는 해란강
얼굴 맞대고 싶어 그런 것
공 굴리듯 태양을 굴려본다면
벼이삭 누런 들판의 길가에서
기타줄 튕기는 백양나무 가지처럼
분별도 없이 바람의
치마폭에 섞여 한세상 따라가 보겠네
밤이나 낮이나 평강벌 앞에서
햇볕과 달빛 옆구리에 끼고 그들이
한마을 무리지어 다툼없이 살아온 걸
나를 버린 택시가 미끄러져 간 뒤에야
산등성이 베고 눕는 석양 바라보면서 알아버렸다
청도역 농기구박물관에 가다
정 이 랑
초가지붕 위에 간신히 올라간 호박꽃들
두 레일의 울음소리 게워낼 무렵
다시 돌아오고 싶어 떠나는 것일까
물레, 풍로, 망태기……
그들은 가끔 행인의 길들을 묶어놓고
햇살 눈부신 한때 얼굴씻곤 하는데
엎어져 울고 있는 강같은 나의 뒷모습
길 만들며 가는 바람에게 던져주랴
제 몫의 무게 보따리 내려놓듯
풀어버리는 날, 어느 곳에서
꽃뱀처럼 또아릴 틀고 앉아
동아줄로 꼬아온 사연을 풀까
오늘은 깃털 하나로 뽑혀지고 싶다
비어 있는 그 자리 한움큼 햇살 퍼담으며
산의 가슴 아래 머리 기대고 잠드는 갈대잎들
낮밤 그들처럼
호루라기소리 불어대는 역무원 곁에서
달려오는 시간 북북 찢으며
나의 우중충한 영혼 넘겨주고 싶었던 거야
<약력>
▲1969년 경북 의성 출생. 본명 정은희.
▲1999년 스승 서지월시인과 19일간 중국 만주기행에 오름.
▲1997년 「한국여성문학상」 수상.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의 해「불교문학상」 시 당선.
▲1997년『문학사상』유안진 송수권시인에 의해 신인발굴에 시가 당선 되어 등단.
▲1998년 「대산문화재단 문학인 창작지원금」500만원 수혜시인으로 선정됨.
▲2000년『현대시학』집중발굴 <젊은시인을 찾아서>에 선정됨.
▲2005년 첫시집, 『떡갈나무 잎들이 길을 흔들고(시안 '황금알')』발간.
▲2009년 현재, 대구시인학교 <사림시>및 <시원> 동인으로 활동.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회원.
[장백산]<2010 한국시 특집>고안나 시-후레지아 외1편
천리향
고 안 나
누구를 부르더란 말이냐
소리없는 향기여
소리칠 수 없어서
눈 막고 귀 막아도 가슴으로 읽어내는 살내음
새소리처럼 달려 오더니
고즈녁한 저녁 눈 멀었다
알알이 터지는 못다 부른 노래여
너는 살아 있었구나
비로소 내가 나를 완성하는 환희의 소리
봄이 무너져 내리고
소리없는 울림은 가고 또 가고 말아
담을 넘어 천리길 바람처럼 사라진다 해도
나는 거기 우두커니 서 있어도 좋으리
빗방울
고 안 나
누가 던진 화살인가
공터 위 파문진다
과녘을 벗어난 안타까움
표적을 찾는 얼룩진 상념들
몇 미터의 거리였던가
날카롭게 가슴 비집고
차갑게 찍히는 인장은
날 선 아픔으로 심장에 꽂힌다
겹주름진 세월의 시위를 떠나
흔들리던 잎새 위로 뒹굴던 화살촉
깃털처럼 가볍웠던 기억
지금은 젖어 일어설 수 없었다
설치된 표적은 아무데도 없고
시위를 떠난 오래된 화살
사냥하듯 가슴을 찾아 달리지만
잃어버린 촉 하나
그대 맘 관통했는지 난 아직 모르고 있다
<약력>
▲1958년 경남 고성 출생. 본명 고혜은.
▲부산시인협회 주관,『부산시인』신인상 시당선.
▲시전문지『심상 』등으로 작품활동.
▲요산문학제, 부산일보, 한국예총 문예공모 수상.
▲호미곶문학상 수상. 백산여성문예상 수상.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부산시인협회 회원.
▲한중공동시전문지『 두견화(杜鵑花)』편집위원.
▲대구시인학교 문화부장. <사림시> 동인.
[장백산]<2010 한국시 특집>김남희 시-'내 마음의 부적'외1편
내 마음의 부적
김 남 희
밤은 깊어
인적 없는 골목길
돌아가는데
빌딩 사이 비켜선 달이
환하게 웃고 있잖아
어릴적 심부름 보내놓고
애타던 어머니
어둠 쫒으며 서 있던
창백한 모습 같아
눈길 마주치는 순간
나도 몰래 눈물 글썽거렸지
내 마음속에는
늘 덩그렇게 달이 떠
사는게 두럽고 지치고 외로울 때
등불 되어 밝혀주데
살다 보니
김 남 희
아버지 어머니는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하늘나라 가시고
살갑던 형제 자매
살길 바빠 만날수 없는데
천리 먼 길도 아닌
하루면 갔다올 수 있는 길
벼르고 별러 짬을 내면
하루 해는 왜 그리 짧은지
세상 사는 이야기
보따리 풀어 놓으면
내 얘기 네 얘기 섞어 듣다보면
비로소 삶의 지혜 생기고
서러운 일 어려운 일
넉넉한 사랑도 생겨
막혔던 물꼬 트이고
살다 보니
한 배 속에서 태어난 형제들 사랑
절실할 때 있더라
<약력>
▲경남 사천시 삼천포 출생.
▲시전문지 『심상 』신인상 시 당선으로 등단.
▲한국가람문학상 수상.
▲시집 「미완성 인생」,「햇살 한 줌 사랑 하나」,「달빛이 숨어들어」 있음.
▲한국문인협회, 부산문인협회, 부산시인협회, 심상문학회 회원.
▲<사림시>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