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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와 용선대를 경유하여 관룡산으로 직등키 위한 우리 느림보 리무진이 창녕군 옥천리에 있는
옥천계곡 입구에서 일차 하차를 하니 흐미 날씨가 딱 소리가 날 지경이닷.
관룡산과 화왕산은 가을이면 무성한 억새풀로 요즘 같은 봄날이면 지중해의 홍장미빛 보다 더욱 선명한
참꽃들의 군락지로 명성이 드 높은 산인데 화왕산의 일부는 만화가 길 창덕의 꺼벙이 머리에 뻐끔하게
드러 나는 기계충 자리 처럼 뽀알간 참꽃들만 빼곡하게 꼽혀 있다. 그리고
오늘 산행엔 미모의 젊은 여성대원 두 분이 새로이 입회를 하셨는데 홍조를 띈 뺨따구니에 솜털이 뽀송 뽀송
하게 돋아 날 정도로 구엽게 생기신 분들인데 꽃비와 홍장미란 예쁜 닉네임을 쓰고 계시고 홍장미님은
타란큘라 라는 거미의 두 눈 처럼 눈과 눈 사이 즉 미간이 몹시 좁은, 특이하게 아름다운 눈매를 가지신 분
이라 다른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십사 하면서 검은 고글을 제발 벗어 달라고 몇 번을 간청 하였고 꽃비님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남자 칭구가 있으시냐고 여쭈어 보니 집에서 기르고 있는 늑대 한마리와 코요테 두 마리
감당하는 일도 몹시 벅 차다고 하신다.
관룡사 뒷편 500 미터 지점에 있는 용선대는 연화 대좌에 앉으신 부처님의 모습이 주위의 절경과 너무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유명세를 많이 타는데 손 모양 즉 수인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계신다. 석가모니불이 보리수 아래에서 성불할
당시 방해를 위해 몰려 드는 마귀들을 제압키 위해 이 수인을 사용하셨다고 하고 관악산 연주대와 낙성대
그리고 용선대의 대는 높은 언덕을 말하고 이 높은 대 위에 짓는 정자를 누각 이라고 하고 대가 아닌 평지에
지으면 누각이 아니라 누각과 정자의 합성어인 누정 이라고 한다.
옥천계곡 입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용선대 부처님을 뵙기 위해 길을 서두르느나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쇠락한 절터 즉 이 동리의 이름인 옥천의 유래가 된 옥천사지를 둘러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오늘의 이바구는 여기서 시작케 되는데 결론을 말하면 고려 공민왕 당시 정계 개혁을 주도 하다 6년 만에
역모죄로 몰락하여 참수를 당한 요승 신돈 이라는 중이 이곳에 있었던 옥천사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여 났고
중 신돈이 역모죄로 몰리면서 옥천사는 자동뻥 으로 불살라 져서 폐허가 되어 버렸는데 과연 신돈은
박 근혜의 어떤 여인네 처럼 국권을 농락한 요승 이였을까? 고추는
된장이나 간장에 코를 박아서 장을 담그면 다소 흐물 흐물해 지지만 밀가루나 찹쌀풀을 살짝 발라서 부각을
맹글면 빠닥 빠닥해 지면서 매운맛 또한 강해 지는데 비아그라나 씨알리스가 없던 시절 발기 부전을 위한
최고의 영약이 토룡탕 즉 지렁이를 푸욱 삶으면 곰탕 처럼 뽀얀 국물이 나오는데 신돈이가 이 토룡탕을
끊임 없이 마시면서 대신이나 장군들의 처첩을 농락했다고 하는데 신돈에 대한 기록은 신돈이 참수 된 이후에
신돈의 반대파들이 쓴 글들이 대부분 이다. 신돈을 거론키 전에 우선 신돈에게 잠시 국정개혁의 권력을 맡긴
공민왕에 대해 잠시 알아 보자. 공민왕은
홍건적이 침범하자 앞 뒤 돌아 보지 않고 노국 공주를 옆에 끼곤 내 고향땅 안동으로 몽진을 갔고 총병관
정 세운은 이십만 병력을 규합하여 홍건적을 맞아 대승을 거두는 혁혁한 전공을 세우는 영웅이 되자 개성으로
환궁한 공민왕은 이십만 병력과 민심이 쏠려 있는 정 세운 장군이 껄끄럽기 짝이 없게 되자 측근 김 용이란
인물을 내 세워 모략을 꾸며 정 세운을 비롯한 전쟁 영웅 모두를 싹 쓸여 죽여 버린다. 비슷한
