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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 '조계종·천태종·태고종'의 차이
기자명 김성수 기자 입력 2022.08.05 15:44
[영상] 불교 관련 의식에서 사용되는 의식용 음악 '범패(梵唄)'
▲ [영상='범패(梵唄)' 국악방송 제공] '범패(梵唄)'는 불교 관련 의식에서 사용되는 의식용 음악으로 불교의식의 진행시 사용되어지는 모든 음악을 총칭한다.
[서울투데이=김성수 기자] 대한불교는 원효대사에 의해 시작된 '선종'이 있고, 의상대사에 의해 시작된 '교종'이 있다.
'선종'은 불경을 읽지 않더라도 명상 등을 통해 진리와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교종'은 불경을 읽고 그 안에서 진리와 깨달음을 찾는 것이다.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교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합친 '천태종'이 생겼고,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서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합친 것이 '조계종'이다.
천태종의 가장 특징은 소의 경전을 '법화경(法華經)'으로 하고 7년 수행을 거치는 동안 잡일 등을 잘이겨 내야 '스님'(공식 승려)이 되며 종정은 선출제가 아니고 임명제이다.
또한, 스님 개인 재산을 소유할 수 없고, 따로 독립해 천태종 이름으로 절을 지어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도 없다.
조계종은 소의 경전이 '금강경(金剛經)' 이며 아무래도 천태종 보다 '스님'이 되기가 쉽고, 스님이 되고 나면 얼마던지 사찰을 자기 마음대로 새로 지어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또 조계종에 헌납 하기전 까진 개인 재산이 되며 종단이 정한 말사 외엔 거의 중앙종단에서 간섭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관련 사찰이 너무나 많고 종단이 크기 때문이다. 교세의 규모는 현재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순이다.
한국 불교는 27개 종단으로 분류돼 있다.
▣ 조계종·천태종·태고종의 차이점
◆ 조계종(曹溪宗)
공식적인 중흥조는 고려말 태고보우(太古普愚)이나,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13세기초에 조계산(曹溪山)에서 수선사(修禪社)를 열고 선풍(禪風)을 크게 진작시킨 때부터 조계종이 시작된 것으로 보는 학설도 있다.
조계종(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지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한 조계사(曹溪寺)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이 있는 한국 제일의 포교전법 도량이며, 대웅전 앞 사리탑에 석가모니 진신사리 1과가 봉안돼 있다.
조계종이라는 이름은 중국에서 '참선' 혜능스님이 살고 계셨던 절의 뒷산 이름이 조계산이라서 그렇게 됐다. '참선'(마음을 고요하게 해 느낌으로 깨우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선종'이라고 한다.
화엄종, 법화종, 천태종 등 이런 종단들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종단이 그대로 수입된 것이지만, 조계종은 중국 산이름을 따 왔지만 종단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라 우리나라만의 종단이다.
대부분 사찰이 산중에 있고 야간에는 방범(防犯) 차원에서 법당이 닫히는 경우가 많다. 1989년 현재 교세는 사찰 1694개, 승려 1만 3387명, 신도 912만 5991명으로 우리나라 제일의 종단이다.
◆ 천태종(天台宗)
천태종은 동아시아 불교의 대표적인 종파이다.
'천태종'이라는 명칭은 6세기의 승려로서 '지의'가 거주하며 가르침을 폈던 중국 동남부의 산에서 유래한다. 이 종파의 기본 경전은 '법화경(法華經)'이며, 이 때문에 '법화종'으로 불리기도 한다.
천태종은 1097년(숙종2)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에 의해 창종(創宗)됐다. 천태종은 원래 중국불교 13종 중 가장 대표적인 종파의 하나로, 수나라의 지의(智顗)가 '법화경(法華經)'을 중심으로 천태교학(天台敎學)을 완성시킴으로써 창종됐다.
그는 천태종의 종조(宗祖)를 인도의 용수(龍樹)로 삼았고, 중국 제1조(祖)는 북제(北齊)의 혜문(慧文)을, 제2조는 그의 스승 혜사(慧思)로 삼았으며, 그 자신은 제3조가 됐다.
