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집행자 감상하기
-숨넘어가는 죽음의 고비서 살아남는 쿠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영화감독 겸 배우, 제작자, 작곡가로 유명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1930년 5월 31일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중산층 가정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군의 인명구조원으로 근무하던 중에 촬영을 온 관계자의 눈에 띄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오디션을 본 후 1955년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1959년 CBS의 서부드라마 <로하이드>에 주연으로 배역을 맡게 되면서 인기 있는 배우로 거듭나게 된다. 그는 이후 멜파사라는 이름의 제작사를 설립, 첫 작품으로 <집행자>를 공동 제작하였으며 이후 배우, 감독, 제작자로서 이스트우드의 활동기반이 되어오고 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 삼부작에 출연, 배우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는 <더티 해리>시리즈로 ‘마초 캐릭터’의 전형이 됐다. 그는 <용서받지 못한 자>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으로 세계적인 감독으로 부족함이 없는데다 45편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 24편의 작품에 감독, 19편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사진은 1968년에 제작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30대의 나이로 젊었던 시절에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집행자>> 주요장면들을 모아 보았다. 전직 보안관인 쿠퍼(클린 이스트우드 분)가 소를 구입하는 과정에 살해범으로 오해를 받아 재판 없이 즉석 교수형으로 나무에 매달린다. 그가 숨넘어가기 직전 죽음의 고비에서 지나던 연방보안관에 의해 생명을 건짐 받고 소를 팔았던 진범체포로 무죄판결까지 받게 된다. 판사는 쿠퍼가 과거 유능한 보안관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을 도와주도록 임명하면서 모든 혐의자들은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고 명한다. 며칠 뒤 포트그렌트 마을에선 여섯 범죄자가 단체로 교수형에 처형되는 장면과 함께 어디선가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찬송가가 형장에 울려 퍼진다. 그가 체포 해온 소도둑 가운데 2명은 십대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하며 괴로워하는데 별안간총성이 울리는가하더니 쿠퍼는 총한 번 제대로 빼보지 못하고 수배자 중 3명에 의해 저격을 당해 그 자리에 나 뒹굴고 만다.
부상당한 쿠퍼를 밤새워 간호한 여인은 동네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레이첼 여인이었다. 건강을 회복한 쿠퍼는 자신을 저격한 3명을 결국 찾아내 이로써 모든 미제사건들이 해결되고 쿠퍼는 레이첼과 조용히 목장이나 운영하면서 살아가길 희망했지만 포트그랜트의 판사의 간곡한 부탁으로 다시 2명의 범죄자의 법 집행을 위해 길을 떠나는 내용을 담아 낸 영화가 <집행자>. 폭력과 폭력, 복수와 복수가 어떤 모습으로 맞닥뜨리고 있고 상대방에 총구를 겨누게 되는지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진정한 영화인임을 본다. 영화에서 성격이 다른 세 번의 교수형 장면을 보게 된다. 정의도 법에도 부합하지 않는 사적 제재의 교수형도 있고, 정의와 법에 부합하는 사형집행의 교수형도 있다는 것이다. 법에 부합하나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는 정당하지 않는 사형집행 등도 있다는 것이다.
판사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직전에 처해진 죽을 운명에 처한 자가 적들에게 복수를 하려는 쿠퍼에게 보안관 직위를 부여, 법의 이름으로 심판할 것을 명한다. 쿠퍼는 철저하게 법적인 절차를 따른다. 일례로 아버지와 형제를 잃은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을 사로잡아 린치를 가하려고 할 때 막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형하기에 죄질이 약한 죄인들을 교수형에 처하는데 이유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 법 집행의 신뢰성이 무너지고 그로 인해 사적 제재가 판치는 무법사회가 되리라는 것 때문이라는 것이다. 타인의 생명을 부당하게 빼앗았기 때문에 개인적인 법적 책임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응보적인 형벌을 받게 함으로써 정의가 충족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생명은 존엄하며 인간의 생명권은 국가조차도 박탈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절대적 가치라는 관점도 있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대부분 불우한 환경에서 비롯된 일이기 때문에 한편으로 사회적 책임이 더 크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심의 가능성에 대한 재판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보자는 것이다. 한편, 국가의 권리는 하나님의 종 됨과 그리스도 왕권의 도구로 여김에 따라 권세를 거역함은 곧 하나님의 명을 거역함으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사형 제도를 비롯한 인간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있어서 보응의 법칙과 사랑의 법칙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집행자>에서 하나는 폭력문제도 짚어볼 수 있다. 개인이 행하는 폭력도 폭력이지만 국가가 법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도 정의롭지 못하다면 법이 행하는 폭력도 정당하지 못하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영화가 <집행자>다. /여수=정우평 목사, 010-2279-8728【교계소식】문서선교후원계좌 우체국 500314-02-264196 정우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