사례가 임진왜란 당시 칠흑 같은 장대비를 뚫고 임진강을 넘어 도망을 간 선조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자신은 도망을 갔는데 몇 명 되지도 않는 보잘 것 없는 병력으로 연전 연승을 했던 성웅 이 순신 장군을
구냥 내 버려 두기가 쉬운 일은 분명 아니다. 공민왕은
꿈에 어떤 스님이 나타 나서 자신을 구해 주었는데 김 원명의 소개로 신돈을 처음 만나니 바로 꿈에 보았던
그 스님의 얼굴이었다고 하는데 노비의 아들로 스님이 되었던 일과 어떤 연의 끈으로 정계 중앙 무대로
입성을 하였는지는 알려 진 바가 거의 없고 마키아벨리와 같은 노회한 계략가인 공민왕은 기득권 세력의
과다한 사노비와 토지의 독점 문제로 골머리를 앓다 딸린 식구와 이해가 충돌 하는 정파가 없는 신돈을
개혁의 선봉으로 내 세워서 심지어는 최 영 장군 같은 거물도 내 치게 되면서 기존 수구 꼴통들의 반감과
개혁에 성공한 신돈의 인기가 백성들의 입에서 칭송으로 나오기 시작하자 권력 누수의 불안을 느낀 공민왕이
정 세운 장군을 쳤던 그러한 수법으로 조선시대의 조 광조 처럼 역모라는 올가미를 걸었 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요승 일까요 정치판의 희생양 일까요? 그리고 공민왕은
노국공주를 그리워 하며 궁궐 내에 미소년들을 불러 들여 동성애 비슷한 행각을 하다 이들의 손에 무참하게
살해되고 신돈의 아들 이랄 수도 있다는 우왕이 즉위를 하면서 고려 멸망의 최대의 패착을 하게 된다.
이미 지는 해인 원나라를 섬겨야 한다는 최 영 장군의 어리석음을 따라 떠 오르는 해인 명나라를 섬겨야
한다는 이 성계에게 군사를 주어 명나라를 치게 하니 가기 싫은 이 성계는 위화도에서 창끝을 개성으로
뒤 돌려 회군 즉 군사반란을 일으켜서 최 영을 비롯한 많은 신하들을 내 치고 왕도 창왕으로 바꾸어 버렸는데
여기에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한 신하가 삼봉 정 도전과 다섯살 위인 충신(?) 포은 정 몽주 이다.
정 몽주는 이 성계를 도와 창왕에 이어 허수아비 공양왕 꺼증 내 세우다가 다른 마음을 품고 낙마를 하여
잠시 병석에 누운 이 성계를 칠려다가 낌새를 눈치 챈 태종 이 방원의 손에 살해 되는데 며칠 전에
광운대 김 인호 교수의 논문이 새롭게 나왔다. 포은 정 몽주는
선죽교에서 철퇴로 살해 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정 몽주 묘소가 있는 용인 모현면 능골 바로 옆에 있는 경기도
광주 태전동에서 사망을 했다는 것이고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을 고쳐 죽어도 임(고려 임금)을 향한 일편
단심 이라는 단심가도 정 몽주의 글 인지 의심 스럽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 몽주는 비록 이 방원의 손에 맞아 죽었지만 고려를 멸망 시키고 이씨 왕조를 세우는 역성혁명의 최대
공신 이며 조선 중종 때는 정 몽주가 끝내 문묘에 배향 된다. 고려 충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머리가 좋은 수재라 장원급제를 하여 승승장구 하던 노회한 정치가로 활동하다 줄을 잘못 서서 죽임을 당했을
뿐이고 포은 선생의 묘소에 있는 안내 입간판을 보면 시신을 고향땅인 경북 영천으로 운구를 하다가 어떤
어떤 사유로 이곳 능골에 급거 묘소를 쓰게 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이곳 능골이 경북 영천으로 가는 길목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은 오래 전 부터 떨쳐 버릴 수가 없었고 이 동네의 이름인 모현면은 포은 선생의 어짊을
사모 한다는 뜻이고 묘소 내에 모현당이란 현판이 걸린 건물이 한 채 있다. 우리
국민학교 다닐 적엔 포은이 흘린 피가 여태 꺼증도 선죽교에 얼룩져 있다고 했다. 포은 선생은
과연 두문불출한 고려의 충신 일까요? 아님 실착을 한 노회한 정치가 였을까요? 세월이 바뀐
어느 해에 티비 연속극에 참군인 이란 묘한 용어가 떠 오른다.