천태종은 '참선'을 위주로 하는 조계종과 달리 불경을 읽으며 깨닫는 '염불'을 위주로 하고 사찰이 도심 근교 속에 분포돼 있어 수행자와 신도들이 드나들기 편하게 법당이 24시간 개방돼 있는 편이다.
대한불교 천태종은 고려시대 대각국사(의천)에 의해 창종 됐으나, 조선시대에 실질적인 명맥이 거의 끊어지고, 1996년에 상월스님(충북 단양 구인사)이 공식적으로 종단을 다시 조직해 전파시켰다 그래서 천태종의 본산이 '구인사(救仁寺)'이다.
구인사는 우리나라 최대의 관음 영험 사찰로 1백 67만명의 천태종도들의 근본 수행의 도량이다. 승려나 비구니가 머리를 깎지 않는 것이 특색이며 교세의 규모는 미공개이나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순이다.
◇ 천태종의 기본적인 교의는 '삼제원융'
첫째, 모든 현상은 존재론적 실체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공(空)의 진리,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임시적으로는 존재하고 있다는 가(假)의 진리,
셋째, 모든 현상은 비실체적이며 동시에 임시적으로 존재하고 있어서 첫째와 둘째의 진리는 포용하면서도 초월한다는 절대적인 중(中)의 진리이다.
◆ 태고종(太古宗)
대한불교 태고종은 한국 불교의 전통종단으로 태고 보우국사의 '통불교(通佛敎)' 사상과 '원융(圓融)' 정신의 실천을 종지로 삼고 있는 한국 불교 27개 종단의 하나이며, 고려시대 태고보우(太古普愚) 국사를 종조(宗祖)로 하고 있는 보살종단이다. 전라남도 순천시의 '선암사'가 본산이다.
선암사는 태고종의 유일한 태고총림으로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는 종합수도 도량이다.
사설 사암(寺庵) 중심의 조직이라는 특징이 있으며, 전국적으로 약 3200여 개의 사찰을 두고 있다. 승려수가 8천395명 교임(전법사) 1100여명 교역자와 전국 500만 명의 신도를 두고 있다.
또한, 한국 불교의 전통문화인 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와 제48호 단청을 보유하고 있다.
태고종은 조계종과 공통점이 많으나 사찰의 개인소유 인정과 승려의 결혼 문제를 자율에 맡기는게 특징이다. 출가를 하지 않더라도 사찰을 유지 운영할 수 있는 재가교역자 제도인 교임제도를 두고 있다.
◇ 태고종 역사
고려시대 태고보우(太古普愚)국사를 종조(宗祖)로 하며 석가세존의 자각각타(自覺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한 근본교리 봉체(奉體)와 태고보우국사의 종풍(宗風)을 선양해 견성성불(見性成佛) 전법도생(傳法度生)함을 종지(宗旨)로 삼고 있다.
백제 성왕 5년(527) 현재의 비로암지에 초창주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처음 사찰을 창건했고, 산 이름은 청량산(淸凉山), 사찰 이름은 해천사(海川寺)라 했다.
신라 말 이창주인 도선국사가 현 가람 위치에 절을 중창하고 지금까지 쓰이는 이름 선암사로 지었고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으며, 지금도 이들 중 1철불 2보탑 3부도가 전한다.
고려 중기 삼창주인 대각국사 의천이 대각암에 주석하면서 선암사를 중창했다. 대각국사는 천태종을 널리 전파했고 선암사는 호남의 중심사찰이 됐다. 대각국사 중창건도기에 의하면 당시의 중창은 법당 13, 전각 12, 요사 26, 산암 19개 소등의 방대한 규모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김극기(1171-1197)는 시에서 "적막하고 고요한 수행의 사찰"이라고 묘사했다.
조선 전기 선암사가 어떠했는지는 모른다. 중종 35년(1540) 일주문을 중수했다는 기록만 남았을 뿐이다. 선암사도 다른 절과 마찬가지로 1597년 정유재란 때 큰 피해를 입었는데 모든 전각이 불에 타고 철불, 보탁, 부도, 문수전, 조계문, 청측만이 남았다고 전한다. 현종 1년(1660) 경준(敬浚), 경잠(敬岑), 문정(文正) 등 세 승려가 대웅전을 세우는 등 8년간 크게 중창했지만 전쟁 이전의 사세를 복구하기에는 무리였다.
