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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4일 주일 새벽기도회 ♣
성경:예레미야 애가4:17-22(구1149P)
제목:전쟁의 승리자
17.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18.그들이 우리의 걸음을 엿보니 우리가 거리마다 다 다닐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들이 다하였으며 우리의 종말이 이르렀도다/
19.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하늘의 독수리들보다 빠름이여 산 꼭대기까지도 뒤쫓으며 광야에서도 우리를 잡으려고 매복하였도다/
20.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21.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라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
22.딸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딸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
할렐루야! 6월 네번째 주일입니다.6.25 상기기념 주일을 지키는 주일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영과 진리로 예배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제목}***“전쟁의 승리자”
여러분! 어느 때나 지도자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제 본문(애4:11-16)에서 보여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선지자들의 죄가 무엇입니까? 다가오는 하나님의 진노를 평화로 바꾸어 말할 것입니다.제사장들의 죄는 주어진 권한을 휘들러 남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이방인들에게 조롱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어제 본문에서 거짓과 권력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한 일을 지적합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분열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받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목회자들과 교회의 지도자들 때문이 아닙니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쟁의 승리자”(예레미야 애가 4:17-22)
1950년 6월25일의 전쟁! 이 전쟁의 49주년을 맞이하는 그 날, 잠실에서는 미국에 유명한 가수, 마이클 잭슨이 공연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공연의 입장료가 자그마치 30만원이라고 합니다.그런데 왜 하필이면 6·25날 하는지, 또한 그 전쟁의 아픔을 아는지, 지금도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고 그때 부상을 당한 사람들이 지금도 있는데, 그리고 북한의 사람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공연을 하는지를 책임자에게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하기를“우리는 이 공연을 통해 그래도 우리나라가 평화롭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자유국가이고 소비가 미덕인 자본국가라고 하지만 조금은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세계 나라가운데 아직까지도 분단되어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늘 노래할 때“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하면서도 그 통일을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까?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술 취한 사람이 길에 누워 있습니다. 얼마나 먹었는지 인사불성이 되어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밤새 사람이 누어 있는 것을 본 순라군이 그가 죽은 줄 알고 시체 안치소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런데 술 취한 사람이 깨어보니 여러 시체들 속에 자신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내가 여기 왜 와 있지? 내가 죽은 시체인가?”를 생각하면서 하는 말이“내가 살았다고 하려고 하니 주변에는 모두 시체들 뿐이고.. 내가 죽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왜 오줌이 마렵지?”살았다는 것입니까? 죽었다는 것입니까? 참으로 정신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내가 살아있는 목적은 무엇인지,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바른 일인지 그른 일이지, 앞으로 이렇게 살면 어떻게 될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지 생각하지도 않는 어리석은 사람을 빗대어서 하는 말입니다.
오늘 성경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전쟁에서 패배를 하고 나니 그 아픔과 고통이 너무 커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애4:1) 순금이 변질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순금처럼 화려했는데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 과거에는 보배롭고 고귀한 인생들이었는데 지금은 보잘것 없는 질그릇의 인생이 되었다, 과거에는 풍요로운 부모들이었는데 지금은 젖먹이들에게 아무 것도 줄 수 없게 되었고 심지어는 배가 고파 아이를 삶아 먹기까지 하였다는 것입니다.
전쟁의 상처가 이렇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화려함과 비교해 볼 때 전쟁의 고통은 너무나 큰 것입니다. 그래서 9절 말씀에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 지고난 후에 그 아픔과 고통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깨닫고 그후부터는 전쟁의 상처 속에 하나님 앞에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렘 41:4-5에 보면 유대 멸망 다음해인 585년에 80여명의 사람들이 수염을 깎고 몸에 상처를 내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로부터 곡식과 향료를 들고 와서 성전에 바치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유대 멸망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는 계속 이어져 내려와 후손들에 의해 유대의 관습과 전통이 되고 유대인의 중요한절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 날의 아픔을 다시 생각하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하면서 그 아픔을 겪어야만 하는지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왜 전쟁이 있고 아픔이 있습니까?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군대가 약해서 그렇다 그러니 빨리 군대를 증강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죄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심판하신 것이다”그러므로 6절 말씀에“...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도 무겁도다..”11절“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전쟁의 아픔은 우리의 죄요,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은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우리는 다시 이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두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1.보배로운 순금으로 살아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누가 보배로운 순금입니까? 누가 그렇게 가치 있고 귀한 사람입니까?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까? 세상에서는 권력을 가진 사람을 금 같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권력은 변하는 것입니다.
원시시대에는 권력이 폭력이었습니다. 힘센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독재자입니다.
산업혁명이후에 권력은 재력, 돈입니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돈이 최고입
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지력입니다. 정보사회이기 때문에 남보다 많은 정보를 가져가 사는 사회입니다.
이처럼 힘이라는 것은 시대를 따라 조금씩 변화되는 것입니다. 21세기에는 어떤 사람들이 가장 힘 있는 사람이 될지 궁금합니다. 세상은 조금씩 변합니다. 그러나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순금같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신앙인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보배로운 순금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2절에“시온의 아들들이 보배로와 순금에 비하더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변하는 세상이 우리에게 순금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주먹의 힘이 있는 사람을 가리켜서 순금이라고 귀하게 여기고 그 사람 앞에서 꼼짝 못하고 그들을 높였습니다.