박 정희 대통령이 정보부장 김 재규의 손에 시해되자 그 때 같은 정보부 건물 내에 있었던 정 승화 육군
참모총장은 김 재규와 공범 이라는 의심을 받고 전 두환 합수부장은 노 재현 국방장관에게 정 승화 체포를
건의했으나 노 재현은 오히려 정 승화와 상의하여 전 두환 보안사령관을 아무런 실권이 동해안 방어사령관으로
좌천을 도모하자 전 두환은 보안사 허 삼수 대령과 헌병 우 국일 대령에게 지시 하여 한남동에 있는
참모총장 공관에서 정 승화를 체포하여 보안사로 연행을 하자 보안사를 중심으로 한 육사 출신 전 두환과
보안사를 칠려고 하는 수도경비사령부를 중심으로 한 비육사 그러니깐 갑종 출신 장교들이 대치를 하는
상황이 벌어 졌는데 당시 수경사 사령관 이었던 장 태완 육군 소장이 세상이 바뀌면서 진정한 군인인
참군인으로 등장케 되는데 과연 이 분이 참군인 일까요? 아님
이 장 태완 장군의 말에 의하면 장군 계급장을 달고 서도 달동네 비슷한 곳에서 살 정도로 청렴 했다는
것인데 경북 칠곡 출신으로 간부후보생으로 임관을 하였는데 이 분은 자신의 병력이 어느 정도이고 가용한
무기와 자원이 어떠 어떠한 지를 전혀 모르는, 한마디로 말하면 모자에 별 계급장만 단 똥별 이다. 왜냐구요?
장 태완 장군은 보안사를 칠려고 우선 김포에 있는수경사 야포단장에게 전화를 하여 호통을 치면서 보안사
건물을 향해 포를 날리라고 한다. 대령 계급장을 단 야포단장이 젊잖케 항명(?)을 한다. 미사일이 아닌
재래식 야포들은 우선 군사 작전지도에서 좌표를 읽고는 몇 방 때려 보고 나서 오조준 하게 된다. 쉽게
말하면 한빵 때리고 나서 탄착점을 수정 하게 되니 처음 쏜 포탄들이 보안사 인근에 있는 경복궁으로 떨어
질지 청와대 건물로 떨어 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구래도 포를 쏠까요? 하니 그제서야 장 태완 장군이
전화를 내려 놓게 되었는데 모르긴 하지만 아마도 육사 출신 포병 대령이 속으로는 그랬을 것이다.
대가리에 똥 빢에 들지 않은 새끼들이 별판 계급장을 달고 개지랄을? 그리고 나서
장 장군은 수경사 정문 앞에 있는 중앙대 부속병원 인근에 공격개시선을 설정 하곤 장갑차에 시동을 걸고는
계속 어디론가 무전을 하여 명령을 내려 달라는 것이다. 이 사람은 군인으로서 기초적인 상식도 없는 분이다.
우선
대포를 어떻게 쏘는지 명중률은 어느 정도인지 사거리는 얼마나 되는 지를 전혀 모르는 분이고 자신에게
명령을 내릴 정 승화 장군을 비롯한 지휘부가 궤멸 되었으면 자신이 스스로 판단을 하여 오히려 명령을
내려야 할 상황인데 나중에 책임이 무서우니깐 장갑차에서 명령을 내려 달라고 소리 소리 질러 대다가
무전기에서 수경사 장 태완 사령관을 보는 즉시 사살해 버리라는 교신내용이 들리자 기겁을 하곤 수경사
내로 들어 갔다가 부하들 손에 체포 된다. 당시 보안사 내에 있었던 어느 장군의
육성 증언에 의하면 보안사엔 권총과 엠16 소총 몇자루 밖에 없는 지라 대포 같은 건 필요도 없고 탱크나
장갑차 정도 한 두대만 몰고 오면 혼비백산 하여 도망 치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보안사 장군도
장 태완 소장이 장갑차 몰고 오면 이젠 죽었구나 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 마당에 사살해 버리라는 무전 한방에
오히려 도망을 간 장 장군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단 것이다. 이 분이
참군인 일까요? 아님? ... 공직에 있으면서
검은 돈을 먹을 생각도 없고 실제로 먹지도 않은 사람을 우린 청렴결백한 분 이라고 하고 검은 돈을 먹고
싶은 생각은 꿀뚝 같지만 장 태완 장군 처럼 겁이 나서 못 먹는 사람을 머라고 하는지 아세요?