선암사의 중창불사를 마무리한 이는 호암약휴(護巖若休) 스님이었다. 호암은 승선교를 비롯해 워통전 불조전 등을 만들었다. 중창 이후 법당 8채, 전사(殿舍) 12차, 중료(中寮) 16채, 산암 13채를 갖추고 선적암(善積菴), 도선암(道詵菴) 등을 부속암자로 두었다.
그러나 영조 35년(1759) 봄에 선암사는 또다시 화재를 만나 큰 피해를 입었다. 상월새봉(霜月璽封) 스님과 서악(西岳) 스님이 이듬해(1760) 재건불사를 시작했다. 이는 아도화상 이래 도선-의천-경잠-경준-문정-호암의 뒤를 이은 오창(五創)이라 할 수 있다.
상월새봉 스님은 중창불사뿐만 아니라 1734~35년에 두 차례 화엄대법회를 개최했는데 이때 참가한 1287명의 명단이 선암사 해주록(海珠錄)에 전한다. 그리고 상월스님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1761년 산 이름을 청량산, 사찰명을 해천사로 개칭했다.
정조 13년(1789)에 임금이 후사가 없자 눌암스님이 선암사 원통전에서 해붕 스님이 대각암에서 백일기도로 1790년 순조 임금이 태어났다. 이후 왕위에 오른 순조 임금은 인천대복전(人天大福田)이라고 쓴 편액과 은향로, 쌍용문가사, 금병풍, 가마 등을 선암사에 하사했다.
순조 22년(1798)에는 승중문음(僧中文音)으로 유명한 해붕전령(海鵬展翎)이 칠전(七殿)을 중창했다. 순조 23년(1823) 3월 30일 실화로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동의 건물이 불에 타자 다음해부터 해붕(海鵬), 눌암(訥庵), 익종(益宗) 스님 등이 6번째 중창불사를 해 현재의 가람 구조를 갖추었다. 그리고 산명과 사명을 다시 복칭(複稱)했다.
조선 말기에는 호남을 대표하는 함명태선(涵溟太先)-경붕익운(景鵬益運)-경운원기(景雲元奇)-금봉기림(錦峯基林) 등 4대 명강백을 배출했다.
1919년 조선총독부가 본발사법으로 전국사찰을 30본산으로 지정했을 때 선암사는 전남의 4본산 중 하나로 지정돼 순천, 여수, 광주 지역의 사찰을 관장했다.
전성기 시절에는 건물 100여 동이 있었으나 여순사건 당시 40여 동이 불에 타서 사라졌다. 그나마 65동이 남아 있었지만, 6.25전쟁으로 꽤 많이 소실돼 지금은 20여 동만 남았다. 선암사 일원은 2009년 12월21일 사적 제507호로 지정됐고, 2018년 6월30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불교계는 해방 후 전국승려대회의 결의에 따라 '조선불교조계종총본사태고사법'과 조계종명을 폐지하고 '조선불교'라는 단일 종단으로 출범했으나 3대 교정(종정)인 송만암 스님에 의해 '조계종'으로 종명이 환원됐다.
1954년 5월 대통령 이승만이 가정(家庭)을 가지고 사는 중들은 다 사찰에서 물러가라는 특별담화 이후 조계종은 독신을 주장하는 세력과 승려의 결혼을 허용하는 세력으로 양분됐으나 5·16군사정변 후 불교재건위원회에 의해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을 종명으로 통합 종단이 성립됐다.
그러나 중앙종회 구성의 쌍방 이견 대립으로 1970년 1월 박대륜(朴大輪)을 종정(宗正)으로 하는 통합종단에서 분리해 태고종(太古宗) 종단을 발족하고 '한국불교조계종'과 통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의경전은 '금강경, 화엄경'이며, 사설사암 중심의 조직으로 약 3100여 개의 사찰을 두고 있다. 종단의 주요기구는 총무원, 중앙종회, 중앙사정원, 승정원, 포교원 등이 있으며 전국 각 지역에 25개 교구본사와 미주지역에 해외특별교구가 있다.
태고종은 사찰의 개인소유 인정과 승려의 결혼문제를 자율에 맡기고 있으며 출가를 하지 않더라도 사찰을 유지·운영할 수 있는 재가교역자제도인 교임제도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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