어느 때는 돈 있는 사람 앞에서 비굴해져 그 사람만이 귀한 것으로 얘기했습니다. 지금은 정보 앞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보배로운 순금이라고 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가 예쁘다고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예뻐합니다. 남이 볼 때는 예쁘지 않아도 부모는 예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우리의 모습이 고슴도치라고 별스럽지 않게 생겼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보배로운 순금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에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하신다고 한다면 그저 믿는 것입니다.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소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죽어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을 보아도 우리는 용서 받을 만한 구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우니 기쁨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배로운 순금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을 발하면서 살아야 하고 소금처럼 맛을 내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는지 삶의 목적을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앞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순금처럼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았습니까? 625이후 폐허 속에서 시작된 우리나라의 모습에서 지금의 풍요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십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늘 감사하며 보배로운 순금처럼 사시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면 안됩니다.썩어없어질 것들에 소망을 두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전쟁에서 망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7절 말씀에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고 했습니다.
유대나라는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당시 왕과 지도자들 하다못해 선지자들 까지도 이집트에게 군사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허사였습니다. 성에서 도망쳐 피난을 갔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군인들에게 모두 붙잡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종종 하나님을 가리켜“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고향을, 친척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하다못해 자신의 조카와 더불어 좋은 땅을 고를 때에도 조카에게 양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할 때 바치는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인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래서“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하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이삭의 하나님”이라면 달라집니다. 이삭의 특징은 아버지 아브라함에 비하면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나이 40세가 되도록 자신의 짝을 찾지 못하고 아버지가 정해주는 대로 장가를 간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바친다고 하니 말 한마디 못하고 그저 자신을 내어 놓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이 사람을 보면 조금은 위안을 가지게 됩니다. 이 사람처럼 자신도 특별한 것이 없어서 여러 사람들 앞에 서면 괜히 열등감이 느껴집니다. 왜소해 보이기도 하고 자꾸 부족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다가도 이삭을 보면 소망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런 사람도 사랑했는데...”그래서 이전에는 내가 뭔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야만 된다고 생각하고 노력하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마음상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이삭의 하나님”도 되시기 때문입니다. 평범하고 부족한 나의 하나님도 되시기 때문에 순종하면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이 이삭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능력도 아니고 결단력도 아니며 그저 순종하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어떤 사람입니까? 야곱은 야비하고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복을 받고 외삼촌을 속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눈앞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자 않는 사람입니다. 아주 이기적이고 간사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고통도 겪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고향과 부모를 떠나야 했고 외삼촌에게 결혼의 속임을 당하고 자식들에게 속임을 당해 가장 아끼는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사실로 알고 살아가고 자신의 외동딸 디나는 원치 않는 강간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참으로 험악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도 영적인 생활이 별로 없습니다.
성격이 아주 편협하여 자식들도 편애를 했고, 아내들 조차 편애하여 한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자식들에게 조차 고통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아니면 못살겠다고 하는 이런 야곱에게도 하나님이 계실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을 향해 끊임없이 기다려 주셨습니다.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은 도와주시려고 사자를 보내셨지만 그는 하나님의 사자라고 생각지 못하고 적군이라고 생각하여 밤새도록 씨름을 하다가 결국 이른 아침 한 손에 환도뼈가 부러지니 그제서야 하나님의 사자임을 깨닫고 복을 달라고 애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의 삶이 하나하나 깨어져나갔습니다. 내 힘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살아감을 느끼고 그의 삶이 조금씩 변합니다. 놀라운 변화는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빨리 달려가서 아들을 보겠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제단을 쌓고 감사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생각할 줄 아는 것입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는 인생의 말년에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나를 기르신 하나님, 환난 중에 나를 건져주신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사기꾼도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변화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가운데 남을 미워하거나 정죄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아브라함도 있고, 이삭도 있고, 야곱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주시면 다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성가 가운데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주님의 시간에 그의 뜻 이뤄지길 기다려.
하루 하루 살 동안 주님 인도하시니 주 뜻 이룰 때까지 기다려.
기다려 그 때를 그의 뜻 이뤄지길 기다려. 주의 뜻 이뤄 질 때 우리들의 모든 것 아름답게 변하길 기다려.
주님의 뜻 안에서 그 때에 모든 것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야곱도 변화시켜 주시는데 하나님이 나와 내 남편과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까지도 야곱의 하나님으로 소망을 얻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결론}***
여러분! 전쟁의 진정한 승리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손을 들어주시는 자입니다. 보배로운 순금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섬기며 십자가지고 복음을 증거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변화시킬 때까지 우리는 그 믿음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위로하고 격려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최종의 승리자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소돔과 고모라 성을 의인 10명으로 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때문에 우리 나라와 교회와 가정과 자녀손들이 회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예레미야 애가4:17-22절입니다. 주일이지만 말씀 묵상은 쉬지말고 하시고 영과 진리로 거룩한 산예배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6.25상기 주일에 만나군인교회에 더 많은 장병들이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여호와의 군대로 군생활과 신앙생활 승리하게 해 달라고 중보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시고 행복하십시요! 여호와닛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