청렴무능한 놈이라 하졈. 마지막으로
연세대 출신 김 우중의 대우그룹 신화에 이어 율산의 신 선호 회장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이 창우의 제세산업이
등장 한다. 잘 나가던 제세그룹이 부도가 나면서 여러 죄목으로 이 창우 회장은 깜빵엘 가게 되고 형을
마치고 나온 이 창우 회장은 자신은 억울하게 죄를 뒤 집어 썼다며 옛날 옛날 한 옛날 이란 책을 출간 하는데
책 표지에 은팔찌를 차고 포승줄에 묶인 자신의 모습을 실었는데 얼마나 분하고 억울 했으면 책 내용의
거반이 온통 욕으로 도배를 한다. 이 회장은
서울대 기계과를 나와 해병대를 자원입대 했으니 머리나 국가관 같은 것은 분명 뛰어 난 분 이신데 자신도
감방에서 들은 이야기라는 책 내용의 일부를 소개 하면
청춘남녀가 중국집에 와선 우동 두그릇을 시키곤 음식이 오는 동안 쨩퀘놈에게 잠시 백열등을 꺼 달라고
하곤 식탁 위에서 급하게 볼 일을 보곤 집으로 돌아 갔는데 며칠 뒤에 중국집으로 형사대가 들이 닥쳐
쨩퀘를 체포 하는데 죄명이 무어냐고 물어 보니 남녀가 재미를 보라고 백열등을 꺼 주었으니 강간방조죄란
것이다. 헌데 쨩퀘가 구치소에 있는 동안 두 남녀의
집안에서 화해를 하여 강간죄에 대해서 소를 취하해 버렸고 강간죄는 친고죄 이므로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처벌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강간죄를 뒤집어 쓴 남자놈은 풀려 났지만 강간방조죄는 친고죄가 아니므로 처벌을
받아야 된다고 하니 이 쨩퀘놈의 허파가 뒤 집어 진다. 이 쨩퀘놈이 서툰 한국말로 했던 말이
중국집 방에서 씨비한 놈은 집에 가고 주방에서 우동 맹글다 잠시
백열등 만진 놈은 징역 살아 니미 씨팰 이런 법이 어디 있어?
경기도 지사를 역임 하셨던 손 학규 의원의 자서전을 보면 자신이 용접공으로 이 창우 회장의 제세산업에
위장 취업을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창우 회장은 이 놈의 나라에서 예비군 훈련도 받기 싫다며 외국으로
이민을 가 버렸는데 카더라 방송으로 들리는 참으로 흥미로운 대화 한토막을 소개 하면서 그만
은팔찌를 차고 검사 앞에 쮸구리고 앉은 이 창우 회장에게 검사께서
당신이 이 세상을 제패 할려는 욕심으로 회사 이름을 제세산업 이라꼬 지었느냐고 야릇한 미소를 띄우면서
이죽 거린다. 돈벌이 좋을 적엔 잘 나갔지만 오늘날 네놈의 꼬락서니는 요 모양 요 꼴이 아니냐는 것인데
이 창우 회장님의 답변이 참으로 거룩하다.
이 노무 세상 돌아 가는 꼬락서니가 제미 씹핼넘의 세상이라 회사명을 제세산업 이라꼬 지었다네요.
분당 탄천변에서 누룩뱀 돌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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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리역 탄천에는 이제 벚꽃이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마지막 벚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람에 흰눈 날리듯 하얗게 날리는 벚꽃 비를 맞으시려면 오리 공원으로 오세요.
돌삐님께서 여기에 다 못 쓰신 뒷이야기를 들려 주실지도 모릅니다.ㅎ