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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독스 새소식 일지 HOI4 - 중국 국민당
책읽는달팽 추천 0 조회 2,982 17.11.16 00:10 댓글 2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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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7.11.16 07:01

    중국이 독일말고도 다른 강대국한테 도움 다 받은건 역사적 팩트인가요?

  • 17.11.16 10:09

    @마스터치프

  • 17.11.16 10:29

    @이상엽 오오 다양한 포커스네요. 살짝 65슬라비아 느낌도..
    근데 해군을 만들기 힘드나요? 공군만들기가 더 힘드나요?

  • 17.11.16 00:18

    한국독립 포커스가 있으니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같이 독자적인 초상화가 드디어 나오겠군요

  • 17.11.16 00:22

    민주주의 얘기할 때 나오는 다섯은 행정, 입법, 사법, 감찰, 고시입니다.
    삼권분립이 아니라 오권분립을 취하고 있는 나라죠.

  • 17.11.16 07:01

    그랬었는데 현재 마오쩌둥의 삼권분립 개무시는....ㅠ

  • 작성자 17.11.16 09:20

    음 감사합니다 :)

  • 17.11.16 00:37

    팔켄하우젠이 또....

  • 17.11.16 19:08

    팔켄하우젠은 능력이 좋았던 편인가요? 그 전임자는 어땠나요?

  • 17.11.16 20:03

    @마스터치프 팔켄하우젠과 독일 군사고문단에게서 독일식 훈련을 받고 독일식 무장을 장비한 장개석의 직속 부대들은 중일전쟁 당시 중국군 중 가장 우수한 전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송크리크 전투지요.
    그리고 팔켄하우젠의 전임자는 한스 폰 젝트인데 이 사람의 조언이 공산당 토벌작전에 꽤 많은 영향을 주어서, 공산당을 연안까지 몰아붙이는 데 성공합니다.

  • 17.11.16 21:54

    @마스터치프 팔켄하우젠의 전임자인 한스 폰 젝트는 제2제국의 마지막 참모총장이고 바이마르공화국의 제2대 육군총사령관을 지낸 사람입니다.
    바이마르공화국 초기에 정부는 국방국을 전혀 통제하지 못했는데, 그 멋대로 날뛰는 국방군의 보스가 젝트였죠.
    장제스가 젝트를 초빙했을 때도 공화국정부는 부정적이었는데, 정부 대 정부로 정식요청을 해오니 별 수 없이 보내줬음.
    60개 사단 육성 계획이나 상하이의 방어선(일명 젝트라인) 건설은 젝트의 작품입니다.
    다만 젝트는 광서파에 접근하려는 독일정부와 장제스 사이에 끼어서 고생하다가 사표 썼고, 장제스가 사표 반려하는 대신 3개월 휴가 주자 독일로 돌아가서 중국으로 다시는 안 왔음.

  • 17.11.16 22:02

    @마스터치프 팔켄하우젠은 젝트가 처음 장제스의 초빙을 거절할 때 자기 대신 고문으로 추천한 사람인데, 젝트와는 1차대전 당시 오스만제국에서 같이 근무했습니다(젝트는 오스만군 참모총장, 팔켄하우젠은 오스만 제7군 참모장).
    젝트가 친중파였던 것과 달리 팔켄하우젠은 1차대전 전에 일본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고 일본어도 할 줄 아는 친일파라 중국에 가기 싫어했는데, 국방장관인 블롬베르크나 군무국장 라이헤나우가 중국행을 추천한 것도 있어서 건너갔다고.
    팔켄하우젠은 부대의 육성같은 면에서도 도움을 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중일전쟁에서의 중국군의 기본 전략을 제안했습니다.

  • 17.11.16 22:02

    @Diogenes 팔켄하우젠이 계속 중국에남았으면 중국이 더 좋은 성과를 냈을까요?

  • 17.11.16 22:06

    @마스터치프 팔켄하우젠이 제시한 전략의 대강을 보면, 우선 유럽에서 전쟁이 터지기 전에 개전을 유도할 것, 그리고 결전은 승산이 없으니 산동 등을 포기하고 산악, 해안, 하천에 진지를 구축하고 게릴라전을 통해 소모전을 유도할 것.
    실제로 중일전쟁에서 중국측의 유효한 전술이 게릴라전이었던 것을 보면 이 전략은 옳았다고 할 수 있겠죠.
    덤으로 37년 제2차 상하이사변의 작전계획을 세운 것도 팔켄하우젠으로, 이것 때문에 일본에서는 상하이사변은 중국과의 전투가 아니라 독일과의 전투라는 말까지 나왔음. 물론 외교관계를 고려해서 기사에서 삭제되었지만요.

  • 17.11.16 22:10

    @Diogenes 2차 상하이사변은 중국이 잘 막은 편이라고 봐야하나요? 그리고 중국해군이 조금 활약했다는데 일본 해군이 압도적이 강하니 완전 전멸 당하는것 아닌가요??

  • 17.11.16 22:18

    @마스터치프 중국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한 다른 전투들에 비하면 상하이사변에서는 잘 싸운 것이죠. 문제는 모처럼 방어선도 구축해주고 작전계획도 짜주고 병력도 훈련시켜줬음에도 장제스 이하 국민당 장교들이 그걸 제대로 써먹질 못했다는 것이지.
    팔켄하우젠이 남았어도 상황이 극적으로 좋아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젝트가 제시한 60개 사단 양성은 45년에 완성될 계획이라 개전 때는 8개만 훈련이 끝난 상태였고, 독일인인 팔켄하우젠의 입지도 미국이나 영국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점점 약화될테니까요.
    양키똥별 스틸웰이 중국으로 왔을 때 팔켄하우젠이 남아있었다면 해임하고 추방하라고 지X발광했을 것이 뻔하고요.

  • 17.11.16 02:24

    좋다...

  • 국민당 남버원 !!!

  • 17.11.16 10:16

    그래 바로 이거지!! 중화민국 만세!!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7.11.16 18:12

    컥!!! 순간 합성인줄

  • 17.11.16 16:56

    이우랑 닮은 사람이 있네요.

  • 17.11.16 18:37

    일본한테 만주 내준 장쉐량 입니다 ㅋㅋ

  • 17.11.17 12:01

    나는 결국엔 중국의 승리를 확신한다, 일본은 전쟁과 평화, 모두 짊어지게 될 것이다
    -팔켄하우젠-

  • 17.11.17 18:44

    중국 공산당은 어떻게 되는 걸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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